영화는 삶에 있어 한 모금의 청량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2시간여에 걸친 거짓말을 아무런 비판 없이 돈까지 내고 받아들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영화 공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감독이 있으니 바로 일본의 스타감독 ‘기타노 다케시’다.
그가 만든 영화는 하나같이 폭력과 죽음을 내포하고 있으며 특히 폭력의 경우 거의 ‘심각한 수준’의 리얼 폭력을 보여줘 관객들이 ‘아! 정말 아프겠다’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한국에서 그를 가장 먼저 알려준 영화 ‘하나비’는 당시 잔혹한 하드보일드 영화의 새로운 공식을 세운 것은 물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게 하는 새로운 화면 구성으로 돌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다 보니 그의 영화는 재미라는 원초적 영화의 특성과는 담을 쌓은 채 흘러가는 단점이 있다.
‘소나티네’, ‘자토이치’ 등 형님과 그들의 적이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었던 그가 얼마 전 ‘돌스’라는 다소 황당한 내용의 러브스토리를 선 보였다. 물론 재미하고는 더욱더 높은 담을 쌓아 마니아 계층이 아니면 런타임 내내 졸음과 싸워야 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남자가 여자를 버리자 여자가 미쳐 버린다.
그러자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온 남자는 여자를 찾아가고 둘은 운명의 빨간 끈으로 서로를 연결한 채 애인을 버리고 달아난 야쿠자 두목, 아이돌 스타가 눈을 잃어버리자 자신의 눈을 자해한 광적인 팬 등 특이한 사랑의 인간 군상들을 지나친다.
감독은 이들을 하나하나의 황당하다 못해 처절한 사랑의 결말을 보여주면서 일본의 사계를 강렬한 영상으로 잡아내 그 지루함에 약간의 마이너스 요인을 만들었다.
문제는 감독이 만들어낸 영상에서 항상 죽음의 향기가 느껴진다는 것.
머리가 깨지고 ‘억!’하고 비명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차갑게 변해버리는 주인공들이 무수히 등장한 그의 전작과 썩 다르지 않다.
막상 처절하게 죽어가는 장면은 별로 등장하지도 않지만 관객에게 거부감이 들 정도로 부담스러운 것은 감독이 가지고 있는 ‘잔혹함’이 여전히 작품 깊숙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돌스’는 유난히 이기적인 기조가 전반에 흐른다.
차라리 개인주의였으면 좋겠지만 세상과 문을 닫은 남과 여, 그리고 세상과 소통방법을 모르는 남녀들이 우글거린다.
아마 그의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그 이기적 액션의 반복이리라 생각된다.
이기적이기에 더욱 잔인하고 이기적이기에 더욱 연민이 느껴지는 그의 작품은 시간이 많이 생기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특히 미치도록 사랑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잔혹한 전작들과 함께 비교해서 볼 때 기타노 감독의 마니아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영화다.
다행한 것은 가끔 야심한 시간 케이블 방송에서 공짜로 상영해 주머니 부담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김정호기자 kimj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