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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기(3)...빠에야, 코치니요 그리고 하몽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05-02-04 16:38 게재일 200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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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살로메
스페인으로 떠나기 얼마 전 나는 동해안의 한 레스토랑에 있었다. '지중해' 라는 상호와 더불어 흰색 칠을 한 외관 때문이었을까. 마치 남유럽의 어느 바닷가에라도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 멋대로 한반도의 동해를 이베리아 반도의 지중해 어디쯤으로 환치시켜놓고 즐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빠에야 요리를 처음 먹어보았다.

스페인 음식 중 가장 우리 입맛에 맞을 거라며 함께 간,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문우가 빠에야를 권했던 것이다. 샤프란이란 비싼 향신료가 쓰인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빠에야는 더도 덜도 없이 해물볶음밥에 가깝다. 고소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났다. 예정에 없던 스페인 음식 경험은 여행에 대한 설렘을 극대화시켰다. 하루 빨리 빠에야의 원조 맛을 꿰뚫고 싶었다.

빠에야는 쌀에다 오징어, 조개, 닭고기 야채 등속과 함께 샤프란을 넣고 볶은 해물밥이다. 노란색 향신료인 샤프란은 성냥갑 만한 팩 하나에 몇 십만원을 호가한다. 백송이가 훨씬 넘는 꽃에서 겨우 1그램의 가루를 얻을 수 있다니 비쌀 수밖에.

빠에야는 여행 막바지 바르셀로나에서 먹을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가이드는 여행 내내 너스레를 떨었다. 빠에야의 그 오묘한 맛의 경계를 넘나드느라 울부짖는 여행객 여럿 봤다는 것이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 한 술 떠 넣는데, 고슬고슬하고 쫀득쫀득해야할 밥알은 설겅설겅하다 못해 푸슬푸슬하기까지 하다. 그토록 기다리던 십여 일의 설렘이 단 몇 분만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것은 입맛의 차이였다. 우리식 입맛으로 잣대를 대는 게 잘못이지 어찌 그들 요리실력을 탓하겠는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스페인 음식 중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애저요리이다. 코치니요 아사도라 불리는 이것은 생후 15일 미만의 새끼돼지를 오븐에 구워낸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요리란다. 마드리드 근교 엘 에스꼬리알 궁전을 둘러본 뒤였던가, 점심 메뉴로 그 요리가 나왔다.

코치니요는 우선 그 양으로 이방인 여행객을 압도한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곳 사람들은 틀림없는 대식가들이다. 너 댓 명이 먹어도 될 정도로 접시는 푸짐하다. 일반 바비큐보다 기름기가 덜해 담백한 맛이 난다. 와인을 곁들이면 고기 특유의 맛도 살아나고 입안도 개운해진다는데 와인에 익숙치 않은 탓인지 깊은 맛을 즐길 수는 없었다.

식사가 끝났을 때 일행 중 빈 접시인 곳은 거의 없다. 지배인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 맛난 요리를 저토록 남기다니, 니네들 참 한심하다, 이런 못마땅함이 배어있다. 눈치 빠른 몇몇이 재빨리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비록 접시를 비우지는 못했지만 음식 맛은 으뜸이라는 우정의 표시이다. 금세 지배인과 종업원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바르셀로나 바닷가 식당에서였다. 식육점과 식당을 겸한 그곳에는 예외 없이 고기덩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것이 그 유명한 하몽이다. 돼지뒷다리를 절여 자연 건조, 숙성시킨 음식이다. 샌드위치에 넣어 먹거나 하몽 자체만을 먹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삼겹살만큼이나 흔한 음식처럼 보였다. 진열대 위에 매달린 하몽은 그다지 위생적이지도 않고 냄새도 났지만 왠지 친근감이 들었다. 시렁에 매달린 우리의 메주를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무심코 맞은 편 테이블을 보았다. 나이든 스페인 모녀 앞으로 세숫대야 만한 그릇에 담긴 해산물요리가 나온다. 세상에! 그 산더미 같은 해물이 이인분이란다. 정말 못 말리는 대식가들이다. 저런 요리라면 대식가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느끼한 음식만 먹다가 해물을 보니 식욕이 절로 돋는다. 때론 우리도 대식가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예약된 상태라서 결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종류를 알 수 없는 소박한 스테이크를 자르면서 나는 그 모녀가 몹시도 부러웠다.

다정히 늙어가던 모녀의 푸짐한 해물요리, 여전히 팽팽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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