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거실창문으로 가득히 쏟아져 들어오는 가을햇살이 따사롭다. 느긋하게 자고 있는 아내를 들쑤셔 깨워서는 부산한 아침을 맞이한다. 일요일이라 시간의 제약을 무시하고 잠들어 있는 아이들은 아예 깨울 엄두를 못 내고 ‘하루를 프리하게 보내기 바람’이라는 메모지 한 장과 전날 먹다 남은 피자 몇 조각과 그들이 하루 동안 일용할 이것저것들을 식탁 위에 챙겨놓고 세종대왕 한 장을 덤으로 던져놓는다.
이놈들 우리가 없으면 하루 종일 희희낙락(喜喜樂樂) 하겠지.
가스충전소에서 완충을 하고 경쾌한 음악에 볼륨을 높이고 나니 차는 벌써 가을 속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을 이겨낸 들판은 가을로 향하는 기미가 가득하다.
파랗게 높아진 하늘과 걱정 한 점 없어 보이는 한가로운 흰 구름들. 가로변 양쪽에 피어난 코스모스며 가을 옷으로 변신을 꿈꾸는 가로수들! 가을은 이렇게 한번씩 추억과 감상에 젖어도 좋을 만큼의 충분한 계절의 멋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아! 오늘은 왠지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맏사위의 갑작스런 방문을 맞이하는 장인어른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하다. 노인네 두 분이 어렵게 땀 흘렸던 고추농사는 풋고추하나 딸 것 없을 만큼 탄저병으로 완전히 말라버렸고 당신의 연륜 만큼이나 고목이 된 사과농사도 엉망이 되었지만 자식 반기는 밝은 주름살이 마주앉은 술상위로 넘실거린다.
뒷산에 도토리가 많다며 배낭을 하나씩 짊어지고 뒷산으로 향한다. 이산에서 몇 년 전 송이를 32개나 딴 적이 있는데 글쎄 오늘 하나라도 따면 좋으련만…, 산중턱쯤에서 몇 년 전 송이버섯을 땄던 곳 주변을 몇 번이나 돌아봐도 송이는 보이지 않는다. 송이 따기를 포기하고 정상으로 향하는데 이게 뭔가! 길섶 한구석에서 송이가 반긴다. 한 뿌리의 송이! ‘심봤다’를 외친다! 일진! 그래 오늘은 일진이 좋아!
품앗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장모님이 ‘온다고 기별이나 했으면 묵이라도 해놓을 낀데’ 라며 자식들 좋아하는 도토리묵을 해 먹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그저 이것저것 챙겨주느라 마음이 바빠 동동 걸음이다.
40㎏짜리 쌀 한 포대를 어깨에 턱하니 메고는 차에 실어주시는 장인어른! 대파도 뽑아오고 냉동시켜놓은 삶은 옥수수도 비닐봉지에 넣고 탄탄한 늙은 호박도 하나 골라주고 아이들 머리 좋아진다고 호두도 한 봉지 넣고….
늘 이렇게 당신들의 희생과 끝없는 사랑으로 봉지봉지 싸주시며 6남매의 자식들에게 버팀목으로 자신의 몸을 태워가는 볼품없는 그 손마디의 위대함과 감사함에 머리가 숙여진다.
네 명이 한 뿌리의 송이를 놓고 몇 순배의 술잔이 오가는데 서로 송이를 양보하다보니 소주 한 병을 다 비울 때까지 송이가 안주로 접시에 남아 있다. 행복이다. 이 작은 행복이 술기운과 함께 온몸으로 퍼져간다.
오후 10시가 넘어 화물칸으로 변한 뒷좌석의 짐들을 꺼내들고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옥수수 알알이 박힌 사랑과 묵직한 쌀 포대의 인정을 가슴 가득 안고서….
<김성해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