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우울은행 콜 센터입니다 먼저 원하시는 서비스코드를 눌러주십시오 본인의 바코드를 누르시고 #버튼을 눌러주십시오 귀하의 슬픔의 잔액은 무한정이군요 받으실 분의 계좌번호를 입력하여주십시오 이체할 슬픔의 양을 눌러주십시오 아참 주체못할 비애 이상을 이체할 분은 0번을 눌러주세요 전문상담원이 그대의 생을 친절하게 상담해드립니다 받으실 분의 성함과 계좌번호를 확인하시고 맞으면 * 표를 눌러주세요 이제 슬픔이 이체 완료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계좌에는 아직도 근심이 무궁무진 남아 있군요 오늘도 저희 우울은행 콜센터를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잠시만요,그런데 이 무한정의 눈물은어디로 전송하죠? 네?은행을 찾아가지 않고 전화로 은행 일을 보는 것을 텔레뱅킹이라 한다. 모든 것이 기호화, 코드화 되어 있고 온라인, 디지털로 거래되고 판매되는 후기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차가움 혹은 비정함, 비인간화 되어가는 현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1-03-09
쌀 됫박이나 팔러 싸전에 왔다가 쌀은 못 팔고 그냥저냥 깨나 팔러 가는 게 한세상 건너는 법이라고, 오가는 이 없는 싸전다리 아래로 쌀뜨물같이 허연 달빛만 하냥 흐른다야 이놈아, 뭣이 그리 허망터냐?싸전 다리 아래는 갖가지 곡류와 먹거리를 파는 난전이 벌어지는 곳이다. 쌀을 내다 팔러 갔다가 잘 포장된 브랜드쌀이나 수입쌀 판매가 일반화된 현실 때문에 쌀을 팔지 못하고 돌아오며 느낀 허탈감 박탈감이 시 전편에 깔려있다. 다국적 외래 농산물이나 브랜드화된 농산물이 토종 농산물을 넘어서는 서글픈 현실을 한탄하는 농민들의 한숨 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1-03-08
목련이 내려다본다탁탁 튀는 장작 불꽃과부르르 진저리치는 연기를,목련이 내려다본다뜨락에 흩어져 있는 신발들과목련 나무 아래 묶여 있는 개를개의 목을 파랗게 조여오는 쇠줄을이윽고 물이 끓으면까맣게 그을린 껍데기가 벗겨지고왁자지껄 국그릇이 돌아가고목련 나무 아래하얗게 뼈다귀가 쌓여갈 때까지도목련은 내려다볼 것이다조용한 봄날을 꿈꾸며봄날 목련나무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놀랍게도 보신을 위해 개를 잡아먹는 풍경이다. 시인은 인간 욕망의 무자비함을 야유하고 있음을 본다. 욕망에 사로잡혀 하얗게 벙그는 목련꽃 아래서의 타락한 인간의 욕망과 잔인함을 비판하여 추악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발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1-03-07
고래같이 생긴 여객기 한 대천천히 하늘에 길을 냅니다저 하늘 끝이시퍼런 물의 표면이란 생각이 듭니다물고기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물속에 앉아 있는지아무도 모릅니다물속에 가라앉은무수한 섬어떻게 생겨났는지언제 떠올라 사라지는지저 은빛 고래 뱃속에도수백 개의 옮겨가는 섬이 있겠지요저 하늘 끝이 시퍼런 물의 표면이라면 지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깊은 물의 심연에 가라앉은 것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이 이채롭고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물의 바닥 그 깊은 심연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답답하고 고독하여 고통스러움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삶의 욕망과 소유를 줄이고 가벼워져 물 위로 떠올라야 하는 것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성찰에 시의 중심을 둔 작품이다. 시인
2021-03-04
참, 참, 오래된 집입니다나팔꽃이 피고 지며바람이 들며나며 지은 집쪽창을 밀고 들어온 저녁사진틀과 옷가지를 청보라로 물들이던 집삶이 가진 불안과 희망이기와가 되고 문지방이 되고죽음이 주는 설움과 평화가 만든마루와 벽장 속에는알맞게 삭은 어질병이 살아갑니다한때 바삭거리던, 이젠 눅눅한 그리움이하나하나 벽돌이 된 그 집에서젖었다 마르곤 하는나와 나의 사람들과 내 추억의 몸들녹슨 못들로 총총한 당신은깨꽃과 산능선과도 잘 어울려어떤 세상이라도 고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한 채 옴팡집으로 적막한당신 옆구리에 무당거미 한 마리거미줄 치며 햇살을 고릅니다아버지를 한 채 집으로 표현하는 시인에게 깊이 동의한다. 그 집에는 나팔꽃이 피고 바람이 드나들고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사랑과 정겨움과 눈물과 헌신이 소복했던 집이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다독여 품어주고 치유해주는 세상의 그 어떤 명의(名醫)보다도 나은 아버지라는 힐링과 치료의 집이다. 늙어가면서 낡고 쓸쓸한 집이 되어가지만, 영원한 안식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시인
2021-03-03
산길 가다가 좋은 꽃밭 만나면살살이꽃이 어디에 숨어 있나숨살이꽃이 어디에 숨어 있나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있다마치 산삼 찾는 심마니처럼(….)사진으로는 찍을 수 없고늙은 무녀의 목쉰 노래로귓가에 맴돌며 피는 꽃상처에 문지르면 살이 돋아 살살이꽃가슴에 문지르면 숨이 트여 숨살이꽃산길 가다가 그윽한 꽃내음 맡으면향내가 숨결에 스미고핏속에 번지는 느낌이 좋아잠시나마 그 꽃을 두고 살살이꽃 혹은숨살이꽃이라 여기기도 한다시인이 말하는 살살이꽃, 숨살이꽃은 현실에 존재하는 꽃이 아니다. 바리데기 설화에 나오는 꽃으로 상처에 문지르면 살이 돋아나고 가슴에 문지르면 숨이 트여온다는 꽃으로 시인이 평생 염원하는 그 어떤 가치이며 어쩌면 그의 가슴에서 스며 나오는 시 한 편이 그런 꽃인지 모른다. 시인은 산행하면서 지상에 없는 고귀한 가치를 떠올리며 시업에 정진하리라는 다짐을 해보는 것이리라. 시인
2021-03-02
햇살이햇살이 데리고 왔다버드나무 가로수로 왔다귓불에 처진 금귀고리와바람이 닦은 주름 얼굴서쪽 1400킬로미터헙뜨 산골에서 입고 온 두루마기는 빛깔도 푸른데돌아서서 우는 손녀쥐여준 종이돈이슬픔을 굴린 듯 둥글다이제 첫 학기 시작하면네 해 동안 만나지 못할 할머니그새 뜨실지 모를 할머닐햇살 사이로 만나두 발 폭폭 빠지는 노을 속으로찰랑거리는 땅금큰 키 손녀와 함께몽골의 흡뜨라는 산골에서 손녀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1천400㎞나 달려온 할머니와 손녀의 이별 장면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와 손녀가 한 집에서 모여 살던 풍경은 아쉽게도 이별의 풍경이 되고 만다. 언제 다시 만날지, 어쩌면 그 사이에 할머니는 이승의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슴 아픈 이별의 장면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아침이다. 시인
2021-03-01
지구가 아직 둥들어지기 전에땅끝까지 눈이 내렸다그것을아이오와에 와서야 확인했다세상의 냉대 속에서 살아온눈 덮인 숲에 들어와서야나무가 체온을 가진 모습을 본다(….)나무가 따뜻하다는 것을 아직껏 몰랐다니!내가 살아온 길이 허술했던 이유를이제야 확실히 알 것도 같다언 손으로 나무의 살을 포옹한다아무도 억울한 일 당하지 않기를아무도 눈물짓는 일이 없기를지구가 아직 다 익기 전지구가 아직 둥글어지기 전사랑이 우선 존재했다고 주장하는아이오와의 겨울 숲, 저기 겨울 숲시인이 제시하는 아이오아는 어디인가. 아이오아는 시인이 버림당한 곳이고 고향 지평선 밖에 있는 미지의 땅이다. 시인은 눈 덮인 숲 속에서 나무의 체온을 발견하면서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고향을 그리고 있음을 본다. 아무도 억울한 일 당하지 않기를 아무도 눈물짓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은 그가 회귀하기를 소망하는 눈 내리는 고향집에 이르러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
2021-02-25
장독 두껑 열 때마다항아리 속 묵은 시간에다 인사하지된장 고추장이 얼마나 제 맛에 골똘한지손가락 찔러 맛보지 않고는 못 배기지술 항아리 본 적 있을 거다서로 응원하느라 쉴 새 없이 조잘거리던 입술들장맛 술 맛도 그렇게 있는 힘 다해 저를 만들어가는데글쓰고 애들 가르치는 사람은 말해 뭣 하것냐?그저 몸과 맘을 다 쏟아야 한다무른 속살 파먹는 복숭아벌레처럼턱만 주억거리지 말고장독 속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를 녹이며 발효되는 된장 고추장처럼, 술독 속에서 누룩과 밥알들이 서로 뭉개면서 최선을 다해 익어가는 술처럼 교육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교사의 역할을 하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섬세하고 따스한 필치로 옮겨놓은 시인을 본다. 시인
2021-02-24
소를 부려 밭을 갈던 아버지의 목청이 가라앉았다거실의 텔레비전이 가라앉았다걸려온 전화를 조심스레 받는 어머니가 가라앉았다안방의 장롱이 가라앉았다야근한 뒤 점심도 굶고 잠자는 동생이 가라앉았다화장실이 가라앉았다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가라앉았다안부전화를 건 제철소의 동료가 가라앉았다쿨룩거리는 냉장고가 가라앉았다먼 지방의 공사장으로 간 여동생 남편이 가라앉았다(….)빌린 돈에 대해 물어야 하는 이자(利子)에 매몰되고 파멸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서글픈 실상들을 나열하면서 시인은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라는 후기자본주의의 병폐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음을 본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고금리의 이자를 내면서도 돈을 빌리고, 원금 상환은커녕 쌓여가는 이자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파멸해가는 시대의 서글픈 초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
2021-02-23
뼈대 없이옮겨 다니는 건살이 닳는 고통뿐이다걸친 것 없는 한 몸뚱이를세상이 먼저 알아차리기 때문이다나를 가려주는 건한두 겹옷, 헐렁한 집뿐이다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집채만 한 체면과도 늘 동행이다내가 들통나지 않는허술한 그늘 속에 돌아누울 때때때로 꿈꾼다작열하는 저 태양 속으로 뛰쳐나가내 온전한 살 뜨겁게 달아오르며목숨의 한때를 맛있게 굽고 싶다바람에 흐느적거리는 저 잡풀같이달팽이는 딱딱한 껍질의 집을 메고 평생을 그늘 속에서 느리고 갑갑한 한 생을 살다 간다. 어쩌면 우리네 한 생도 달팽이 같은 삶은 아닐까. 살면서 겪는 세상의 질곡을 오롯이 보듬고 묵묵히 생의 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약한 존재일지 모른다. 존재 성찰의 겸허한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1-02-22
잘 가라 내 청춘미친개들의 입에서 입으로 뺏고빼앗기며 핥고 깨물어도아직 삼켜지지 못한뼈다귀 같은 슬픔뿐이어도제대로 된 긴 전망 하나 없이도끄떡없이 저 피의 세기를 건너왔느니끝내 신원 될 기약조차 없이생매장된 검은 기억의 꽃밭 위를 맴돌다가금세 날아가버린 나비처럼나의 눈길은저 언덕 너머 양떼구름을 쫓고 있느니검고 윤기나던 긴 머리칼 한번뽐내지 못한 채 죄 없이 쥐어뜯다가어느새 새하얗게 세어버린 청춘의 날들이여(….)잘 가라 내 청춘다가오는 날들이 결례 같은 죽음뿐일지라도무작정 떠밀려온 채 살아 애쓰는여기가 나의 거점그때 그 패배와 나락의 순간들이 없다면이토록 깊고 서늘한사랑의 완성을 꿈꿀 수 없으리중년의 나이에 든 시인은 치욕과 어둠, 패배와 나락, 죄의식과 굴종, 절망과 혼돈의 시간과의 고별을 선언하고 있음을 본다. 청춘의 시간을 사로잡았던 시간을 벗고 새로운 생의 지평을 열어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1-02-21
나는 독도인이다고립무원과절대고독과존재의 벼랑 끝비주류와하류계급과아웃싸이더와소주자이며변방의 유목민인 나나는 독도인이다누구는 나를 민족에 가두려 하고누구는 나를 국가에 가두려 하고누구는 또 나를 제국에 가두려 하나(….)나는 높고 위대한 이름으로부터절해의 고도를 향해 탈주하련다모든 수탈과 침략으로부터 고립무원을 향해오직 푸르름으로 나를 절연하련다시인이 말하는 독도인은 현실적 제약이나 어떤 권력이나 욕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변방에 머무는 자를 일컫는다. 백무산 시인은 진정한 우리 시대의 독도인이 아닐까. 그가 추구해온 인간 - 노동 - 생명, 생태의 연대는 그를 참다운 독도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어떤 치욕과 분노와 욕망이 덮쳐오더라도 단호히 거부하는 시인의 시대정신, 시인정신이 깊게 새겨진 작품이다. 시인
2021-02-18
가난한 어머니는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학교에서 돌아온 나를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배가 불렀다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어머니의 눈에서별빛 사리가 쏟아졌다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따스하고 정겨운 장면 하나를 본다. 어머니가 끓여준 멀덕국을 회상하며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을 회상하고 있다. 멀덕국은 충청도 음식의 하나인데 건더기가 적거나 아예 들어 있지 않은 멀건 국을 일컫는다. 건더기 대신에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고 말하는 시인은 가난한 시대에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어머니를 가만히 떠올리는 것이다. 시인
2021-02-17
아이가 공을 몰고 간다공이 아이를 몰고 간다아이는 고개를 까딱까딱흔들고공은 배꼽을 내놓고구르고공중은한번은 아이를한번은 공을둘러업는다달밤까지아이가 공을공이 아이를몰고 간다저곳까지공이 멈추고 싶어 할 때아이가 멈추고 싶어 할 때공과 아이는등을 구부려둥글게 껴안는다시인은 아이의 공놀이를 바라보며 인생의 평범한 진리 하나를 발견한다. 공을 따라가고 공을 엎기도 하며 공을 안고 둥근 공과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은 둥글기 짝이 없다. 각이 지고 모가 나서 관계가 불편해지고 화합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겨냥하고 있음을 느낀다. 서로 둥글게 연대하고 화합하는 인간관계를 염원하는 시인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시인
2021-02-16
스위치를 올리고 단 몇 분의 예열로나는 불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산맥을 달려온 고압선의 탱탱한 열기쇠의 혀에 불을 켜고어둠의 기억들을 핥아내듯행복했던 추억이 되살아난다한풀 꺾인 사라도 풀 먹여 놓는다응어리지고 그늘진 곳으로달궈진 삶이 하얀 수증기 뿜으면구겨진 이면도 새살로 차오르는 걸까시인은 자기 몸을 데워서 구겨진 주름을 펴 주는 다리미를 보면서 인생살이를 떠올리고 있음을 본다. 구겨지고 주름진 우리네 삶이 얼마나 힘겹고 상처투성이의 삶인가를 생각하며 그 어둠의 기억들과 맺힌 응어리들을 구김과 주름을 다리미로 다려서 펴듯이 극복하고 초월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시인
2021-02-15
남들은 허리 구부러진다는 일흔 문턱에어머니무릎까지 뻣뻣하지요높은 산 조상들 무덤 끝에서걸어 내려온 단풍들함께 먼 길 가자고 떠나가자고손을 내미는 시월관절염 신경통에 다리 굽히지 못하는 어머니하늘 몹시 찌푸린 날이면어기적어기적 측간에 가서반쯤 서서 똥 누지요평생 시골에서 흙일, 물일을 하며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는 일흔 문턱의 노인이 되어 있다. 신경통과 관절염으로 다리를 굽히지 못하는 그 어머니를 바라보며 시인은 가슴 아픈 속내를 동요풍으로 풀어내고 있음을 본다. 이 땅 어머니들의 초상이 아닐 수 없다. 그 위대한 희생과 헌신에 엎드려 절하고 싶은 아침이다. 시인
2021-02-14
산수유꽃이 피었습니다개나리꽃도 피었고요진달래꽃도 피었습니다당신 오겠거니 생각했습니다마당 귀퉁이까지 쓸어두었습니다굳게 닫혔던 창문도 활짝 열어두었습니다따스한 햇살 한 줌이라도 더 받아두려고마당 한가운데를 찾아 의자 하나를 내어놓았습니다당신이 와서 앉아야 할 자리입니다시인이 전해주는 봄 소식에는 설렘과 함께 정중함과 간절함이 그리움이라는 보자기 속에 소복함을 느낀다. 산천에 봄꽃이 피어나서 아름다운 천지가 도래함을 알리는 기별에는 신춘의 차가움 속으로 퍼지는 향기가 있다. 우주에 차오르는 서기와 함께 새 생명의 귀환을 기다리며 맞이하는 시인의 환희에 찬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1-02-09
작고 납작한 그림자를 데리고 가는그는 늘 거기에 있습니다햇빛과 구름에 맞서며가만히 그림자를 내려놓은 그는말없이 세상 한 쪽을 밝힙니다그는 짙은 밤 달이 뜨면그는 긴 그림자로어둠 속 길을 내줍니다오늘은 붉은 조등 하나 들고 밤을 건넙니다누가 무명옷 입고 짚신 신고 먼 길 떠나나 봅니다그는 밤새바람 속 하얀 길을 비추고 서 있습니다가로등같이 골목 어귀 어둠 속에 꼿꼿이 서서 세상을 향해 빛을 내려놓은 존재로 살아가고 싶어하는 시인의 겸허한 목소리를 듣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외롭게 서서 바람 속 하얀 길을 비추는 가로등, 붉은 조등을 들고 서서 먼 저승길 떠나는 망자의 길까지도 가만히 밝혀주는 가로등을 표현하면서 시인은 자신이 걸어가야 할 생의 방향, 추구해야 할 가치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것이다.시인
2021-02-08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다음 생애 딱 한 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온갖 감언이설로 그대 꼬드겨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쌍심지 켜고 바가지도 긁었음 합니다그래서 그래서지금의 그대처럼 사랑한다는말도 한번 못 듣고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쭈글쭈글한 배를 안고그래도 그래도골목 저편 오는 식솔들을 기다리며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끓는 물 넘쳐 흘러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쑥국이었으면 합니다평생 가난한 시인의 아내로 묵묵히 참고 살아가는 아내의 아픔, 애환을 들여다보며 시인은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을 고백적으로 적고 있음을 본다. 다음 생이 있다면 이생에서 자기에게 아내가 그러했듯이 자신이 아내가 되어 그를 위해 헌신하며 묵묵히 참고 살아가겠다는 심정을 피력하고 있다. 감동의 물결이 잔잔히 밀려옴을 느낄 수 있다. 시인
2021-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