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솥바닥에 꿈틀댄다잠에 풀어진 얼굴을 비비던 새벽찹쌀이 허옇게 구불댄다잘 말라 볼이 패인 대추바람찬 세상의 모서리를건너온 그녀들오골계 배 속에 구겨 넣는다공처럼 불룩한 배를 가르고 솥에 넣는다쉭쉭 소리를 내는 솥에게 다가가 숨을 멈췄다오골계의 울음소리가 주방을 휘 감는다발가락을 버둥대며꺾이고 웅크린 그녀가벼워진다는 건 자기를 벗는 일질긴 겉껍질을 버려야속살이 나온다태아처럼 동그랗게 웅크린 검은 몸을 해체한다갈비뼈와 다리가 흩어져 찹쌀과 섞였다솥뚜껑을 덮고 다시 끓인다백숙을 끓이며 시인은, 가벼워진다는 건 자기를 벗는 일이라는 생의 중요한 덕목 하나를 생각하고 있다. 생이란 바람찬 모서리, 시련과 고통의 순간들을 수없이 건너오는 것이리라. 뜨거운 불 속에서 자기를 벗는 찹쌀도 대추도 오골계도 자기를 벗어던지며 비로소 깊은 맛의 백숙에 이른다는 것에서 우리 생의 나아가야할 바를 암시하고 있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0-12-08
고향집 잿더미 옆담 구멍 숭숭 뚫린 변소내 발밑에서 그들은 올라오고 있었다발효 단지의 비탈을 한 놈이 떨어지면다음 놈이 기어오르는 저 끔찍한 집요함에제법 느긋이 신문을 보는 내 한 눈이 미끄러져 내려간다저 뻘가의 자식들은냄새가 무언지도 모른다더욱 제가 옮긴다는 더러운 병명(病名)도(….)시인은 사소한 일상에서 인생의 소중한 가치 하나를 발견하고 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파리의 애벌레인 구더기 생태에서 그것을 얻은 것이다.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미물을 보며 어려운 환경과 처지를 탓하며 쉽게 포기해버리는 우리네 삶의 태도를 경계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시인
2020-12-07
강이 되려했던 사랑도 지워지고 있습니다교회의 첨탑이 되려했던 사랑도저녁의 노을만 몰아내며 지워지고 있습니다그 아래 누군가 내동댕이친저녁의 약속을 먼 옛날의 예감처럼 주워서는흙을 털고 표지를 닦아내는한사람이 있습니다네 이웃을 사랑하라그가 떠나자 새로운 방황을 모의라도 하듯몇 명의 늙고 어두운 사람들이모여들기 시작합니다어쩌면 인간은 강처럼 넓게 품어주는 사랑, 첨탑처럼 고고하고 우러러볼 수 있는 사랑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강물도 첨탑도 저녁노을 속에서 어둠 속으로 지워지는 것이다. 시인은 그 빈자리에 변함없는 사랑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절대자인 신의 모습이다.시인
2020-12-06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밤새 울던 아이꿈속 반딧불이 헤며찰방 찰방 은하를 건너고왕피천 거슬러 올라소리치며 굽이굽이태백의 품으로 돌아가는눈 맑은 은어 떼이슬비 자욱한 삼림켜켜이 젖어드는 조약돌하나씩 젖은 별을 켜는수하계곡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도심에서 밤하늘 별을 보기란 어려운 현실이다. 시인은 백두대간의 청정지역인 영양군 수비면의 수하계곡에서 느낀 별을 켜는 밤을 소개하고 있다. 깨끗한 계곡물은 왕피천을 흘러 동해바다로 흘러가는데 밤새 울던 아이와 냇물 속의 조약돌들이 반짝이는 별이 되어 떠오른다고 표현하는 시인의 마음이 한없이 정화되고 순수한 동심인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
2020-12-03
놀도 스러져가는 바다는 자욱한 어둠에 잠겨갈매기는 바람에 쫓기듯 가쁜 날갯짓으로 날고파도는 선창 발치에 악어 이빨처럼 물려왔다 밀려가고저 혼자 물결을 세웠다 엎으며 뒤척인다산허리로 빠지는 인적 끊긴 자드락길엔 억새가 울고바다에서 시작된 바람이 일렁거리자 서산에걸린 햇살마저 붉어순결한 사랑이 소멸되면 맑은 햇살아래바다는 앓는 짐승이 되고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쪼작걸음으로 대숲에서 나와 바다의 어둠을 보지 못한 채집어등의 불빛만 쏘아 본다시의 제목처럼 바다는 수많은 전설을 품고 늘 푸르게 살아 일렁이는 것이다. 어쩌면 또 다른 전설을 만들어가며 영원의 시간 속에 살아있는 것이리라. 노을 스러지는 가을 바다는 순결한 사랑이 소멸하는 처연한 아름다움을 품고 뒤척이는 것이다. 쓸쓸한 밤바다에 밝은 집어등 따라 일렁이는 물결을 응시하는 시인의 눈빛이 깊다. 시인
2020-12-02
배추잎 뒤에 붙어숨어사는 세상불안하고 답답하고 지루하여라온몸으로온종일 꿈틀거려도나의 삶, 배추잎 한 장에 불과하였네말없이 눈물 없이 일요일도 없이날 수 없는 날개 사무치게 간직한배추잎 한 장으로 세계를 덮었네내가 짠 실로 내 몸을 묶어움츠릴 대로 움츠려서 갇힐 때까지죽었다고 남들이 말할 때까지눈부신 흰 날개에하늘을 싣고배추밭을 넘어서 날을 때까지배추벌레는 배추 잎 한 장에 갇혀 있는 한정되고 제한적인 생의 조건을 안고 살아가지만 언젠가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오를 거라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시인은 바로 자신의 삶의 모습,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의 모습과 닮았다는 시정신으로 시를 끌어가고 있다. 배추벌레처럼 여러 한계에 묶여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비록 현실은 제한되고 묶여 있지만, 초월과 극복을 꿈꾸며,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0-12-01
세상의 그 어느 것인들두꺼운 자궁 속에 담겨 있던씨알맹이 아니었으랴그 아름답고 슬픈벗어나기뱀이 허물을 벗듯이자유는스스로와 우주를 파괴하는 자이면서도지금보다 더 드높이 날 수 있는 날개 아닌가작가 한승원이 쓴 짧은 시 몇 줄의 행간에는 인간의 삶이 구속에서 자유로의 이행 과정이라는 인식이 스며 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부터가 자궁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며 절대적 자유보다는 상대적 자유가 더 의미 있는 것이고, 우리의 삶이 끝없이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시인의 인생관이 잘 나타난 시다. 시인
2020-11-30
3월 초하루석남사 웃길 더듬어하늘 사다리 아래조아려, 엎드려새끼손가락 끝 마디만큼이나쿠욱 찔러, 속살 할퀴고너의 봄을 훔친다햇살로 두룩 내리는너의 망울망울너의 눈물 한 그릇이른 봄 고로쇠 수액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방울방울 떨어뜨리는 눈물 같다는 시인의 마음이 정결하고 간절한 봄 햇살 같다. 봄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들이 다 이른 봄 똑똑 떨어지는 고로쇠 수액같이 달콤하며 맑은 바람 소리가 묻어나는 봄 햇살 같지 않을까. 시인
2020-11-29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도마당에 피워놓은모닥불은 훨훨 탄다삼십년 전 신혼살림을 차렸던깨끗하게 도배된 윗방벽에는 산 위에서 찍은시인의 사진시인의 아내는 옛날로 돌아가집 앞 둠벙에서붉은 연꽃을 딴다추적추적 비가 내리는옛 백제의 서러운 땅에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모닥불 옆에서 훨훨 타오르고 있는몇 개의 굵고 붉은 낱말들이여시인은 신동엽 시인의 옛집에서 느낀 정겹고 평화로우며 고요한 풍경을 일러주고 있다. 한 시대를 고뇌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치열하고 가멸찬 정신으로 시를 써서 세상을 향해 던지고 간 신동엽 시인을 추념하면서 그의 삶의 진액이 녹고 스며 있는 옛집에서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진 굵고 붉은 낱말(예를 들면 시 ‘껍데기는 가라’)을 떠올리는 것이다. 시인
2020-11-26
소금밭으로 변한 호수 위에 내가 섰다수심 깊이 숨어 있던 그리움들의부활, 너와 나를 종단하던 시간이순장의 수수만년을 기다려수정의 모습으로 솟아오르는 현장흰 소금의 결정으로 부활한 시간 속에네가 없다 소멸 위에 꽃 핀참혹한 시간이 있을 뿐대지는 마지막 한 방울의물이 스며들기를 기다려네게로 가는 길을 냈을 거다시간이 작은 수정의 모습으로 부활하기를기다렸던 거다 기다림이란 저런 거다죽은 시간 위에 소금의 결정으로 부활하는 사랑나는 지금 그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소금밭으로 변한 호수 위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절망과 폐허의 상황이 생명과 희망의 공간으로 부활케 하는 놀라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호수의 소멸이 새하얀 수정 눈꽃으로 피어나기까지는 혹독한 기다림과 사랑이 있었다고 말하며 진정한 사랑과 신뢰란 처절한 기다림 끝에 피어나는 수정 눈꽃 같은 것이라는 확신을 들려주는 것이다. 시인
2020-11-25
살아서너희에게 젖과 노동을 바치고죽어선고기와 피를 주고빛나는 뿔을 뽑았건만땅이여풀이 자라지 않는 땅이여살아서는 인간을 위해 젖과 노동을 바치고 죽어서는 온전히 몸을 다 주고 가는 소의 희생을 말하며 시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윗대 어른들, 더 나아가 이 땅의 농부들의 운명적 업보 같은 것을 토로하며 평생 가족을 위해 일하며 희생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을 생각게 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0-11-24
외곽지 야산 버려진 집에한 사내가 들어와 매일 출퇴근한다전에 없던 길 한가닥이 무슨 탯줄처럼꿈틀꿈틀 길게 뽑혀나온다그 어떤 절망에게도 배꼽이 있구나그 어떤 희망에도 말 걸지 않은세월이 부지기수다마당에 나뒹구는 소주병,그 위를 뒤덮으며 폭우 지나갔다풀의 화염이 더 오래 지나간다우거진 풀을 베자 뱀허물이 여럿 나왔으나사내는 아직 웅크린 한 채의 폐가다폐가는 이제 낡은 외투처럼 사내를 품는지밤새도록 쌈 싸먹은 뒤꼍 토란잎의 빗소리삽짝 정낭 지붕 위 조롱박이 시퍼렇게 시퍼런 똥자루처럼힘껏 빠져나오는 아침, 젖은 길이 비리다어느 폐가에 스며든 사내와 폐가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섬세한 필치로 펼치며 시인은 부정과 긍정, 희망과 절망,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걸쳐진 길을 배꼽이라 지칭하고 있음을 본다. 현대인들의 서글픈 실존의 모습을 꿰뚫는 시인의 깊은 눈을 본다. 시인
2020-11-23
밭둑 가 돌무더기에 돌을 몇 개 집어던진다돌과 돌이 부딪히는 소리가풀꽃이 되어 밭둑 가에도 피어나고먼 산 진달래꽃으로도 피어난다어머니가 던진 돌과 할머니가 던진 돌과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던진 돌과또 내가 던진 돌과 또 누가 던질 돌이밭둑 가 한 무더기로 모여서무슨 말들을 하며 무슨 꿈들을 꾸는 것일까굳어진 땀방울의 돌을 바라보며아직도 주먹 같은 돌들이 밭이랑 밑에 숨어서누구의 땀방울이 되어 기다리는 것일까돌과 돌이 부딪는 소리가아픔인 것 같기도 하고 기쁨인 것 같기도 하고뻐꾹새 울음이 되어 들리기도 하고소쩍새 울음이 되어 들리기도 한다비옥한 땅을 만들고자 밭에 박힌 돌을 골라내 던지며 시인은 노동의 대물림에 대해, 그 질긴 운명의 고리 같은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돌을 골라 내던지며 비옥한 땅을 만들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쏟아 부었던 것이리라. 돌과 돌이 부딪는 소리가 아픔이 되기도 하고 기쁨이 되기도 한다는 시인의 말에서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옹호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
2020-11-22
황조롱이 한 마리 공중에 떴다. 16층 창밖에 정지상태다내 눈썹 높이와 한치 어김없는 일직선이다생각하니, 허공에 걸린 또 하나의 팽팽한 눈썹이다(….)위에서 내리누르는 바람과 아래에서 떠받치는 바람을 발톱 끝에 말아 쥐었다그는 침묵하고 있다.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부리는 더욱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졌다나는 낡아가는데그는 오만한 독학생 같다세상의 책에다 밑줄 하나 긋지 않고 있다밑줄 같은 건먼 산맥의 능선과 굽이치는 강물에다 일찌감치 다 그어두었다는 듯(….)시인은 16층 연구실 창밖 높은 나무에 묵묵히 앉아 있는 황조롱이 한 마리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에 대한 태도와 열정을 반성하고 있음을 본다. 새는 먼 산맥과 능선에 밑줄을 긋고 있는데 교수로서의 자신의 공부는, 시인으로서의 가멸찬 시업은, 어떠한가를 떠올리며 그러하지 못했던 시간을 반성하며 자신을 다잡고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리라. 시인
2020-11-19
숨을 데가 필요했던 게지맺힌 설움 토로할 품이 필요했던 게지절대가치라 여겼던 것들로부터상처받고 더르는 깊이 배신당해이룬 것 죄다 회색도시에 부려 놓고본향으로 도망쳐와산목숨 차마 어쩌지 못하고미친 듯 홀린 듯오름이며 밭 담이며 등대 이정표 삼고바닷바람 앞장세워 휘적휘적 쏘다니다설움 꾸들꾸들해질 즈음덜컥 길닦이 자청하고 나선 여자처처 순례객들 길잡이가 된 여자그러다 정작 자신만의 오시록한 성소 다 내주고서귀포 시장통 명숙상회 골방으로 되돌아온 여자설문대할망의 헌신이니여전사니 말들 하지만알고 보면 폭설 속 키 작은 홑동백 같은 여자너울 이는 망망 바다 바위섬 같은그 여자이 시에 나오는 올레 그 여자는 어쩌면 어느 날 육지 생활을 뒤로하고 제주도 조천으로 옮겨간 시인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와 아픔들이며, 기다림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외로운 홑동백 같은 올레 여자의 삶이 자신을 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시인
2020-11-18
그 마을 사람들은 바다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설마? 하고 물어보면불쑥 주머니 속의 바다를 꺼내 보여준다놀라지 마라,그것은 마을의 아주 어린 꼬마 녀석도 할 수 있는 일이다제법 사랑을 아는 나이가 된 친구들은사랑으로 외롭거나 쓸쓸할 때에는손바닥 위에 바다를 올려놓고 휘파람을 분다아무래도 마을 어른들은 한 수 위다흰 손수건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하얀 갈치 떼로 변하고손금 위로 바다를 흐르게 하고흐르는 바다 위에 섬을 띄운다아주 오래전 그 섬을 찾아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의안부까지 전해준다떠나오던 날 마을 사람들이 주섬주섬 챙겨선물로 건네주던 바다(….)시인은 동화(同化)의 미학을 따스하고 부드러운 필치로 보여주고 있다.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윽하기 그지없다. 때로는 거칠게 파도를 몰고 오는 사납고 무서운 바다지만, 늘 푸르게 사람들 곁에 일렁이며 편안함과 평화를 건네는 바다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항용 그런 바다와 함께 한 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시인의 주머니 속에도 그런 바다가 꼴싹하게 담겨 있을 것이다. 시인
2020-11-17
꿈을 꾼 것도 아닌데꿈속 일처럼 서둘러 핀 복수초그때 나무들은 뭘 했을까나비들은 어디쯤 날고눈꽃이던 아침 안개와 반짝이던 햇살은무슨 관념에 젖어 흘러갔을까흘러가는 소리들을 바라본다눈길 머무는 자리마다겨울 입김 하얗게 살아나는 윤이월낯선 노란 그리움과숨넘어갈 듯 저 홀로 흔들리는꽃잎서둘러 피고 보자는 독설엄동을 견딘 이른 봄. 제일 먼저 피어나는 산자락의 노란 꽃잎의 복수초를 바라보며 시인은 일종의 생명 연대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다. 복수초 꽃이 필 때 나무와 나비와 안개, 햇살과 바람이 함께 움직이며 각각의 생명운동을 하며 아름다운 개화에 함께하며 서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미미하고 하찮은 것일망정 저들의 생명 탄생에는 우주의 여러 생명체가 연대하여 함께한다는 것이다. 시인
2020-11-16
너의 조상은 혹시 창(窓) 아니었을까홑창이었다가 겹창이었다가아득히 푸른 우물 비추는 창 아니었을까때론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이었다가지금은 잔잔한 바다말하고 듣고 희망하고 걸어 잠그는배반의 서클렌즈내 생을 몽땅 걸어도 가져보지 못할너의 눈항상 서늘한 거리를 두고 반짝이는 꿈처럼내 마음 사로잡는다들여다보면 볼수록 너는 나를 모르고나만 덩그렇게 창 밖에 서서관절 마디마디에서 삐져나오는 울음소리아득한 수평선 너머로 짝을 찾는그렁그렁한 내 전생 같은블루 아이, 나의 고양이‘블루 아이’ 푸른 고양이의 눈을 바라보며 고양이의 눈을 창(窓)이라고 상상하는 시인의 인식이 이채롭다. 고양이 눈 속에서 시인은 전생 같은 공간을 상상하며 어디론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과 어쩔 수 없이 금방 현실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고 있음을 본다. 그게 인생이 아닐까. 시인
2020-11-15
태백의 철로변한 마리 북어로 누워 있는 행복여관주인 노파의 긴 저녁 햇살을 빨아들이는부서진 흔들의자오래전 지붕이 내려앉은 시간오늘 숨을 놓다강원도 산골 철로변의 허름한 여관과 주인 노파, 저녁노을과 부서진 흔들의자가 있는 쓸쓸한 풍경 하나를 본다. 시인은 이런 풍경을 펼쳐보이며 행복이라는 말을 짧은 시의 중심에 두고 있다. 왜 노파는 골짜기의 그 여관을 행복여인숙이라 명명했을까. 그 여인숙에 들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우리네 한 생이 열망하는 행복은 무엇이며 어디에 가면 있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자신과 세상을 향해 던져넣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20-11-12
까마귀 걸어간다노을녘해를 향하여우리도 걸어간다노을녘까마귀를 따라결국 우리는 해를 향하여해질 무렵 해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다소문에 의하면해 뜰 무렵 해를 향하여 걸어갔던 이들도 있다고 한다이를테면, 나이 어려 죽은손발 없는 속수무책의 신들이 지키는담장 아래 살았던 아이들단 한 번도 죄지을 기회를 갖지 않았던아이들의 염소처럼 그렇게(….)이 시에서 노을 퍼지는 시간 까마귀를 따라 해를 따라간다든가 해 뜰 무렵 해를 향해 걸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인간이란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고, 한 번도 죄를 지을 기회를 갖지 않았던 어린 아이들마저도 그런 운명의 바퀴를 굴리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라는 시인의 어두운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