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쓸었네 늙은 청소부의 굽은 허리에 귀 맑은 들판이 열리네 그의 단아한 목가가 발밑에 수북이 쌓여 있네 은행잎 한 장 한 장마다 벼들의 수런거림 스며 있네 늙은 청소부는 고개를 수그리고 벼들을 바라보네 그는 낫질하듯 낙엽을 쓸었네 공중에 멈춰 선 연기가 되네 들판마다 불이 오르는 풍경 가까이 허리를 굽히네 그리고 그는 환한 얼굴로 벼 밑동처럼 남은 어스름 새벽을 리어카에 쓸어 담네어스름 새벽은 새벽이 열리기 시작하는 어둠과 밝음의 경계의 시간을 의미한다. 경계는 항상 어떤 예감을 품고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는 정체된 머무름이 아니다. 매우 역동적인 움직임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시인은 감관을 활짝 열어 정중동의 새벽이 열리고 확장되어가는 미세한 시간의 흐름에 감응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9-09
(….)저것 봐날아가는 돌겨드랑이에서재빨리 펼쳐드는 날개들저 날개 접히기 전에어서 결혼을 하고아이를 낳아야지도장을 찍고악수를 청하고한 나라를 이루어야지비행기가 떨어지고강물이 갇히지 전에식탁 위에 모래가 켜로 앉기 전에천장 밑에 잠든 바퀴벌레도 깨워야지서둘러 겨드랑이에새파란 날개를 달아야지시인이 말하는 3분은 어떤 시간일까. 돌이 떨어지기 전 허공에 있는 시간 같은 극히 짧은 순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행복과 희망을 기획하고 그 실행을 위해 화급히 나아가는 시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추락이라는 상황이 전제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런 아이러니컬한 시간의 설정을 통해 인간이 꿈꾸는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말하며 삶의 근원적 모순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9-08
그는 병방, 마지막 채탄광부이슥한 밤 별 보고 집을 나와지하 수백 미터 캄캄한 막장에서쥐를 벗 삼아 석탄을 캤다칠면조 같은 마누라철마다 옷 맞춰 입고 모양내더니막장에서 들숨 날숨 나눠 쉬던 친구와 배가 맞아올망졸망 자식 넷 내팽개치고가산 탈탈 털어 야반도주하던 날도작은 돌멩이 바윗돌 되는 막장에서갱내 분진 마시며 석탄을 캤다가슴 무너진 아들 위해 백발노모밥해놓고 이불 깔아놓고무나니골 소풍 가는 손자손녀 따라나선 날석탄 더미에 하초가 깔려나는 살아야 해 나는 절대 죽으면 안돼울부짖던 그싸늘한 주검이 되었다케빙막장이 되어버렸다먹고살기 힘든 시대에 마지막으로 찾아든 곳이라는 막장. 그 갇힘과 묶임의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 먹먹한 아픔을 자아내는 시다. 시인
2020-09-07
바다에서 바다를 보면육지에서의 바다가 아니다무엇보다 자리가 먼저 울렁이니까바다를 등지고 육지를 본다눈부신 육지에서반사각에 똑바로 눈 맞추고둔중한 비늘 하나 건지는 이 있다그가 지금해비늘에 얹혀육지를 보고 있다흔히 육지에서 바다를 본다. 그러나 동해 바닷가에서 시를 써온 시인은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고 있다. 늘 바다는 내 삶의 주변으로 배경으로 여겨왔던 삶이었다. 바다가 품고 있는 심연을 찾아 나서는 시인을 본다. 바다와 나의 삶이 빈틈없이 결합되고 동행하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무수한 의미를 품고 말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바다를 껴안고 귀 기울이고 있는 시인을 본다. 시인
2020-09-06
급히 길을 걷다 마른 가지 하나 팔에 걸려 힘없이 툭 꺾인다꺾인 자리에 불쑥 드러나는 시커먼 슬픔마른 삭정이 눈물처럼 떨어진 빈자리가 내 몸처럼 아파 온다분별없는 서두름이 가져온 상처가 살을 헤집고 들어선다인연도 필경 그런 것이다느닷없는 마주침으로 다가서서 익숙해지다가서로의 상처를 만져주며 제 것으로 끌어안는 시간마침내 생살 돋아나는 자리 문신보다 뜨겁다길을 걷다 마른 가지 하나가 팔에 걸려 부러지는 것을 보고 시인은 인연을 생각한다. 우연한 만남도, 견디기 힘들만큼의 아픈 결별도 인연이 아닐까. 느닷없이 마주치므로 익숙해졌다가 눈물처럼 떨어져 가버린 빈자리에서 느끼는 아픔도 긴 인생의 여정에서 보면 운명적으로 정해진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남이든 이별이든 다 인연이라는 굴레 속에 놓여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시인
2020-09-03
밥을 먹다가 놀라 눈을 감았다숟가락에 나의 생일이 들어 있기도 했지만그가 예고한 단식일이 천둥소리를 내며내 손을 내리친 것이다반찬거리로 먹던 정치인들도대출이자도 순간 뭉개졌다죽음의 명분이 밥과 연결되고희망지수가 밥으로 올라간다는 사실이숟가락 속에서 푯대처럼 흔들렸다계승이란 사람에게 돌아가는 일이라고그의 단식일이 생각보다 힘이 셌다이인삼각의 결단이결코 권태의 산물이 될 수 없었다나에게 필요한 창도 방패도 아니라고당돌하게 착각했던 날들을절벽 아래로 떨어뜨렸다노조 가입 신청서를 처음 썼을 때처럼갈림길을 지나가기로 했다길거리의 단식 현장을 바라보는 시인은 처음 노조 가입 신청서를 썼던 때를 떠올리며 지금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 사람의 단식이 여러 사람의 희망과 밥이 된다는 것을, 연대도 계승도 안일하게 생각하지나 않았는지를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안일한 일상이 자칫 목숨 걸고 길거리에서 자기를 버리는 단식을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때처럼 갈림길에서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시인
2020-09-02
달빛이 침묵의 비단결 같다우둑커니 서 있는 벽오동나무 한 그루그 비단결에 감싸인 채제 발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깊은 침묵에 빠져들어마지막으로 지는 잎사귀들을 들여다보고 있다벗을 것 다 벗을 저 늙은 벽오동나무는마치 먼 세상의 성자, 오로지침묵으로 환해지는 성자 같다말 없는 말들을 채우고 다지고 지우는 저 나무밤 이슥토록 달빛 비단옷 입고이쪽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오랜 세월 봉황 품어 보려는 꿈을 꿨는지,그 이루지 못한 꿈속에 들어 버렸는지제 몸을 다 내려놓으려는 자세로 서 있다달빛 비단 자락 가득히비단결 같은 가야금 소리, 거문고 소리침묵 너머 깊숙이 머금고 있다가을 밤 푸른 성장(盛裝)을 벗어버린 벽오동나무를 바라보며 성자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한 때는 봉황을 기다린 욕망의 시간도 있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소유와 욕망의 부질없는 것들을 다 벗어버린 홀가분한 상태의 나무에서 시인은 성자의 모습을 본 것이다. 어쩌면 인생의 후반부를 걸어가는 시인에게도 그런 비움과 내려놓음의 겸허한 정신을 본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시인
2020-09-01
신음소리가 고집 저음처럼 방안에 가득하다아버지의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 다리야병명 없이 앓는 소리, 대대로 이어온 소리밤이 되면 몸은후유증의 타래가 서서히 풀리는 걸까생의 절벽에서병에 가락을 붙인다며 사막에서도물을 부를 수 있는 것일까아주 가족적이어서 장단이 잘 맞는 무병신음몸에 병이 돋는 시간, 마지막 전의 노래일 뿐이건 마지막 노래가 아닐 것이다그 뿌리 깊은 통증을 쓰다듬어 가면내 몸의 어느 부위가 저려온다다음 세대에게 얼렁뚱땅 배 앓는 소리 낸다먼차우전증후군은 병을 가장하거나 자초해 남의 동정을 사려는 허언증이다. 시인은 고향집 아버지의 앓는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 속에 든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쓸쓸함이랄까 외로움이 깊이 베여 있는 그 신음 소리는 인간 존재의 저 밑바닥에서 새어나오는 고립과 소외에서 벗어나려는 절절한 소리고 몸짓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은 뜨거운 눈시울로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
2020-08-31
때 되면 누구에나 밀려드는 시간의 밀물그 또한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물에 잠긴 자리마다 검게 죽어가는 피부지나온 생의 무늬는 목까지 차오른다하루의 팔 할을 사색으로 보내는 그.긴 항해 마치고 돌아온 목선처럼 지쳐 있지만바깥으로 드리운 그늘까지 늙은 것은 아니다주름 많은 몸이라 해서 왜 욕망이 없겠는가봄이면 마대자루 같은 그의 몸에도 연초록희망이 돋고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그리움으로깡마른 몸 더욱 마르는 것을,늙은 나무가 피우는 저 둥글고 환한 꽃찾아와 붐비는 나비와 벌들을 보라검은 피부에도 가끔은 꽃물이 든다젊은 나무가 젊은 꽃을 피우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고목이 피워 올리는 꽃은 훨씬 가치롭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진정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고목을 우리는 많이 보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
2020-08-30
해 저무는 공당(空堂)에모시적삼 걸어 두고먼 산 내다보니내 짐짓 홍안(紅顔)이라술도 끊었는데가을은 노을처럼아니 올 듯슬쩍 오신가 보네시인의 말처럼 가을은 몰래 오는 노년인지 모른다. 평생 공직에 봉직하면서 서정성 높은 수필을 써 온 시인은 늘 청년 같은 패기와 열정으로 살아온 것을 필자는 보아온 터라 그에게 다가온 가을은 어쩌면 몰래 다가왔을지 모른다. 그에게 다가온 가을은 공당(空堂)이란 시구처럼, 비록 조락의 쓸쓸함이랄까 외로움이 스밀지 모르나 깊은 경륜과 원숙한 아름다움이 가만히 빛나는 계절일 것이다. 시인
2020-08-27
산속에 밤이 깊었다어둔 숲 속에서이름 모를 산새 소리가 이따금 정적을 깨운다산 너머 저 멀리서 달이 떴는지무릎 꿇고 앉아 바라보는산의 이마는 윤곽이 뚜렷하다초저녁 얕은 처마 굴뚝에서피어오르던 연기도어둠에 묻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문득, 초 가을밤에 느끼는인생의 이 쓸쓸함그러나 산 너머 저쪽 도시에는화려한 전깃불이 바삐 오가는 사람과고급 아파트를 오래 비출그 그림자 아래로여전히 얼어 죽은 노숙자의 흰 뼈가먼지 속에 굴러다닐 것이다새소리만 들리는 산속의 초가을 밤, 그 적막함 속에서 시인은 어둠 속의 어둠을 보고 있다. 산 너머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 속의 고급 아파트와 바삐 오가는 사람들의 빛나고 환한 희망의 시간과 지하도 차가운 바닥 위 노숙자의 절망을 대비시키며 인생의 쓸쓸함을 토로하는 시인의 무거운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0-08-26
은행나무엔 오늘도 잎이 돋지 않는다아직 오지 않은 것은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나는 저녁 내내 은행나무 주위를 떠돌다간혹 시를 생각했다스러진 계절에 대해서도 생각했다자꾸 생각하다 보니어둠에도 산 것과 죽은 것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나는 두 팔을 최대한 높이 들고 은행나무 가지를 흔들었다후두두룩 떨어져 아무렇지 않은 척 걸어가는 어둠들끝내 매달린 것은 살기를 희망하는 죽은 것들이었다시인은 잎이 돋지 않는 은행나무를 보며 기다림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불임의 은행나무를 생각하며 시를, 스러진 계절을 생각하며 어둠 속에서 존재와 부재, 삶과 죽음 같은 풀리지 않는 명제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8-25
어느 귀머거리 화가가 그려준매화 한 폭을벽에 걸어놓았더니어느 날 벽이 열리면서창이 하나 났다벙그는 매화 사이로당나귀 한 마리와조금 무거워 보이는 봇짐과싸래기눈이 지나갔다시인이 들려주는 선화(禪畵)에 얽힌 일화가 그윽하다. 여백 속으로 많은 의미망이 짜진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비록 귀는 멀었지만 뛰어난 시각은 우주를 꿰뚫어 보는 것 같다. 시인은 조금 무거워 보이는 봇짐 같은 생의 무게를 지고 가는 우리를 떠올리며 힘겨운 인생길을 그 그림에 접목시켜 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8-24
그녀의 몸속에는 소리들로 넘쳐난다몸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가는데소리들은 한낮의 땡볕처럼 필사적이다자궁을 열던, 초경의 소리들이 살아나메마른 땅을 촉촉이 적시고 있는 걸까캄캄한 구멍 속에서소리를 더듬으며 소리를 본다호두알 구르는 소리밤알 떨어지는 소리단단한 껍질 속에는 연한 소리들이허공에서도 살이 되어 내린다언덕을 넘으면 골짜기가 소리들로 환하다내 생의 마지막 가는 길꽃이 아니어도 꽃이 지기 전그녀의 몸처럼 소리들로 넘쳐날 수 있을까이파리 하나 싹트지 않는늙은 탱자나무노파로 비유된 오래된 탱자나무에서 시인은 온갖 소리를 듣는다. 비록 몸은 수령 오래된 나무처럼 소멸을 향해 가지만 한 생을 살아온 노파에게는 온갖 소리들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늙은 탱자나무에서 온갖 소리를 듣는 시인은 파란만장한 노파의 한 생을 상상하며 삶의 진액이 녹아있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
2020-08-23
어느 누구의 몸을씻어준다는 것은사랑한다는 것이다어느 누구의 거친 발을씻어준다는 것도사랑한다는 것이다쉼 없이 흘러가며제 몸을 씻는저 강물도 스스로를사랑하는 것이다가장 사랑한다는 것은누구가 아니제 스스로를 씻는 일이다저 투명한 강물처럼끊임없이 씻어내는 일이다시인의 말처럼 어쩌면 인간은 평생 자신을 씻으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스스로 몸을 씻고 올바른 행실을 위해 마음을 닦으며 자랐다. 육체적 몸만 씻는 게 아니라 마음의 때, 마음의 흉까지 씻어내며 살아온 것이다. 이 시는 인간 스스로 정결한 영육을 가지려는 본연의 몸짓이라는 시인의 깨달음을 펴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8-20
사막을 심었지요선인장이 자라났어요사막의 몸에 빨대처럼 꽂힌 선인장선인장의 뿌리는 볼 수 없었어요물고기의 아가미가 그곳 어디쯤에서숨죽인 숨을 쉬고 있을 것이라는추측쯤은 했었지요어느 날 정말이지 거짓말처럼그곳에서 갑자기 물고기가하늘을 향해 튀어올라 오곤 했어요비늘을 번쩍이며 튀어오르던 물고기가선인장의 가시가 되었어요시인의 발랄한 상상력이 비치는 시다. 사막의 선인장은 모래 틈에 뿌리를 박고 물을 뽑아 올려 생존한다는 기존 인식의 틀을 파괴하고 있음을 본다. 선인장의 가시가 바로 물고기라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며 그 가시가 선인장에게 수분을 공급하는 장치로 표현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시인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몸짓으로 가시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8-19
순비기를 아시나요표선 바닷가 모래땅에 누워 하늘을 우러르는나무보다 꽃보다 풀의 감각으로 내게 다가온 순비기잎은 운주(雲柱)의 푸른 하늘 아래오두마니 앉은 벅수를 닮았지요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와불의 거대함이나시간의 이끼를 돋운 천불천탑 웅혼함은 없어도우리의 눈길을 끈 저 마을 입구바람의 선한 기운의 영글어 맺은 순비기는물배암처럼 제 몸을 뒤척이고 있었죠혹여 내 몸이며 마음을 이끈 것이 저이기나 한 듯저를 알아본 것이 필연이기나 한 듯그 해안의 서늘한 기운으로 나를 잡아당겼죠꽃과 잎을 따서 귀를 막으며꿀꺽, 마른 침을끈질기게 나를 따라붙던 세음(世音)순비기 꽃향의 어질머리로 뒤척이고 있었죠제주 해안가에 핀 순비기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본 시인은 물배암처럼 제 몸을 뒤척인다고 말하며 상상의 시상을 펼쳐보이고 있다. 제주 바다에 매혹 당한 시인의 감성은 참으로 발랄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본다. 푸른 물결과의 만남을 운명적 필연이라고 말하며 시인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 회복시켜주는 힘과 생명력을 그 물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시인
2020-08-18
너를 열고 싶은 곳에서, 너에게로 닿고 싶을 때아무도 모르는 저 은밀한 해제의 지점에서쇠 나비 한 마리가 방금 날개를 일으켰다는 뜻이다그의 차가운 두 닢이 바스락거리기라도 하듯이한번은 펼쳐주어야만, 나는 너에게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너를 한번 열어, 너에게로 간다는 사실은어딘지, 너 이전의 지점 같기도 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숨긴 날개의 쇠 나비 한 마리가비로소 활짝 펼쳐 주었다는 일이다사랑의 경계에는 한사코 쇠 나비 한 마리가접은 날개의 기다림으로 깃들어 있었다는 뜻이다시인은 100년 전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나비 모양의 쇠 경첩이 붙은 나무 문갑을 제재로 몇 대를 이어 내려오는 여인네들의 대물림 끈을 그려내고 있다. 성질이 다른 나무와 쇠의 만남이 조화롭게 그려져 있고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의 온기와 향기가 밴 문갑의 쇠 경첩을 표현하며 생을 관통하는 질긴 운명의 타래를 풀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8-17
친정어머니와 딸이두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너는 나의 모습나는 너의 모습과거와 미래가 손을 잡고걸어가고 있다먼 길 걷고 또 걷는다징검다리를 건너고언젠가는오늘을 보내고내일을 맞이한다그리움은 참사랑이다걸어도 걸어도 내가 그립다친정어머니와 딸은 여러 가지가 닮았다. 생김새도 마음씨도 닮아있고 팍팍한 시집살이를 헤쳐나가는 모습도 많이 닮아 있다. 친정어머니와 딸 사이에 얽혀 있는 질긴 끈 같은 것을 읽어내며 끝없는 그리움과 사랑과 정성이 흘러오는 것을 바라보며 지긋이 미소 짓는 시인의 깊은 시안을 본다. 시인
2020-08-13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싱싱한 초록이다보랏빛 남쪽하늘을 끌어다 토란잎에 앉은청개구리한 소쿠리 감자를 쪄 내온아내 곁에졸음이 나비처럼 곱다시인이 펼쳐보이는 풍경에서 싱그러운 초록 내음과 함께 깨끗한 빗소리를 듣는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는 이렇듯 싱싱한 생명의 축제를 벌여 놓는 것이다. 토란잎에 내리는 빗방울을 노닥거리는 청개구리며, 감자를 쪄 내 오는 아내도 이 고운 생명의 축제에 착한 주역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
202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