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지푸라기로 가득 차오르는 하루다밥 짓기 싫어라면 끓여 저녁 끼니 때운다라면에는 신김치가 제격이다생수병 들어 꿀꺽꿀꺽 물 마신 뒤소매깃 깃으로 쓰윽, 입 닦는다담배 한 대 피워 문 채베란다로 나간다 멍한 마음으로아래쪽 화단 내려다본다샛노랗게 지저귀고 있는개나리꽃들 사이로철 늦은 매화 몇 송이 뽀얗게 벙글고 있다저것들은 좋겠다 외롭지 않겠다쉰의 나이를 넘기고서도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무언가 크고 높고 귀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지푸라기로 가득 찬 머릿속디룩디룩 굴려본다 사랑은 본래차고 시고 아리게 크는 법시인이 말하는 라면도 신김치도, 생수병도, 입을 닦는 소매깃도, 개나리꽃들도 특별히 높고 귀한 존재로서의 가치 영역이 넓지 않다. 그저 누추한 삶 혹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동원되는 물질들이다. 그러나 시인은 추레한 현실이지만 꼭 필요한,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크고 높고 귀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생을 관조하는 시안이 깊고 그윽하다. 시인
2020-05-19
오래된 편지를 받았다지난 추석의 달빛이 배어 있는강아지풀이 흔들렸다밤새도록 어머니가 빚은하얀 송편 달무리 졌다미루나무 서 있는 강둑 따라아직 막내 작은아버지는 오시지 않고중편 쩌내는 김이부엌 들창문으로 몇 번인가 쏟아져나왔다지난 추석엔 사과를 참 많이 먹었는데마루 한구석엔 사과 궤짝 하나 안 보이고달은 금세 떠오르지 않았다올 추석엔 몇몇의 식구들이 보이지 않았다환하게 비치는 추석 보름달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그리 편치 않음을 본다. 뭔가 작년 같지도 예전 같지도 않은 썰렁하고 황량한 추석을 맞으며 쓸쓸한 마음을 펴 보이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과일농사도 피폐해지고, 풍요롭지 못한 고향을 찾는 이들도 없고 덤성덤성한 안부를 품고 돌아오는 이들도 적은데, 쏜살같이 다시 가을은 오는 것이다. 시인
2020-05-18
너는 세월을 안고수풀 속으로 사라졌지만나는 슬픔의 뒤주 한 채가슴에 들여놓았다유장한 세월물같이 흐르는 세월도담았다 꺼내면오늘인 듯 볼 수 있는그런 뒤주 품었다눈앞에서 사라져평생을 만나지 못한다 해도마음에 담아둔 우리 말들은긴 강의 끝에서도 들릴 것이다어느 날 석양에 물든 하늘이고운 사랑으로 비쳐지고그리움이 눈동자 깊이길을 내면달처럼 여위어가는너의 소리나는 또 듣겠네별리(別離)의 절절한 목소리를 듣는다. ‘슬픔의 뒤주 한 채를 가슴에 들여 놓았다’라는 시인은 떠나는 이를 쉬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긴 강의 끝에서, 석양 물든 하늘가에서 그와 다시 만나 마음에 담아둔 말을 나누겠다는 가슴 뜨거운 사랑과 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와의 석별의 아쉬움과 그 슬픔을 극복하며 또 다른 기다림으로 승화시켜나가려는 시인의 절절한 마음 자락을 본다. 시인
2020-05-17
사람이라는 독소조항을 지우지 못하고그 국경 넘을 수 있을까수미단까지 극악한 오르막사기를 당하기 딱 좋은 봄날 사통팔달 좌표는 없다미물과 사람 차이를 생각하다골반에 앉아 누차 따져 보았다,눈 밑이 늪이라는 조언들로떠난 건 아니지만지불할 게마땅찮다천근만근 저 몸을 돌아나가는 길을 해독하지 못하고목덜미에 잠깐 쉰다죽어라 걸어도 벗어날 수 없는 가죽 속의 벌레 한 마리이리저리 치고 가는 바람의 손만행(萬行)은 불가에서 수행을 위한 수많은 과업을 일컫는다. 수행의 과정에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비우고 떠나는 것이 아닐까. 소유와 욕망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존재다. 욕망의 추구는 끝이 없고 성취는 또 다른 결핍에 이르고 다시 추구의 열망에 사로잡히는 운명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죽어라 걸어도 벗어날 수 없는 가죽 속의 벌레 한 마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인
2020-05-14
(….)새들은 마치 이 신성한 광경을나직한 소리로 예찬이라도 하듯이벚나무 사이를 날며 노래 부르고 있다하지만 이내 온 길로 하나같이다시 되돌아가 버리고 말저 침묵의 눈부신 보푸라기들엄동을 견디며 벚나무는 겨우내 깊은 침묵에 들었을지 모른다. 어느 이른 봄날 벚나무는 하얗게 곱고 눈부신 꽃을 터뜨리는데 시인은 그 경이로움을 반어적으로 보푸라기라고 말하고 있다. 만개한 벚꽃 사이를 날면서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노래하는 새들은 생명의 봄을 예찬하는 시인의 마음이 이입된 존재일 것이다. 시인
2020-05-13
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살아서 처음아버지 손도 따뜻했다어제 내장을 다 꺼내놓고담낭을 잘라내고소장 한도막을 길게 끊어내셨다아버지 손이 따뜻했다담낭절제 수술을 마치고 난 뒤 잡아본 아버지의 손은 따스했다고 고백하는 시인을 본다. 그 따스함 속에 배어나는,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아온 아버지의 한평생의 역정(歷程)을 느끼고 있다. 시인은 그 따스함 속에는 아버지의 꼿꼿한 자존과 올바르게 살아온 생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20-05-12
방둑 위로 이어진 길이다저 길 끝 읍내 불빛들이 손에 잡힐 듯 아득하다아무도 없이 혼자 걸어온 길이눈발이고 선 갈대처럼 휘청 굽은 채어둠 저편으로 빠르게 묻혀 간다얼음을 벗은 깡마른 시내가뱀 허물처럼 건기의 모래밭을 빠져나가고따스한 입춘 바람이 볼에 닿다어릴 적 캄캄한 밤중 마당귀에 쏘아 올린둥근 오줌발에 걸리던 별들이 그 자리에 떠 있다 (….)별 같은 사람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던 때가 있었다그땐 나도 누군가의 작고 작은 별이었다무수히 많은 별들이 열고 닫아 온 길길 찾는 이에게 길은 앞으로만 이어질 뿐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보이지 않았다시인은 평생 캄캄한 밤길을 걸어왔는지 모른다. 교육현장에서 참교육 실현을 위해 싸우다 해직당하여 캄캄한 어두운 밤길 같은 현실을 건너왔기 때문이다. 눈발과 얼음에 묻힌 밤길에서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유년의 하늘에 돋아났던 별들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별이 밤길 같은 오늘의 우리 교육 현실을 밝혀 이끌어줄 원동력이라고 믿는 시인의 현실인식에 깊이 공감하는 아침이다. 시인
2020-05-11
이 길 천지에 기댈 곳 없는 사람 하나 작은 보따리로 울고 간 길그리하여 슬퍼진 길상수리와 생강나무 찔레와 할미꽃과 어린 풀들의이제는 빈, 종일 짐승 하나 지나지 않는환한 캄캄한 길열일곱에 떠난 그 사람흘러와 조치원 시장통 신기료 영감으로 주저앉았나깁고 닦는 느린 손길골목 끝 남매집에서 저녁마다 혼자 국밥을 먹는,돋보기 너머로 한번씩 먼 데를 보는그의 얼굴고요하고 캄캄한 길외로움에 지치고 가난과 슬픔에 깊이 빠져서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의 아픈 풍경을 연민어린 눈으로 나열하는 시인을 본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살이가 간난과 외로움과 슬픔, 아픔의 깊은 풍경을 이루어가는 것은 아닐까. 생을 관조하는 시인의 그윽한 눈을 본다. 시인
2020-05-10
남풍은 북쪽화림산 쪽으로 넘어가고화개리로 굽어가는강기슭에는 하마복사꽃이 활짝 웃고 있었다어느 봄날 출가한누님의 울음 같은 화림산 언저리먼 먼 전생의 구름 한 자락유년의 아지랑이 속으로 가물대며저문 강 쪽으로 넋으로 타고 있었다하늘 속으로 울부짖는슬픈 목숨처럼 타고 있었다영덕 출신의 원로시인 이장희 시인의 감동적인 서정시 한 편을 읽는다, 시인은 복사꽃 환하게 핀 봄날, 먼 기억 속의 가슴 아픈 서사 하나를 꺼내 화림산 언저리에 얹고 있다. 시집가면서 돌아보며 울던 누님의 눈물방울 같은 봄꽃 핀 하늘가에서 저문 강 쪽으로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누이를 그리는 노 시인의 젖은 눈가를 본다. 시인
2020-05-07
생전에 단 한 번도 꺼내놓지 못한 마음단정하게 말라가며 고백합니다백일홍같이 매끈한 허리에 감기고 싶었고새벽별같이 푸르게 빛나던 그 눈에 빠지고 싶었고장삼자락 휘날리던 그 바람 속에 감기고 싶었고그 어진 미소 속에 나를 묶어두고 싶었습니다그 마음 행여 놓으며당신 영영 산문으로 접어 들까 봐아무도 몰래가슴에 옹이로 남겨놓았는데제가 먼저 이곳에 누울 줄 알았다면당신 등 뒤에 풍경소리라도 남기고 올걸초분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없어 더 아픕니다광주의 서정시인 서애숙의 연작시 ‘죽림풍장’ 중의 한 편이다. 풍장(風葬)은 주검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장례방식 중의 하나인데 자연 속에서 주검이 육탈하는 과정이 느리고 시간이 걸리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제의(祭儀)인 것이다. 자신은 소멸해가면서도 이승에서의 사랑의 곡진함이 묻어나고, 못내 아쉬움을 토로하는 망자(亡者)의 가슴 아픈 영혼의 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0-05-06
봄꽃봄이 오면 꽃이 핀다다른 계절에 피는 꽃들도 예쁘지만봄꽃은 시리도록 아름답다개나리 민들레 목련꽃튤립 수선화 패랭이꽃예쁜 봄꽃이 핀 자리에는풍경마저 향기롭다아마도 긴 겨우내 혹한을견디며 이겨냈기 때문이리라산에 들에봄 꽃들아아름답게 피어나라질곡의 시간 인고의 세월을이겨낸 사람들아봄꽃처럼 활짝 피어나라혹한의 쓰라린 시련을 견디고 피어나는 봄꽃들을 뜨겁게 호명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질곡의 시간,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이겨낸 사람들이 봄꽃처럼 환하고 아름답게, 활발하고 꿋꿋하게 일어서길 염원하며 응원하는 시인의 현실대응 인식이 얼마나 희망적인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
2020-05-05
들녘의 풀들이해마다 서리에 맞아 쓰러지고풀숲의 곤충들이아무도 모르게 목숨을 떨구는 것나는 여지껏 알지 못했지만봄이면 다시 살아오는 것을누이가 죽은 이른 봄언 땅을 파다가 알았다태초부터 지금까지태어나고 죽는 일이단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듯이죽음은 강줄기 같은 영원의 고리,이제는 죽음을슬퍼하지 않기로 했다누이가 죽어 묻힌 이른 봄의 대지에서 되살아나는 풀들과 곤충들과 수많은 생명체들을 바라보며 시인은 죽음은 종결과 폐지가 아니라 시작과 열림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삶과 죽음은 연쇄적이며, 어떤 고리에 의해 순환되어 영원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 시인의 영원불멸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
2020-05-03
가시는 겁을 주어 자신을 지키지만집게는 오히려 적을 안는다가시는 공포의 침을 무기로 가졌지만집게는 둔한 몸 뿐이다무기를 가진 가시는 여유가 있어고민도 긴장도 없이 살아간다한순간만 소홀해도 무너지는 운명을집게는 그러나 깨닫고 있다자신의 이름을 잃었을 때찬밥도 못 얻는 신세를 두려워하는집게의 저 움츠린 자세가시를 안을 날이 그래도 차 있는그 다문 입시인은 집게의 입과 가시의 침을 대비시키며 소중한 삶의 진리 하나를 역설하고 있음을 본다. 침을 가지고 겁을 주거나 공격하는 가시보다는 묵묵히 입 다물고 있는 집게의 인내력, 포용력, 여유로움이 가시를 굴복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며 묵묵한 다수의 내밀한 힘이 결국은 승리한다는 생의 이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시인
2020-04-30
진달래 꽃 숲 속에서어머니 얼굴 보았네십여 년 전돌아가신 어머니 얼굴“나, 여기 있었다.”성큼성큼 걸어 나오시는웃음 띤 어머니 모습고운 한복지어 입으시고진달래 꽃방망이 만들어반갑게 나를 만나네아지랑이 아롱아롱하는 봄날의 산자락에 피어난 진달래꽃에서 시인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본다. 진달래 산천에서 어머니와 함께한 살가운 사랑의 시간들이 시인의 가슴 속에 흐르고 있어 진달래꽃처럼 환하고 고운 어머니의 모습을 꽃 속에서 찾은 것이다. 눈물 글썽글썽해지는 절절한 사모곡을 듣는다. 시인
2020-04-28
(….)내가 마음의 스승을 찾아간 날은어느 숨막히는 가을날말없이 뜰을 거닐던 그는손을 들어 먼 산줄기를 가리켰다보세요, 저기 차령산맥을…저와 같이 내달려 마침내 고군산으로 빠지지요거기 몇 개의 섬을 이루지요이십세기 수백 수천의 시인 가운데발레리를 비롯한 몇 사람이나 살아남겠으며그러니 어찌 무서운 일이 아니겠는가나이 육십에 나는 문학을 새로 시작하지요잠자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운무에 싸인 푸른 능선들이 남으로 가고부끄러움에 눈을 떨구니벚나무 잎새가 발등에 와서 닿았다시인이 말하는 최대의 풍경은 무엇일까. 꼭히 시인이 말하는 문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꿈꾸며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한 생을 거는 것은 재화와 함께 얻어지는 불후의 명성 때문일까. 시인은 부질없는 욕망과 그 욕망이 삶의 방향성과 진실성을 왜곡할지 모른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20-04-27
눈이 성글게 내리고 있다송이 눈으로 바뀌고 있다탐스럽고 굵은 송이 눈이허기 잊게 해 주면서봄산 함초롬히 적셔 주고 있다봄산 적시던 고운 송이 눈이무덤덤한 남자 얼굴 싫다고떼쓰고 투정부려 보았지만과부 빠져 죽은 강물에 떨어지고 있다평생 인생을 관조하는 그윽한 서정시를 써 온 대구의 원로 시인인 도광의 시인이 그리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 하나를 본다. 시인은 가난한 지난 세월, 하얀 이밥처럼 강물 위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지난 날 가슴 아픈 서사 하나를 떠올리고 있는데, 고요하고 눈물겨운 평화경이 아닐 수 없다. 시인
2020-04-26
숭숭 하늘 향해 솟은 나무 그늘에 서 있었다곧고 푸른 지조가 만들어낸 텅 빈 육체에서플루트 소리가 났다위로 뻗어가느라 아무것도 품지 못한 생애가한 번은 꽃 피고 한 번은 꽃 지고 싶다고우수수 잎을 날려보냈다나이를 숨기느라 마디진 등뼈 타고초록을 물들이며 노랗게 솟는 대쪽의 항진(亢進),창공을 버티느라 굵어지지는 않고다만 단단해진 울대가무성한 잎을 떨어뜨렸다위로 뻗기만 하는 삶을 받치려고실타래처럼 엉킨 땅 아래 상념들 스산하게 흔들렸다너 한 번 꽃 필 때마다 하늘 향한 가지 꺾이고너 한 번 꽃 피려고 무너진 자리우르르 몸 기댄 백로 제비꽃 와서 피었다시인은 대숲 그늘에 서서 늘 푸르고 곧게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대나무를 바라보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대나무를 곧고 푸른 지조가 만들어낸 텅 빈 육체라고 표현하는 시인은 자신의 삶도 대나무처럼 한결같이 곧고 푸르게 살아가겠다는 반성의 성찰과 함께 다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4-23
골목 어귀에할머니들 옹기종기 앉아있다머리 허연 할머니가허리 구부정한 할머니에게그래 올해 몇이유둘이유난 셋인디종잡을 수 없다 여든인지 아흔인지아페 숫자는 어디로 가고갓 눈뜬 병아리들봄볕을 쬐고 있다한 생을 거의 다 건너온 두 할머니가 봄볕을 쬐며 나누는 대화가 봄볕처럼 따스하고 잔잔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세월을 잘라내고 나누는 대화에서 두 할머니는 갓 눈뜬 햇병아리 같다고, 철없는 소녀 같다고 말하는 시인은 자신의 한 생도 그리 살고 싶다는 염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4-22
그는 말을 듣지 않는 자신의 육체를 침대 위에 집어던진다그의 마음속에 가득찬, 오래 된 잡동사니들이 일제히 절그럭거린다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할 것인가나는 이곳까지 열심히 걸어왔었다, 시무룩한 낮짝을 보인 적도 없다오오, 나는 알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내 정체를 눈치챘을까그는 탄식한다, 그는 완전히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에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은가모퉁이에서 마주친 노파, 술집에서 만난 고양이까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한다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바힌, 길쭉하고 가늘은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짧은 생을 살다간 시인의 생에 대한 성찰이 깊이 스민 작품이다. 인생이란 홀로 없어지는 구름 같은 존재이고, 태어남의 전제가 이미 죽기 위한 것이며,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영원한 것은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에게서 소멸의 인생관,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시인
2020-04-21
마트 한 켠에서 잡아 올린 고등어 한 마리굽는다물결 치는 파도를 잠재운다노릇노릇해지는 바다한때의 열망도 노릇노릇해진다부석부석하게 부은 희망도 바싹하게 굽는다사람들의 발길이 휩쓸려 다니던 거리도 굽는다모든 물결의 끝에는 뭍으로 향하는 그리움만살지고,그리움의 끝없는 행로에는 지독한 열병이 번져간다더 이상 견딜 수 없이숨 막혀 허덕이던 순간에자신을 배반한 물결을 버리고고등어는 점점이 해탈식을 치른다그리하여끊임없이 밀쳐내는 파도를 타고….시인은 마트에서 사 온 고등어를 구우며 푸른 물결 틈새를 지나는 활어 고등어를 떠올리고 있다. 한 때, 대양을 향한 열망과 희망을 품고 유영했던 고등어가 불판 위에서 익어가고 있는 것을 해탈식이라 표현하는 시인은 바다와 그 바다가 품고 있는 무한한 자유로움이라는 가치를 고등어를 들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