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물결 일으키는 고기를 낚아채어망에 넣고호수가 다시 호수가 되도록기다리는 한 사내와귀는 접고 눈은 뜨고그러나 아무것도 보지 않는개 한 마리물가에 앉아 있다사내는 턱을 허공에 박고개는 사내의 그림자에 코를 박고건너편에서 높이로 서 있던 나무는물속에 와서 깊이로 다시 서 있다간명하고 담담한 필치로 호숫가 풍경 하나를 우리에게 펼쳐보이고 있다. 시 전체에 흐르는 고요한 침묵과 많은 여백을 본다. 사내와 호수, 개, 나무가 각각의 편안한 존재의 방식대로 그림 전체를 채우고 있음을 본다. 관념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는 담백한 작품이다. 시인
2020-03-22
뉴햄프셔주 그리고 버몬트주산들이 높고 하늘도 높다숲이 푸르고 녹음이 맑다뉴잉글랜드는 낭만적 서정시산골짜기에 작은 동네가 곱다숲 속에 드문드문 작은 목조 집들의 페인트 색이 밝다모두가 정갈하고 조용하다동화만 같은 뉴잉글랜드뉴잉글랜드 산속 한 외딴 마을에집을 짓고 살고 싶다뉴잉글랜드 숲 속 외딴 집에서시를 쓰고, 사랑도 하다 죽고 싶다뉴잉글랜드 숲 속 외딴 집에서시를 쓰고, 사랑도 하다 죽고 싶다시인이 여행한 적이 있는 뉴잉글랜드는 조용하고 깨끗한 곳으로 탐욕과 약육강식이라는 문명의 폐해로부터 비켜 서 있는 곳이다. 시인은 욕망이 넘쳐나고 시끄러운 현실을 떠나 그 정갈하고 깨끗한, 조용한 그곳에서 시 쓰며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심정을 펴보이고 있다. 시인
2020-03-19
논도 밭도 지워진 세상 빈자리세월을 덜어내느라 징허게 땀도 많아라제비들 찾아와 지잘지잘지 잘났다 지저귀다 사라지고부산항 마산항 갈매기들대전발 영시 오십 분 열차에 몸을 실은 까치들철근을 물고 날다 뛰다 뛰다 날다뼈도 남아나지 않겠다 거품 물고 날아가 버린 공사장소금물 뱉어내는 질척한 아파트저 질긴 목숨들아직 발을 뺄 수 없어순천만 갯벌 노을보다 붉은피에 젖네제 그림자들 늘이어세상 눈물 지우네시인은 평생을 공사장의 철근공으로 전국의 건설현장을 떠도는 철새 같은 노동자로 살다 몇 해 전 우리 곁을 떠난 시인이다. 노동하면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로 노동시를 써 온 시인의 눈시울 붉은 시를 읽는다. 순천만 갯벌에 스미는 노을보다 붉은 시인의 생의 힘겨움과 비애를 읽는다. 시인
2020-03-18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별과 달과 해와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손 저어 대답하면서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별과 달과 해와모래만 보고 살다가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길동무 되어서낙타는 오직 앞만 보고 걷는 충직한 성품을 가진 사막의 동물임을 들어 평생을 가난 속에서 청렴하게 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시인이 바로 낙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어서 다시 후생에 태어나더라도 자신 같은 사람을 태우고 가는 낙타로 태어나겠다고 말하는 노시인의 달관된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0-03-17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통화 중 신호음을 들었다 나는 한번 시도한 일은 멈출 줄 몰랐다 나는 한번 들어선 길은 돌아갈 줄 몰랐다 뚜, 뚜, 뚜 듣지 못한 응답이 나에게로 돌아와 꽂혔다 차창 밖으로 발개진 꽃잎들의 통화가 소란스러워졌다 세상은 모두 통화 중이었다 나는 나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안에 통화 중 신호음이 가득 차올랐다 귓바퀴가 수백 다발의 코일을 빨아들였다 나는 나의 고백을 듣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디 간 거야, 나는 나의 응답을 찾지 않았다 나는 고독해졌다 나는 팽창했다 귓속에서 입이 찢어졌다 백 년은 늙은 내 입속에서 푸르른 말들이 나를 겨냥했다‘세상은 모두 통화 중’이라는 시구에서 느낄 수 있듯이 소통되지 않는 전화와 현대인들이 겪는 고독과 소외, 단절과 폐쇄의 현상을 시인은 기발한 상상력을 펴며 야유하며 비판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20-03-16
햇살 나른한 바닷가에죽은 듯 누웠다파도가 와서 아는 체해도모른 체한다온통, 몸 젖은 파도가 와서떠나온 길 사라졌다 중얼거리고하루가 다 가도록 내 앞에서, 청춘 같은세월 뒤에 몸 뒤척이는 날 두고돌아가겠다 돌아가겠다수런거리며 바위 숲에 가서해송처럼 머문다시인은 햇살 나른한 바닷가에서 지나온 청춘의 시간을, 열정과 의욕에 부풀어 올랐던 시간을 뒤돌아보며 허망한 세월의 물결을 보고 있다. 이제는 젖은 파도가 몰려와 떠나온 길을 쓸어가 버리고 나이 들어 낡고 무너져가는 몸과 의식만 남은 현실을, 돌아갈 수 없는 그 청춘의 시간을 가만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시인
2020-03-15
공원 벤치에 가을이 앉아 있다지팡이를 짚고 온 가을이말없이 앉아 있다허공에 집을 지은 이들은지상에 폐지조각만 남겨놓은 채 떨고 있다번지 잃은 영혼의 무게들만발밑으로 수북이 쌓인다매달릴 수도붙잡을 수도 없는구름의 시간이 흘러간다노오랗게 신열(身熱)을 앓고 있는하늘,그 아래 아무도 기침하지 않는다시인은 공원에 가득 차 가을을 이루는 사물들을 호명하며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 온 노인네들에게서도, 발 밑에 수북수북 쌓이는 낙엽들에서도 청춘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붙잡을 수 없는 구름의 시간을, 세월의 허허로움을 읽는 시인을 본다. 시인
2020-03-12
사랑은이 세상을 다 버리고이 세상을 다 얻는새벽같이 옵니다이 봄당신에게로 가는길 한 새로 태어났습니다그 길가에는 흰 제비꽃이 피고작은 새들 날아갑니다새 풀잎마다이슬은 반짝이고작은 길은 촉촉이 젖어나는 맨발로붉은 흙을 밟으며어디로 가도그대에게 이르는 길이 세상으로 다 이어진아침 그 길을 갑니다시인은 길가에 흰 제비꽃이 피고 작은 새들이 날고 새 풀잎마다 반짝이는 봄 길에서 엄동을 견디고 되살아나는 고운 생명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있다. 이 땅 봄이 오는 어느 산자락 어느 들녘의 흙인들 맨발로 밟지 못할 곳이 있으랴. 봄을 맞는 시인의 환희에 찬 사랑의 노래를 듣는다. 시인
2020-03-11
계원리 강씨 어른은 영락없이 목수다벼린 대팻날 한 눈 감고 쓰윽 가늠 타가용골 앉히고 송판 대패질 나선 지스무아흐레막걸리 두 독쯤 비우던 그날뱃머리 고사 상 차려‘청진 앞바다 거친 물살 잠재우시고 한 그물 찢어지게 명태 오리도록 해주소’라며동해 용신께 그저 빌고 빌며 배 띄우던골 깊은 파도 깎아 낮추고굽이진 소나무 펴서조선배 만들던 목수였다시인은 구룡포에서 감포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인 계원리에서 만난 목수 강씨 어른의 한 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생을 작은 대패 하나로 송판을 깎아 배를 만드는 강씨 노인. 세차게 불어오는 갈바람에 새까맣게 그은 얼굴과 풍어를 기다리는 그윽한 눈빛을 읽어내는 시인의 눈빛이 밝고 따스하다. 시인
2020-03-10
토속가든을 끼고 비포장도로를 사 분쯤 걸으면이층집 한 채와 단층집이 나란히 산 밑에 있다이파리 넓은 옥수수들은 이층집과단층집을 두터이 감싸고 벽돌담은 가르고소나무들은 집 뒤로 쭉쭉 가지를 뻗고 있다이층집과 단층집에서는 이따금씩 사내와 여인들이마당으로 오가고 바삐 산비둘기들이고랑을 뒤진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하루 종일 햇빛과 바람은 시간의 가장자리를울리며 사라졌다가 돌아와 나뭇잎들을고요히 흔든다 밤에는 이슬 같은 별들이 떠오른다지붕은 숨을 죽이고단층집에서는 현관문이 열리면서사내가 나오지만 밤은 동요하지 않고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 간다 사내는손가락질하며 따라간다 밤은 아랑곳없이골짜기로 빠져나간다 사내는 계속손가락질하며 따라가고 사내 뒤로 밤은깊어가고 밤은 꼬리를 감추고 침묵속으로 들어간다시인은 밤의 정경을 묘사하며 계속 흘러가는 시간을 불러내어 그 시간 속에서 부단히 움직이는 사물과 사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인간과 사물들은 움직이고 행위를 계속한다고 기록하면서, 우리를 그 팽팽한 밤의 침묵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0-03-09
일흔일곱 한 생이훌쩍 등 돌려 떠난 자리열여섯 새색시로 만나한평생 손마디로 굳어버린은가락지 한 쌍과칠순 때 시집간 딸이 끼워준두 돈짜리 금가락지 하나등껍질로 깔고 누운 담요 밑엔일금 사만칠천삼백 원이 든우체국 통장도 하나강 건너는 영혼 앞에한 가지씩 나눠 들고사형제 엎드려 곡소리 높다시집 올 때 낀 은가락지 한 쌍과 칠순 잔치 때 받은 금가락지 하나, 우체국 통장 하나를 남기고 어머니는 가셨다. 그것은 파란 많은 한 생을 피땀 흘리며 사랑과 정성을 다해 사형제를 키워낸 어머니의 거룩하고 위대한 유산이 아닐 수 없으리라. 시인
2020-03-08
마른바람이 모래언덕을 끌고 대륙을 건너는타클라마칸 그곳만 사막이 아니다황무지가 끝없이 이어지는 시대도 사막이다저마다 마음을 두껍고 둔탁하게 바꾸고여리고 여린 잎들도 마침내 가시가 되어견디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곳그곳도 사막이다우리 안에도 선인장 가시 같은 것이 자라나여차하면 남을 찌르고 내게 날카로워지는데뜨거움은 있으나 서늘한 숨결은 없지 않는가오직 전속력으로 그곳을 벗어나고자 하는 곳연민도 눈물도 없이 사는 이곳도 사막 아닌가눈 줄 데 없는 황량하고 메마른 풍경 속에서모두 다 카우보이가 되어버린시인은 타클라마칸 사막만 사막이 아니라고 말하며 황무지 같은 우리 시대가 사막이라고 한탄하고 있음을 본다. 저마다 아집과 단절의 벽을 쌓고 여차하면 남에게 상처를 주는 곳, 뜨거움보다 서늘한 숨결이 있는 곳, 연민도 눈물도 없는 우리 시대가 황폐하고 생명이 멸절되어가는 사막이라고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3-05
진주장터 생 어물전에는바다 밑이 깔리는 해 다진 어스름을울 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빛 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은전(銀錢)만큼 손안 닿는 한(恨)이던가울 엄매야 울 엄매(….)진주 남강 맑다 해도오명 가명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울 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시인은 유년 시절의 낡은 사진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진주 장에 생선 행상을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이다. 은전 한 닢은 광주리로 생선 장사를 하는 어머니의 손끝에 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먼 곳에 있고, 이제는 그 아이도 나이가 들어 그때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것이다. 시인
2020-03-04
한 꼬마가 아이스케키를 쭉쭉 빨면서땡볕 속을 걸어온다두 뺨이 햇볕을 쭉쭉 빨아먹는다팔과 종아리가 햇볕을 쭉쭉 빨아먹는다송사리 떼처럼 햇볕을 쪼아 먹으려 솟구치는 피톨들살갗이 탱탱하다전엔 나도 햇볕을쭉쭉 빨아먹었지단내로 터질 듯한 햇볕을지금은 해가 나를 빨아먹네아이스케키를 쭉쭉 빨아먹던 꼬마는 꿈 많고 건강한 아이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그 아이도 나이가 들어 ‘해가 나를 빨아먹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간명한 묘사 속에서 시인은 쏜살같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의 주름을 펴보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3-03
어디라 가서 잘 살 수 있을까눈물이 많았는데아득하게 뼈만 남아서가다가 서구, 가다가 주저앉곤 했는데수국이 보이는 뒤뜰저 그늘 방에 할머니 어머니처럼 오래 있었는데이젠 어디서든 다시는 볼 수 없다지만고향집 수국이 보이는 뒤뜰 구석 그늘진 건넌방은 식구들이 채취와 아옹다옹 살아온 생의 흔적과 온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제는 낡고 헐어서 예전의 그 따스한 공간으로서의 건넌방을 다시 볼 수 없지만, 사랑과 정성이 서려 있는 오랜 구석 건넌방은 시인의 가슴 속에 오래오래 남아있으리라. 시인
2020-03-02
언젠가도 나는 여기 앉아 있었다이 너럭바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지금과 같은 생각을 했다그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가슴속 응어리를노을을 보며 삭이고 있었다응어리 속에는 인간의 붉은 혀가석류알처럼 들어 있었다그러다 어느 순간슬픔의 정수리로 순한 꽃대처럼 올라가숨결을 틔워주던 생각감미롭던 생각그 생각이 나를 산 아래로 데려가 잠을 재웠다내가 뿜어냈던 그 향기를 되살려내기가이다지도 힘들다니 ….순간은 금방 다른 순간을 물고 이어지고가 반복된다. 시인은 그런 순간의 반복 속에서 품고 있던 생각과 가슴 속 응어리들이 자기 자신을 슬픔이나 욕망에서 벗어나게도 하고, 거기에 갇히게도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순간의 연속에서 웃고 울고 절망하고 희망을 가지는 것이리라. 시인
2020-03-01
삼십 년 만에 만나 배불뚝이 동창생 녀석이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했다“예나 이제나 고향 우시장(牛市場)에 박힌말뚝처럼 비쩍 마른 건 여전하구나!”평생 내 삶을 괴어온내 안에 살아 계신 이가 불쑥 나서며이렇게 날 변호하는 것이었다“비쩍 마른 말뚝임엔 틀림없으나하늘과 땅을 잇는 말뚝이라네!”삼십 년 만에 만난 동창생이 던진 말에 시인은 미소 지으며 한마디 말로 대꾸를 하고 있다. 왜 시인은 자신을 ‘하늘과 땅을 잇는 말뚝’이라 답했을까. 시인은 하나님의 음성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목사이기 때문이리라. 고진하 시인은 친구의 말처럼 비쩍 마른 편의 시를 쓰는 기독교 목회자다. 시인
2020-02-27
의자에 앉으면 내 몸은 유체이다아니 갑자기 뼈가 없어져 버리는 연체동물이다의자가 만들어 놓은 틀에 맞게내 몸은 자동적으로 변형된다튀어나온 어깨 부분에서는 내 어깨도 튀어나오고쑥 들어간 허리 부분은 내 허리가 알아서 가듯이의자의 깊은 골 따라 알맞게 들어간다의자에 앉으면 방금 전까지 벌판에서 펄펄 뛰던내 몸의 야성은 어느새 사라지고나는 말 잘 듣는 얌전한 애완견처럼의자의 본에 맞춰 내 몸을 재조정한다달리는 봉고차 의자에 앉아서말없이 졸면서 한나절씩이나 보내야 하는나의 불규칙한 생계여여태 나는 내가 살아있는 줄도 모르고 살고 있네시인은 의자에 따라 몸도 마음도 변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생계를 위해 삶의 여건과 조건, 생활의 패턴이 바뀌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몸도 마음도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가며 애완견처럼 길들어 가는데 대한 서글픈 심정을 토로하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20-02-26
꽃 피는 봄에배추꽃 노란 꽃잎 뒤로새 한 마리 아스라이 파묻히는하늘을 보다가기다리는 사람 없이홀로 저무는외딴 집꽃 피는 봄날 시인은 지리산의 어느 외딴집에서 부재의 쓸쓸함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는 사람이 없으므로 기다림도 없고 그리움도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죽음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인의 정신세계에도 이런 부재의 외딴집이 허다하리라는 가정을 하고 있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시인
2020-02-25
네가 상처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리봉으로 와. 아무도 없는 술집에서 뼈해장국 시키면거기 네 설움이 울대째 넘어온 듯퉁명스러운 감자 몇 알이 묻어 나올 거야때 타고 흙먼지 묻었지만씻겨 놓고 보면 말갛던 네 옛 친구들이퍽퍽하니 목에 메일지도 몰라어우러진 한 솥 펄펄 끓었어도제각기 자란 토양 달라 한 맛내기 쉽잖던 시절왜 우린 서로 뼈처럼 단단해지기만을 바랐을까바람 불어 오거리 쓸쓸한 날아무도 없는 해장국집 들러다글다글 끓는 지난날 떠올리자면거기 내 그리움도 얼큰히 풀려고춧가루 서너 숟갈 더 퍼부어도 시원찮은데….시인은 뼈해장국을 먹으며 지난날 함께 노동운동에 나섰던 친구들을 떠올리고 있다. 떠나버린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익살스럽고 따스하게 전해지는 작품이다. 뼈처럼 단단하게 서서 견디며 사람 살만한 세상을 일으켜 세우자고 맹세했던 친구들과의 연대는 무너지고 꿈꿔오던 세상은 오지 않음을 개탄하며 흩어져버린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0-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