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 어머니는올망졸망 일곱 남매들에게꽁보리밥이라도배불리 먹이고 싶은 맘간절하셨다보리밥과 쌀밥의 차이가새 돈과 헌 돈 같은 거일까오일장에서채소 장사하는 내 아내는손때 묻은 헌 돈이나마앞치마가 불룩하도록 채워지길소망하였다오일장 좌판에서 채소장사를 하며 앞치마에 한 푼 두 푼 헌돈을 담는 아내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사랑과 헌신의 아내에게서 칠 남매를 키우느라 자신을 다 소진해버린 어머니를 읽어내고 있다. 이 땅 여인들의 운명적인 어떤 굴레 같은 것을 느끼는 시인은 먹먹한 마음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6-16
나지막하게 얼굴 내밀면서도미나리아재비꽃 아래서도 웃고까마중 아래서도 작은 얼굴로 그래그래 한다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을 다 맡겨도잃을 것이 없는 하루하루가 행복인 듯어디 굴뚝새 소리 들으려 귀는 열어둔다눈길 하나 주지 않는 길가도 마다 않고많이 차지하지 않으려는 나날이 하늘처럼 곱다바람에 고개 살랑살랑 흔들며밤하늘의 별빛 받아 꿈을 키우면서꽃무릇 아래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질경이 사이에서도 작은 얼굴로 응응 한다어떤 날은 새 옷으로 갈아입은 마술사처럼사람들의 찌푸린 얼굴을 활짝 펴주기도 한다제재로 삼은 괭이밥의 생태에는 시인이 추구하는 생의 자세, 혹은 삶의 방향 같은 것이 깊이 반영되어 있음을 본다. 괭이밥은 다른 꽃 밑에서 낮게 피면서 불평하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새소리에 귀를 열고 바람에 흔들리며 욕심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고운 꽃을 피워올리는 꽃이다. 괭이밥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겸허하게 살아가려는 시인의 무욕의 인생관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아침이다. 시인
2020-06-15
저 산 너머에 그대 있다면저 산을 넘어가 보기라도 해볼 턴디저 산 산그늘 속에느닷없는 산벚꽃은웬 꽃이다요저 물 끝에 그대 있다면저 물을 따라가보겄는디저 물은 꽃 보다가 소리 놓치고저 물소리 저 산허리를 쳐꽃잎만 하얗게 날리어흐르는 저기 저 물에 싣네엄동의 차가운 시간을 견딘 산에 봄이 돌아오면 산자락 양지 녘에는 노오란 얼음새꽃이 피어나고 산 중허리 능선에는 하얗게 산벚꽃이 환한 꽃등을 켜든다. 시인은 산골짝 계곡물에 뜨서 흘러가는 하얀 꽃잎을 바라보며 님을 향한 그리움의 마음을 살짝 펼쳐 보이는 것이다.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에 대한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시인
2020-06-14
이제부터 나를 자유라 부르기로 했다뉘 집 딸이라는 말누구의 엄마라는 말누구의 아내라는 말목숨보다 질긴 그런 말들 다 버리고이제부터 나를 나라고 부르기로 했다그동안 난 여자라는 섬뜩한 운명에 갇혀수족관 물고기처럼 살아왔다내 할머니는 물 밖 세상이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었다(….)난 오늘부터 수면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뛰어오르는 물고기가 되기로 했다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연어가 죽음을 각오하듯모천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를 던져번개처럼, 천둥처럼 세상을 한번흔들어보기로 했다너는 너나는 나자유라는 인간 본연의 존재 가치를 회복하고 옹호하는 시인의 선언적 목소리를 듣는다. 자유에 대한 존재론적 열망이 시 전체에 깔려 있는 이 시는 자신을 가두고 묶어두는 가족이나 사회적, 개인주의적 저항을 벗어나 무궁무진한 생명의 자유, 근원적인 생명력을 회복하고 찾겠다는 시인의 의지에 찬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20-06-11
들이 울고 있구나숲이 울고 있구나있다가 떠나버린 사람왔다가 가버린 사람꽃들만 남아피고 있구나 지고 있구나들과 숲의 노래누가 들을까?꽃들의 춤누가 볼까?들과 숲의 말누가 전할까?들이 울고 있구나숲이 울고 있구나시인은 왜 들이 울고 숲이 운다고 말했을까. 꽃이 피고 숲이 우거지는 자연을 떠나 도시로 떠나는 현대사회의 경향을 꼬집고 있음을 본다. 인간 소외와 자연 오염, 각종 범죄로 상처투성이의 도시 생활에서 현대인들의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가고 있지 않는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의 꽃과 숲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문명에 갇혀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모습은 아닐까. 시인은 이러한 현대인의 아픈 초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20-06-10
양지공원에도 못 가보고 집이서 귀양풀이 헌 덴 허옇게 그딘 가봐사 헐 거 아닌가? 기여게 맞다게 얼굴 보민 속만 상허고 고를 말도 없고 ….심방 어른이 가시어멍 거느리걸랑 잊어 불지 말았당 인정으로 오천 원만 걸어 도라 미우나 고우나 단사운디 저싱길 노잣돈이라도 보태 사주 경허고 영개 울리걸랑 촘젠 말앙 막 울어불렌 허라 속 시원이 울렌허라 쉐 울 듯 울어사 시원해진다 민호어멍 정신 섞어정 제대로 울지도 못 해실거여 막 울렌허라 울어부러사 애산 가슴 풀린다 울어부러사 사라진다 사는 게 우는 거난 그자 막 울렌허라 알아시냐?제주도 방언이 많이 사용되어서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이 많은 시다. 제주도에는 소위 ‘귀양풀이’라는 무속의 한 의례가 있다. 어머니는 전화로 민호네 장례에 귀양풀이를 부탁하고 있다. 아들이 그 무속 의례에 참여하여 민호 어머니로 하여금 실컷 울어서 망자에 대한 슬픔을 다 토해내라고 부탁하는데 그것은 그 이후 망자의 영혼은 편히 저승으로 떠나고, 남은 자들은 삶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질긴 고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
2020-06-09
갈래갈래 흘러 모인 물들이제 떠나야 하리부조강을 오르던 청진 명태의 시청청한 내음을 따라윤기나던 기계 찹쌀이 팔려간 길북으로 난 뱃길을 따라함성으로 찾아가야 하리노래가 되어사랑이 되어물결치며 달려가야 하리꽃 산 무너져눈부신 산천을 끼고이 천리 뱃길기쁨으로 열어 가야 하리벅찬 가슴 조이며 이제하구를 떠나야 하리포항을 가로질러 흐르는 형산의 강물을 바라보며 자란 시인은 한 세월 지난 후 강가에서 가만히 그 강을 읽고 있다. 그 강에 서린 굴곡진 역사를 떠올리고 있음을 본다. 한 때 교역과 물류를 통한 민중들의 삶의 진액이 녹아있는 나루가 있고, 민중들의 애환이 녹아있는 강, 동학, 한국전쟁의 가슴 아픈 상처를 품고 유유히 흐른 강물을 바라보며 시인은 민중들의 사람다운 삶과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는 정신을 펴보이고 있다. 시인
2020-06-08
하루 종일 자동차 소리뿐인 데서사람 소리뿐인 데서무슨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세상의 새벽 아닌가옛날과 시골과 자연이 한꺼번에넘쳐 흘러동트는 이 마음!(….)여염집 옆 숲그늘 어디서목청을 뽑는 수탉이여이 몸 동트고세상은 처음으로 돌아간다푸르른 풋시간이여시인은 문명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을 대비시키고 있다. 자동차 소리, 사람들 소리 같은 빠르고 진부하고 때묻은 문명의 시간과 신새벽 수탉의 울음소리 같은 푸르른 풋시간인 자연의 시간을 설정하고 있다. 자연의 소리는 새로움으로 나아가고 희망과 평화에 이르게 한 깨끗한 소리인 것이다. 시인
2020-06-07
꽃 핀 배나무 아래나이 어린 돌들과 앉아‘너는 희구나’‘너는 희구나’앉아그렇게 희고또 희고도정신 놓지 않고허튼 흰빛 하나 없이다섯 살에 깨친 글자들처럼발등에도, 발톱 위에도 놓아보는흰 꽃아득한 거리에 피어 있는 흰 꽃, 시인이 바라보고 있는 배나무 흰 꽃은 나무 아래 올망졸망한 어린 흰 돌들과 어울려 피어 있다. 서로의 존재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 ‘너는 희구나’ 하며 격려하고 함께하는 고운 마음을 각박하고 변화와 변절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변색이 심한 세상을 향해 펴보이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20-06-04
저녁을 먹다가 국그릇을 엎질렀다남방에 튀어 오른 얼룩을수세미에 세제를 묻혀박박 문질러 닦다가문득 지난날들이 떠올려졌다엎지른 것이 어찌 국물 뿐이었을까살구꽃 흐드러진 봄날네게 엎지른 감정울음이 붉게 타는 늦가을나를 엎지른 부끄럼시간을 엎지르며 나는 살아왔네물에 젖었다 마른 갱지처럼부어오른 생활의 얼룩들엎지른 것이 어찌 국물 뿐이었을까시 전반부의 ‘엎지르다’는 의미는 작위(作爲)가 아니라 무위(無爲)에 의한 것으로 자연스럽고 사소한 일상의 경우이고, 뒷부분의 ‘시간을 엎지르며 나는 살아왔네’라는 시인의 말에는 자칫 작위적이고 의도적인 시인의 의도가 나타난 것 같지만 아니다. 이것마저 무위이고 자연스러움이라는 시인의 의도를 읽는다. 시인의 무위의 삶에 대한 신념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시인
2020-06-03
예비라는 말 속에는복사기가 산다예비 신랑 예비 신부예비군 훈련예비 비행예비 시험단전호흡으로 치며 올리는갈비뼈와 늑골 사이예비라는 말이함께 올라온다바퀴벌레에게도출발을 멈춘 예비가아침마다 만나는계단에게도예비가,오늘 가졌던 예비는이제 내일의내일의 예비는다시 내일의 나의예비가 될 것이다그 예비 복사기는내 바다 속의 문어도복사할 수 있을까우리의 일상은 거의 비슷한 모양으로 반복되고 순환되는 것이리라. 이러한 되풀이되는 현상을 시인은 날마다 복사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반복되고 자동화되어 진행되는 것이 현대인들의 일상이 아닐까. 그 속에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상실하거나 빼앗겨 버리고 살아가는 서글픈 존재라는 인식이 시 전체에 깔렸음을 본다. 시인
2020-06-02
이상한 늙은 아이가 몸속으로 들어온다아이는 점점 작아진다, 눈물이 된다다시 아이는 수십여 개의 세포로 나뉘어진다전송되지 않는 잠들이 코드 밖으로 뛰쳐나온다뒤엉킨다 몽롱해진다그사이 수억 년 전의 태양이 불쑥 솟구친다나는 벌겋게 눈을 뜬 채 잠의 사이보그가 된다모든 풍경은 잠이 조립한 일회용이다어쩌면 이것이 내 완전한 잠의 코드인지도 몰라더 무겁고 딱딱해질수록 몽롱한이 시를 끌어가는 동력은 환각과 관념이다. 후기 자본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현대사회가 양산하는 탈 질서, 탈 윤리. 혹은 부자유와 억압이라는 프레임으로부터의 자유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리라. 시인은 그러기 위한 한 방법으로 이러한 내면의 환각이나 관념이라는 강렬한 방식을 도입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시인
2020-06-01
아카시아 꽃 핀다꽃 피어도 시큰둥했던 이유엄마의 부재다꽃은그 해의 봄과 여름 사이에서처럼하얗게 피어오르지만엄마의 봄은 다시 오지 않고다만 어머니의 봄이 왔다제삿밥이라도 고봉으로 먹으라고월급날에 돌아가신열일곱 살 엄마의 봄아카시아 꽃에서엄마 냄새 난다시인이 말하는 ‘엄마의 봄’과 ‘어머니의 봄’은 어떻게 다를까. 시인은 하얗게 핀 아카시아 꽃을 주목하고 있다. 어린 시절 사랑과 정성으로 자신을 키워준 엄마와 함께한 시간 속으로 하얗게 아카시아꽃 피어나던 봄을 엄마의 봄이라 부르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제 세월이 흘러 다시 아카시아 꽃이 피어나는 봄을 맞아 어머니의 봄이라 부르고 있다. 시 전편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소복하게 깔렸음을 본다. 시인
2020-05-31
집 밖에서 집을 보네밤이 새벽으로 건너가는 시간금성이 춥게 빛날 때울다 잠든 아내 두고집 밖에서 퀭한 눈으로 내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네저 칸칸이 토굴 같은 시커먼 아파트 덩어리모래와 시멘트로 뭉쳐진 커다란 산저 속에서그만 살 것처럼 사랑하고또 다 산 것처럼 싸우고옷 벗고 뒹굴고 또 옷 입고 종주먹을 들이대고나날을 최후처럼 살았네불현듯타클라마칸 사막의 한가운데돈황의 막고굴이 떠올랐다네커다란 산에 층층이 둥굴을 뚫고 수도승들은화엄세계를 새겨 넣으려굴 밖에 거울을 세워두고 빛을 반사시켜 들여서몇십 년 몇백 년 작업을 했다지얼마나 죽고 싶었을까그들에게 차라리내가 버리고 싶은 이 사바가 극락쯤은 아니 될까그래, 나의 이 고해가 극락이라니목말라 물을 찾다밤새 술만 들이켰던 그곳이 우물터였다니수많은 생불들이 불을 켜는 새벽나 옷깃 여미고 저 사원으로 돌아가겠네아등바등 힘겹게 살아가며 갖가지 고뇌와 번민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세속적 현실을 사원, 극락이라고 말하는 시인을 읽는다. 피하고 벗어나고 싶은 세속의 일들을 폭로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그것들을 끌어안고 그 속에서 공존하고 함께하려는 현실 수용의 마음이 피력되어 있음을 본다. 그것은 깨달음의 세계를 향해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구도의 길을 가야겠다는 시인의 다짐을 읽을 수 있다. 시인
2020-05-28
새벽마다 낡은 꿈을 닦아 창문에 걸었다시간을 갉아먹는 벌레가 찌찍 소리를 냈다아침 새와 비 온 뒤의 안개와 작은 연못과몇 가닥 목소리가 처마 끝에서깜부기불 심지처럼 피어났다 스러지곤 했다아카시 꽃잎처럼 흔들리던 일이며들길 끝까지 걸어갔던 돌아오던 일이며열리지 않던 문 앞에서 주저앉던 일이며목련도 흩어지고 철쭉도 시들고시간의 시소는 소멸 쪽으로 자꾸 기우는데잊히지 않으려고 날마나녹슨 추억을 닦아 허공에 내걸었다시인은 왜 하필이면 ‘낡은 꿈’을 창문에 걸고 ‘녹슨 추억’을 닦아 허공에 내 걸었을까. 흔히 낡고 녹슨 것들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생명력이 결여된 채, 더 깊은 결핍으로 내려앉는 것일 텐데 시인은 왜 지난 시간을 호명하고 있는 걸까. 지난 시간 속에는 지금의 시간이 예고된 채로 걸려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시간이 흘러가면 또 다른 미래들이 예고되어 걸려 있을 것이므로 과거 추억의 시간은 낡고 녹슬어서 소멸로 가는 시간이 아니라 미래를 예고하고 준비하고 잉태하는 시간이라는 깊은 시인의 인식이 스려 있음을 본다. 시인
2020-05-27
“아들아 이 나라엔 돌아오지 마라원전 끄고 더운 나라석탄 때고 환경오염 걱정하는 나라이유 없이 쌀값 오르는 나라자꾸 취업 안 되는 나라백골이 나오는 데도 적폐라는 나라핵 때문에 헉헉대는 나라국민연금 고갈돼도대책이 없는 나라골수 민중 불러 모아 촛불이란 나라연방제통일도 모르는 나라전쟁도 평화도 까마득한 나라티비 끄고 유튜브 보는 나라오늘 끼니 보다내일 세금 값이 많은 나라올겨울에 동태되도금수강산 파헤쳐 태양열 나라멀쩡하던 나라 생일 바꾸자는 이 나라이 나라엔 돌아오지 마라, 아들아”왜곡되고 불구화되어가는 현실을 향한, 모순투성이의 세상을 향한 시인의 거침없는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다. 균형을 잃고 편향되고 잘못된 정책으로 계층 간의 격차는 심화하고 사회의 불균형과 불화가 끊이지 않으며, 갈등은 심화되어가는 현실을 야유하며 비판하는 곧은 시인 정신이 깊이 스민 작품이다. 시인
2020-05-26
딱히 말할 곳이 없어서그래도 꼭 한마디 하고 싶어서지나가는 아이 반짝이는 뒤통수에다사랑해… 속으로 말했다 그러자아이가 쓱쓱 자라며 골목 끝으로 사라진다짧은 몇 행의 간결한 시행 속에는 순수하고 간절한 사랑에 대한 시인의 상상력과 함께 사랑에 대한 신념이 숨겨져 있음을 본다. 쉬 발설할 수 없어서 지나가는 아이 뒤통수에다 가슴 속 간직해 온 사랑한다는 말을 소리없이 내뱉는 아이,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그 아이가 쓱쓱 자라서 골목으로 사라진다는 시인의 상상력은 매우 인상적이다.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에 대한 시인의 확신과 신념이 스며 있는 작품이다. 시인
2020-05-25
아무도 오지 않는산골 외딴 동네철수네 살구나무개살구나무봄이 와꽃 피어도꽃그늘엔멍멍이도 없고누렁소도 없는아무도보아줄 사람 없는개살구나무벌떼만왕왕거리네울진 지역 교육현장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동시로 옮겨내고, 향토성 짙은 서정시를 써 온 시인은 깨끗한 산골 외딴 동네의 봄 풍경 한 장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딴 집 마당 가에 볼품없이 서 있는 개살구 나무가 있는 풍경이다. 시끌벅적하고 알록달록한, 바쁜 일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주는 참으로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시인
2020-05-24
참꽃 피었다병풍산 오르다 터진 바위틈 햇살에 몸을 맡긴 채 꽃이 된화사(花蛇)를 본다 꽃다발을 이루는 무리, 손에 든 붉은 꽃잎 삽시간에 척척 널브러지고, 열꽃 앓는 여자는 시퍼렇게 운다봄 언덕 빈집 한 채 아직도 덜컹덜컹 낡은 문짝이 있다 가파른 어지럼증이 있다 뿌리내리지 못하는 황사 바람 너머 어둡고 축축한 방, 한 줌의 고요가 마당을 휘저으며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용을 써 도망쳐도 제자리, 숨이 멎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달뜬 몸 둥글게 말고 누운잠과 잠 사이참꽃 덤불 아스라이 걸려 있다개화의 경이로운 순간을 시인은 어지럼증, 화사(花蛇), 열꽃 앓는 여자로 표현하면서 새로운 세계와 영역의 분출과 확장의 순간을 시인 특유의 필치로 표현하고 있다. 그 반면에 낡은 문짝이 있는 봄 언덕의 빈집에 가득찬 어둠과 적막함을 그려내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상반된 봄 풍경에 대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풍경을 그려내는 시안이 깊고 밝음을 느낄 수 있다. 시인
2020-05-21
햇빛 찰랑거리는 날너와 지붕 빈집이 길을 나선다옥양목 저고리 곱게 차려입고꽃 고무신 챙겨 신고산수유에 눈 맞추며매화꽃술에 입맞추며오래 적막했던 빈집이꽃 나들이 나선다바람에 찰랑거리는 댕기 머리어린 나를 손 잡고젊은 엄마, 봄나들이 간다춘분의 너와집에는 따스하고 고요한, 깨끗한 봄볕이 찰랑거린다. 유년의 곱고 반짝이는, 잊지 못할 시간을 품고 간직해온 너와집은 사랑과 정성으로 시인을 키워 온 어머니일 것이다. 이제는 낡고 헐어서 볼품없는 텅 빈 집 같이 쓸쓸하지만 오래 숙성되고 발효된 그 텅 빈 너와집에 생명의 새봄 산수유꽃도, 매화꽃술도 입맞추고 있다고 표현하는 시인의 가슴 가득 어머니라는 빈집이 꽉 차 있음을 본다. 시인
2020-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