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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상이변

우리나라 역대급 태풍으로는 4개의 태풍을 손꼽는다. 1959년의 사라호 태풍과 셀마(1987년), 루사(2002년), 매미(2003년) 등이다. 태풍은 북태평양 서부에서 발생한 열대 저기압 중에서 중심부근의 최대 풍속이 초속 17m 이상으로 강한 폭풍우를 동반한 현상을 말한다. 발생지역에 따라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윌리윌리 등으로 불린다.역대급 태풍이란 태풍이 지나가면서 남긴 피해 규모 등을 따져보고 그 위력을 평가한 결과다.추석 날 새벽 남해안에 도착한 사라호는 통영, 영천, 대구 등 경상도 지역에 집중적 피해를 낸 태풍이다. 6·25 전쟁 후 열악한 경제상황에 놓였던 우리에겐 태풍 사라호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849명의 인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수해로 인한 이재민만 37만여 명에 이르렀다. 강물이 역류해 남부지방 전역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가옥, 농경지 침수는 물론 교량붕괴, 도로유실, 선박파괴 등 엄청난 피해로 즐거워야 할 추석날이 되레 초상집처럼 됐다.태풍 셀마 때도 사망 실종자가 340명에 달했다. 역대급 태풍은 대개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동반한다.2013년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 하이옌은 미국 태풍관측소 관측 이래 가장 빠른 풍속을 지닌 태풍으로 기록됐다. 이 태풍으로 필리핀은 7천여 명의 사망 및 실종자가 발생하고, 28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해마다 수십 개의 태풍이 발생하지만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태풍 사라호와 같은 슈퍼급 태풍이 최근 10년 사이에는 없었다. 그러나 올 들어서부터 태풍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슈퍼 태풍의 습격도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루 이틀사이 1천㎜의 물 폭탄을 쏟아낼 수 있는 위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이동 속도도 느려진다고 한다. 이동 속도가 두 배 정도 느려지면 그만큼 내륙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피해도 커진다.기상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만들어 낸 기상이변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전례없이 길었던 올 여름 폭염도 지구온난화의 후유증이다. 폭염과 슈퍼급 태풍, 올 겨울 최악의 혹한까지 기다린다. 기후 재앙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27

“네 탓이오”

김수환 추기경이 사회운동으로 시작한 “내 탓이오” 캠페인이 벌써 30년 전쯤 일이 됐다. 물질 만능주의와 이기적 행동으로 우리 사회가 분열과 다툼으로 각박해지는 현실에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취지로 벌인 이 운동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 사회 계몽운동으로 영역을 넓혔다. 각자의 목소리는 커지면서도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는 정작 책임을 질 사람이 없는 안타까운 우리사회의 풍조를 정확히 꼬집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반향도 컸다.사람이란 이기적 사고의 동물이다. 남보다는 자기 생각에 몰입하게 마련이라 책임보다 변명에 급급하는 속성이 있다. 선현들이 겸손을 미덕으로 가르쳐 왔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하심(下心)이라 부른다.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뜻이다. 나 자신을 낮추어야 비로소 수행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다른 철학자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라 했다.“너 자신을 알라”는 그의 명언이 이런 생각에서 나왔다.우리나라 속담에도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 했다. 무언가를 하다가도 잘되면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 실패하면 남한테서 이유를 찾는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적 한계라지만 남 탓하는 모습이 어쩐지 품위는 없는 것같다. 남을 원망하지 않는 마음이나 행동이야말로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품격있는 바른 생활태도다. 옛말에도 군자는 겸손함에서 완성된다고 했다. 제 능력이나 솜씨가 부족함을 모르고 다른 핑계로 변명을 해댈 때 “선무당이 마당 기운다 한다”고 우리는 꼬집는다. 남 탓하는 문화, 이제 고쳐져야 할 우리사회의 고질병이다.정치인이면 남 탓보다는 책임 있는 행동의 결기 정도는 보여줘야 믿음이 갈 것이다. 작금의 ‘고용 쇼크’ 소동을 두고 전 정권의 탓으로 말하는 정치인을 보면서 우리는 통 큰 정치가 기대 난망이란 생각에 잠시 빠지게 된다. 남 탓보다 내 탓으로 돌리는 속 깊은 지도자는 없는지 안타깝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24

공정위 전속고발제

전속고발제는 가격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는 불법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경제 문제에 대해 과도한 형사처벌을 할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우려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동안 공정위가 고발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못해왔다는 지적에 따라 폐지 주장이 제기돼왔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가 최근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폐지 합의안’에 서명했다.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 중 위법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경성담합에 한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는 것이 골자다. 경성 담합은 △판매가격 공동인상 △공급량 제한이나 축소 △시장분할 △입찰담합 등 소비자의 이익을 크게 해치고 재정 낭비를 초래하는 반사회적 행위를 이른다.공정위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고발 권한을 내려놓으면서, 앞으로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더라도 검찰이 자체적으로 수사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중대 담합 행위에 대한 감시망이 더욱 강화되는 셈이다. 앞으로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국민적 관심,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사건에 한해 검찰에서 우선 수사하고, 그 외 사건은 공정위가 우선 조사하게 된다. 하지만 전속고발권 폐지가 곧장 담합 적발 강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대 담합 사건의 대부분은 내부자의 자진신고(리니언시)를 통해 수사가 시작되는데,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서 리니언시 제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는 지적 때문이다.리니언시는 담합 행위를 스스로 신고한 기업에게 처벌을 면제하거나 경감해주는 제도인데, 전속고발권 폐지로 공정위와 검찰이 각자 조사에 나설 경우 공정위에서 자진신고 혜택을 받은 신고자가 검찰에서는 처벌받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문제다.공정위와 법무부가 이같은 세부 사항을 협의할 실무협의체를 운영키로 했다니 운영의 묘를 잘 살려야겠다. 무소불위의 ‘경제검찰’로 불리던 공정위가 전속고발권 폐지로 체질개선에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23

백수(白手) 양산시대

오래 사는 세상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99세를 의미하는 백수(白壽)가 아니고 맨손이란 뜻의 백수(白手)다. 보통 맨손 맨주먹을 이야기할 때 적수공권(赤手空拳)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나 직업이 없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맨손의 백수라 부른다.나이가 차 정년에 도달하면 누구나 백수의 생활로 돌아간다. 과거보다 건강하고 오래 사는 세상이 되면서 요즘은 놀고먹는 사람이 천지다. 노인인구의 증가가 가져온 새로운 사회 변화다.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그들의 생활도 비교적 윤택해졌고, 많은 사람이 개인별 편차는 있지만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금으로 노후생활을 영위한다.“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도 정년으로 인한 은퇴 인구의 급증이 만들어 낸 신조어다. 은퇴자는 퇴직하고 나서도 출근할 때처럼 잘 지내고 있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퇴직 후 허전해진 마음을 달래주려는 배려의 뜻으로도 주고받는 말이다.때가 되면 누구나 백수로 돌아가야 하지만 한참 일해야 할 나이에 백수가 된다면 누가 봐도 딱한 노릇이다. 당사자의 답답한 심정이야 물론이거니와 백수가 된 자식을 바라봐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사람은 나이에 맞게 때가 되면 각자의 위치에서 제 일을 해야 사람의 도리도 하는 법이다.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 백수가 급증하는 모양이다. 구직기간이 6개월 이상인 장기실업자가 지난 상반기 중 월평균 14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취업을 아예 포기한 구직자 수가 50만 명을 넘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 30, 40대 연령층의 일자리가 줄고 있는 현상은 매우 충격적 일이라 할 수 있다.직장이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득원이다. 가정의 행복은 가장(家長)의 안정된 소득에서 시작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직장은 개인의 꿈을 키워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사회 근간이 되는 가정을 지키기는 파수꾼 역할도 한다.옛 말에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라 하여 “사람은 제 먹을 것을 타고 난다”고 하였다. 백수가 양산되고 있다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22

남북 이산가족상봉

한반도의 남북 분단은 1천만 명 이산가족에게 천형에 가까운 고통을 안겨줬다. 남북 적십자사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왔으나 실행되지 못하다가 19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졌다. 당시 남측 35명과 북측 30명이 가족을 만났다. 이후 2차 방문단에 대한 협의가 진행됐으나 상봉 성사로 이어지지 못했다.그러다 10여년이 흐른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합의하고,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돼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생사·주소 확인, 서신 교환 등 시범적 사업이 논의됐다. 그리고 2000년 8월 드디어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성사됐다. 이후 2005년 8월 15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 그리고 평양과 인천, 수원, 대전, 대구, 광주, 부산 등 남쪽 주요 도시를 서로 연결한 화상상봉이 이뤄졌다. 당시 남과 북쪽 가족 226명의 상봉이 성사됐다. 이후 2010년 제18차 방문상봉 1차 행사 때는 북측의 상봉 신청자 97명과 남측 가족 436명 등 총 533명의 이산가족이 재회했고, 제18차 방문상봉 2차 행사 때는 남측의 상봉 신청자 96명이 북측 가족 207명을 만났다. 2007년 11월 제7차 화상상봉 행사에는 남과 북에서 500여 명이 참가해 광전용망으로 연결한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만났다.그러나 2010년 말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한 두 차례 대면상봉이 이어졌지만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기는 역부족이었다.이같이 애타는 이산가족들의 염원에 부응해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4·27 판문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으며, 이 합의에 따라 2018년 20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아무런 죄없이 가족과 헤어진 남북 이산가족들의 한과 설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요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21

미 언론의 사설(社說) 연대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이 언론의 기능은 때로는 칼보다 무섭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이며 미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없는 정부와 정부없는 신문을 선택할 상황이라면 주저없이 정부없는 신문을 선택할 것”이라 했다. 우리 사회의 언론 기능을 강조한 말로 유명하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국제 언론인 인권 보호단체이자 언론 감시단체다. 1985년 프랑스의 한 라디오 기자에 의해 조직된 국제적인 비정부기구(NGO)다. 세계에서 발생하는 언론인 구금과 살해된 저널리스트 지원을 위한 단체다. 2002년부터는 특파원, 저널리스트, 인권운동가 등이 참여해 국가별 언론자유 정도를 평가한 세계 언론자유지수도 발표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언론자유지수 평가에서 올해 43위에 랭크됐다. 지난해 63위에서 20단계 올랐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자유 수준이 아직은 만족할 만한 정도가 아니라는 데서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조사대상국 180개국 가운데 180위를 유지, 최악의 언론자유국으로 평가됐다.언론의 자유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가치인 동시에 자유 민주주의 통치 질서를 유지하는 전제조건이다. 그렇지만 언론의 자유만큼 언론의 윤리와 책임도 우리 사회가 감시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우리 헌법에도 국민의 행복 추구권과 국민 사생활과 자유가 침해받지 않아야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언론은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이 충돌할 때 가장 힘들다. 서로 존중돼야 할 가치의 충돌이기 때문이다.미국의 300여 언론사가 같은 날 동시에 트럼프 미 대통령의 언론관을 비판하는 사설을 써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언론사의 사설연대는 세계 언론사를 통 털어서도 드문 일이다. 취임 후 대놓고 언론을 공격해왔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언론사의 연대 경고다.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평가한 것에 대해 “민주주의가 치명적 위험에 빠진 것”이라 평가했다. 언론은 사회 공기(公器)다. 언론의 정당한 비판에는 대통령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20

‘귀신 잡는 해병대’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진해에서 창설됐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해군이 정식 발족한 이후 상륙작전을 수행할 부대가 필요해지자 창설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당시 초대 사령관은 신현준 장군으로, 해군에서 편입한 장교 26명과 부사관 54명, 병사 300명 등 380명의 대원으로 출발한 부대다.해병대에는 특별하게 붙여진 이름이 많다. ‘귀신 잡는 해병대’는 6·25 전쟁에서 얻어진 애칭이다. 미국의 한 여성 종군기자가 한국군 최초의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해병대의 놀라운 전투력을 칭송하며 붙인 이름이다. 당시 통영상륙작전은 해병대 1개 대대 병력이 북한군 사단 군사에 맞서 기지를 탈환한 전투다. 낙동강 남동쪽 방어선을 지킨 혁혁한 공로를 세운 전투였다.군 창설 불과 1년여만에 6.25 전쟁을 맞이한 해병대는 ‘귀신 잡는 해병대’란 별칭을 필두로 수도탈환 작전에서는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고 ‘상승불패’‘무적해병’의 호칭도 얻는다.이후에도 해병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구호들은 꾸준하게 등장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구호다. 해병대 하면 누구나 이 구호를 먼저 떠 올릴만큼 잘 알려진 구호다. 이 구호의 유래는 미국 해병대 슬로건에서 나왔다. ‘Once marine, Always marine’으로 그 뜻은 해병대의 모든 구성원은 언제 어디서든 해병대의 명예를 견지하자는 것이다. 해병대 대원이면 누구나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구호이자 누가 봐도 해병대의 기상을 느끼게 할 참신한 슬로건이다.그 밖에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구호 등 해병대는 많은 구호를 생산하며 전국 최고의 결집력을 자랑하는 조직이 됐다.지난달 17일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장병들의 유족이 시민 조의금 5천만 원을 해병대 장병들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해 또한번 세상의 이목을 모았다. 하루아침에 자식과 남편을 잃은 슬픔에도 의연함을 지킨 그들의 마음에서 다시한번 해병대 정신을 떠올린다. 내 이익에만 집착하는 각박한 요즘 세태에 큰 울림을 남겼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17

‘맘마미아’가 선물하는 작은 위로

지난주 개봉한 영화 ‘맘마미아 2’는 “고뇌하는 햄릿에서 멈추지 말고 좌충우돌하는 돈키호테의 삶을 살아보라”고 관객들을 추동한다. 그 메시지의 일관성은 10년 전 상영된 1편과 동일하다.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에 1970년대 세계적 인기를 누린 스웨덴 밴드 ‘아바(ABBA)’의 노래까지 얹은 흥미로운 영화. 1999년 4월 초연된 캐서린 존슨의 동명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맘마미아’ 시리즈 2편의 각본과 감독은 올 파커가 맡았다.한국 영화팬들에게도 익숙한 셰어, 메릴 스트립, 앤디 가르시아, 콜린 퍼스의 중후한 연기에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릴리 제임스의 깜찍함까지 만날 수 있는 ‘맘마미아 2’의 스토리는 간명하다.1979년 한 영국 여성이 프랑스 파리와 그리스 칼로카이리 섬을 여행하며 몇 주 사이에 세 명의 남성과 정열적인 밤을 보낸다. 그 결과 아버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아기가 생긴다. 여성은 그 아이를 버리지 않고, 조그만 호텔을 운영하며 20년 넘게 그 섬에 머물다 죽는다.성인이 된 딸은 엄마의 1주기를 맞아 자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세 명의 남성에게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파티를 열 것”이라는 소식을 알린다. 성공한 중년이 된 셋은 만사 젖혀두고 자신들 청춘의 추억이 묻어있는 칼로카이리 섬을 찾는데….‘맘마미아’ 시리즈에선 생의 고뇌나 고통을 찾아보기 힘들다. 20년 넘게 혼자 아이를 키우며 낯선 곳에서 살았을 여성의 삶이 마냥 행복했을 수는 없었을 것임에도. 하지만, 2시간 남짓의 영화에서 한 인간의 인생 전체를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 영화는 삶이 주는 아픔이 아닌 ‘아름답게 누려야할 생’에 포커스를 맞췄다.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 상황, 청년들의 취업난과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까지. 최근 한국 상황은 아름답다기보단 고통스럽다. ‘맘마미아 2’는 그런 녹록지 않은 일상을 사는 우리를 잠시나마 ‘위로’한다. “왜 고민만 하며 살 것인가? 비관하건 낙관하건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나고,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게 된다”며./홍성식(특집기획부장)

2018-08-16

1971년 돼지띠의 빛과 그림자

주민등록인구와 행정구역, 지자체 예산 규모 등을 정리한 ‘2018 행정안전통계연보’가 최근 발간됐다. 이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한국의 인구는 5천177만8천544명. 이 가운데 1971년 태어난 돼지띠 남녀가 가장 많다고 한다. 1971년 태어난 한국인은 102만4천773명. 이중 사망 또는 실종된 7.9%를 제외한 94만4천179명이 올해 만 47세를 맞았다. 이른바 ‘58 개띠’로 불리는 1958년생 ‘제1차 베이비붐 세대’ 이후 ‘제2차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71 돼지’들이 숫자 면에서 한국 사회의 중추가 된 것이다.통계가 발표된 후 신문과 SNS 등엔 그 시대를 기억하거나 살아온 언론인과 예술가, 회사원과 공무원 등의 추억담이 넘쳐난다.“국민학교로 불리던 초등학교 교실은 항상 60~70명의 학생들로 북적였고, 이를 다 수용하지 못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했다.”“한 학년이 15개 반쯤 됐기에 수학여행이라도 갈라치면 10량이 넘는 기차를 통째 대절하는 장관이 펼쳐졌다.”“대학은 물론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도 밤 10시까지 교실에 남아 졸린 눈을 부비며 수학 공식과 영어 단어를 외워야 했다.”과장이 아니다. 사실이 그랬다. 1971년생 돼지띠가 대학 입시를 본 1990년도 학력고사 경쟁률은 4.57대1. 역사상 가장 높았다. 많은 또래들 속에서 눈물겨운 노력을 했지만 ‘취업 운’ 또한 좋지 못했다. ‘71 돼지’ 남성들이 군대를 다녀와 직장을 구할 시기인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친 것.여러 고통과 수난 속을 살았지만 1971년생 돼지띠들의 삶 전체가 마냥 어두웠던 것만은 아니다.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면서도 자신의 것을 친구에게 선뜻 내어주는 양보의 미덕을 익혔고, 아웅다웅하는 가운데서 어떤 경쟁도 우정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달아갔다. 형제 많은 집 아이들이 일찍 철들 듯.세상 모든 물건에는 저마다의 쓰임새가 있다. ‘71 돼지’들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무한경쟁의 그림자 속에서도 그들의 우정은 보석처럼 빛났을 터. /홍성식(특집기획부장)

2018-08-14

뚱뚱해지는 나라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비만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등극한 것은 2014년도다. 인구 기준으로 중국은 8천960만 명이 비만으로 조사돼 그동안 8천780만 명으로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던 미국을 앞섰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중국인 식생활의 서구화가 불과 40여 년만에 중국을 세계 최고 비만국가로 탈바꿈하게 했다.우리나라도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외국에서 식량을 지원받아야 할 만큼 식량난에 쪼들린 국가였다. 비만은 부자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배 나온 사장님이 부러웠던 때였다. 그러던 것이 어느 듯 국민의 비만을 걱정해야 할 나라로 바뀌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우리나라 고도비만 인구가 2030년에 가서는 현재의 2배 수준에 이를 것이라 경고했다. 2015년 기준 5.3%의 고도 비만율이 2030년에는 9.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만은 이젠 질병으로 분류돼야 할 정도로 사회경제적 손실도 작지 않은 사회문제다.정부가 지난달 24일 국민비만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2016년 현재 34.8%인 국민 비만율을 2022년까지 현행대로 유지시키며, 이를 위해 영양, 운동, 비만치료, 인식개선 등의 다각적 사회적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그 방법의 일환으로 정부가 밝힌 먹방 규제는 곧바로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는 “먹방과 같은 폭식을 조장하는 미디어(TV, 인터넷 방송)에 대해서는 2019년까지 가이드 라인을 개발하겠다”고 했던 것이 불씨가 된 것.야당에서는 먹방 규제는 “국민을 어리석은 백성 취급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며 ‘국가주의 문화’라며 맹렬히 비판했다. 사회 일각에서도 정부의 먹방 규제 발상에 반발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어쨌거나 자꾸 뚱뚱해지는 국민을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가 관리하든 개인이 관리하든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비만에 대한 대책은 있어야 하는 것이 옳다. 먹방 문화를 바라보는 정부의 성찰이 먼저 있고 비만 대책에 나서는 것이 순서일 것같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13

“이 또한 지나감”

올 여름만큼 여름날이 지루한 적도 드물었다. 전국이 가마솥처럼 달아올라 아우성이다. 올해 최고 기온이 111년 만에 신기록을 수립했다. 대구 등 전국 일부 도시에서 낮 기온이 최고 40℃를 넘겼다. 상상만 하던 기온이 현실이 된 꼴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우리나라에서 3천500명이 넘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43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시절 우리는 이런 온열질환자를 두고 ‘더위 먹었다’고 불렀다. 더위 먹은 환자가 보건당국 집계 이래 최고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오죽하면 일본 근해를 지나가는 태풍이 한반도를 덮쳤으면 하는 염원까지 했을까. 한반도를 비켜가는 태풍에 대한 아쉬움이 깊숙이 남았던 여름날이다. 더위를 식히는 데는 에어컨만 한 것도 없다. 그런데도 에어컨 틀기가 겁났던 여름이다. 비싼 전기료 때문이다. 몇해전 맞았던 전기료 폭탄이 생각나 에어컨을 틀면서도 가슴은 내내 조마조마했다.정부가 한여름이 지나 한시적으로나마 가정용 전기료를 완화해 주겠다고 밝혔으나 속이 시원할 만큼은 아닌지 국민 반응도 대체로 시무룩하다. 정부 정책이 뒷북을 쳐 ‘빛 좋은 개살구’가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지난 7일은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다. 우리 조상은 이날부터 입동(立冬)까지를 가을이라고 불렀다. 더위가 한풀 꺾일듯한데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다음 절기인 처서(處暑)까지도 이 더위가 심술을 부릴지 알 수 없으나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도 비뚤어 진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극성을 부리던 파리, 모기도 어느 듯 사라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거자일소(去者日疎)라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지고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고진감래(苦盡甘來)일까. 수확의 계절 가을이 코앞에 와 있다. 짜증나고 힘들게 했던 올여름 폭염도 이젠 떠날 시간이 됐다. 기쁠 때도 교만하지 않고, 절망에 빠졌을 때도 좌절하지 않으라는 솔로몬 왕의 명언이 생각이 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10

마블링

소고기는 마블링이 많을수록 촉촉하고 사르르 녹는 맛을 자랑한다. 그래서 마블링 많은 소고기가 높은 등급을 받았고, 가격도 비싸게 책정돼왔다. 이처럼 근육 내 지방 비율을 중심으로 등급을 매기는 소고기 등급제는 국민에게 ‘마블링이 많은 소고기가 좋은 고기’라는 통념을 심어왔다. 하지만 소고기의 지방은 포화지방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국내 소고기 등급제는 건강에 해로운 저품질 고기를 가장 비싼 가격에 유통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마블링 많은 소고기가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지방은 결합조직 막과 근섬유 덩어리를 해체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열을 가하면 결합조직이 쉽게 끊어져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또 지방은 열전도율이 낮아 가열했을 때 고기 내부의 수분 증발을 억제한다. 상대적으로 마블링이 많은 고기가 육즙이 풍부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마블링이 많을수록 기름진 맛이 강하지만 그만큼 입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갖게 된다. 마블링 많은 고기가 맛은 있지만 포화지방산이 혈관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있는 만큼 소고기등급제의 개선은 필연적이다.이에 따라 농림식품부는 소고기 등급 판정 방식을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흔히 ‘마블링’이라 불리는 소고기의 근내지방도를 우선적으로 평가해 등급을 부여하던 판정 방식을 버리고, 앞으로는 근내지방도, 육색, 지방색, 조직감 등 다양한 항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중 가장 낮은 등급을 최종 등급으로 결정하는 최저등급제가 적용된다. 새로 마련된 방안의 핵심은 육질등급 보완으로, 앞으로는 마블링 7+등급부터 1++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1+등급도 기존에는 마블링 6등급 이상만 해당됐지만 바뀐 기준에 따르면 마블링 5++등급부터 포함되게 됐다. 소고기 등급은 구이용 부위에 한정해 의무 표시하고 찜, 탕, 스테이크용 부위는 표시를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안으로 축산법 시행규칙을 개정할 계획이지만 실제 시행은 내년 하반기 예정이다.소고기 등급제의 개선은 소비자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축산농가에도 반가운 소식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09

투잡시대

직업 하나만 갖고 먹고 살기 어려워서일까, 투잡 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 취업관련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5명 중 1명이 현재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직장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의 20%정도가 틈틈이 수입을 위해 부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이 다양화되면서 직업에 대한 관념도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이라 볼 수 있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갈래일 수 있으나 그들의 아르바이트 동기에서 찾아보면 경제적 이익 추구가 주된 이유다. 질문에 응답한 사람의 85%가 수입을 더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설문조사에서는 직장인이기 때문에 주말이나 공휴일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혼보다는 기혼 남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도 따지고 보면 경제적 수입이 이유일 것으로 유추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우리 사회에 투잡(Two Jobs)이란 신조어가 생겨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전통사회에서 직업은 평생직장의 개념이다. 한 곳에서만 오랫동안 근무하는 것이야 말로 모범적 직장인의 태도로 받아들여졌다. 직장도 역시 직원이 투잡을 가진다는 것은 애초부터 용납되지 않는 불문율이다. 국가 공무원이 퇴근 후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교사가 퇴근 후 학원에 강의를 할 수 없는 것도 직업의 윤리측면에서 당연한 일이다.직장은 속성상 직원이 한 직장에서 충실히 일해 줄 것으로 믿고 그 댓가로 승진과 보수를 부여하고 있다.아직도 이 같은 직장에 대한 고정 관념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투잡시대가 젊은이들 중심으로 열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연예인이나 자영업자, 혹은 인터넷 매체를 매개로 한 직장인의 투잡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여기에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시간외 수당이 떨어져 나간 일부 직장인들이 서비스 판매업이나 대리운전 시장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 투잡시장은 더 확산될 분위기다.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섣부른 판단은 못한다. 그러나 일과 삶의 균형을 찾겠다는 이상적 가치와는 맞지 않는 변화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08

머나먼 종전선언

종전선언은 전쟁 당사국 간에 전쟁상태가 완전히 종료됐음을 확인하는 공동의 의사 표명이다. 즉, 종전을 선언한다는 것은 기존의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으로 넘어간다는 의미다. 종전협정을 체결하기 전까지는 전쟁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전쟁 당사국들 간의 공식적인 외교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남한과 북한의 경우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 발발 이후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으면서 사실상 휴전 상태다. 이 정전협정은 교전을 잠정 중지한 것에 불과하므로, 전쟁 상태의 실질적인 종결과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종전선언 뒤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연내 종전선언이 이뤄질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북한은 노동신문·조선중앙TV 등 관영매체를 총동원해 미국을 상대로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월31일 판문점에서 열렸던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도 북한은 종전선언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북핵 관련 6자 외교장관이 모인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한은 조기 종전선언 채택을, 미국은 선 비핵화 조치를 주장했다. 일단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해 관망세다. 7월17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핵화 과정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종전선언 등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이로 인해 비핵화 속도가 느려지는 것도 감내할 뜻을 내비쳤다. 북한은 미국의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리용호 외무상은 지난 4일 ARF 회의 연설에서 “우리가 주동적으로 먼저 취한 선의의 (비핵화) 조치에 화답은 커녕 미국은 오히려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며 “조선반도 평화 보장의 초보적 조치인 종전선언 문제까지 후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종전선언이 되고나면 북한으로선 곧장 유엔사 해체 등을 요구할 것이며, 이럴 경우 북한의 비핵화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우리 국방력만 약화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종전선언 실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종전선언, 그리고 평화의 길은 멀고도 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07

적당한 음주

인류의 삶 속에서 술은 반드시 존재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람 곁에는 술이 있는 법이다. 동서고금이나 문명의 발달과는 무관하게 술은 인간 삶의 일부로서 자리를 일찍 잡아 왔다. 술의 역사도 인류 역사만큼이나 길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기원전 3천~4천년부터 포도주가 주요 교역상품으로 등장했다. 중국 은나라 때 유적에서도 술 빚는 토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동서양을 막론하고 술은 사람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형태라 할 수 있다.음식의 동반자, 신성한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주, 우정과 화합을 위한 축배의 상징으로 술은 빼놓을 수 없는 인류의 동반자였다. 사람과는 땔 수 없는 관계의 술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다. 술을 ‘악마가 준 선물’이라고도 한 것도 “경계해서 마셔라”는 뜻이다. 적당히 마시지 않으면 술로 인해 패가망신(敗家亡身)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수행을 하는 스님들은 술을 곡식으로 빚었다 하여 곡주(穀酒)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람의 혼을 미혹한다고 하여 미혼탕(迷魂湯) 또는 모든 화의 원천이라고 하여 화천(禍泉)이라고도 부른다.프랑스에서는 식사 때 반드시 포도주가 나오지만 예의범절을 지키는 강력한 음주문화가 있다. 서양인의 술 습관은 마시는 것보다 즐기는데 있다. 조선시대 우리의 선비도 향음주례(鄕飮酒禮)라 하여 올바른 주연(酒宴)의 예법을 가르쳤다.현대인이 술로 인해 가장 걱정해야 할 부분은 건강이다. 음주가 유발하는 질병은 매우 다양하다. 간질환뿐 아니라 암과 치매 등 과도한 음주는 건강에 치명적이다. 한의학에서는 술의 기본적 성질을 대열대독(大熱大毒)이라 한다. 적당히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지지만 도를 넘으면 독성물질로 건강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막걸리가 항암효과에 좋다는 것도 적당한 음주 습관을 보일 때 일이다. 영국 한 연구진은 적당한 음주가 치매 위험을 낮춘다는 이색 보고서를 냈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적당량의 술을 마시는 사람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47%나 낮다는 것이다. 술의 양면성이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새삼스럽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06

낮잠

낮잠은 대부분의 나라가 인정하는 생리현상이다. 낮잠을 일상생활과 연결지어 관습화 혹은 문화로 형성한 나라도 있지만 대체로 낮잠은 일시적 수면 현상으로 치부하는 쪽이 많다. 업무시간 혹은 수업시간에 잠시 꼬박 졸아도 식곤증과 같은 생리현상으로 알고 가볍게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그러나 지중해 연안국가나 라틴아메리카 등과 같이 아주 더운 지방에서는 시에스타(Siesta)라고 하는 낮잠 풍습이 있다. 한낮에는 무더위 때문에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으므로 낮잠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자는 취지다.특히 스페인의 낮잠 문화는 유별나다. 보통 낮 12시부터 오후 3시 사이에는 거의 모든 상점과 식당 등이 문을 닫는다. 한때는 관공서까지 문을 닫을 만큼 생활 속에서 낮잠문화의 비중이 컸다. 이를 모르고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이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낮잠은 일단 건강에 좋다는 의견이 많다. 하버드대의 한 의학자가 20세와 80세 사이 성인 약 2만 명의 생활습관, 식습관, 낮잠 자는 습관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의 낮잠을 잔 사람은 심장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37%나 낮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다른 연구결과에서 낮잠을 한 시간 정도 잔 사람은 같은 시간동안 깬 상태로 서 있었던 사람보다 혈압이 큰 폭으로 내려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낮잠이 대체적으로 건강에 이로울 것으로 보면서도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부분은 너무 길게 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밤에 자는 정상수면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낮잠은 잠시 즐겨 생활의 활력소로 삼는 것이 옳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서도 과거에는 대청마루나 그늘진 살평상에 누워 오수(午睡)로 더위를 식히는 문화가 있었다.대형사건 때가 되면 국회의원들이 관련법안 발의를 많이 해 놓고는 본회의 처리는 나 몰라라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않고 낮잠을 자고 있는 계류 법안이 1만 건을 넘는다고 한다. 폭염관련 법안도 18대 국회 때부터 발의됐으나 아직 국회서 낮잠을 잔다고 한다. 폭염에 사람도 법안도 지친 요즘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03

대프리카 & 서프리카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친 신조어인 ‘대프리카’가 유행이다. 몇 해 전 여름 신문에는 대구 시내 아스팔트 도로에 그어진 차선이 녹아내려 꼬불꼬불해진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열섬 효과’ 등으로 다른 도시보다 기온이 높은 서울과 아프리카를 합성한 ‘서프리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여기서 대구와 서울의 무더위를 ‘더운 나라’로 꼽히는 아프리카에 비견하고 있지만 정작 대구와 서울이 아프리카 보다 더 덥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프리카는 면적이 전 세계 육지의 약 20%에 해당하는 큰 대륙으로, 위도와 경도, 해발고도에 따라 기후가 다양하다. 사하라사막이나 보츠와나와 나미비아 일대에 걸쳐 있는 칼라하리사막 등은 낮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어서지만 적도 인근의 도시조차 서울이나 대구보다 기온이 낮은 경우가 흔하다.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적도 인근에 자리한 르완다 수도 키갈리의 31일 최고기온은 26도, 최저기온은 17도로 나타났고, 1일은 각각 26도, 16도였다. 역시 적도 인근인 우간다 수도 캄팔라는 1일 최고기온과 최저기온이 각각 27도, 18도를 기록했으며, 31일은 각각 28도, 17도였다.WMO가 집계한 30년 월평균 기온을 보면 키갈리는 최고기온이 26∼28도, 최저기온이 15∼16도로 1년 내내 큰 차이가 없으며, 캄팔라의 월평균 최고기온과 최저기온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키갈리와 캄팔라는 해발고도가 각각 1천450m, 1천190m 정도로 높아 선선한 편이다. 적도 인근이면서 저지대인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경우 이들 지역보다 기온이 높은 편인데, 31일 최고기온이 31도, 최저기온이 21도를 나타냈다.사하라사막보다 위도가 높은 북부 아프리카로 가면 기온이 더 높아진다. 알제리에서도 북단에 자리한 도시 비스크와 이집트 카이로는 1일 최고기온이 각각 40도, 37도로 예보됐다. 이날 낮 최고기온이 39도로 예상되는 서울과 수원, 38도로 예보된 춘천·청주·대전·세종·전주·대구와 비슷한 수준이다.‘아프리카는 덥다’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에 불과한 셈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8-02

에어컨 가슴앓이

문명의 이기(利器)도 잘 써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제아무리 성능 좋은 스마트폰이라도 사용자가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단순한 전화기일 뿐이다. 인류는 문명 이기의 발명을 통해 상상 이상의 세상에서 즐겁고 안락한 생활을 즐긴다.요즘 같은 폭염에 에어컨이 없다고 가정 한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생활의 불편을 떠나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했을 거란 추측도 가능하다. 에어컨도 미국의 한 젊은이에 의해 우연한 기회에 발명된다. 1902년 기계설비 회사에서 일하던 신입직원 윌리스 캐리어는 한 출판회사의 애로점을 듣게 된다. 한여름의 무더위와 습기 때문에 종이가 멋대로 수축되어 도무지 깨끗한 인쇄를 할 수 없다는 사정이다. 그는 연구 끝에 습기를 잡는 장치를 먼저 발명한다. 이어서 열을 잡는 냉각시스템을 개발 한 것이 에어컨 발명의 시작이다.이후 에어컨은 공장과 비행기 등에 장착이 되고 미국 내 가정에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미국 가정집에 에어컨이 본격 설치되면서 미국 내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80%나 감소했다고 한다.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는 19세기 발명 이후 인류의 생활을 확 바꾸어 놓았다. 낮과 밤의 구분을 철폐했다. 실내와 실외, 지상과 지하의 구분도 무너뜨렸다. 시간과 공간의 활용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인류는 각종 자원을 24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 발명으로 또한번 세상을 진화해 나갔다.올여름 최악의 폭염으로 에어컨을 찾는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에어컨 없이 하루도 보내기 힘든 날이 많아진 탓이다. 그러나 지금 구입하면 최대 4주 후 설치가 가능하다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살지 말지 진퇴양난의 모양새다. 에어컨 설치 가정은 가정대로 전기료 폭탄을 우려해 마음이 편치가 않다고 한다.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전기료 누진제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정부가 폭염을 재난수준으로 인식해 대응하겠다는 말이 나오면서 여름철 전기료의 한시적 인하 요구도 등장하고 있다.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에어컨이 비싼 전기료 때문에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다. 뾰쪽한 대책은 없을까./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8-01

폭염과 선팅

37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에 많은 자동차 운전자들이 눈부심과 열기를 막기 위해 자동차 유리에 선팅 필름을 부착한다. 자동차 선팅은 자동차 유리에 햇빛의 투과율을 낮추는 필름을 부착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 ‘윈도우 틴팅(Window tinting)’이다. 흔히 말하는 ‘선팅(Sunting)’은 콩글리시다. 다만 국어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는 ‘선팅’이 올바르다.도로교통법 제49조를 보면 “자동차는 앞면 창유리와 운전석 좌우 창유리의 가시광선 투과율이 대통령령이 정한 기준보다 낮은 필름을 부착하여야 한다”고 나와있다. 요인 경호용, 구급용 및 장의용 차량은 이 기준에서 제외된다. 대통령령이 정한 기준은 앞면 창유리는 70% 미만, 운전석 좌우 창유리는 40% 미만이다. 이 기준을 어겼을 경우 2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실제 법규 적용은 다르다. 가시광선 투과율 기준을 위반한 차의 운전자에게 부과되는 과태료 부과기준(도로교통법시행령 제88조 제4항)은 2만원이다. 하지만 도로에 짙은 선팅을 한 차가 대다수인 이유로 실제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통상 차의 선팅 농도는 상당수가 전면 35%, 측후면 15%가 대다수다. 선팅필름의 종류는 흡수형 필름, 반사형 필름, 염색 필름으로 나뉜다. 염색 필름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기능만 있을 뿐 열차단 기능은 사실상 없다. 선팅 필름을 선택 할 때 중요한 것은 자외선 차단보다 IR(적외선)차단율이다.TSER(Total Solar Energy Rejected, 태양열 차단율)도 확인해야 한다. TSER이란 유리를 통과한 열이 필름에 의해 반사되는 것과 흡수되는 열을 구분한 수치다. TSER이 50% 이상이면 열차단 성능이 좋은 편이다. 흡수형 필름보다 반사형 필름이 더 비싸고 열차단율도 뛰어나다. 하지만 흡수형 필름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인기다. 반사형 필름은 기능적으로 제일 뛰어난 반면 가격이 비싸다. 싸게는 50만원부터 200만원도 넘는다. 주의할 것은 적외선 차단율이 90퍼센트가 넘는 필름들은 IR통신 방식의 하이패스의 오류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07-31

천마총

경주 천마총은 신라시대 만들어진 적석목곽분으로 왕릉급 무덤이다.누구의 무덤인지는 아직 정확히 모른다. 1973년 발굴 당시만 해도 국보급 유물인 금관을 포함 1만점이 넘는 부장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역대급 발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천마총은 이후 두 번의 뜨거운 논쟁거리를 던지며 또한번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첫 번째는 천마총이라는 호칭의 논란이었다. “신라왕의 무덤이 분명한데 말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라며 경주 김씨 문중이 국회에 이름 변경 청원을 낸 사건이다. 문화재위에서 재심의까지 벌였지만 고분의 주인이 왕이라고 확신할 발굴조사 결과가 없단 이유로 천마총이란 이름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또 하나는 2009년도 있은 천마도의 적외선 촬영 결과다. 그동안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던 천마의 머리에 뿔이 등장한 것이다. 뿔이 달린 것으로 보아 그림에 등장한 것은 말이 아니고 전설의 동물인 기린이란 주장이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명칭도 천마총이 아닌 기린총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논란은 이어져 갔다.천마총은 본래 경주 155호 고분이다. 신라시대 고분의 일련번호는 고분의 명칭이었다. 그러나 발굴이후 드러난 무덤 내 부장품의 중요성이 높게 평가되면서 천마총으로 이름이 바뀐다. 1만여 점의 유물 가운데 국보급으로 평가된 것도 많았지만 유독 말다래(말을 탄 사람의 발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안장 양 옆에 늘어 뜨려 놓은 장식)에 그려진 천마도가 천하일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천마도는 신라시대 회화 수준을 가늠할 유일한 그림인데다 회화 수준 또한 출중했다. 이 무덤은 당연히 천마총으로 명명되었던 것이다.천마총이 1년여의 보수공사 끝에 새로이 일반에 공개됐다. 경주는 천년 전에 살았던 신라인의 숨결이 바로 느껴지는 역사의 고장이다. 경주만큼 역사적 채취가 물씬 풍기는 곳도 별로 없다. 도시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 할 만큼 문화와 유적이 넘쳐나는 도시다. 역사는 나라의 정신이요 민족의 자긍심이다. 40여년 만에 선보이는 천마총의 새 단장을 계기로 역사도시 경주의 명성도 되찾았으면 한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