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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주 마애불(磨崖佛) 복원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의 비밀은 과연 밝혀질까. 최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이 1430년 발생한 규모 6.4 지진으로 쓰러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 불상의 원래 위치는 정확치는 않지만 지금 위치보다 5m 산 위쪽일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불상이 바라본 방향은 서북서쪽으로 유추했다. 남산 마애불은 2007년 5월 경주문화재연구소가 열암곡 석불좌상 일대를 조사하던 중 발견한 유물이다. 10년 넘게 엎어진 채 땅만 바라보고 있는 마애불은 21세기 발견된 유물 중 가장 흥미로운 것으로 평가되는 우리의 유산이다.8세기 후반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은 물론이다. 현재 문화재청에 보물 신청을 해놓고 있다. 문화계에서는 당장 국보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자태가 아름답고 보존상태도 완벽하다고도 한다. 마애불은 지진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부처님의 얼굴(相好)이 잘 보존돼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마애불이 새겨진 화강암의 무게는 70∼80t 정도로 추정된다. 불상이 쓰러지면서 불과 5cm를 사이에 두고 암반과 부딪히지 않았다. 기적이라 한다. 오뚝한 콧날과 원만하고 이지적인 부처님의 모습이 완벽하게 살아 있다고 한다. 아마 당시 신라인의 대표적 모습이 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마애불의 복원이 검토되는 모양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지난 18일 남산 마애불의 현지를 탐방했고 불상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논의를 벌였다고 한다. 어떻게 진척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일이 진행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600년 전 신라인의 또다른 비밀이 벗겨질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때마침 기울어져 세계적 명성을 알리고 있는 이탈리아 ‘피사의 탑’이 당국의 끈질긴 노력으로 조금씩 바로 서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1173년 건축을 시작할 때 기울어져 왔던 이 탑은 결함으로 유명해진 탑이다. 당국은 매년 1cm씩 기울어가던 이 탑의 안전성 보강을 위해 섬세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기울기가 멈췄다고 발표했다. 문화재는 후손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소식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26

반도체 신화 강기동 박사

문익점이 중국으로부터 목화씨를 몰래 들여왔다면 반도체를 한국에 들여와 전파한 사람은 강기동 박사(84)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 강 박사의 근황이 소개됐다. 강 박사는 현재 미국 네바다주 리노라는 외곽 주택가에 살고 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토로라에서 반도체를 만들며 일하던 그는 1974년 모국인 한국 땅에 반도체 회사를 설립했다. 문익점이 추위에 떠는 백성이 입어야 할 옷을 걱정했던 것처럼 그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반도체라는 황금 거위를 한국에 가져 온 것이다.그가 세운 한국반도체(주)는 국내 최초로 반도체(손목시계용 칩)를 만들었다. 중동 전쟁으로 유류 파동이 나면서 이 회사는 1년만에 파산한다. 삼성이 인수했다. 이것이 오늘날 삼성반도체의 시작이다. 일간지는 그가 갖고 왔던 원천기술이 한국반도체의 모태가 됐다고 소개했고, 그를 한국 반도체의 신화라 했다. 그는 최근 ‘강기동과 한국 반도체’라는 자서전을 냈다. 출판기념회 참석차 지난 11월 한국을 방문한 그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크게 일군 삼성의 공로를 고마워했다. 이 책에서는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한국으로 가져오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반도체는 우리나라 경제를 버티는 튼튼한 버팀목이다. 나라 전체 수출 품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2%나 된다. 올 들어 10월 현재 국내 반도체 수출 누적액은 전년보다 10% 정도 늘었다. 단일품목으로 최초로 1천억 달러를 돌파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20%를 우리가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반도체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최근 한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소식이 잦다. 세계 최대 반도체 수요국인 중국이 한국을 견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그동안 반도체 착시라 할만큼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반도체 산업에 불황이 닥치면 우리경제는 예측불허의 상황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강 박사처럼 한국의 반도체를 지키려는 누군가의 의지가 필요하다. 신화는 원래 숨어서 만들어지는 법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23

부동산 빅데이터 시대

빅데이터는 디지털 혁명과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급증한 대량 데이터에서 가치를 뽑아내고 결과를 분석하는 기술을 말한다. 2012년 전 세계에서 생성된 데이터 규모는 1.8조 기가바이트로, DVD에 저장하면 지구에서 달까지 두 번 쌓을 수 있을 양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시대가 열리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들이 주택 관련 단순 정보 제공을 넘어 아파트 가격 예측, 등기 비용 계산 등 서비스 영역을 다양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부동산 빅데이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서비스는 지난달부터 지인플러스가 전국 아파트 가격 변화 예측 서비스를 무료 제공하는 빅데이터 기반 웹사이트 ‘부동산지인’이다. 전국 4만3천여 단지를 대상으로, 고객이 선택한 아파트 가격 등락과 수요 증감, 가격 변동상 특징 및 주기 등을 반영한 ‘지인 지수’를 산출하고 이를 토대로 가격 변화 전망과 최적의 거래 시점을 일러준다.지역별로 원룸 등 전·월세 시세 정보를 예측해 제시하는 ‘다방’은 자체 분석센터에서 임대 매물 관련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있다. 신축빌라 시세정보를 제공하는 ‘집나와’는 독자 개발한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빅그램(biggram)’을 통해 도출한 빌라 가치 평가 자료를 제공한다.‘직방’도 빅데이터랩 서비스를 통해 전국 100가구 이상 아파트 및 주상복합 단지의 시세 변동, 학군 및 역세권, 인구 흐름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KB국민은행의 ‘KB부동산 리브온(Liiv ON)’은 양도세, 증여세, 취득세 등 부동산 세금을 계산해주는 챗봇 ‘셀리몬(Sellymon)’을 출시했다.리브온의 웹사이트 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 주소만 입력하면 해당 부동산 관련 세금이 산출된다. ‘부동산114’도 하루 30만건에 달하는 자체 생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부동산통계 솔루션 렙스(REPSㆍReal Estate Power Solution)는 전국에 포진한 소속 부동산중개사무소의 정보를 바탕으로 부동산 공급 및 가격 동향을 시계열 데이터로 제공하고 있다. 데이터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22

청년들이 우울증에

국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경제적 생활의 고통을 계량화하여 수치로 나타낸 것을 경제학 용어로는 ‘경제고통지수’라 부른다.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고안한 것으로 고통지수가 클수록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도 높아진다. 일정기간 동안의 소비자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하여 소득증가율을 뺀 수치로 이를 측정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청년층 물가상승률과 청년실업률을 더한 지표로 환산해 나온 수치를 청년경제고통지수라 부른다. 작년 9월 국내 한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우리의 청년경제고통지수는 24.9%로 나타나 전년 대비 2.6%포인트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이 장기화되면서 청년들의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한다. 취업대란 속에 우울증, 화병, 공황장애같은 질병을 호소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건겅보험공단 집계에 따르면 2013년 4만7천 명이던 우리나라 20대 우울증 환자는 지난해에는 7만5천 명으로 5년만에 58%가 급증했다. 전체 연령대 평균 증가율 16.5%의 3.5배나 되는 수치다. 특히 화병은 다른 연령대에서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10대와 20대에서는 되레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전문가들은 젊은층의 극심한 취업난이 이 같은 질병을 유발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청년들이 받는 경제고통지수가 악화일로에 있음이 확인된 결과라 할 수 있다.올해 들어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10%대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평균 실업률 4%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로 IMF체제 편입 이후 19년래 최악의 상황이라 한다. 최근 숙식비를 아끼기 위해 건설현장 아무 곳이나 숙소를 삼고 일하는 ‘숙노꾼’도 늘고 있다고 한다. ‘숙노꾼’은 숙식과 노가다(막노동)를 줄여 부른 말인데, 취업이 잘 안 되는 젊은층의 발길이 최근에는 이런 곳에까지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경제적 고통만큼 참기 힘든 일도 드물다. 한창 일하고픈 나이에 일자리가 없어 우울증을 호소해야 하는 젊은이가 는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당국의 속 시원한 해결책은 없나./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21

위기의 ‘제로페이’ 사업

이른바 ‘제로페이’는 소비자가 카카오페이, 티머니페이, 페이코, 티머니, 비씨카드 등 이미 출시된 간편앱을 켜서 매장 단말기의 QR리더기에 대면 은행계좌에 있던 현금이 소상공인에게 바로 이체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때 발생하는 이체 수수료 및 결제 앱 이용료는 협약을 맺은 은행 및 간편 결제사업자가 부담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수수료는 0원이 된다. 특히 제로페이를 사용할 경우 사용대금에 대해 40% 소득공제 혜택이 있으며, 각종 문화시설과 공영주차장 등 할인혜택이 있다. 소상공인, 판매자들은 일반 신용카드를 받을 때처럼 수수료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니 모두 환영하는 제도다. 그래서 정부와 서울시가 오는 12월 17일부터 제로페이 시범사업을 시행하기로 하고 공동가맹점을 모집하고 있지만 제도 시행 전부터 잡음이 일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계좌이체에서 나오는 수수료 수익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결제플랫폼을 구축·운영하는 비용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제로페이는 기존 신용카드 결제 과정에서 부과되는 카드사 수수료, 부가통신업자(VAN사) 수수료 등 중간단계를 줄인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계좌 간 거래에서 은행은 통상 50~500원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그러나 제로페이에 참여한 은행은 이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거나 깎아주기로 했다. 가맹점 연 매출액을 기준으로 8억원 이하는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고, 매출액 8억~12억원은 0.3%, 12억원 초과는 0.5%만 받게 된다. 정부와 서울시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제로페이로 갈아타도록 제로페이 소득공제 혜택도 40%로 높이기로 했다. 신용카드의 소득공제율 15%보다 25%포인트, 체크카드의 소득공제율 30%와 비교해도 10%포인트 높다. 제로페이의 취지가 소상공인이 무리한 카드수수료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어서 나름 호평을 받고있다. 하지만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운영비용까지 부담해야 할 은행으로선 입장이 난감한 모양이다. 제도적 보완을 해서라도 제로페이가 널리 도입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서민이나 소상공인 마음이 아닐까 싶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20

‘매천시장’

재래시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서민의 삶이 서린 곳, 인정과 훈훈한 민심을 느낄 수 있는 곳 등이 그런 곳이다. 물건값을 깎아 준다거나 한 줌 더 얹어 건네주는 상인의 따뜻한 손길에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사람 사는 맛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화로 대형마트가 대거 등장하면서 우리의 전통적 재래시장은 이제 서민의 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서민의 삶이 살아 숨쉬는 현장임에는 부인할 수가 없다.행복 북구문화재단이 ‘매천시장’이란 이름의 창작 뮤지컬을 만들었다. 국제적 뮤지컬 도시를 꿈꾸는 대구에서 서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재래시장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만들어져 각별한 관심이 간다. 전국 18개 문화예술회관을 대상으로 공모했는데, 이 지역에서 낸 작품이 선정된 것도 뜻깊은 일로 보인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는 뮤지컬 ‘매천시장’이 소재의 참신성과 지역특성이 잘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했다고 한다.“새벽을 여는 사람들”이란 부제가 보여주듯 이 작품은 도매시장 상인과 경매사, 농민, 손님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삶을 조명했다.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도매시장의 역동성을 표현하고 재래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한 작품이다.대구 매천시장은 북구 매천동에 있는 대구농수산물도매시장을 약칭해 부르는 이름이다. 대구 유일의 도매시장이지만 한강 이남에서 가장 많은 농산물이 유통된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농산물 금액만 무려 연간 1조 원에 달한다. 거래 물량이 55만t 정도라고 하니 그 규모를 알만하다. 부지 15만4천㎡, 건축면적 9만6천㎡이나 30년이 지나면서 건물이 낡은데다 구조의 불합리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해 대구시가 2023년까지 시설현대화 사업을 추진해 시장의 기능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이번 뮤지컬 ‘매천시장’은 뮤지컬의 생성과정이 우수했을 뿐 아니라 서울 다음으로 큰 우리지역 도매 기능을 가진 매천시장의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1일부터 북구 ‘어울아트센터’에서 개막된다고 한다. 한 번쯤 구경 가 봐도 좋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19

만추(晩秋)

겨울의 초입(初入)에 와 있다. 겨울의 초입이라는 말보다는 만추라는 말이 훨씬 정감가는 계절이다. 올해 가을 단풍은 유난히 아름답다.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단풍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에는 순수함이 배어 있다. 그래서 누구나 시상을 떠올리는 계절이다. 늦은 가을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짙어가는 단풍 빛깔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의 아쉬움 때문이지 모르나 늦가을은 사람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만추가 되면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구르몽의 ‘낙엽’이란 시와 1960년대 영화 ‘만추’다. 구르몽의 낙엽은 가을이 되면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시다. 프랑스 시인 구르몽이 34살에 발표한 작품으로 젊은 나이답지 않게 뛰어난 감각과 상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 구절만 인용해 본다.“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시몬이란 여성에 대한 강렬한 애정을 담은 시라 한다. 만추의 계절에 한번쯤 외워볼만한 시다.영화 ‘만추’는 1966년 이만희 감독의 작품으로 한국 영화사의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모범수 여인과 위조지폐범의 사랑을 그린 내용이다. 얼마 전 작고한 영화계 스타 신성일과 문정숙이 출연한 영화다. 당시에 15만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2011년에는 중국배우 ‘탕웨이’가 주연을 맡아 리메이크되기도 한 영화다.만추의 계절이 되면 깊어가는 가을의 느낌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한번은 떠나보면 어떨까 싶다. 생각의 시간을 가져서 좋고 마음마저 힐링되는 느낌을 가져서 더 좋다. 인터넷에 소개된 경북의 명소로 몇 군데가 눈에 띈다.삼릉으로 가는 경주 남산 둘레길이다. 경주는 문화재와 함께 가을의 청취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주왕산 달기약수터길과 소백산 자락길도 추천 코스다. 불영사 계곡 녹색길, 운문사 경내를 둘러보면서 청도 운문사 솔바람길을 걷는 것도 멋지다. 만추의 분위기에 푹 빠져 일상에 지친 나를 달래보자. 혼자라도 좋고 가족과 함께라도 좋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16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반동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저임금노동자·가계의 임금·소득을 올려 소비증대→ 기업 투자 및 생산확대→소득증가의 선순환구조를 만들겠다는 경제정책이다. 대기업의 성장으로 인한 임금 인상 등 ‘낙수효과’를 기대하기보다 근로자의 소득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전략으로 문재인 정부의 핵심경제 정책으로 쓰이고 있다.하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소득주도 성장의 개념이 주로 노동·일자리 분야에 국한돼 ‘노동자 임금 인상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급기야 이 정책에 대한 반동이 일고있다.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문성현 위원장이“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30% 인상을 돌이켜 보면 방향과 취지는 충분히 옳았지만 경제 여건(특히 제조업, 건설업의 부진)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에 결정적 어려움으로 작용하는 상황이어서 긍정적, 선순환적 기능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그는“대통령 공약사항인 최저임금과 중점 정책인 공공부문 정규직화라는 부담 때문에 예상되는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며“결국 중소기업, 자영업의 지불 능력 문제와 이를 풀기 위한 취약부문의 교섭력 강화 방안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현 정부의 정책이 최저임금은 올렸으나 하청단가, 임대료, 프랜차이즈 수수료, 카드수수료 등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할 구체적 방안은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소득주도성장정책이 누구의 소득을 어떻게 올리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누구와 누구를 공정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등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것도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에 청년들이 가도록 해 청년소득을 높이는 방향,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공정한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는 방향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대통령직속 위원회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있는 그의 지적이 소득주도성장정책에 올인하고있는 청와대 분위기와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어 현 정부 진영내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재검토론이 일어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15

김장철

한국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것은 김장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임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결과다. 김치는 한국적 전통과 풍속을 잘 표현한 대표 음식이란 뜻이다. 우리 국민의 95%가 하루에 한번 이상 김치를 먹는다는 조사 결과처럼 한국인의 식단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반찬이다. 미국 건강잡지 ‘헬스’는 세계 5대 건강식품의 하나로 한국의 김치를 선정했다. 김치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소화를 잘 돕고, 암 예방에 유익하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실제로 김치는 겨울동안 사람에게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C 등을 보충해 주는 건강식품이다.우리의 조상은 겨울동안 생산되지 않는 채소의 저장 방법으로 김치를 고안해 냈다. 인류가 많은 저장법을 고안했지만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까지 김치만한 저장 방법은 없었다. 소금에 절이거나 말려서 보관할 수 있으나 이러면 영양이 파괴되고 맛도 없게 된다. 김치는 신선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맛도 살린 저장식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치는 또한 발효식품이란 특징을 갖고 있다.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젓갈류 등과 같은 발효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식품이다. 발효식품은 오래 보존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소화를 돕고 맛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탁월하다.우리나라에는 200종이 넘는 김치가 있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맛과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지역별 온도에 따라 김장 담는 시기도 다르고 양념과 재료의 사용 방법도 제각각이다. 추운 북부지방은 김치가 쉽게 익지 않으므로 소금, 젓갈, 양념류 등을 적게 사용해 싱거운 김치를 담근다. 그러나 남부지방은 양념을 많이 사용해 맵고 짜게해 저장성을 높인다.올해 김장 적기는 북부지역은 11월 하순, 영남권은 12월 중순이나 하순이 좋다고 한다. 김장은 예부터 입동을 전후해 담그는 것이 가장 맛이 좋다고 했다. 최저 기온이 영하 1℃로 떨어지고 하루 평균 기온이 4℃ 이하를 유지할 때 유산균이 가장 잘 살기 때문이다. 김치를 땅속 장독에 묻어두는 것도 같은 원리로 땅속 온도를 감안한 지혜다. 주부들의 겨울준비가 바빠지는 계절이 왔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14

위기의 광주형일자리사업

전남 광주시가 고용 창출을 위해 현대차의 투자를 받아 기존 자동차 생산직 연봉의 반값 수준인 공장을 짓는 ‘광주형 일자리사업’이 좌초위기를 맞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사업은 노사관계, 임금 등으로 기업의 국내투자 기피현상이 일어나 일자리가 감소한 데다 전국 최저수준을 기록한 광주의 고용률과 광주 청년들의 심화되는 도시이탈현상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제시된 일자리 정책이다. 광주광역시는 떠나는 청년들을 잡을 수 있는 사회통합형 일자리 창출이 가장 급선무라고 판단했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기업 임금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중앙정부가 주택, 육아, 교육, 의료 등의 높은 복지수준을 제공하는 것을 사업의 핵심골격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공사가 진행되는 빛그린 국가산업단지에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고, 대표적인 것이 현대차와 광주광역시가 함께 빛그린산단내에 자기자본 2천800억원, 차입금 4천200억원 등 총 7천억원을 들여 SUV 차량 등 10만대를 양산하는 공장을 설립하기로 하는 투자협약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이 내년 예산에 사업비를 반영하기 위해 현대차와 현대차노조와 협상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협상 전망은 밝지 않다.광주시가 노조의 의견을 반영하다 보니, 현대차로선 수용하기 어려운 타협안이 나왔고, 노조는 노조대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주시는 지난 3월 5년간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유예하는 내용이 담긴 방안을 만들었지만 노조의 반발로 ‘단체 협약 5년 유예’를 번복했고, ‘최소 생산 물량 약속’ 등을 현대차에 요구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러자 현대차 역시 “수용 불가”입장을 밝혔고, 현대차 노조 역시 “회사가 협약에 동의하면 총파업을 불사하겠다”고 반대하고 있다. 노조가 반대하는 것은 임금이 절반 수준인 경쟁 공장이 생길 경우 노조의 임금투쟁이 어려워지는 등 기득권이 위협받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한민국 일자리 틀을 바꿀 새로운 시험이자 도전인 광주형 일자리사업이 귀족노조의 파업위협 등 반대로 무산되어선 절대 안 된다. 노조 개혁이 본격 논의돼야 할 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13

별의 도시 영천

영천을 별의 도시라 한다. 전국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맑은 날이 연중 150일 이상이어서 별을 관측하기에 매우 좋다고 한다. 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보현산 천문대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만 보아도 별을 관측하기 좋은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보현산 정상에 세워진 천문대는 1996년에 완성됐다. 동양 최대 구경(1.8m)의 반사망원경을 자랑하고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은하세계에 대한 관측과 연구가 진행되면서 호기심 많은 학생의 체험 관광 장소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보현산 천문대가 세워지면서 영천은 별이 도시의 브랜드가 됐다. 영천에서 생산되는 포도의 이름도 별빛포도라 부른다. 보현산 남쪽 입구에 자리한 마을의 이름은 별빛마을이다. 별별 미술마을도 있다. 천문과학 축제가 열리고 천문과학 프로그램과 함께 하는 별빛 나이트 투어도 해마다 개최된다.영천은 경상북도 남동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다. 경부고속도로가 영천의 남쪽을 지나간다. 대구에서 이어지는 국도는 영천을 지나 경주로 이어지고, 안동에서 이어지는 국도도 영천과 경주로 연결된다. 인구 10만 명의 작은 소도시지만 편리한 교통으로 사람의 출입이 왕성하다.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의 고향이 영천이다. 포은이 부모상을 당하고 각각 3년의 여묘(廬墓)를 지내자 공양왕이 그의 효행을 칭찬하여 영천 임고면에 유허비를 세웠다.수년 전 한국 영화계의 스타 신성일이 이곳으로 이사와 한옥을 짓고 살면서 영천은 또한번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폐암으로 사망한 영화배우 신성일은 엊그제 장례를 마치고 그가 노후를 보낸 영천 성일가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친지와 동료 등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뒤로 한 채 그의 기억에 영원히 남아 있을 ‘별들의 고향’에 묻혔다.우연인지 모르나 그는 한국 영화계의 별답게 별의 도시로 귀환했다. 영천시는 그의 업적을 오래 기리기 위해 그가 살던 곳에 신성일 영화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영화배우로서 남긴 그의 신화가 이 말을 실감케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12

결혼이 선택?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의 명언이다.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햄릿처럼 이 구절을 잘 왼다. 선택의 문제는 어렵다. 그러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은 선택한 사람의 몫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햄릿의 선택은 삶과 죽음의 선택이다. 실로 중대한 기로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누구나 인생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결혼의 문제는 신중하고 엄중한 선택의 문제다. 본인의 결정이 가장 중요하지만 가족의 생각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 또한 결혼의 문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혼자서 세상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결혼은 공동체의 출발이기에 혼자보다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여 결정하는 것이 좋다. 그 의논 상대가 가족이면 더욱 좋다. 러시아 속담에는 결혼을 하기에 앞서 세 번을 기도하라고 했다. 전쟁에 나설 때는 한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설 때는 두 번 기도하라면서 결혼은 세 번 하라고 했다. 그만큼 결혼 결정에는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의미다.이른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는 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이 간다. 통계청이 매년 벌이는 사회인식 조사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20년 전 70%가 넘었던 결혼 필요성에 대한 답변이 2018년 조사에서는 48%로 뚝 떨어졌다. 결혼은 안 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10명 중 4.8명이라는 뜻이다. 충격적인 의식의 변화다. 물론 경제적 이유나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 등 개인적 가치관이 달라진 것이 주된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결혼의 필요성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려의 마음이 없지 않다. 결혼은 국가나 사회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가까이는 가족의 공동체를 생각해야 하는 본질의 문제이기도 하다.저출산이 주는 우리사회의 충격파를 떠나 결혼의 문제를 바라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국가가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09

성과공유제 vs 협력이익공유제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익을 공유하는 제도로는 기존 ‘성과공유제’와 새롭게 시범도입될 예정인 ‘협력이익공유제’가 있다. 성과공유제는 원가절감이나 공정개선을 통해 낮아진 원가만큼의 보상이 주어진다. 그러나 대기업이 원가 절감에만 치중해 중소기업 남품대금을 부당하게 깎을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와 달리 협력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판매량, 영업이익 등과 연계해 이익을 공유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위탁기업이 수탁기업의 혁신활동을 지원하고 협력사와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하고, 도입기업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대·중소기업 모두 혁신을 유도한다는 3대 원칙에 따라 설계됐다. 위탁기업의 재무적 성과를 협력이익으로 보고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성과공유제보다 이익공유 범위가 커진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공유 이익 범위가 커지면 기업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협력이익공유제의 시행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그래서 협력이익공유제는 정부가 도입을 강제하지 않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추진·도입할 경우 정부가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인센티브로는 △세제 3종 패키지 지원(손금인정 10%·법인세 세액공제 10%·투자 및 상생협력촉진세제 가중치) △수·위탁 정기 실태조사 면제 △동반성장평가 우대 △공정거래협약 평가 우대 등이 있다. 또 글로벌 혁신기업들과 국내 기업들이 이미 운영하고 있는 사례를 분석해 △협력사업을 통해 발생한 이익을 공유하는 협력사업형 △IT와 유통 등 플랫폼 업종들이 협력사업을 통해 달성한 협력이익을 콘텐츠 조회나 판매량 등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마진보상형 △협력사의 ‘유무형’기여분을 인정해 주는 형태의 인센티브형 등 총 3가지 도입유형을 마련, 기업의 경영상황과 업종 등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해 활용하도록 했다. 이윤의 추구가 목적인 기업입장에서는 이윤을 나누는 성과공유제나 협력이익공유제 모두 마뜩치 않긴 마찬가지일게다. 결국 협력이익공유제의 성패는 정부의 시행의지와 맞물린 대기업의 상생의지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08

지도층의 ‘내로남불’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우리나라에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 톱10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전국 736개 직업의 직장인 2만4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국회의원이 3위를 차지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연봉을 받는 국회의원이 대학총장과 의사, 금융인 등을 모두 물리치고 당당히 3위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국회의원쯤 되면 권력도 상당한 데다 이처럼 연봉마저 두둑하니 누구나 한 번쯤은 국회의원이 돼 보겠다는 욕심이 생길만한 자리다. 그러나 그들이 누리는 혜택만큼 국민의 존경을 받는 자리라고 여기기에는 생각의 여지가 있다.문재인 정부 들면서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가 있다.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인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문제삼았던 문 정부가 당연히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할 적폐를 똑같이 따라한 데 대한 야당의 비아냥이다. 남이 할 땐 비판적 자세이더니 같은 일을 자신이 하면서 합리화로 일관한다는 뜻이다.음주 운전자에 대해 가중처벌을 하자는 내용의 ‘윤창호법’(가칭)이 발의됐으나 정작 법 통과가 안 되면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윤창호법은 군 전역을 코앞에 둔 윤창호씨가 음주 운전자가 몰던 차에 치여 사경을 헤매자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만들어진 법이다. 국회의원 104명이 윤씨의 딱한 사정에 공감, 공동발의까지 한 법이다.그러나 법 제정 발의에 나섰던 한 국회의원이 법이 통과되기도 전에 이번에는 자신이 음주단속에 적발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또 현역 국회의원 가운데 18명이나 음주전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비단 정치인의 문제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지도층의 자기 반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란 자기 논에 물을 끌어넣는다는 말로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뜻이다. 내로남불도 내 생각만 하기 때문에 생긴다. 물질만능으로 세상이 많이 바뀐다 해도 솔선수범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길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07

새로운 인증서, 뱅크사인

은행을 이용할 때 본인임을 증명하는 디지털서류인 공인인증서는 이용할 때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등 매우 번거롭고 불편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8월 은행권이 공동으로 개발해 선보인 새 인증 시스템이 바로‘뱅크 사인’이다. 뱅크사인은 휴대전화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지문 인증으로 간단하게 은행에 연결된다. 컴퓨터를 이용할 때도 별도 프로그램 설치없이, 모바일로 쉽게 인증해 이체까지 이뤄진다. 암호 화폐의 기반 기술로 유명세를 떨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 인증서 정보가 개별 은행에 나눠서 저장되는만큼, 위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유효기간도 공인인증서보다 훨씬 긴 3년으로 재발급의 번거로움을 줄였고, 통합 인증이라 별도의 등록 절차없이도 모든 은행에서 바로 쓸 수 있다. PC에서도 액티브-X나 보안프로그램 등을 설치하지 않고도 스마트폰 인증을 통해 PC 인터넷 뱅킹을 이용할 수 있다.다만 아직은 한계가 명확하다. 편의성을 높이긴 했지만, 결국 인증을 위한 수단이라, 공인인증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정태옥 의원은 국정감사 현장에서 뱅크사인을 이용하기 위한 절차를 소개하면서 “30~40번을 클릭해야 하고 내부 애플리케이션은 4번 오가는 등 할 게 많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시연한 화면에서는 뱅크사인에 가입하기 위해 계좌번호와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보안카드번호 등 개인정보 입력과 인증을 수차례 받아야 했다. 또 뱅크사인 가입 후에도 송금 과정에서 또 다시 보안카드 번호를 요구하는 등 불편이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10월말 기준 뱅크사인 이용자는 안드로이드 앱의 경우 5만여명 수준에 불과하고, 아이폰 앱스토어에서는 순위가 금융분야에서도 64위에 그쳤다.한국은행이 ‘2018년 2분기 인터넷뱅킹서비스 이용현황’ 자료를 통해 발표한 9천977만여명 규모의 모바일뱅킹 이용자와 비교하면 극히 일부 고객만 뱅크사인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제도의 조그만 나사 하나라도 바꾸려면 그만한 고통이 뒤따르는 모양이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06

다시 주목받는 고향세

자신의 고향인 자치단체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고 본인은 세금 혜택을 받게 되는 제도가 고향세의 취지다. 고향세는 산업의 발달로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면서 농어촌 지방의 부실해진 재정과 도시 재정 간의 균형을 잡아보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제도다. 우리보다 먼저 농촌의 위기를 경험한 일본은 2008년부터 고향세를 도입해 재정확보 등 긍정적 효과를 보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도 2009년과 2011년 등 국회에서 고향세법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아직 입법 단계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연고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다수의 수도권 국회의원들이 소극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그런 가운데 지난달 30일 경주에 모인 전국 시도의회 의장단은 고향사랑 기부금 도입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지방분권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방재정 확충이 필수적이며 그 방안으로 고향세 도입을 요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향세 도입은 다수의 농민단체들도 찬성의 뜻을 보이고 있다. 국감 마지막 날인 지난달 2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도 농어촌의 어려움을 고려, 고향사랑 기부금의 조기 도입을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도시민이 재정자립도가 낮은 고향에 기부금을 내면 10만원까지 전액 세금을 공제해 주는 대선 공약을 낸 적이 있다. 약화된 농어촌의 재정을 고려하면 고향세 도입이 절박하다. 그러나 도시마다 또 정치인마다 이해가 달라 당장 입법화는 안 될 전망이다. 지금 우리의 농촌은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농촌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끊어진지 오래됐다. 저출산에다 청년층마저 떠나 농촌의 고령화는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농촌 소도시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다.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의 40% 가까이가 재정자립도 20%에도 못 미친다. 자생력이란 말을 붙일 수도 없을 처지다. 중앙의 눈치를 살펴 예산을 잘 따오는 것만이 최선일 뿐이다.새 정부가 공평과 지방 균형을 통치 이념으로 삼고 있으나 정작 지방과 중앙은 갈수록 격차가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 낮잠자는 고향세라도 빨리 법제화시켜야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05

눈먼 돈

최근 미국판 로또 복권인 메가 밀리언 당첨을 두고 지구촌이 떠들썩했다. 미국 복권 사상 가장 큰 규모의 돈이 누구에게 돌아갈지에 대해 세계는 촉각을 곤두세웠다. 1조7천억원의 주인공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첨자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미국민 사이에는 한동안 복권열풍으로 요란을 떨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복권열풍이 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걸고 복권 판매소를 찾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직장인 가운데 본업에도 열심히 일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은 꼭 복권을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복권에 당첨만 되면 단번에 벼락부자도 될 수 있으니 한번쯤 투자해 볼만한 일이다. 눈먼 돈이라는 말이 있다. 돈에 눈이 없으니 아무렇게나 굴러들어 온 돈을 뜻한다. 사전에서는 ‘임자 없는 돈’ 혹은 ‘우연히 생긴 공돈’으로 풀이한다. 복권 당첨금도 노력없이 생긴 공돈과 비슷해 얼핏 눈먼 돈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공익적 목적을 둔 복권 사업에 투자해 생긴 돈은 눈먼 돈보다는 오히려 행운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요즘 국가 돈이 눈먼 돈 노릇한다는 비아냥이 많이 나돈다. 국가가 용도에 맞게 사용하라며 지원한 예산을 마치 내 돈인양 마구잡이로 사용하다 적발된 경우가 많아서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싼 사립유치원 비리가 그런 경우다. 사립유치원 원장의 개인 비리라고 할 수 있으나 이를 관리 감독하는 행정기관의 무방비가 국민 혈세를 눈먼 돈으로 만들었다는 책임도 면키 어렵다.이번에는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도 부당한 방법으로 국가 돈을 빼먹다 경찰에 무더기 붙잡혀 역시 국민 세금은 눈먼 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있음이 확인된 사건이다.선진국과 후진국 국민이 갖는 세금에 대한 인식은 내가 낸 세금을 되돌려받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라 한다. 후진국 국민은 세금을 되돌려받기보다 뜯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 세금을 도둑질하는 사람에 대한 엄벌도 중요하지만 국가의 관리 잘못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세금에 대한 불신은 빨리 막아야 한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1-02

트럼프의 역살라미전술

살라미 전술은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살라미(salami)’에서 따온 말로, 협상 테이블에서 한번에 목표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부분별로 세분화해 쟁점화함으로써 차례로 각각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술을 말한다. 북한이 핵협상 단계를 최대한 잘게 나누어 하나씩 단계별로 이슈화하고 이를 빌미 삼아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최대로 얻어내기 위해 사용한 전술이다.그런데 요즘에는 북한의 전매특허였던 살라미 전술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비핵화 속도에 대해“오래 걸려도 상관없다”며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비핵화 속도에 점차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북제재 효과가 쌓이면서 결국 급한 쪽은 북한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야금야금 내놓는 것을 베껴 미국 또한 비핵화 시한을 점층적으로 늘리는 전술을 가리켜‘살라미 미러링(mirroring·모방)’을 펼치고 있다고 평한다. 이른바‘역(逆)살라미전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일리노이주 선거 유세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협상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과 관련해 “북한 핵실험이 없는한 얼마나 오래 걸리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 사람들에게도 말한다”고 했다. 지난달 26일 유엔총회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시간싸움(time game) 하지 않겠다.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5개월이 걸리든 문제 되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한발 더 나가 아예 문턱을 없앤 셈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시간 게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종전선언 대신 대북제재 해제 같은 경제적 요구에 집중하는 만큼 키를 쥔 미국으로선 서두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본격적인 비핵화와 보상의 주고받기를 앞두고 북-미의 샅바 싸움이 길어지는 것같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북미간 살라미 전술이 펼쳐지는 동안 남북간 교류협상은 조금씩 진전하는 듯 하면서도 일부 협상은 답보 내지 정체상태를 면치 못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지 실감케 한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1-01

참 기부(寄附)

불교에서 이르는 보시(布施)란 자비의 마음이다. 자비의 마음에는 대가가 없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면서 세속적 명리를 기대한다면 보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은 이와 같은 이치다. 선행을 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대체적으로 자기 가치에 대한 만족을 추구한다. 어떤 반대급부보다는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에서 당위성을 찾는다. 불교에서는 이런 정신을 이타정신(利他精神)이라 부른다. 이타심이란 남을 위한 마음이다. 이기심(利己心)의 반대 뜻이다. 착한 성격이나 희생정신, 배려심 등이 이타심과는 매우 유관한 단어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남을 위한 이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우리 사회에서 이뤄지는 기부도 본질적으로는 이타심에서 출발한다. 기부를 하면서 반대급부를 생각했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자원봉사도 일종의 기부다.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체험케 하고 그 정신을 가르치는 것은 기부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하고자 하는데 있다. 자원봉사가 자발성, 비대가성, 공익성을 특성으로 하는 것처럼 기부도 같은 맥락의 특성이 있다.2017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알츠하이머 치료 연구에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 때 그는 이 투자액 전액을 재단이 아닌 개인 재산에서 출연할 거라 밝혀 기부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 적이 있다. 미국은 기부문화가 잘 발달한 나라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은 기부문화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의 부자들은 기부에 아주 익숙하다. 한 사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남다른 가치를 인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최근 어느 노부부의 기부가 화제가 됐다. 평생을 리어카를 끌고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한 노부부가 2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학교 측에 기부했다. 놀라운 일이다. 그들보다 더 큰 갑부도 엄두를 못 낼 일을 노부부가 해서 사회의 이목을 더 끌었다. 팔순의 나이에 대가를 바랄 것도 없다. 경제가 어려워 답답한 요즘이다. 노부부의 기부가 청량제같이 들린다. 노부부의 기부야말로 참 기부라 할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8-10-31

황필상법

국회는 지난해 말 자선·장학 또는 사회복지를 목적으로 하고 대기업과 특수관계에 있지 않은 ‘성실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주식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의결권 있는 전체 주식의 2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일명 ‘황필상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발단은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 창립자인 황필상씨가 지난 2002년 180억원 상당의 수원교차로 주식 90%를 모교인 아주대에 기증하면서 비롯됐다. 아주대는 황씨의 주식과 아주대 상조회 출연금을 모아 2003년‘구원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이 재단은 2008년까지 아주대와 서울대, 한국과학기술대 등 19개대 학생 733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2008년 수원세무서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을 근거로 황씨에게 140억여원의 증여세를 부과한 것이다. 상증세법 제48조는 장학재단과 같은 공익법인이 특수관계인 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면 초과분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단은 증여세 부과 취소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재단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은 세무당국의 증여세 부과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다. 항소심 선고 후 대법원 판결까지 7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황씨가 내야할 세금은 체납액까지 더해 225억원으로 올랐고, 황씨는 고액 세금체납자로 몰려 거주하는 아파트까지 압류당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4월 증여세 부과가 적법하다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도 고통을 당한 황씨 사건이 알려지면서 일명 ‘황필상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최근 홍콩 배우 주윤발이 자신의 전 재산인 56억 홍콩 달러(한화 8천100억원)를 기부하겠다고 해 “영웅이 본색을 드러냈다”는 칭송이 자자하다. 그런데 이런 기부조차 만약 한국에서라면 엄청난 세금폭탄을 맞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황필상법’이 아니라 기부문화를 적극 장려하는 ‘주윤발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심사가 드는 요즘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8-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