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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젠 ‘천국의 미남’이 된 알랭 들롱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20세기 중반. ‘지구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로 불렸던 프랑스 영화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알랭 들롱. 1935년생이니 향년 89세.지금은 70~80대 할머니가 된 한국 여성 다수가 영사막에 비춰지는 알랭 들롱의 우수어린 눈빛과 회색빛 트렌치코트에 매료됐다.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열광이었다.‘태양을 가득히’를 필두로 ‘한밤의 암살자’ ‘고독한 추적’ 등의 영화에서 보여준 알랭 들롱의 반항적 이미지와 강렬한 눈빛은 동시대 미국 미남배우인 제임스 딘(1931~1955)과 비교되며 ‘프렌치 느와르(암흑가 남성들의 파멸을 다룬 영화)’라는 조어(造語)까지 생겨나게 했다.“인물값 한다”는 옛말처럼 알랭 들롱은 무수한 스캔들 또한 만들어냈다. 독일 출신 열아홉 살 여배우 로미 슈나이더와의 시끌벅적했던 연애를 시작으로 나탈리 들롱, 미레유 다르크 등 사망 때까지 공식적으로만 5명의 여성과 결혼 혹은, 동거를 이어갔던 것.‘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알랭 들롱이 아기였던 시절 동네 산책을 나갈 때면 그의 엄마가 유모차에 이런 팻말을 붙였다. ‘제발 내 아기를 만지지 마세요.’ 너나없이 천사처럼 귀여운 알랭의 볼을 쓰다듬으려 했기 때문이다.뿐인가. 10대 땐 식당 앞에 서있으면 식당 주인이 스테이크를 공짜로 주고, 옷 가게 앞을 서성거리면 의상실 주인이 돈 안 받고 외투를 줬다는 이야기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떠돌았다.알랭 들롱에게 ‘미남으로 평생을 사는 게 어땠는가?’ 묻고 실은 남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해졌다. 이제 그는 ‘지구의 미남’이 아닌 ‘천국의 미남’으로 닉네임을 바꿨기에. 멀리서 명복을 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19

대프리카 간판 내리나?

우정구 논설위원 매년 한증막 더위로 전국의 이목을 끌었던 대구의 한여름 무더위가 올해는 대프리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지나가고 있다는 평가다.오히려 서울은 27일째 열대야가 이어져 118년만에 신기록이 세워졌고 부산도 23일째 열대야가 이어지는 폭염으로 전국의 주목을 받았다. 강릉과 속초에서는 밤사이 최저 기온이 30도를 넘는 초열대야 현상이 나타나 많은 시민이 밤잠을 설쳤다는 소식도 들린다.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대구는 지난 50년간 폭염 일수가 1261일로 같은기간 광주(668일), 서울(393일)보다 2배 내지 3배가 많았다.대구는 팔공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다. 안에서 생성된 뜨거운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여름철이면 뜨거운 공기가 계속 머물면서 도시를 한증막처럼 대우고 있는 것이다.2010년 이후 대구 더위를 빗대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고 대구 도심에는 더위를 상징하는 조형물도 등장했다. 여름철만 되면 한증막처럼 무더운 대구의 날씨는 늘 전국 뉴스의 한토막을 장식했다.최근 기상청이 10년간 5∼9월 사이 사람이 느끼는 체감온도를 조사해 보았더니 광주가 29∼32도로 가장 높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주와 대전이 그 뒤를 이었고, 대구는 전국 11번째로 나타났다고 한다.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열섬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가로수와 도시숲 조성사업을 지속 펼쳐온 것이 효과를 본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변에 나무가 있으면 없는 곳보다 3도 정도 기온을 낮출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 대구의 상징처럼 쓰였던 대프리카 간판을 이제는 내려야 할 때가 된 걸까 두고 볼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18

무기징역형으로 사기꾼 잡는다

우정구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나라다.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법적으로 사형제도가 존속하면서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한국을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한다.따라서 무기징역형은 우리나라에선 사실상 최고형에 해당한다. 무기징역형은 글자 그대로 교도소에서 기한없이 영구히 노역에 종사하는 형벌이다.1979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그라나도스라는 우체국 배달부는 38만4912년의 징역형을 구형받았다. 4만여 건에 달하는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고 일부 우편물은 열어 귀중품도 챙긴 혐의다. 우편물 1개당 9년씩 형량을 매겨 나온 형량이나 정작 법원은 그에게 징역 14년 2월을 선고했다.사기 혐의로 최고 형량을 선고받고 기네스북에 등재된 인물은 태국의 차모이 티피아소라는 여성 사업가다.1989년 다단계 사업을 통해 1만6000여 명에게 사기를 쳐 2300억원을 빼돌린 혐의다. 선고 형량은 14만1708년이었으나 실제로는 8년가량 복역하고 출소했다고 한다.우리나라 사기범죄는 연간 30만건 이상 발생한다. 전체 범죄의 21%를 차지해 사기공화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문제는 사기범죄 대상이 경제취약층에 표적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경제적 회복이 어려워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대법원이 사기죄의 양형기준을 13년만에 대폭 상향한다는 소식이다. 보이스피싱이나 전세 사기 같은 조직적 사기에 대해서는 피해액이 300억원이 넘을 경우 최대 무기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고 한다.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으나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15

앙팡 테러블

우정구 논설위원 스포츠나 연예계 등에서 나이가 어린대도 당차게 차고 나오거나 엄청난 기대를 할 만큼의 유망주가 등장하면 ‘앙팡 테러블(무서운 아이)’이라 한다. 직역하면 무서운 아이들이란 뜻이다.논어에 나오는 사자성어 가운데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도 있다. 후배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있어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가히 두렵다는 뜻이다. 공자의 이 말 본뜻은 젊은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로 보통 해석한다.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예상을 뒤엎고 역대 최상급 성적을 올려 화제다. 당초 5개로 예상했던 금메달을 13개나 땄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과 맞먹는 성적을 올려 1978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가장 작은 규모 선수가 출전해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대회로 기록됐다.파리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2000년대생들의 겁없고 거침없는 활약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10∼20대 선수들이 한계에 도전하는 열정과 용기만으로 보는 이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것이다.이번 대회 메달리스트 44명 가운데 24명이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선수들이다.사격에서 금메달을 딴 반효진은 현재 고교에 재학 중인 16살 선수. 양궁 3관왕 위업을 달성한 임시헌은 21살, 배드민턴의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은 22살. 등등이다.무서운 아이들의 반란이 있을 때마다 국민의 눈과 귀는 즐거웠다. 승패보다 올림픽 무대를 즐기는 듯한 긍정적 태도에서 기성세대와는 다른 신선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짜증나게 하는 우리 정치판에도 앙팡 테러블이 등장했으면 좋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13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달린다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른다. 이유가 있다. 면밀하게 작성된 시나리오와 현란한 연출 없이도 드라마나 영화 이상의 감동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기 때문.이번 프랑스 파리올림픽에서도 드라마틱하고 눈물겨운 장면들이 여러 번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보여졌다. 그중 한 장면은 오랜 시간 우리 기억 속에 남을 듯하다.지난 2일 프랑스 생드니에서 펼쳐진 여자 육상 100m 예선 경기. 한국만큼이나 뜨거운 날씨였음에도 팔다리를 가리는 새까만 히잡(이슬람 여성의 복식) 형식의 운동복을 입은 선수 한 명이 등장한다. 망명 중인 스물여덟 아프가니스탄 여성 키미아 유소피였다.국제적 수준과는 거리가 먼 기록 13초42. 꼴찌였다. 하지만, 키미아 유소피는 다른 어떤 선수보다 크게 주목받았다. 경기를 마친 뒤 ‘교육은 우리의 권리입니다’라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관중들 사이를 달린 것.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교조주의자’로 불리는 탈레반이 집권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이 교육받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교문 앞에서 쫓겨나는 아프가니스탄 어린 여학생들의 모습이 이미 수차례 전파를 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긴다.‘달리는’ 인간의 행위에는 여러 가지 함의(含意)가 담겼다. ‘부당함에 온힘을 다해 저항한다’는 것도 분명 그 함의 중 하나일 터.유소피는 그날 100m를 전력으로 질주함으로써 ‘나를 포함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부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으려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졌다. 그날, 그녀가 보여준 용기는 꽃다발 1만 개를 받기에 충분했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12

일본과 숙명적 관계인 대지진

우정구 논설위원 수많은 자연재해 중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재난을 꼽으라면 지진이 으뜸이다. 태풍은 특정 시기에 찾아오고 방향이라도 가늠할 수 있으나 지진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마치 발밑에 시한폭탄을 묻어 놓은 것처럼 불안하기 그지없다.전 세계적으로 지구 내부에선 하루 1000∼5000번 정도의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지진이 세계에 골고루 발생하지 않고 일정한 지역에 집중 발생하는데, 이를 지진대라 부른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진대는 태평양 연안으로 환태평양 지진대다.아메리카 대륙의 서해안과 캄차카 반도, 일본, 필리핀, 동인도제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9.1 규모 대지진. 일본 국내 관측사상 최고규모를 기록했다. 초대형 쓰나미가 몰려오고 후쿠오카 원전에서 방사성이 누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수 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일본 사회를 가장 큰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다.지난 8일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일본 기상청이 난카이 해곡 대지진 발생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일본열도가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난카이 대지진은 수도권 서쪽인 시즈오카현 앞바다에서 시코쿠 남부, 규슈동부해역까지 이어지는 곳으로 100∼150년 간격으로 지진이 발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정부도 30년 내 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70∼80%로 보고 있다.동일본대지진과 맞먹는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다면 일본은 또 한번 최악의 재앙에 직면하게 된다. 일본인에게 지진은 숙명과 같은 존재다. /우정구(논설위원)

2024-08-11

오버투어리즘

우정구 논설위원 관광산업을 “굴뚝없는 공장”에 비유한다. 생산하는 공장이 없어도 고용창출 효과를 낼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이다. 또 관광은 보이지 않는 무역이라 하여 외화획득의 첨병으로 인식된다. 국제친선과 문화교류, 국위선양의 효과도 관광의 장점이다.태국은 관광산업 비중이 GDP의 21.9%다. 그리스도 비슷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덕에 관광산업으로 국민이 먹고산다 해도 무방하다 할 정도다.그러나 관광산업이 이렇게 꼭 장점만 있는 것일까. 많은 도시들이 관광산업 진작을 위해 자국의 문화유산과 천연자원을 홍보하고 외국인 관광객 모시기에 열중이나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최근 유럽의 유명 관광도시에서 관광객 방문을 거부하는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이곳을 찾은 관광객에게 물총을 쏘며 도시를 떠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을 위한 도시보다 지역민을 위한 도시를 원한다는 게 이유라 한다.한해 수 천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바로셀로나에선 관광객 수용을 위해 주거용 주택이 숙박시설로 바뀌면서 집값 상승 등의 부작용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이탈리아 베네치아는 관광객이 넘쳐나면서 물가가 올라 어느날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 한때 13만명에 달했던 도시인구가 5만명으로 줄었다. 정부가 관광객에게 도시 입장세를 물리기로 했으나 도시를 떠난 주민들을 돌아오게 하기에는 뒤늦은 조치다.오버투어리즘은 외국인 관광객의 과잉 유입으로 지역주민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유럽의 유명관광지에서 빚어지는 오버투어리즘을 어떻게 볼 것인가. 관광산업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반면교사할 점은 없을까./우정구(논설위원)

2024-08-08

‘국민 귀염둥이’ 신유빈의 먹방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국민 OOO‘. 이런 표현은 식상해서 잘 쓰지 않지만 이번은 예외다.바나나, 납작 복숭아, 주먹밥, 에너지젤…. 이젠 누가 뭐래도 ‘국민 귀염둥이’로 등극한 탁구선수 신유빈이 이번 프랑스 파리올림픽 경기 도중과 전후에 먹은 것들이다.수많은 카메라가 참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는 국제 스포츠 대회. 관중들이 보건 말건 귀여운 표정으로 갖가지 것들을 맛있게 먹는 신유빈을 지켜본 나이 지긋한 중년들은 ‘다이어트’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자신들 딸을 떠올리며 “내 딸도 저렇게 잘 먹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어디서나 흔하게 보는 바나나와 복숭아는 특정 업체가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신 선수가 머리에 얼음 팩을 올리고 먹은 에너지젤은 제조사가 있는 공산품. 그 제품을 만든 회사는 갑작스레 늘어난 주문량에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는 후문까지 들려온다. 스포츠 스타가 가진 영향력을 증명하는 사례 중 하나다.빼어난 탁구 실력과 함께 갓 스무 살답지 않은 성숙하고 깨끗한 매너까지 보여준 신유빈에게 한국인은 물론, 파리를 찾은 다른 나라 선수와 외국인들까지 호감을 표시했다고 한다.나이가 나이인 만큼 4년 후 미국에서 열릴 LA올림픽과 그 다음에 개최될 8년 후 올림픽에서까지 ‘성장하는 신유빈’을 박수 치며 지켜볼 탁구 팬들은 벌써 행복감에 설렌다.폭염 속에서도 파리올림픽 중계방송을 지켜보며 뜨거운 응원을 보낸 국민들에게 귀여움과 즐거움을 선물한 ‘신유빈의 먹방’.그 먹방은 과도한 다이어트로 인해 여러 부작용에 시달리는 20대 여성들의 스트레스도 일정 부분 풀어주지 않았을까?/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07

입추 더위

우정구 논설위원 오늘이 바로 입추(立秋)다. 입추는 24절기 중 13번째 절기며 대서와 처서 사이에 있다. 양력으로 8월 7일 내지 8일이 입추가 되는 날이다.중국 화북지방의 날씨를 기준으로 24절기가 만들어져 우리나라와는 약간의 기후 차이가 있다. 입추가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시기는 처서 때다.14번째 절기인 처서는 8월 22일과 23일에 든다. 올여름은 14일 말복을 지나 22일이 처서다.우리 조상들은 처서를 “땅에서는 귀뚜라미 업고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말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옴을 빗댄 표현이다. 입추와 처서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이제 폭염도 기세가 한풀 꺾일 것으로 보는 기대감이 있다.요즘 날씨를 보면 기세가 꺾일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기상청도 “지금의 무더위가 이달 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입추인 7일의 대구경북의 기온은 최고 31∼36℃로 예상된다. 작년 입추 날의 기온은 37.8℃로 역대 입추 날 날씨로는 신기록을 세웠다.“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오랑캐인 흉노족 왕에게 시집간 중국 절세미인 왕소군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며 부른 시의 한 구절이다.경우는 다르지만 입추와 처서가 와도 더위가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지금의 날씨가 “가을이 와도 가을 같지 않다”는 말로 표현하면 틀리지 않다.지속되는 찜통더위로 전국에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면서 최근 사흘사이 6명이 숨지는 일도 벌어졌다.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가 바로 지금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06

대통령 레이건과 트럼프의 배짱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1981년 3월 30일 오후 2시 26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이 총에 맞는다. 워싱턴 힐튼호텔 앞에서 전용차에 오르던 레이건을 향해 존 힝클리가 권총을 쏜 것. 불과 3m 앞이었다. 총탄은 심장을 12cm 비껴갔다.피격 후 레이건은 생사가 오가는 수술을 받는다. 그 와중에도 메스를 잡은 의사에게 “당신 공화당원 맞지? 민주당 지지자 아니지?”라는 농담을 했다고.회복 직후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레이건. 무대에 오른 그의 뒤편에서 풍선이 터진다. 총성으로 오해할 수 있는 큰 소리였다. 그럼에도 레이건은 어깨도 움찔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농담에 긴장한 참석자 모두가 폭소했다. “이번엔 날 맞히지 못했네.”2024년 7월 13일 오후 6시 15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78)가 피격 당한다. 펜실베이니아 유세 도중 먼 거리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았다. 오른쪽 귀에서 피가 흘렀다. 총탄이 5cm만 왼쪽을 향했다면 사망했을 수도 있었을 터.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손을 치켜 올리고 청중을 선동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마친 트럼프는 총격 사건 후 며칠도 지나지 않아 웃는 얼굴로 다시금 유세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세장은 다중에 밀집하는 공간. 또 다른 테러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곳임에도.레이건과 트럼프는 평가가 엇갈리는 사람이다. 열성적 지지자 이상으로 둘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항상 크고 작은 위험 속에서 살았거나, 살아간다.어쨌건 트라우마(Trauma·정신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는 충격)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든 둘의 배짱 하나는 ‘삼국지’의 맹장 장비(張飛)를 넘어서는 것 같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8-05

초열대야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달은 역대 가장 무더운 7월로 기록됐다. 지난 달 전국의 열대야 평균 일수는 8.8일로 평년 2.8일의 3배나 된다. 1973년 기상 관측이래 7월 기준으로 최대 일수다.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일 최저기온이 25℃를 넘으면 열대야라 부른다. 열대야보다 기온이 더 올라가 밤사이 최저기온이 30℃를 넘게 되면 초열대야라고 한다.여름이 되면 열대야는 흔히 겪는 일이지만 초열대야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표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8월 강릉에서 밤사이 최저기온이 30.9℃를 기록해 기상관측 사상 처음으로 초열대야 현상이 발생했다.이후 2018년 8월 서울서도 초열대야 현상이 발생했으나 초특급 더위로 일컬어지는 초열대야가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것은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올해 강릉에서는 초열대야가 5일째 이어져 밤잠을 못 이룬 주민들이 한밤중 바닷가 등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강릉에서 이처럼 지독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바람이 산을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기온이 오르는 푄현상 때문이라고 풀이를 하는데, 전문가들은 초열대야가 앞으로 강릉만의 일은 아닐 것이라는 경고를 한다.“올여름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무더운 해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측이다. 지난 주는 울산에서 열리기로 했던 프로야구 경기가 폭염으로 중단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초열대야 현상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낮에는 숨이 콱콱 막히듯 덥고 밤에는 한낮의 열기가 사라지지 않아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무더위도 태풍과 다를 바 없는 재난이다. 날로 지독해지는 무더위에 대응할 지혜가 필요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04

치산치수(治山治水)

우정구 논설위원 산과 내를 잘 관리하고 돌봐서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재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을 치산치수라는 말로 표현한다.오로지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햇빛, 기온 등 기후에 의존해 농사를 짓던 옛날에는 치산치수를 잘하는 왕이 바로 성군 대접을 받았다.고대 중국에서는 황제의 가장 큰 덕목의 하나가 치산치수 능력이다. 황하강처럼 큰강이 많은 중국은 홍수로 범람이 잦아 완벽한 치수가 곧 민심을 얻는 일이었다.고대 중국에서 치산치수를 잘한 임금으로 소문난 왕은 우(禹)임금이다. 우임금은 순(舜)임금 밑에서 치수를 잘해 순임금으로부터 임금의 자리를 물러 받았다. 우임금은 13년동안 치수를 하면서 한번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천수답 위주로 농사를 짓던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왕이 기우제를 올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똑같다. 가뭄이 계속되고 농작물이 말라 죽어가고 굶어죽는 사람까지 생겨나니 기우제를 지내지 않을 왕이 없다.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데 이를 인디언식 기우제라고 한다.우리나라 산지와 하천은 가파르고 짧아 상류지역에서 물이나 토석의 유출이 하류지역의 물 이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특히 국토의 63%가 산지여서 적극적인 산지 관리가 필요한 지형이다.환경부가 전국에 14개의 기후대응댐을 조성하기로 했다. 지구촌의 이상기후로 발생하는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자는 것이 조성 취지다. 치산치수 측면에서 바람직하나 자연환경 파손을 최소화하는 것이 숙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8-01

88년 세월… 손기정과 반효진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88년 전 오늘인 1936년 8월 1일. 베를린 올림픽이 열린다. 그때 독일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 맹위를 떨치던 시기.나치 당수 아돌프 히틀러는 “향후 모든 올림픽은 오로지 독일 제3제국에서만 열리게 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히틀러와 제3제국은 9년 후 세계 역사에서 사라진다. 오만 욕을 다 들으며.어쨌건, 그 올림픽에 마라톤 선수 손기정이 참가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탄해 강점하던 시기였기에 우리식 이름이 아닌 ‘손 기테이(そん きてい)’라는 성명을 사용해야 했다. 한국이 아닌 일본의 국가대표.그는 2시간 29분 19초라는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지만, 그건 자신의 나라가 아닌 일본의 영광으로 기록됐다. 시상대에 오른 손기정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에선 손기정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웠다는 이유로 특정 신문과 그 신문 관계자들이 혹독한 수난을 겪었다. 나라 뺏긴 설움은 스포츠에서도 다를 게 없었다.그로부터 흐른 긴 세월. 일본 군국주의의 그림자는 이제 이 땅에서 싹 걷혔다. 일본을 카피하는 수준에 그쳤던 한국의 대중문화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거듭해 ‘한류’라는 이름으로 일본은 물론 서양 젊은이들까지 열광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누구도 가소롭게 볼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손기정으로부터 88년. 열여섯 한국 고등학생이 선명한 태극 마크를 달고 ‘10m 거리에서 가장 정확하게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지구 위 최고 여성 총잡이’ 지위에 올랐다. 대구체고 2학년 반효진. 손기정 할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장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었을 게 분명하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31

인간승리의 명장면들

우정구 논설위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올림픽은 인간승리의 축제장이라 할만하다.파리 올림픽의 첫 번째 인간승리의 주인공은 캐나다 출신의 팝스타 셀린 디옹이다. 온몸이 뻣뻣해지고 발작을 일으키는 희귀병을 앓던 그녀가 에펠탑 특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파리 시민은 환호했고 세계는 감동했다.외신들은 파리 올림픽 개회식의 “압도적 최고 무대”라고 극찬했다. 기록을 깨고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투혼처럼 난치병을 딛고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준 그녀의 모습에서 인간승리를 볼 수 있었다.‘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들’은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여자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국 영화. 전국에서 여자핸드볼 선수라고 해봐야 고작 100명 남짓한 숫자에서 뽑은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기적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인간승리가 딴 세상에 있는 일이 아님을 보여준 사례다.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무명의 컬링 여자선수들이 시종일관 파이팅 넘치는 경기로 은메달을 딴 것도 기억에 남는 감동이다.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남자 펜싱 오상욱 선수는 칠전팔기 끝에 일어났다. 개인적으로는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했으니 인간승리의 멋진 투혼이라 할만하다.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고 10연패 위업을 달성한 우리나라 양궁 여자단체팀의 승리는 국가 명예만큼 값지다. 16살의 반효진양이 사격에서 뜻밖의 금메달을 따내는 등 한국 선수들의 낭보가 더위에 지친 국민을 위로한다. 인간승리를 바라보는 재미가 또한 쏠쏠하지 않은가./우정구(논설위원)

2024-07-30

몽클레어 패딩과 부모 노릇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한국인의 과도한 ‘명품 사랑’이 유럽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프랑스나 이탈리아 명품 판매점 앞엔 한국인 구매자를 대신해 줄을 서주는 아르바이트까지 있다고 한다. 한국 백화점 역시 새로운 명품의 출시가 예고되면 전날 밤부터 백화점 앞이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갈수록 심각해지는 ‘명품 사랑의 바람’이 아이들에게까지 불어 닥친 모양이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를 짤막하게 인용해보자.‘경기도 동탄에 거주하는 김OO씨는 4살 딸을 위해 티파니에서 78만원대 은목걸이를 구입했다. 18개월 된 딸을 위해선 38만원대 골든구스 구두를 샀다. 몽클레어 패딩과 셔츠, 버버리 드레스와 바지, 펜디 가운과 신발 등 다른 명품도 다수 구매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결혼식, 생일 파티, 콘서트에 갈 때 초라해 보이지 않길 바란다며…’비단 영국 신문이 만난 동탄의 김씨만은 아닐 것이다. 몇 해 전엔 100만원이 훌쩍 넘는 패딩을 중학교 한 학급의 절반 이상이 입고 다닌다는 기사와 그로 인한 신조어 ‘등골 브레이커(부모의 경제력을 넘어서는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까지 등장한 게 한국이니.중학생 딸을 둔 후배와의 술자리. “친구들은 다 입고 다니는데, 왜 나는 안 사주냐고 우는데…. 부모 노릇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후배의 우울한 얼굴을 마주 보기가 딱했다. ‘몽클레어 패딩’과 ‘부모 노릇’이 그런 방식으로 연결될 줄은 몰랐다.‘차려입은 옷과 손목에 찬 시계,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 인간을 판단해선 안 된다. 사람에게 중요한 건 도야된 인품과 고상한 내면’이란 말이 헛소리가 돼버린 2024년 오늘이 서글프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29

촌캉스

우정구 논설위원 학생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직장인도 휴가철이 되면서 본격적인 바캉스 시즌이 돌아왔다.해외로 나가는 사람도 많으나 올해는 특별히 촌캉스가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등장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시골을 뜻하는 촌(村)과 휴가를 의미하는 바캉스가 합쳐진 촌캉스는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시골이나 작은 마을로 나가 휴식을 취하거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새로운 휴가 스타일이다.냉방이 잘되고 수영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도심속 호텔에서 2박 3일 여름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와는 색다른 맛의 휴가 스타일이다.한적하고 평화스러운 작은 시골마을에서 가족과 보내는 촌캉스는 도심과는 다른 시골만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자연과 자연스럽게 접촉을 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즐길 수 있다. 또 텃밭에서 따온 각종 신선 채소 등 지역 특산물로 조리한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여행의 맛을 더해 준다. 헐렁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밀짚모자에 고무신까지 신으면 금방 시골 사람이 된다.촌캉스는 무엇보다 바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인파가 붐비지 않는 시골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정신적 힐링에 좋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면 그 어떤 장소보다 상호간의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휴가비가 저렴하게 드는 것도 좋은 점이다.전국 곳곳에 촌캉스를 위한 숙소나 펜션 등이 많이 준비돼 있다. 어릴 적 할머니집을 방문하는 느낌으로 이번 여름휴가는 촌캉스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28

삼겹살 만찬

우정구 논설위원 삼겹살은 돼지고기의 한 부위로 살코기와 비계층이 세 번 겹쳐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비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삼겹살 소비도 늘었다 한다.돼지고기의 여러 부위 중 삼겹살이 가장 인기를 끈 이유는 삼겹살 특유의 고소한 맛 때문이다. 삼겹살은 구울 때 기름기 부분이 녹아내려 고기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쌈채소, 쌈장, 김치, 마늘 등과 함께 먹으면 풍미를 더욱 진하게 즐길 수 있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다.구이, 찜, 볶음, 찌개 등 다양한 방법으로도 조리할 수 있어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 음식으로 취급받는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해 어린이들의 성장 발육에도 좋다. 그러나 지방 함유량이 많고 칼로리가 높아 과식을 하면 비만이 될 수 있는 단점도 있다.3월 3일은 삼자가 겹쳐 ‘삼겹살 데이’로 통한다. 공식적 기념일은 아니지만 이날 만큼은 삼겹살을 찾아 먹는 사람이 많다. 한 여론조사에서 샐러리맨이 회식 때 가장 즐겨먹는 음식으로 삼겹살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삼겹살을 함께 구워먹으면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여기에 소주까지 곁들이면 소통도 잘 된다는 생각을 한다.한국적 정서에 맞는 서민 음식이라는 동질감이 작용한 탓은 아닐까 싶다.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새 지도부를 용산으로 초청, 만찬을 가졌다. 만찬의 주 메뉴로는 삼겹살이 선택됐는데, 윤 대통령이 직접 골랐다고 한다.서민적 한국 음식을 통해 당정의 대화합을 강조한 의미라고 하는데, 정치가 먹는 것처럼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25

우천시는 내비게이션엔 안 나와요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우천시엔 체육관에서 모입니다’. 유치원생 아들의 가정통신문을 받은 엄마가 교사에게 전화를 했다. “우천시가 어디죠? 내비게이션에는 안 나오네요.” 雨天時(시)의 시(時)를 시(市·도시)라고 이해한 것이다.“이번 박물관 견학 때 중식을 준다던데 우리 아이는 기름기 많은 음식을 싫어하니 담백한 한식으로 주시면 안 될까요?” 이는 점심식사를 의미하는 ‘中食’을 ‘중국음식’으로 오해한 결과인 듯하다.드물지 않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한단다. “선생님, 사흘이 왜 4일이 아니고, 3일이에요?” 사흘의 ‘사’를 넷을 의미하는 사(四)라고 오해한 것일 터.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가 털어놓은 실제 사례들이다.아주 조금 어려운 한자나 자주 사용되지 않는 순우리말 앞에서 문해력(文解力·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아이들이 많고, 어른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책을 읽으며 지식과 상식을 쌓고, 올바른 어법을 가진 어른들에게 언어 습관을 배우는 아동들이 줄어들고 있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한국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이 10권 아래로 떨어진 건 이미 오래전이다. 책을 통한 학습으로 체화되던 문해력과 어휘력. 그게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건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은어, 비어, 속어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괴한 줄임말과 욕설 따위다. 한 나라 언어의 품격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의해 결정되고 유지된다.본관(本貫)을 물으면 “네?”라고 반문하고, ‘시나브로’가 “프랑스어인가요?”라고 묻는다. 이쯤 되면 실소를 넘어 할 말을 잃게 된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24

세계인의 축제 파리 올림픽

우정구 논설위원 오는 26일 개막되는 33회 파리 하계올림픽에는 전 세계 200여 개 나라에서 1만500명의 선수가 참가한다.중동전쟁 등 각국의 예민한 이해관계를 떠나 이들 선수는 나라의 명예를 위해 오직 스포츠 정신만으로 경기에 임하게 된다.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의 해결에 스포츠만큼 유용한 수단도 드물다. 1894년 근대 올림픽이 최초로 시작되면서 올림픽은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차별 속에서 꾸준히 세계인의 평화를 위해 이바지해왔다.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올림픽 정신은 “이기는 것이 아니고 참가하는 것”이라고 말해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했다.이번 파리 올림픽은 1924년 이후 100년만에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다. 개최지 파리는 개막을 이틀 앞두고 각국 선수단들이 속속 입국하면서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다.파리 올림픽 조직위도 코로나로 맥이 빠졌던 도쿄 올림픽 때와는 달리 프랑스의 자존심을 걸고 이번 올림픽이 지구촌의 축제로 거듭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올림픽 개최 사상 처음으로 주경기장이 아닌 파리 센강에서 개막식을 가지는 것은 파리 올림픽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또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선수비율을 50대 50으로 맞춰 양성평등 올림픽을 실천했다. 특히 친환경 올림픽 구현을 위해 상징적이나마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는다. 행사기간 중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었다.날로 긴장감이 높아지는 국제정세 속에 치러지는 파리 올림픽이 세계인의 축제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24-07-23

단종과 계유정난(癸酉靖難)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왕조시대. 왕의 손자로 태어났다는 건 금수저를 물고 세상에 나온 정도가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었다’고 해도 감히 누가 이견(異見)을 내놓을까? 그것도 조선 초기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세종의 손자였다.본명 이홍위(李弘暐), 우리에겐 단종(端宗)으로 더 익숙한 조선의 6대 왕. 583년 전 오늘인 1441년 7월 23일은 단종의 음력 생일.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조선의 5대 왕)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어린 시절의 행복은 짧았다. 단종도 모르고, 조부와 부친도 몰랐으며, 백성들 누구도 알지 못했다. 겨우 만16세에 숙부 수양대군(조선의 7대 왕 세조)에게 죽임을 당할 줄은.‘비운의 소년 왕’으로 불리는 단종은 최고 권력자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지만 외로움은 그에게 숙명과도 같았다. 모친 현덕왕후는 산후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조부 세종과 조모 소헌왕후도 단종이 아이였을 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문종 역시 병약했고 마흔이 되지 못하고 죽었다.겨우 열 살에 왕위에 오른 단종. 아직은 후견인이자 보호자가 돼줄 사람이 필요한 나이였다. 아버지 때부터의 신하였던 김종서와 황보인 등 원로대신이 곁에 있었으나 결국은 혈족이 아닌 남.수양대군은 문종의 동생이다. 그러니, 단종은 수양의 조카. 옹알이를 하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종을 형 문종과 함께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을 몹시 가까운 혈족인 숙부라는 이야기. 그러나, 권력을 틀어쥐고 독점하기 위한 역사 현장은 살벌했다. 피붙이고 뭐고 없었다.1453년 ‘계유정난’으로 단종을 보호하던 신하를 모조리 숙청한 수양대군은 4년 후엔 조카까지 죽인다. 때론 왕조의 역사가 눈물겹고 서글프다./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