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질문 해보자. 당신은 집 변기가 고장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는가? 그게 조언이 필요한 문제인가?
세칭 한국과 미국 명문대를 나와 국회의원을 거쳐 한 나라 장관을 하겠다는 사람이 ‘깨우쳐 줘 도움을 준다’는 조언이란 단어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의정 활동을 돕는 보좌진에게 입법에 관한 조언이 아니라, 변기 수리에 대한 노하우를 조언해 달라 한 격이다. 변기가 망가졌다면 수리 업체에 전화하면 된다. 전화기 버튼 누를 손가락이 있다면 조언 없이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다.
또 하나. 당신은 지난밤 먹고 남은 닭고기를 쓰레기와 함께 챙겨 내려와 출근하는 자동차 안에서 먹는가?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실소했다. 변명에는 설득력이 담겨야 한다. 그래야 수긍할 수 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번엔 이 나라 교사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자신이 공격 받으면 공격의 화살을 제자에게 돌리라고 하는가? 그런 방식으로 곤경에서 벗어나는 자를 ‘스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교육부장관 후보자 이진숙은 논문 표절 의혹이 거세지자 ‘실질적 저자는 작성 기여도가 큰 본인’이라 해명했다. 이는 ‘표절한 사람은 내가 아닌 제자’라는 이야기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2차대전 때 유대인을 가르치던 교사 한 명은 울부짖는 아이들을 차마 버리지 못해 함께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들어갔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고, 죽음을 피해갈 수 있었음에도. 지금껏 ‘스승’이라 불렸을 이진숙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두 장관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엔 분명 이유가 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