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방랑시인 김삿갓이 환갑 잔칫집에 들러 시 한 수로 떡 벌어지게 한 상을 받아먹은 이야기는 ‘아부(阿附)의 힘’을 상징하는 일화다. 잔칫집에 들어선 김삿갓은 ‘저기 앉은 저 늙은이 사람 같지 않구나(彼坐老人不似人)’라고 시운을 뗀다. 노인의 아들들이 분기탱천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태연히 다음 구절을 읊조린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도다(疑是天上降眞人)’ 과장된 찬사에 주인들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냈다던가.

이승만 대통령을 향해 벌어진 웃지 못할 유명한 아부 역사도 있다. 광나루에서 낚시 중이던 이승만이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당시 경기도지사 이익흥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하고 아첨했다는 기록이 1956년 8월 1일 자 국회 속기록에 남아있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1445년(세종 27)에 편찬된 조선왕조의 창업을 송영(頌詠)한 125장에 달하는 서사시다. 한글로 엮은 책으로는 최초인 이 노래는 오늘날 극진한 ‘아부’를 빗대는 부정적 용어로 곧잘 동원된다.

얼마 전 전남 신안군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48조 투자 협약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을 환영하는 전남도청 직원들이 들고 있던 플래카드 문구가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대통령님은 우리의 행복’, ‘왜 이제 오셨어요ㅠㅠ’,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대통령님,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공무원들이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는 손팻말에는 ‘우주 미남’, ‘문재인 별로, 내 마음에 별로’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자발적’이라는 전남도청의 뒤늦은 해명이 더 초라하다.

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트위터에 올린 “오늘 문재인 대통령님 생신, 많이 축하드립니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입니다”라는 글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기사 댓글과 SNS에 조롱 비판이 잇따른다.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단어는 가장 낯간지러운 문비어천가(文飛御天歌)로 기록될 것 같다.

정상적인 정치소통집단이 아니라 정의적(情誼的) 유대관계인 친문(親文) 조직의 확증편향과 절대다수 민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빚어내는 의회독주는 이 나라의 심각한 걱정거리다. 주거안정 붕괴, 탈원전 패착, 일자리 실패…정치사에 기록될 문재인 정권의 실책은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팬덤과 진영정치에 기댄 끊임없는 ‘민심 갈라치기’로 권력의 벽을 구축해온 일은 치명적이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관을 29명째나 일방적으로 임명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력화시킨 오만도 그 역학의 결과물일 따름이다.

문비어천가는 친문에 어필하기 위한 강력한 주문(呪文)이 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이 말도 안 되는 정치 수준을 대체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아부는 생사람을 잡을 뿐만 아니라, 군주의 눈을 멀게 해 나라를 망친다”던 소크라테스의 경고가 새록새록 떠오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