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서를 쓰면서
추천서를 쓰면서
  • 등록일 2021.01.28 18:54
  • 게재일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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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학교는 대학원생이 많은 곳이다. 국문과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축에 속할 것 같다.

한번은 인문대학에서 공간 배분 문제 때문에 재적 인원을 물어본 적이 있어, 120명이라고 했더니 국문과 다 합쳐서 그런 것이냐고 했다. 아니고, 현대문학만 그렇다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 외국 유학생이 많아 그렇기도 하지만 원래 국문학은 돈은 되지 않아도 학문적 열정만은 다른 곳 못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학생이 많다는 건 행복한 소리지만 그만큼 마음이 아플 때도 많다고 할 것이, 이렇게 공부한 귀한 학생들이 막상 박사 졸업장을 들고 사회에 나가려 하면 받아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어디나 그런 것이 일자리 적은 요즘 한국 사회 풍토지만 이 박사들은 남들 서른 살도 안 되어 직장을 찾을 때 공부하겠다고 학원에 남은 사람들이다. 보통 200만 원 정도 월급을 받기 시작할 나이에 책과 자료에만 매달린 사람들이다. 그네들이 박사학위를 들고 대학만 졸업한 학생들보다도 더 적은 월급밖에 주지 않는 강사 자리, 강의전임 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을 어떻게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으랴.

편할 수도, 좋을 수도 없는 마음으로 추천서들을 쓴다. 한 학기에도 여러 통 써야 하는 추천서니까 틀을 하나 정해 놓고 거기 맞춰 사람 이름만 바꾸면 될 것 같지만 가려는 대학마다 뽑는 자리도 다르고 가려는 사람도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공부도 정말 잘하고 논문 수도 많다. 어떤 사람은 논문 수는 좀 적어도 인격적으로 너무나 좋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이런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큰 덕목을 잘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해서 아무 노력도 없이 이 위치에까지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또 다른 ‘칭찬’이 없을 수 없다.

사실, 국문학이라 그렇고, 또 인문학 중의 하나라서 더 그렇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뭐든 돈이다, 실용이다, 하는 쪽으로만 돌아가는 모양새다. 그만큼 먹고 살기 어렵지 않느냐 하지만 사람은 육체와 함께 정신을 가진 존재고 그래서 빵만으로가 아니라 생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 해야 맞다. 가장 연약한 갈대지만 생각하는 갈대인 것이다.

오래 준비한 학생들을 위해서 오늘도 나는 잠시 책상 위에 앉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느 대학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전공 교수로 일하고 있는 아무개입니다. 다름 아니오라….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 년 아무 일 아무개 삼가 올림”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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