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애환 품고 영일만을 바라보고 있는 낮은 산
우리네 애환 품고 영일만을 바라보고 있는 낮은 산
  • 등록일 2020.10.05 20:01
  • 게재일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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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문화의 상징과 공간 (6) 수도산과 탑산

탑산 전몰학도 충혼탑(김종영·1957.8.11)
탑산 전몰학도 충혼탑(김종영·1957.8.11)

산과 강, 바다를 두루 품고 있는 곳은 흔치 않다. 태백 구봉산에서 솟구친 낙동정맥이 청송 주왕산을 거쳐 남하하다가 동해안 쪽으로 뻗은 산의 흐름이 은은히 이어지고,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형산강이 녹두빛 강물을 뒤척이고 있으며, 밋밋하게 전개되던 동쪽 해안선이 크게 요동쳐 호랑이 꼬리의 지세를 형성하면서 영일만을 안고 있는 곳이 포항이다.

산을 두고 얘기하자면, 영남의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는 내연산과 학이 금세라도 큰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갈 듯한 비학산이 북쪽에 솟아 있고, 원효와 자장, 혜공 등 신라 고승들의 수행처인 운제산이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사이로 도음산, 천마산, 봉좌산, 형산 등이 펼쳐져 있으며, 이 흐름과 이어져 수도산, 탑산, 학산, 양학산 같은 낮은 산들이 도심에 들어와 있다. 산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고, 언덕배기 같은 도심의 작은 산에도 애환이 서려 있다. 포항 도심의 대표적인 산, 수도산과 탑산 또한 그렇다.

 

상수도가 설치됐다하여 불려진 수도산

원래 이름은 ‘백산’… 조선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한 모갈거사 순절 이후부터 ‘모갈산’으로

해지는 쪽이라 ‘서산’으로도 많이 불려졌지만

1926년 일제강점기 배수지 건립 후 명칭 바꿔

전쟁희생자 추념하는 조형물이 있는 탑산

포항시사에 ‘봉비산’·’복마산’·’주마산’ 등 기록

대나무 숲이 우거져 ‘죽림산’으로 불려져오다

1957년 전몰학도 충혼탑 제막 후 이름 바꿔져

포항지구 6·25전적비·편지비 등도 조성돼

탑산 포항지구 6·25전적비(백문기·1980. 2. 21)
탑산 포항지구 6·25전적비(백문기·1980. 2. 21)



□ 수도산, 포항사람들의 정서적 둥지

포항 출신의 작가 손춘익의 대표작인 소년소설 ‘어린 떠돌이’는 6·25 전쟁 직후 서산 밑 가난한 동네에서 한 꼬마가 꿋꿋한 소년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주인공 점득이가 무시로 서산에 올라가 먼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나는 그 옹달샘 곁에 오도카니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없이 넓은 바다에는 흰 돛단배가 서너 척 한가롭게 떠간다. 그러고 보니 그곳은 워낙 내 자리였다. 어느 날이고 틈만 나면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기쁘면 기쁜 대로 또 슬프면 슬픈 대로 나는 으레 그곳을 찾아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한 마리 외로운 짐승처럼.



서산은 해가 지는 서쪽의 산으로, 수도산의 다른 이름이다. 주인공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이 야트막한 동네 뒷산에 올라가 먼 바다, 곧 영일만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를테면, 수도산은 한 마리 외로운 어린 짐승의 포근한 둥지인 셈이다. 소설의 주인공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포항사람들이 수도산에 올라가 쪽빛 영일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맥락에서 수도산은 포항사람들의 정서적 둥지라 할 수 있으며, 작가는 가장 포항다운 원풍경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처럼 수도산은 과거 포항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빈약하던 시절, 수도산이나 송도 말고는 딱히 갈만한 곳이 없었기에 그렇다. 더욱이 수도산은 1967년 5월 25일 도시계획공원시설로 지정된 덕수공원을 품고 있으며, 조경·휴양·운동시설과 전망대 등이 곳곳에 설치돼 있어 송도 솔밭과 더불어 소풍의 단골장소이자 백일장, 사생대회가 수시로 열리던 곳이었다. ‘어린 떠돌이’의 주인공 같은 어린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산책로와 운동장소가 되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은밀한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수도산 밑자락 철로, 현재 철길숲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으며 그 발자국마다 애틋한 사연이 묻혀 있다. 현충일 행사도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6·25전쟁 때 산화한 포항 출신 군경들의 넋을 추모하는 충혼탑이 덕수공원에 있는 까닭이다. 포항에 문화예술의 씨앗을 뿌린 재생 이명석 선생의 문화공덕비도 충혼탑 가까이에 있다.

 

수도산 상수도 배수지(配水池)
수도산 상수도 배수지(配水池)


□ 수도산 명칭의 역사적 유래

수도산에는 몇 개의 이름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지는 서쪽에 있다 하여 서산이라고도 하는데, 용흥동 우미골에서 육거리 방향으로 연결되는 서산터널이 그런 연유로 붙여진 명칭이다. 수도산은 원래 백산(白山)이라 불렀는데, 조선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한 모갈(茅葛)거사가 은둔하며 곡기를 끊고 순절한 후부터 모갈산이라 불렀다. 포항시가 1979년 11월 수도산에 모갈거사순절사적비를 조성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다. 모갈산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일제 당국이 1923년 11월 17일부터 1926년 3월 말까지 당시 숙원사업이던 상수도를 설치하면서 배수지(配水池)를 이곳에 건립했고, 그후로 수도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배수지는 돔 구조의 지붕에 육각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돼 있다. 1920년대 건축물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역사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배수지에는 간단히 넘어갈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수덕무강(水德无疆)’, 곧 ‘물의 덕은 크나커서 그 지경이 없다’는 뜻의 글씨가 배수지에 새겨져 있다. 이 범상치 않은 글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은 최근 펴낸 ‘일제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에서 당시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그 주인공으로 추정했다. 당시 전국적으로 수도 시설이 설치되면서 ‘수덕무강’을 새겨넣곤 했는데, 그 글은 대체로 그 지역의 부윤이나 지사가 썼다고 한다. 하지만 포항이 동해안의 대표적인 상업무역항으로 급성장하면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포항을 방문한 사실을 고려할 때, 포항 배수지의 글씨는 총독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김 부국장의 견해다. 요컨대 ‘수덕무강’은 1920년대 포항 상황을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 탑산, 6·25전쟁 희생자 추념하는 탑과 시설 모여 있어

용흥동에 있는 탑산은 수도산과 더불어 포항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왔다. 주변의 산길과 편안하게 이어지고 전망도 좋아 영일만 등 포항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탑산의 원래 이름은 죽림산(竹林山), 대나무숲이 우거졌다는 뜻이다. 산 아래에는 죽림사라는 고찰이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가 1809년(순조 9년)에 중창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포항시사’에는 봉황이 날아가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봉비산(鳳飛山), 다리를 구부리고 있는 말등과 같다 하여 복마산(伏馬山), 말이 달리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주마산(走馬山)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탑산이라는 명칭은 6·25전쟁 후에 세워진 탑에서 연유한다. 6·25전쟁 때 포항은 치열한 격전지였다.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전선의 요충지였고, 전선의 절박함은 학도의용군이 처음 투입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1950년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44일간 공방전이 이어졌고, 포항 도심은 제일교회만 덩그러니 남은 채 폐허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고, 포항 곳곳에 전쟁 희생자를 추념하는 시설과 조형물이 조성돼 있는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산 밑자락에 위치한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 뒤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포항지구 6·25전적비가 우뚝 다가선다. 1980년 2월 21일 건립, 제막된 이 전적비에는 포항지구 방어의 주력부대인 국군 제3사단을 기념하는 금속 조형물이 추상적으로 표현돼 있고, 전면에는 국군이 학도병의 어깨를 감싸는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포항지구 6·25전적비의 서쪽 방면, 산 정상을 바라보면 전몰학도 충혼탑이 서 있다. 포항 전투에서 산화한 학도병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1957년 8월 11일 건립, 제막되었다. 탑의 높이는 8.8m로, 전면에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상상 속 영물인 기린상이 설치돼 있다.

성격이 비슷한 두 개의 탑이 가까운 거리에 세워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몰학도 충혼탑은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이자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김종영의 작품이고, 포항지구 6·25전적비는 김종영의 서울대 제자이자 구상 조각가로 이름이 높은 백문기의 작품이다. 사제지간이지만 예술관이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이 탑산에 나란히 서 있는 배경은 지역 미술가인 박경숙이 밝혀낸 바 있다. 박경숙에 따르면, 1970년 후반 군부대에서는 김종영의 작품이 추상적이어서 전쟁의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탑을 없애고 다시 건립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구상 조각가로 명성을 떨치던 백문기에게 새 작품을 의뢰하게 되었다. 작품 제작을 수락한 백문기는 스승의 작품을 해체할 수는 없어서 군 당국과 상의 끝에 새 부지에 작품을 건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포항지구 6·25전적비 뒤편에 2009년 8월 11일 편지비가 조성되었다. 이 편지비는 포항여중(현 포항여고)을 지키던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이우근 학생의 주머니에서 유품으로 발견된 편지를 옮겨 놓은 것이다.

 

수도산 덕수공원
수도산 덕수공원


(상략) 어머님!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허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하략)



인생의 꽃 한 번 피워보지 못하고 숨진 한 학도병의 편지는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절절한 평화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조선시대 풍수가인 이성지가 이 산을 둘러보고는 ‘구봉연실지국(九峰蓮實之局)’으로 천하의 명산이라 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성지는 어링불, 그리고 흥해를 살린 회화나무 예언에도 등장하지만, 그의 존재는 어느 문헌에도 남아 있지 않아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 이성지가 남겼다는 말과 예언은 풍수의 특성상 구전 설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수도산과 탑산을 찾는 발길은 예전만 못하다. 이제는 굳이 이 산에 가지 않더라도 갈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산에 아로새겨진 사연을 알고 나면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고, 산의 명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모갈산과 죽림산이라는 명칭이 뚜렷한 근거를 갖고 오랫동안 존재했음에도 상수도 시설이 설치되고 탑이 건립되었다고 수도산, 탑산이라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작명인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애환을 품고 영일만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저 낮은 산에게 예의와 정성을 다해 더 친숙한 우리의 벗으로 다가올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안성용>

 

김도형
김도형

글/김도형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예담출판사 편집장 역임. 현)글로벌 해양수산 매거진 ‘THE OCEAN’편집위원, 현)독도도서관친구들 이사, 현)한국단백질소재연구조합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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