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전설 품은, 그 수많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다
천년의 전설 품은, 그 수많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다
  • 사진 이용선기자
  • 등록일 2020.08.20 18:48
  • 게재일 202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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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⑪ 계림

계림과 주변의 모습. 왼쪽의 기와건물이 경주향교이고 오른쪽 파란 부분이 월성 쪽이다.
계림과 주변의 모습. 왼쪽의 기와건물이 경주향교이고 오른쪽 파란 부분이 월성 쪽이다.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세상에 전해오는 신화와 전설은 언제나 흥미롭다. 인간의 상상력과 이성 바깥에 존재하는 감성을 자극하기에 그렇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하늘의 신(神) 몸의 일부분이 파도가 일으킨 거품과 뒤섞여 조개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프로디테였다. 신화에 매혹된 수많은 조각가들이 대리석을 깎아 그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 옛날 북유럽 사람들은 남쪽의 뜨거운 불꽃이 거대한 얼음 기둥을 녹였고 거기서 생겨난 거인이 자신들의 선조(先祖)라는 전설을 믿었다.

그리스와 로마,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떠도는 이러한 신화와 전설이 한국이라고 없겠는가. 당연지사 있다.

경주시 교동에 자리한 계림(鷄林·사적 제19호)은 세상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한 설화가 서린 공간 중 한 곳이다.

계림은 신라의 다른 이름이며, 김씨 왕조의 시조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신성한 숲을 왜 용의 숲이나 봉황의 숲이 아닌 ‘닭의 숲’이라 불렀을까?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발행한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제15권 ‘신라의 토착종교와 국가제의’가 이 궁금증에 답해준다.

 

“닭은 신라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김씨 시조설화를 보면 닭이 울어서 김알지의 탄생을 인간 세상에 알렸다. 이에 알지가 나온 시림(始林)을 계림이라 고치고 국호로 삼았다 한다. 신라인들이 닭을 숭상했음이 인도에까지 알려졌다는 기록도 있다…(중략) 김씨 집단은 닭을 특별한 의미를 가진 동물로 여겼고, 그들이 5세기 이후 왕위를 독점하는 왕실세력을 이룸으로써 신라는 닭의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천마총에서 계란 실물이 토기에 담겨 출토된 점도 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회화나무·왕버들·팽나무·느티나무 등 울창한 숲과 사당
신라 시조 김알지의 탄생 설화를 담고 있는 ‘계림’… 천년의 전설 깃들어

무더운 여름, 우거진 나무 그늘·살랑이는 바람·조그마한 개울물…
숲속 길 걸으며 전설·신화 속으로 여행… 역사 품은 ‘최적의 피서지’


◆ 서늘한 숲이 반기는 ‘전설 깃든 계림’으로의 피서

계림을 찾았던 때는 견디기 힘든 폭염이 전국을 뜨겁게 장악한 날이었다. 한 조각 작은 그늘조차 애타게 그리운 여름.

대릉원 입구에서 내려 첨성대 쪽으로 잠시 걸어가니 저만치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계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브램 스토커(Bram Stoker·1847~1912)의 소설에 등장하는 드라큘라. 그 흡혈귀가 산다는 동유럽의 숲은 빽빽한 침엽수와 축축한 늪 탓에 낮에도 무언가가 튀어나올 듯 음산하다고 한다. 더위를 피해 피크닉을 즐기기엔 적당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계림은 달랐다. 회화나무와 왕버들, 팽나무와 느티나무 등이 환한 햇살 아래 저마다 멋을 뽐내는 계림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다정하게 방문객을 반기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찰랑거리며 숲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개울이 정감을 더해줬다.

20여 분 걸으며 셔츠를 적셨던 땀이 계림 안에 마련된 조그만 나무의자에 앉으니 금방 식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오래전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경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는 ‘최적의 피서지’인 이곳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이라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 계림이라 불렀다. 탈해왕 4년에 왕이 금성 서쪽 숲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환한 빛이 가득해 신하를 보내 살피도록 했다. 가보니 금으로 된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었다. 왕이 궤짝을 여니 그 속에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이 아이를 하늘에서 보낸 것으로 믿어 태자로 삼았다. 이후 알지의 7대 후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캄캄한 밤, 조용한 숲에서 갑자기 비산하는 환한 빛, 느닷없는 하얀 닭의 울음소리, 새벽에 발견된 황금으로 만들어진 궤짝, 그 안에 담긴 귀여운 아기…. 그야말로 신화나 전설의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춘 재밌는 이야기다.

사람이 드문 평일 한낮의 계림. 전설 혹은, 신화 속으로 피서를 온 기분이 들었다. 더위를 피할 곳을 고민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계림 여행을 권하고 싶어졌다.


사실 독특한 출생 설화를 가진 신라 사람들은 김알지 외에도 여럿이다. 탈해왕은 동해 아진포로 밀려온 배의 작은 상자 속에서 부모를 알 수 없는 상태로 발견됐다는 옛이야기가 전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의 14대 왕 유례이사금은 어머니 박씨가 밤에 길을 걷다가 별빛이 입에 들어오면서 잉태됐다고 한다. 믿기 어렵지만 별이 아버지가 된 셈이다.

이처럼 ‘기이한 출생 배경을 지닌 아이가 현명한 노인에게 발견돼 왕으로 키워지는 과정의 서술’은 신라의 설화가 가진 특성 중 하나이기도 하다.
 

회화나무와 왕버들, 팽나무와 느티나무 등 거목과 고목이 빽빽하게 들어선 계림의 모습. 우거진 나뭇잎이 뜨거운 햇볕을 가려줘 한여름에도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회화나무와 왕버들, 팽나무와 느티나무 등 거목과 고목이 빽빽하게 들어선 계림의 모습. 우거진 나뭇잎이 뜨거운 햇볕을 가려줘 한여름에도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 지난날을 돌아보며 조용히 사색하기 좋은 공간

느린 걸음으로 계림을 돌아보다가 ‘계림비각(鷄林碑閣)’ 근처에서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었다. 번잡한 도심에선 맛볼 수 없는 적요함이 좋았다.

쏟아지는 햇볕 아래서 구릿빛으로 몸을 태우며 수영하는 바닷가에서의 휴가도 좋지만, 때로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조용히 사색에 잠기는 시간도 현대인들에겐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의 선택에 의해 피서의 방법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으니까.

세월의 이끼 낀 멋스런 기와 아래 계림비각은 조선 순조 3년(1803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육각형의 비각으로 계림의 내력과 김알지의 탄생 설화를 새긴 ‘경주 김알지 탄생기록비(慶州 金閼智 誕生記錄碑)’가 내부에 자리했다. 대석, 비신, 개석으로 이뤄진 이 비석은 영의정 남공철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경주부윤 최헌중이 썼다고 알려졌다. 비각을 둘러싼 야트막한 토담이 예스러워 사람을 자꾸 돌아보게 만든다.

계림은 교촌마을과도 지척이다. 숲을 빠져나와 거길 가려고 하다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를 새긴 향가비(鄕歌碑)와 우연히 만났다. 사전에 어떠한 정보도 없이 마주친 1천300여 년 전 신라의 옛 노래가 기자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젊은 화랑 기파랑의 고매한 품성을 자연에 비유한 향가. ‘삼국유사’에 실린 ‘찬기파랑가’의 서두를 현대적으로 풀어쓰면 이렇다.

‘슬픔을 지우며 나타나 밝게 비친 달이
흰 구름을 따라 멀리 떠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 구절을 조용히 혼잣말로 읊조리자 8월의 무더위를 잊게 해줄 달 환한 서라벌의 여름밤 풍경이 떠올랐고, 무심히 떠가는 흰 구름이 마지막에 가 닿을 곳은 어디인지도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면 계림은 보통 사람을 예술가로 만드는 힘을 가진 숲이다.

육각형의 비각으로 계림의 내력과 김알지의 탄생 설화를 새긴 ‘경주 김알지 탄생기록비’가 있는 계림비각.
육각형의 비각으로 계림의 내력과 김알지의 탄생 설화를 새긴 ‘경주 김알지 탄생기록비’가 있는 계림비각.

◆ 계림의 형태와 속성에 대한 연구도 활성화돼야…

천년왕국 신라의 흥미로운 설화가 깃든 계림은 더위를 피할 최적의 장소이며,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 전설과 신화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여행지다. 가족이 함께 찾는다면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무궁무진할 듯했다.

이와 함께 25종 510개체의 나무가 자라고 있는 계림은 우리가 귀하게 보존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향기로운 숲’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설화의 공간’이 아닌 ‘숲’으로서의 계림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것 같다.

한국조경학회지에 실린 논문 ‘문화재로서 경주 계림 내 생육수목 현황 및 공간정보 구축 연구’(홍석환·안미연·강래열)는 그 아쉬움을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계림의 중요성은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지속되는데, 신라시대부터 신라의 신성한 숲으로 보호되었으며,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듬해 1월 사적으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문화재로 인식돼 왔다. 문화재의 조기 지정은 이 당시까지 숲이 훌륭하게 보전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계림은 문화재 지정 이후 60년 이상을 적극적으로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역사적 숲임에도 불구하고, 지정의 근본적 이유인 숲의 형태와 속성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현재까지 없는 상태이며…(하략)”

역사의 현장이 관광 콘텐츠가 되기 위해선 하드웨어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필요하다. 전설과 신화라는 소프트웨어에 더해 ‘숲에 대한 연구’까지 활발히 진행된다면 계림은 둘 모두를 갖춘 서라벌의 보물로 우뚝 서지 않을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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