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한복판 담장 너머 거대한 능 수십 기… 역사를 품다
시내 한복판 담장 너머 거대한 능 수십 기… 역사를 품다
  • 사진 이용선기자
  • 등록일 2020.07.02 20:13
  • 게재일 2020.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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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④ 대릉원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과 황리단길을 비롯한 인근의 전경. 총 면적은 12만 5천400평에 달하고 신라시대의 왕·왕비·귀족 등의 무덤 23기가 모여 있다.

“벚꽃이 흐드러졌을 때 여기 못 와보셨죠? 아이고, 그때 오셔야 했는데…. 올해는 나라 전체가 바이러스로 난리가 나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내년에 꼭 한 번 다시 오세요. 아마, 풍경에 깜짝 놀라실 겁니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릉원 돌담길로 가는 5분 남짓의 짧은 시간.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 아저씨의 자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이런 게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 대한 자부심일까? 웃음 섞인 그의 이야기가 듣기 좋았다.

난분분 춤추는 벚꽃 잎으로 환히 불 밝히는 봄날의 대릉원 돌담길은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다른 계절의 아름다움이 그것만 못할까. 그렇지 않았다.

장마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일기 예보에 우산을 챙겨 들고 나선 길. 다행히 굵은 빗방울과 만나지는 않았다.

대릉원 후문에서 시작돼 500m쯤을 이어지는 돌담길. 여름날의 대릉원도 봄의 대릉원 못지않았다. 여행자의 취향에 따라선 오히려 인적 드문 길의 호젓함이 더 좋아 보일 수도 있을 듯했다.

‘경주를 경주답게 해주는 최고의 유적’이라 할 고분(古墳) 스물세 기가 높낮이를 달리하며 진기한 풍광을 만드는 대릉원. 그 정취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대릉원 돌담길.

천마총과 황남대총, 미추왕릉은 물론, 철마다 피어나는 갖가지 꽃들이 어우러져 최고의 포토 존을 만들어내는 이곳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서라벌 최고 관광지’ 중 하나다.

벚꽃, 목련, 백일홍이 그 자태를 뽐낸 후에는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여행자를 유혹하고, 날씨가 추워져 눈이 내릴 때면 설경(雪景) 또한 그저 그만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매력이 각기 다른 ‘사계절 관광지’라는 말.

일상을 벗어난 여유로운 오후. 느리게, 아주 느리게 대릉원 돌담길을 걸었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가끔씩 담 너머로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고분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담벼락에 새겨진 여러 편의 시(詩)를 읽으며,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벚나무 수백 그루와 동행했기 때문이다.

 

높낮이 다른 23기의 고분 ‘최고의 유적’

거대한 봉분으로 진기한 풍광을 만들고

꽃·단풍 어우러져 최고의 포토존으로

낭만과 정취 가득한 대릉원 돌담길

담벼락에 새겨진 詩 읽으며 걷다보면

벚나무 수백그루가 그늘 쉼터 되어줘

대릉원 대표 고분 황남대총·천마총…

내부 구경 가능한 유일한 무덤 ‘천마총’

금관 등 유물 ‘가득’… 신라역사 눈앞에

7월 중순이면 대릉원 곳곳에 백일홍이 만개해 관광객을 반긴다.  /경북매일 DB
7월 중순이면 대릉원 곳곳에 백일홍이 만개해 관광객을 반긴다. /경북매일 DB


◆낭만 넘치는 돌담길을 지나 대릉원 입구로



대릉원 후문에서 시작되는 돌담길을 따라 느긋하게 10여 분을 걸으면 주차장에 인접한 정문이 나타난다. 입장권을 판매하는 매표소도 있다. 이쯤에서 대릉원이 어떤 곳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궁금증 해소를 위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신라고분발굴조사단 심현철의 논문 ‘경주분지의 고지형과 대릉원 일원 신라 고분의 입지’ 도입부를 인용한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지역에는 수백 년 동안 무수히 많은 고분들이 축조되었다. 이 중 신라의 최고 지배계층인 왕과 왕족, 귀족들의 무덤은 대단위 토목공사를 통해 완성된 거대한 토목구조물로서 현재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대릉원 일원의 고분군에 대한 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은 이 일대에 조영된 고분의 주 묘제가 적석목곽묘(신라 특유의 양식으로 지하에 구덩이를 파거나 지상에 목곽을 짜 놓고, 사람 머리 크기의 자갈을 덮은 후 그 위에 흙을 입혀 다진 무덤)라는 것과 일부 석실묘, 그리고 그 하부와 주변에 목곽묘, 석곽묘 등이 축조되었다는 점이다.”



시내 한복판에 작은 산처럼 거대한 봉분 수십 기가 솟아있고, 그 아래로 자전거를 탄 관광객과 시민들이 오가는 모습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경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놀라며 감탄사를 터뜨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망설이지 않고 사적 제512호인 대릉원 안으로 들어섰다. 대릉원이란 이름은 ‘미추 이사금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지었다고 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서라벌의 역사를 지켜봤을 나이 많은 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황남대총의 웅장함과 거기서 미추왕릉으로 가는 흙길에서 풍겨오는 초여름 향기를 즐겼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대릉원이 위치한 곳은 1천500여 년 전에도 지금과 같은 묘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천년 역사의 아득한 저편을 떠올리며 걷는 연인 몇 쌍의 표정이 밝고도 진지했다.

대릉원 일대의 유택들은 문자화된 기록(비석 등)이 없어 조성된 시기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다만 출토된 유물들로 미루어 볼 때 대략 서기 4~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크고 작은 벚나무 가로수와 대릉원의 고목이 길 전체를 감싸듯이 우거진 대릉원 돌담길의 모습.
크고 작은 벚나무 가로수와 대릉원의 고목이 길 전체를 감싸듯이 우거진 대릉원 돌담길의 모습.


◆천마총, 고대 고분의 내부를 직접 보는 경험



학업을 마친 후 20년 이상 경주에서 신라의 역사와 유적을 연구해온 한 선배가 “대릉원에 갔다면 천마총을 빼놓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경주시 역시 대릉원 관광의 노하우를 아래와 같이 알려주고 있다.



“12만6천500㎡의 대릉원은 그 규모가 작지 않다. 그중 5만 점이 넘는 유물이 나온 2개의 고분이 쌍봉낙타 등처럼 남북으로 이어진 황남대총과 함께 대릉원을 대표하는 고분이 천마총이다. 옥황상제가 하늘에서 타고 다닌다는 말이 지상에 내려온 듯 상서로워 보이는 천마의 그림, 말다래에 그려져 있던 ‘천마도’가 바로 이 무덤에서 나왔다. 천마총은 내부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덤으로,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꼭 찾아봐야 할 유적이다.”



사실 기자가 천마총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고대를 살았던 신라인의 흔적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설렘과 감흥은 여러 차례 거듭된 방문에도 온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가슴 두근거림을 또 한 번 맛본들 어떠랴.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여행자 세 명이 금관을 비롯한 전시물들 앞에서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들도 시간이 흐르면 역사가 그저 무심히 지나버린 세월만은 아님을 알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천마총의 주인은 누구이고, 어떤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들려줘야 할까?

경상북도가 간행한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제20권 ‘신라의 유적과 유물’을 구해 읽어보라는 답을 들려주면 될 것 같다. 거기 이런 문장이 나온다.



“천마총에선 금관 등이 출토돼 왕릉으로 인식하기도 하였으나, 규모나 여러 양상이 황남대총과 비교할 때 처지는 점에서 피장자(被葬者·무덤에 매장된 사람)를 왕에 버금가는 왕족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황남대총을 중앙에 두고 같은 규모의 고분인 천마총과 90호분이 좌우에 배열돼 있어 피장자가 왕의 동생 등으로 추정된다. 축조 연대는 500년(지증왕 원년) 바로 전쯤으로 판단되고 있다. 단곽식의 적석목곽묘로서 지상식으로 분류되며, 신라 적석목곽묘의 발전상 가장 늦은 단계의 특징을 나타내는 전형적 고분으로 꼽힌다.”

대릉원의 나무그늘 어느 곳에서나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  /경북매일 DB
대릉원의 나무그늘 어느 곳에서나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 /경북매일 DB


◆서양의 묘지처럼 삶을 돌아보는 유의미한 관광지로…



동양 철학자들은 삶과 죽음을 전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삶의 소중함은 죽음을 통해 증명되는 경우가 흔하다.

또한 그들은 ‘삶=빛·죽음=어둠’이란 단순한 이분법적 분리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

그런 이유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죽음이란 삶의 대극(對極)이 아닌 일부’라는 문장에 설득 당해 고개 끄덕인 독자들이 적지 않다.

서라벌 가운데 자리한 대릉원은 현대인의 삶과 고대인의 죽음이 교차하고, 신라 사람의 사라진 꿈과 21세기 경주시민의 비등하는 꿈이 겹치는 공간이 아닐까? 결국 산다는 것과 사라진다는 것, 이 둘 모두는 인간 내부에 똬리를 튼 아주 오래된 욕망들.

이탈리아 로마와 프랑스 파리에도 대릉원처럼 ‘관광지로 역할하는 묘지’가 있다. 지하에 만들어진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무덤 카타콤(Catacomb)과 오노레 드 발자크, 마르셀 프루스트,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등 다수의 예술가가 묻힌 공동묘지 페르 라셰즈(Pere Lachaise)가 그렇다.

1년이면 수백만 명의 여행자들이 찾는다는 카타콤과 페르 라셰즈. 이 사실을 놓고 보면 서양인들 역시 동양인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죽음 곁에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새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해 질 무렵. 대릉원 천마총과 황남대총 위로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15세기 전 죽은 그 옛날 신라인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당신은 짧은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사진 이용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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