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 버스가 정해진 코스로 정해진 시간을 운행하듯 이 패터슨은 하루 하루 비슷한 일상의 행로를 걷는다. 아침이면 도시락을 들고 출근해 정해진 코스로 버스정류장을 돌며 하루의 일과를 마친다.

퇴근 후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과 산책을 하고 동네 주점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반복된다. 우리의 일상이 그렇듯이 패터슨의 일상은 버스의 정해진 행로와 같이 흘러간다. 버스의 승객에서부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까지 별다른 변화없이 흘러간다. 단조로운 반복과 사소한 변주만이 존재하는 일상 속에서 패터슨은 시를 쓴다. 졸린 눈을 부비며 양치질을 하는 순간이거나, 신호 대기 중이던 차안이거나, 일상적인 대화의 행간이거나, 포근한 이불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서 잠들 때까지 뒤척이던 그 순간. 큰 변화없는 일상 속에서 작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반복과 변주를 섞으며 시를 완성해 간다. 예술이, 문학이 생의 격변과 경험, 상처가 표출되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큰 변화없는 잔잔한 일상 속에서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아름다운가 아름답지 않는가라는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은 반복되는 운율을 가진 영화다. 패터슨 시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 패터슨 시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패터슨의 아내 로라가 디자인하는 반복적인 패턴들. 일주일의 생활 패턴이 반복되는 일상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의 운율에 자잘한 변화들이 담긴다. 그날의 날씨와 기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속에 낯선 사람들. 매일 아침 조금씩 다른 자세로 자고 있는 아내 로라의 모습들 속에 작지만 섬세한 일상의 변화들이 감지된다. 일상의 반복되는 운율 속에서 조금씩 달리하는 풍경이 섞여 한 편의 시가 된다. 애초에 짐 자무쉬의 영화에서는 대단하거나 변화무쌍한 사건이 벌어지길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시간과 공간의 반복과 변주의 연과 행으로 이어지는 일상의 시가 존재할 뿐이다. 지루한 것은 지루한대로 나른한 것은 나른한대로, 우리의 하루가 시가 되는 순간을 깨닫게 된다.

영화 ‘패터슨’은 한 편의 시와 같은 구조를 가졌다. 반복되며 점층적으로 쌓아가는 행간과 자잘한 변화를 포착해 연을 나누는 것으로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하고 한 편의 시를 읽은 느낌을 가진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은유와 직유로 표현되는 ‘생활의 재발견’이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던 패터슨의 일상은 금요일부터 조금씩 뒤틀어지기 시작한다. 버스가 고장나는가 하면, 매일 저녁 산책길에 들러 맥주 한 잔을 하던 바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나고, 토요일 아내와 영화 관람을 하고 돌아온 집에서 애완견이 그의 시작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일이 발생한다. 그의 축적된 생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일요일 패터슨이 주로 점심을 먹으며 시를 쓰는 공원에서 일본 시인을 만난다. 패터슨 시의 유명한 시인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시인의 자취를 찾아 패터슨을 찾았다는 그는 “시로 숨을 쉰다”고 말하며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선물한다. 그리고 “텅 빈 페이지는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며 자리를 떠난다.

쌓고 다듬던 그의 작업들이 사라진 이후, 다시 되살아나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일상의 감각들을 보호하는 그의 자세가 놀랍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시간은 행간이 되고, 하루는 연이 되어 완성된 한 편의 시와 같은 영화다. 예술이 일상이 되는 삶이 아니라, 일상이 예술이 되는 과정의 영화다. 예술과 일상의 전환 스위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더디게 자라 눈부시게 반짝이는 ‘일상의 재발견’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문화기획사 엔진42대표 김규형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은 네이버와 구글플레이, IPTV에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