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기자가 만난 경북사람
포항시민과 행복나누고 싶은 공연기획자 신재민

포항에서 느낀 행복감을 양질의 축제와 공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포항문화재단 신재민 팀장.
포항에서 느낀 행복감을 양질의 축제와 공연을 통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포항문화재단 신재민 팀장.

음식이 육체를 살찌운다면, 문화와 예술은 인간의 정신적 키를 키운다.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식은 축제와 공연을 즐기는 게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포항에서 열리는 3가지 대표적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신재민(38) 포항문화재단 축제운영팀장의 역할은 막중하다. 신 팀장은 지난 4년간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좋지 않다. 축제와 공연은 참여자들이 합심해 만들어가는 것인데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이 자리를 함께 하기 어려운 시기가 계속되고 있는 것. 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언젠가는 ‘악질 바이러스’가 물러갈 것이고, 그때가 되면 다시 관객들이 하나 될 축제를 선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민들을 위해 땀과 정성을 쏟고 있는 신재민 팀장을 만나 ‘포항의 축제’와 ‘지속돼야 할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동대 공연기획동아리서 영어뮤지컬로 시작
군 제대 후 이야기콘서트 기획으로 첫발 내딛어
극단 ‘미추’ 단원·미국 한인라디오 PD까지 섭렵
GS칼텍스 재단·정동극장 경주사무소 거치며
대기업 재단서의 다양한 경험 업무적 자산으로
4년전 포항문화재단 축제운영팀과 인연 맺어
불빛축제·스틸아트페스티벌 등 진행해 와
“코로나 해소되면 최고의 순간 선사해 줄 것”

각종 축제와 공연 교육 현장에서 동분서주하는 신재민 씨.
각종 축제와 공연 교육 현장에서 동분서주하는 신재민 씨.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1982년 신탄진 출생이다. 2000년대 초 한동대에 입학하면서 포항과 인연을 맺었다. 공연영상, 언론정보, 경영학을 공부했다. 현재 포항문화재단 축제운영팀장으로 일하며 포항국제불빛축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호미곶한민족해맞이축전을 기획·운영 중이다.

-공연기획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언제인가.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공연기획학회’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고 들어가 영어 뮤지컬 공연 스태프로 참여했다. 그게 현재 내 모습의 시작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연기획학회장이 됐고, 이야기가 있는 콘서트 ‘소소한 일상’을 무대에 올렸다.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조명과 영상을 외부 업체 맡기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덕분에 대학생활이 ‘불꽃처럼’ 바쁘고 뜨거웠다.

-‘미추’라는 유명 극단에서도 일을 했는데.

△2009년 들어가 생애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온라인 홍보와 공연장 운영 담당을 맡은 기획실 막내로 일했다. 연출가 손진책과 김성녀 등에게서 어떤 자세로 인생과 예술을 바라봐야 하는지 배웠다. 마당놀이 ‘이춘풍 난봉기’ 공연이 떠오른다. 40회 공연에 2만 명의 사람들이 몰렸다. 관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몸으로 익힌 순간이었다. 어르신 관객이 건네준 엿 한 가락의 맛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

-미국에선 라디오방송 PD를 했다고 들었다.

△‘영어에 대한 장벽을 깨보자’는 현실적인 이유로 미국 한인라디오 방송국에 1년간 다녀왔다. 교양·예능 프로그램 제작과 진행을 했다. 그때 라디오라는 매체의 매력에 빠졌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조수미, 송해, 시애틀 상·하원의원 등과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잊을 수 없는 일은 가수 정훈희를 만난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 ‘꽃밭에서’를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다.
 

-GS칼텍스재단과 정동극장 경주사업소 등도 거쳤는데.

△운 좋게도 대기업 재단에서 지역사회 공헌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아트센터 홍보 담당자로 일할 수 있었다. 극장의 구조와 운영까지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다. 지금도 지역 아트센터 중 우수 사례로 꼽히는 ‘여수문화예술공원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일한 기억은 소중한 경험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역 아트센터는 관광형 상설공연 있어야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동극장 경주사업소는 양질의 관광형 상설공연을 진행한 곳이다. 거기서 세월호, 메르스, 경주 지진까지를 겪으며 관광형 상설공연의 명과 암을 체험할 수 있었다. 축제 기획, 해외 공연, 티켓 판매, 예술교육까지 다양한 부분을 경험한 것이 업무적 자산이 돼주고 있다.

-참여한 공연 중 잊을 수 없는 공연은 뭔가.

△2017년 이란 테헤란에서 진행한 넌버벌 퍼포먼스(대사 없이 몸짓만으로 진행하는 예술행위) ‘바실라’다. 이란에서의 공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출발 한 달 전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해 연습 장소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종교적 이유로 여성 무용수가 무대에 설 수도 없었다. 이란은 계좌이체와 카드 결제가 불가능해 대관료 입금에도 문제가 있었다. 수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공연장을 찾아 기립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는 이란 관객들을 보며 준비 과정의 고통을 다 잊었다. 무용수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이란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포항문화재단으로는 언제 왔는지.

△4년 전 봄이다. 14회 포항국제불빛축제가 펼쳐지기 100일 전에 입사했다. 포항문화재단 축제운영팀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축제 브랜딩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한국의 축제는 대부분 이름만 다를 뿐 콘텐츠는 획일화 돼 있다. 지속적인 브랜딩에 대한 시도가 없었던 탓이다. 그런 이유로 상당수의 지자체 축제가 유사하다.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시민들과 어우러지는 즐거운 경험을 쌓고 싶어 포항으로 왔다.

-당신이 맡고 있는 포항의 축제는 어떤 것들인가.

△포항국제불빛축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호미곶한민족해맞이축전을 우리 팀이 진행한다. 불빛축제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테마로 포항의 자부심을 담은 축제다. 대형 마리오네트(관절 인형)를 내세운 퍼레이드와 한국 최대 규모의 불꽃 연출을 만날 수 있다. 스틸아트페스티벌은 산업자원인 철에 예술의 따스한 감성을 담아낸 순수예술제다. 스틸아트 작품들과 통합예술교육 프로그램, 스틸 크루즈 투어 등으로 내실 있게 진행할 예정이다. 한민족해맞이축전 역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호미곶에서 펼쳐질 감동의 한마당이 될 것이라 믿는다.

-포항으로 와서 일하며 기억에 남은 순간은.

△이곳으로 오면서 눈물이 많아졌다. 개인적으로 공황장애의 고통까지 감내하면서 일했던 걸 잊을 수 없다. 지난해 불빛축제 때 ‘돌아가신 할머니와 하늘나라로 떠난 아버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불꽃쇼를 만들어 달라’는 한 시민의 사연을 전해 들었다. 약을 먹어가며 축제장을 지켰는데, 마지막 순간 불꽃이 터질 때 나 또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슬픈 불꽃은 처음이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와 공연이 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문제가 해소되면 포항에선 어떤 공연이 열리게 되나.

△올해는 포항문화재단 구성원 모두가 고생해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불빛축제도 그렇고, 스틸아트페스티벌도 그렇다. 해외의 새로운 빛 콘텐츠를 가져오기 위해 자비로 프랑스도 다녀왔다. 루마니아, 프랑스 등 해외 빛 아티스트와 연결돼 그들이 포항에 오기로 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참여가 어렵다는 의사를 밝혀와 너무 안타깝다. 그래도 묵묵히 축제를 준비 중이다. 일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불빛축제가 시작되면 영일대해수욕장을 낭만의 공간으로 바꿀 것이며, 우리가 잘 아는 게임 속 한 장면이 불꽃으로 연출되는 순간도 준비해뒀다. 현대음악과 빛, 그리고 기술이 접목된 프로그램과 포항 스틸아트의 진면목을 보여줄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시민들이 소중한 사람과 더불어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할 것이다.

 

-조금은 추상적 질문이다. 인간에게 ‘공연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문화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채워주며, 나와 주변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바쁜 일상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진실한 감정을 찾아낼 수 있다.

내가 문화 관련 일을 하는 이유는 두 딸에게 줄 수 있는 작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축제 준비를 하다보면 딸들과 보낼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아빠가 준비하고 모두가 함께 하는 축제는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공연기획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내가 저기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심장이 뛰는 직업을 가지려면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어야하지 않겠나. 시간과 돈을 투자해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항상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포항은 내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준 도시다. 지금까지 행복한 일을 하며 가족도 부양하고 있으니 행운이 아닌가. 이젠 내가 받은 행복과 행운을 포항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공연기획자를 꿈꾸는 후배들이여!

‘ 내가 저기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심장이 뛰는 직업을 가지려면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있어야하지 않겠나. 시간과 돈을 투자해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항상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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