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오래된 습관이다. 신문을 읽고 스크랩하는 일이. 대학생 때부터 시작된 습관이 삼십여 년 계속되고 있다. 이른 새벽, 배달되는 두 신문을 비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신문읽기는 나를 변화시킨 혁명이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신문을 통해 해결하였고 문제의식도 신문을 통해 키우게 되었다. 공적 권위를 지닌 신문에 기사화된 사실 이면에 무엇이 과연 진실인지, 동일한 사건조차 다르게 해석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질문했다. 신문읽기 습관은 ‘왜’ 공부를 하려고 하고 어떤 공부가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대학에서 ‘글쓰기’와 ‘토론’과목을 가르치며 신문을 활용한 교육을 하고 있다. 수업 주제와 관련해 스크랩했던 칼럼을 함께 살펴보거나 그날의 중요 이슈로 논의를 시작하곤 한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일 읽기를 실천할 수 있는 쉬운 습관이 신문읽기임을 강조한다. 토론을 하려면 ‘지금 여기’ 뜨거운 이슈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또 쟁점을 잘 이해하려면 성격이 확연히 다른 신문들을 비교해 읽으면 도움이 된다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신문은 ‘모자이크적이며 참여적’이다. 먀셜 맥루언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신문이 “공공의 참여를 제공하는 집단적 고백의 형태”라고 하였다. 사설만 보더라도 주제나 방향이 회의를 거쳐 결정되고 기사는 기자들이 발로 뛰며 취재한 공동 작업이기도 하다. 신문의 각종 지면은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매일 시끄럽게 쏟아낸다. 결국 신문을 읽는 일은 외부세계를 자신의 삶으로 옮겨놓는 과정이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일이자 공동체의 문제라는 점을 신문읽기를 통해 인식하게 되는 일이다.

신문의 활자를 ‘읽는’ 일은 스크린을 ‘보는’ 것과 다른 맥락에 있다. 신문읽기는 행간을 파악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신문이 사실상 정치권력과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신문이 어떻게 편집되고 유통되고 있는지 꿰뚫어보는 독자의 시선은 중요하다. 따라서 사회 현실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깨어 있는 시민은 유튜브 소비자가 아니라 지금도 신문을 읽는 독자다. 그들은 날마다 신문을 통해 문제의식을 새롭게 갖고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비판적 시선을 내려놓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경북매일신문과의 인연을 생각해 본다. 독자로서 신문을 읽는 것을 너머 신문에 칼럼을 쓰는 저자로서의 기쁨을 누렸다. 종이신문을 꼼꼼히 읽는 습관 덕분에 신문이라는 매체에 글을 쓰는 부담은 덜했지만,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앞서는 두려움도 있었다. “성장하는 영혼이 세상을 성장시킨다”

‘청파서재’ 코너의 문을 닫으며 다시 마음에 새기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세상이 나아지게 하는데 쓰임이 되고 싶다는 바람, 나를 통과한 말과 글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다가갔으면 하는 소망이, 여전히 있다. 신문을 읽으면서 또 신문에 글을 쓰면서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생각을 나누는 길에 함께 해주신 경북매일신문의 독자들에게 굿바이 인사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