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패, 말과 삶의 결을 새기다
문패, 말과 삶의 결을 새기다
  • 등록일 2020.01.21 19:45
  • 게재일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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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문패가 사라졌다.

1970~80년대만 하여도 집집마다 철문이나 나무문의 기둥에 문패가 걸려 있었다. 지방은 어땠는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서울의 주택가 골목골목에는 집주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문패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웃하여 살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조선 말기 우편제도가 발달하고 편지의 내왕이 빈번해짐에 따라 문패는 꼭 있어야 할 필수품이 되었고 1897년경에는 집집마다 문패를 달도록 법으로 정하기까지 하였으며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하여도 가끔 문패달기를 사회계몽운동으로 벌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골목길을 헤매다 지인의 이름이 적힌 문패를 찾아내었을 때, “잘 찾아 오셨네요. 나 여기 있어요.”하며 반기는 듯한 문패는 그 자체로 집주인의 대체물이었고, 찾은 이에겐 적잖은 기쁨이었다. 아주 드물게 두 개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문패를 발견하였을 때는, 그 집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나 혈육의 돈독한 정을 엿보는 듯하여 마음 한 켠이 반짝, 환해지기도 하였다.

그런데 동네 골목에서 언제부터인가 문패가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 대신 주소만 적힌 작은 양철판이 문기둥을 벗어나 대문 한 귀퉁이에 부착되었다. 그러다가 도시 농어촌을 가릴 것 없이 하늘을 찌르는 듯한 아파트가 솟아올라오면서부터는 주소를 적은 이 작은 판마저 떨어져 나갔고 여러 겹 안전장치로 무장한 아파트 현관문 밖에는 층수와 호수가 덩그마니 적힌 숫자판이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이제 ‘이 아무개’씨라는 이름이 아닌 ‘190X호 사장님, 60X호 아기엄마’라는 호칭과 지칭으로 살아간다. 앞집, 아래윗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된다. 위층에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정겹다고? 퉁탕거림을 듣는 게 고역이다. 아랫집에 위대한 피아노 연주가가 산다는데 뿌듯하지 않냐고? 초저녁잠 방해받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층간 소음, 담배 연기로 다툴 일이 없다면 그걸로 족하다. 문패가 사라지자 이름이 없어지고, 얼굴이 가려지고, 인정이 증발하였다.

‘달골말결’이라는 이름을 새겨 이 글자리 문패를 걸었다. 어렵단다. 뭔 말인지 머리에 쏙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한자로는 ‘월곡언문’(月谷言紋)이 된다. ‘월곡’은 내가 나가는 대학이 있는 동네 이름이다. ‘글월’과 ‘무늬’라는 뜻을 가진 文을 써서 ‘言文’으로 적을까 하다가 무늬 紋을 써서 ‘言紋’이라 하였다. 이를 풀어쓴 게 ‘달골말결’이다. 내가 가르치는 ‘독서, 글쓰기, 말하기’ 등의 교과목은 인문학의 기초이자 세상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것들이다. 나는 인문학을 사람의 무늬, 사람의 결을 다루는 학문으로 여긴다. 많은 이들이 인문학을 배고픈 학문, 위기의 학문이라 하지만 사람의 결을 곱게 하고 가다듬는 학문이라는 사실이 배고픔을 잊게 하고, 위기 상황을 견뎌내게 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생활의 무늬, 삶의 결을 그려나가고 보여준다. 내 생활의 무늬는 아름다운지, 내 삶의 결은 가지런한지, 내 말과 글을 살펴본다.

내 문패를 달고 나니, 결 고운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따뜻한 그 얼굴을 보고 싶다. 집집마다 걸려있던 문패가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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