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의 멋과 맛, 그리고 사랑
강릉에서 삼척·영덕·포항·감포 대왕암까지
⑴ 역사도시 강릉에 가보니

▲ 감자 가루로 옹심을 빚어 만들고 있는 강릉 감자 옹심 식당 주인 김순자씨.
▲ 감자 가루로 옹심을 빚어 만들고 있는 강릉 감자 옹심 식당 주인 김순자씨.
강릉(江陵)시청은, 스스로 `솔향(松香) 강릉`이라 부르고 있다. 영어 명칭은 `파인·시티(Pine City)`라나….

정녕 소나무 우거진 도시다. 가로수는 물론, 시내 곳곳에 소나무공원이 즐비하다.

조선조(朝鮮朝) 성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강릉의 당시 이름은 `강릉대도호부`로, `철국(鐵國)` 또는 도원경(挑源京), 북빈경(北濱京)이라고 불렸다 한다. 도원경은 `이상적인 아름다운 서울`, 북빈경은 `북쪽 바닷가의 서울`을 가리킨 명칭으로, 당시의 선비들이 강릉을 크게 칭송했음을 짐작케 된다. 강릉은 일찌기 이상향(理想鄕)이었던 셈이다.

초당두부, 김치와 먹으면 환상의 콤비
순두부 청국장·감자옹심 명품 먹거리
사임당·율곡 출생 `오죽헌` 잘 보존돼
커피농장·커피박물관 색다른 볼거리

강릉이 당시 철국(鐵國)이라 불렸던 것은 이 고장에서 무쇠가 캐지고, 제철(製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강릉에서 철광석이 발굴되었던 것이다. 고대의 무쇠는 보물이었다. 무쇠를 가진 자가, 권력을 차지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생선이 풍성하게 잡히는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무쇠까지 캐지니, 당시의 강릉은 `이상향(理想鄕)`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을사람들의 인심도 좋았다.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 대목의 풍속편에, 고을 사람들은 성실하여 욕심이 적어, 청탁하거나 구걸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삼(麻)을 심고 누에를 치며, 옷감도 만든다고 덧붙이고 있다. `학문을 숭상하여 다박머리 때부터 책을 끼고 스승을 따른다. 게으름 부리는 자는 여럿이서 함께 나무라고 꾸짖는다`고도 쓰여져 있다. `노인을 공경하여, 좋은 계절을 맞이하면 나이 70세 이상 된 노인을 청하며 경치 좋은 곳에 모셔 위로한다….`고도 적고 있다.

 

▲ 이영희 교수
▲ 이영희 교수

토산품도 풍성하게 소개해 놓았다. 모시·활을 만드는 뽕나무, 잣, 오미자, 송이버섯, 인삼, 벌꿀, 소금, 미역, 김, 해삼, 전복, 문어, 방어, 대구어, 연어, 도로묵 등등.

`소금`을 만든다는 데 눈이 번쩍 뜨인다. 그 옛날, 강릉 바닷가의 어디서 소금을 만들었을까. 강릉은 아주 개화된 고을이었던 것이다. 무쇠와 소금은, 고대 정부의 으뜸가는 귀중품이었다.

일찌기 `경호(鏡湖)`라 불린 경포대(鏡浦台) 소개도 소상히 하고 있다. 조선조의 태조(太祖)와 세조(世祖)는 감탄하며 순행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 때 울릉도(당시 `우산국`)을 합병했을 당시, 가짜 사자 여러 마리를 만들어 배에 싣고 가 “항복하지 않으면 사자를 섬에 풀어 죽이겠다”고 협박, 항복을 받은 이사부(異斯夫)의 일화도 덧붙이고 있다.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 때의 일이다. 강릉은 역사적 인물의 풍성한 산지(産地)이기도 했다. 우선, 우리나라 여성 특히 어머니들의 사표(師表)가 되는 사임당(師任堂·1504~1568) 신씨(申氏)가 태어난 고장이요, 그의 아들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현재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오죽헌(烏竹軒)은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율곡도 탄생한 고옥(古屋)으로 보물 제165호로 삼아져 보존되어 있다. 신사임당이 그린 그림과 수예품을 비롯하여 일용품까지 여기에 알뜰히 모아 전시하고 있다.

▲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아들이요, 조선조 중기의 대학자·정치가인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동상이 강릉 오죽헌(烏竹軒) 안에 세워져 있다. 동상 뒤에는 유난히 검푸른 소나무 숲이 싱싱하게 우거져 있어 `오죽헌`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율곡 동상 앞에선 이영희 교수.
▲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아들이요, 조선조 중기의 대학자·정치가인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동상이 강릉 오죽헌(烏竹軒) 안에 세워져 있다. 동상 뒤에는 유난히 검푸른 소나무 숲이 싱싱하게 우거져 있어 `오죽헌`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율곡 동상 앞에선 이영희 교수.
신사임당은, 5만원짜리 고액 화폐에 그려진 인물이다. `신사임당`하면, 5만원권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있기도 하다. 신사임당의 5만원권에 앞서 만들어진 1천원권의 인물상은, 아들 율곡의 얼굴이다. 놀랍게도 어머니와 아들이, 조폐공사가 만든 우리나라 화폐에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이다.

화폐에 이들 모자(母子)를 그린 화가는 이종상(李鍾祥)씨. 초대 서울미술관장을 지냈다. 오죽헌 안에는 5만원권을 커다랗게 촬영, 비치해 놓은 코너가 있다. 신사임당의 얼굴 부분만 도려내어져 있어, 그 얼굴 부분 뒤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5만원권의 주인공`이 되도록 꾸며 놓은 것이다. `여러분도 화폐의 인물이 되어 보세요`란 글이 5만원짜리 지폐 사진 위에 쓰여져 있다.

간수 대신 바닷물 넣어 만드는 초당두부

강릉 향토 음식의 명품으로 손꼽히고 있는 것은 두부요리이다. 특히 `초당 두부`가 유명하다. 강릉 바닷물을 간수로 써서 만든 두부 요리이다.

강릉 출신, 조선 때,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許筠)의 아버지 허엽의 호는 `초당(草堂)`이었다. 조선조 광해군(光海君) 때, 당파 싸움의 화를 입어 강릉 바닷가로 피해 온 허엽은 강릉산(産)의 콩으로 두부를 만들게 된다.

두부를 만들자면 간수가 필요하다. 그러나 바닷가에선 간수를 구할 수가 없었다. 콩 즙(汁)에 간수를 넣어야 두부가 만들어지는데, 간수가 없으니 궁리 끝에 간수 대신 정갈한 바닷물을 콩 국물에 넣어봤더니 콩즙(汁)이 잘 굳어지고, 맛있는 두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 후, 강릉(江陵) 산 두부는 간수 대신 신선한 바닷물을 써서 만들게 되었다 한다. 그 연유로 강릉산(産) 두부는 바닷물을 간수 삼아 쓰는 `초당 두부`라 일컬어지게 되었고, 지금도 초당마을의 명산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두부에도 단점이 없지않다. 비타민A 성분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두부를 먹을 때는 비타민A와 비타민C까지 함유한 당근을 함께 넣어 조리하면 좋을 것이라 한다. 김치 역시 비타민A와 비타민C가 풍부해, 두부와 김치는 환상의 콤비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낙지 순두부 전골과 청국장이 어우러진 정식이 요즘 강릉 사람의 미각(味覺)을 자극하고 있다. 8천원에서 1만3천원까지. 낙지만이 아니라 강릉바다에서 잡히는 각종 생선도 순두부·청국장과 함께 다양하게 식탁에 오른다.
▲ 낙지 순두부 전골과 청국장이 어우러진 정식이 요즘 강릉 사람의 미각(味覺)을 자극하고 있다. 8천원에서 1만3천원까지. 낙지만이 아니라 강릉바다에서 잡히는 각종 생선도 순두부·청국장과 함께 다양하게 식탁에 오른다.
순두부 청국장도 강릉 명품 요리

순두부를 곁들인 청국장도 강릉명산 음식의 한가지이다. 점심시간에 200여명의 고객을 맞이한다는 `차현희 청국장` 가게를, 강릉시청 관광과의 소개를 받아 찾아갔다. 가게 주인 차현희씨는 늘씬한 키의 미인이다. 순두부를 썰어넣은 청국장과 세가지 생선구이, 생두부 김치와 미역무침, 강릉 콩잎무침 그리고 막걸리 한병까지 곁들인 점심 밥상이 딱 벌어지게 펼쳐진다. 1인당 1만3천원.

 

▲ 가게 주인은 건강미 넘치는 차현씨. 이 가게 청국장은 `특허품`이라고.
▲ 가게 주인은 건강미 넘치는 차현씨. 이 가게 청국장은 `특허품`이라고.

막걸리 한병 값이 3천원이니, 이 진수성찬 1인분 가격은 1만원인 셈이다. 결코 저렴하지 않다. 그래도 발디딜 자리가 없다.

가게 옆에 덧붙여 지은 순두부 제조공장은 가히 목욕탕급이다. 특허번호 10-0834719호. `강릉순두부`의 미래는 마냥 밝다고나 할까. 미인이 활짝 웃고 인사했다.

▲ 감자 옹심(아래쪽 왼편)과 감자 쑥떡(위쪽 왼편) 한상차림. 맨 오른쪽은 막걸리.
▲ 감자 옹심(아래쪽 왼편)과 감자 쑥떡(위쪽 왼편) 한상차림. 맨 오른쪽은 막걸리.
강릉 특산 감자 옹심의 쫄깃한 맛

강릉시 토성로 171번지에 자리한 감자옹심 가게도 성업중이었다. 강릉 특산의 감자를 생강과 함께 빻아 반죽한 다음, 옹심으로 만들어 쪄서, 육수물에 끓여 먹는 강원도 특산 음식이다. 만두처럼 쪄서 먹는 감자 송편도 쫄깃하여 맛있다.

감자 옹심국 한사발에 8천원, 감자 송편 13개에 4천원, 막걸리 한사발에 5천원이다. 오후 3시가 되었는데 발 디딜 자리가 없다. 81세의 주인 김순자씨는 30년째 딸과 함께 가게를 꾸려왔다 한다.

손님 방과 이웃한 부엌 옆방에서 종일토록 옹심 빚는 작업에 분주하다. 고향의 토산품으로 고향 음식을 평생 만들어온, 그 팔순의 손이 아름다왔다.

 

▲ 강릉시 왕산면 왕산로에는 국내 최초의 상업용 커피 생산농장이 있다. 농장 안에 있는 커피박물관은 열대지방 작물인 커피 나무를 실제로 접하고, 커피가 되는 모든 과정과 커피의 역사를 살피는 체험형 박물관이기도 하다.
▲ 강릉시 왕산면 왕산로에는 국내 최초의 상업용 커피 생산농장이 있다. 농장 안에 있는 커피박물관은 열대지방 작물인 커피 나무를 실제로 접하고, 커피가 되는 모든 과정과 커피의 역사를 살피는 체험형 박물관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의 커피 농장·박물관이 강릉에

국내 최초의 커피 생산농장에서 커피 열매가 열리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로 2171-19 산중에 있는 이색 농장이다. 커피 뮤지엄도 있고, 커피 식물원에서는 빨간 커피 열매가 열리고 있다. 아주 신기하다. 커피나무도 처음 만나게 되고, 빨간 커피열매도 처음 본다. 커피열매가 새빨간 작은 공 모양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 커피박물관 온실 안에서 자라고 있는 커피나무에 열매가 빨갛게 열렸다.
▲ 커피박물관 온실 안에서 자라고 있는 커피나무에 열매가 빨갛게 열렸다.

커피박물관에서는 각양각색의 커피 도구와 만나게 되고, 신기한 커피의 역사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사람이 19세기초의 고종황제라든가하는 일까지 알게 되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커피잔 셋트가 많은 데도 놀라게 된다.

아무튼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되는 것은 더욱 고마울 일이다.

글·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사진·하홍걸 작가

    이영희(작가·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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