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람
80대 `나눔천사` 채옥순 할머니

▲ 지난 9일 폐지를 모아 후원금 100만원을 포항시니어클럽에 전달한 채옥순 할머니. 그는 “어찌 알고 며칠 전에 머리도 까맣게 염색했는데. 늙은이 예쁘게 좀 찍어줘”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아~참아야 한다기에~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지난 15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 채옥순(83·남구 해도동) 할머니는 가수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을 부르며 흐르는 눈물을 휴지로 닦았다. 그는 “아유~ 요즘 눈물, 콧물이 내 맘대로 조절이 안 돼. 요 휴지를 손에 달고 산다니까”라며 “옛날엔 노래도 참 간드러지게 잘 불렀는데. 이제는 목이 많이 녹슬었제…”라며 너스레웃음을 보였다.

3평 남짓 방안은 `냉골`
발에 맞는 신발 없어도
폐지 모아 판 돈으로
3년간 수백만원 지원

`나보다 더 어려운 형편에 처한 사람들을 돕자`는 일념 하나로 폐지를 모아 온 채옥순 할머니가 올해도 이웃을 위한 온정을 더했다.

2013년 포항시장학회 후원금 전달을 시작으로 지난해엔 홀몸노인 200명에게 가래떡 200㎏을 전달했다. 지난 9일 한 해 동안 폐지 모은 돈 100만원을 포항시니어클럽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어느새 `나눔 천사`활동 3년째다.

황정애(53·남구 해도동) 독거노인생활관리사는 “할머니 발에 맞는 신발 한 켤레조차 없고 속옷 한 벌도 제 돈으로 안 사시는 분이다.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마스크 하나도 구입하지 않으시는 분이 매년 어려운 사람들 도우시는 것 보면 마음이 짠하다”며 “방이 냉골인데 보일러도 켜지 않아 내가 신혼 때 장만해 온 이불을 갖다 드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3평 남짓한 할머니의 방 안은 바깥 공기와 다르지 않았고 발바닥으로 냉기마저 온전히 전해졌다. 마주잡은 할머니의 두 손 끝엔 차가움이 맺혀 있었다. 바닥엔 얇은 담요부터 두꺼운 이불까지 겹겹이 쌓여 있고 할머니가 앉아 있던 자리 주변으로만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주위로부터 매번 도움만 받아 항상 미안한 마음이 컸제. 요 따뜻한 분홍색 조끼도 박승호 전(前) 시장님이 주신 것인데 덕분에 올겨울도 따뜻하게 날 수 있었지. 시장님이랑 찍은 사진이 여기 어디 있을텐데…”라며 불편한 허리를 이끌고 장롱을 뒤졌다.

허리가 구부러져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매일 유모차를 이끌고 집 밖을 나선다. 무료급식소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 뒤 동네를 돌며 폐지를 모으고 헌 신발이나 헌 옷, 버려진 장난감 등을 줍는다.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손바닥 크기의 작은 가방을 들고 나타난 할머니는 `보물상자`라고 소개하며 조심스레 입구를 열어 보였다. 가장자리에 손때가 묻어 그림이 닳은 화투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깼을 때, 요 녀석만큼 무료함을 달래주는 것도 없지. 얼마나 갖고 놀았는지 요즘엔 손끝이 따끔따끔 하다니까”라며 웃었다.

/김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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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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