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예술이 넘쳐 흐르는 `문전성시` 장터

스토리가 있고 사람 냄새가 나는 예술시장, 대구 중구 대봉1동 방천시장.

수성교 방천을 따라 이어진 시장에는 문학이 있고 노래가 있고 사진 예술이 있으며 색소폰연주, 주말 무료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는 길을 잘못 들어섰나 싶을 정도로 시장 아닌 시장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곳이다.

해방 직후 해외에서 떠돌다 돌아온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모여든 방천시장은 한 때 점포만도 1천여 곳이 넘는 대구의 3대 시장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60여 상인이 예술가 10여명과 함께 장사와 예술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시장 문화를 시험하고 있는 예술 체험과 삶의 현장이다.

전국 최초로 예술가와 시장상인이 어울리는 문화공동체

어릴적 김우중·김광석·양준혁의 `스토리텔링`으로 유명

■예술의 옷을 입은 전통시장

폐 컴퓨터 본체 케이스로 만들어진 입구에서 금은방과 노점, 참기름집, 고추가게, 옷가게, 튀김가게, 채소점, 할머니 생선가게, 반찬 판매점 등 일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에서 재래시장에 온 느낌을 받으면서도 시장 바닥을 장식한 문전성시 로고에서 기존의 전통시장과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고개를 들어보면 천장에 만국기처럼 나부끼는 1960~70년대 풍경과 시장 상가 주인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이 반기고 문전성시 사무국이 있는 원두막으로 방향을 틀면 기타를 치는 김광석이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을 맞으며 예술가 아틀리에 상점 등도 예술시장의 면모를 드러나게 한다.

문전성시는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의 활성화 시범사업`의 약자로 최근 2년여에 걸친 사업결과 방천시장에는 여러 공방에서 예술을 체험하고 스탬프를 10개 받아오면 천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나눠주는 `방천시장 스탬프 투어`까지 실시하게 됐다.

여기에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캐리커처, 커피교실, 도자기 핸드페인팅 체험, 만화캐릭터 소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거리가 도처에 깔려 있어 쇼핑과 예술을 체험하면서 벽화를 공짜로 관람하는 기회까지 주고 있다.

이로 인해 방천시장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예술가와 시장상인도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는 문화공동체라는 사실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됐고, 전국 각지 상인들의 부럼움을 사고 있으며 최근들어 유명세를 톡톡히 누리는 시장이 됐다.

반찬가게 왼쪽에는 화백이 직접 유화를 그리고 작품을 전시하는 작업미술관이 있고 생선가게 오른쪽은 상감공예가의 공방이자 전시장이 자리하며 건너편은 사진 갤러리에다 한 블록 건너서는 초등학생들이 공방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그 옆에는 과일가게, 그 앞쪽으로는 메주가 햇빛을 받아 마르고 있는 등 방천시장은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나는 냄새가 그대로 풍기는 시장으로 이곳의 방문객들은 노천 갤러리에 왔다는 착각을 불러일으게 만들기도 한다. 방천시장은 1945년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직후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 돌아온 이들이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장사를 시작하면서 처음 생겨났고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이곳을 생활 터전으로 삼으면서 본격적인 시장형태를 띠게 됐다.

■지역 최대 곡물시장의 명암

방천시장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1천여곳의 상점이 들어서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함께 대구 3대시장에 속했다.

그 당시 10t, 8t짜리 트럭 10여대가 매일 경산과 고산, 청도는 물론이고 호남의 나주, 익산(구 이리) 등 전국에서 쌀을 비롯한 곡물을 실으려고 드나들었던 지역 최대의 곡물시장으로 서문시장은 그다음 순위에 속할 정도로 번성했다.

신범식 방천시장상인회장은 “박현미 예술가 상인의 `사다의 손느낌`이 자리한 2층집은 원래 방천시장 전화번호인 2932번의 전화교환소였다”면서“50~60년대에는 10여명의 교환원이 빼곡히 들어앉아 대표 전화로 걸려온 전화를 각 상점으로 연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전했다.

아쉽게도 현재는 장식이·천양자씨 부부가 1940년대 문을 열어 가장 오래된 양곡점인`천화상회`를 비롯한 6곳의 곡물점만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고 고추와 참기름 등 농산물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지역 최대의 싸전과 떡전이 있었던 방천시장이 힘들어진데는 지난 1980년대 달구벌대로와 신천대로가 들어서면서 인근에 대백프라자와 동아쇼핑 등 대형상가의 진출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주변의 칠성시장, 번개시장, 남문시장, 서문시장 등의 번영이 그 다음으로 영향을 미쳤다.

결국 방천시장을 살리기 위한 `문전성시`와 `별의별 시장`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곳 상인은 하나둘씩 이곳을 떠나 겨우 30여명만 남았고 그나마도 생활정보지에 자신의 상가를 매물로 내놓을 정도로 어려운 상태였다.

지난 2009년 11월 1차 방천시장 문전성시프로젝트 시작과 함께 지난해 6월까지 모두 8개월에 걸친 활성화 사업, 별의별 시장 프로젝트 등을 실시한 결과 현재는 일반상인 60여명과 예술가 상인 17명 등 모두 80여명의 상인이 6천600㎡의 터에 골목길을 따라 점포 130여곳에 포진해 있는 곳으로 변했다.

■김우중과 고 김광석, 그리고 양준혁

또 지자체와 예술단체가 얼마나 투자와 관심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전통시장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방천시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이곳에서 신문팔이를 했고 번개전파사 아들 김광석이 다섯 살때까지 머문 고향이었으며 전 삼성라이온스 프로야구 선수인 양준혁씨의 아버지가 가방장사를 했던 곳이었기에 양씨가 어릴 때 뛰어다니며 놀던 곳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멤버로 지난 1996년 32살의 나이로 짧은 삶을 마감한 고 김광석이 이곳 방천시장에 주인공처럼 자리를 잡고 부활하고 있다.

방천시장 문전성시 사무국앞에서 신천대로 담벼락을 따라 200m 정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나있다.

기타를 치고 있는 김광석을 비롯한 환하게 웃는 김광석, 이등병 모자를 쓴 김광석, 전봇대에 기댄 김광석이 벽화속에서 노래가사와 함께 방천시장을 찾는 이들을 반기며 7080세대들에게 추억의 길로 인도한다.

올 들어서는 전국의 김광석 팬클럽 회원이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꾸준히 방문하고 있고 대구 골목투어객, 체험학습 학생 등을 합쳐 하루 평균 50여명 이상은 꾸준히 찾는 곳으로 변모했고 쇼핑을 하면서 예술체험도 하고 벽화까지 덤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전국의 명소로 성장했다.

방천시장의 한 상인은 “문전성시와 별의별 시장 프로젝트로 인해 방천시장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로 인해 적지 않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이들 골목투어객이나 체험학습 등의 방문객들이 시장의 판매와 활성화로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이번 주말 돈 들여 멀리 가는 여행보다 자녀들을 데리고 자투리 시간 이용해서 도심속의 작은 야외 미술관인 방천시장으로 떠나 보는 건 어떨까.

/김영태기자 piuskk@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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