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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망명 정부의 도시 ‘다람살라’

인도 북부 히마찰프라데시 주의 도시 다람살라. 히말라야 산맥 캉그라 계곡에 위치한 이곳에 1950년 중국의 침략·점령 이후 1959년 망명해온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인들이 이끄는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다. 다람살라는 티베트 망명 정부가 들어서 있고 티베트인들이 주로 거주하며 달라이 라마의 거처가 있는 윗동네 맥그로드 간즈와 주로 인도인들이 거주하며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한 아랫동네로 나뉜다.‘작은 티베트’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엔 티베트 요리를 파는 식당을 비롯 티베트 도서관, 박물관, 병원, 그리고 티베트 수도 라싸 현지에 남겨져 중국의 관광지가 된 코라 순례길, 역시 티베트 수도 라싸에 위치한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 노블링카, 네충 사원, 남걀 사원, 축락캉 사원 등이 이곳에도 같은 이름으로 재건돼 있다.지난 20여 년간 인도를 드나들며 ‘Are you going with me?’와 ‘길 끝나는 곳에서 길을 묻다’등 인도인들의 삶과 문화를 글로 담아냈던 임 바유다스(임헌갑) 작가가 최근 펴낸 ‘다람살라에서 보낸 한 철’(아시아)은 국내 최초의 다람살라 여행기로 화제가 되고 있다.저자는 달라이 라마, 티베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다람살라를 돌아보는 여정 곳곳에서 소중한 메시지를 발견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그것은 ‘세상에 인간의 삶보다 중요한 건 없다’로 요약된다.저절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는 압도적인 풍경은 작디작은 존재인 인간을 보살피는 듯하고,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소소하고 작은 이야기들은 길고 큰 역사를 담고 있는듯하다.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기 전에는 ‘다람살라’라는 곳을 이름 정도만 들어봤을 테고 가볼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가 자유롭게, 호기롭게, 오밀조밀하게 소개하고 이야기하고 대화하는 다람살라를 죽기 전에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어진다. /윤희정기자

2019-01-24

“라, 라 붉은 루주를” 바르고 외출해반짝이는 반지와 귀고리를 훔치고별과 어둠을 훔치고…

“날 내버려두지 마세요, 나는 갸르릉갸르릉 낡은 바이올린처럼 울고 낡은 바이올린처럼 웃어요 이 현기증 나는 노랑을 노란 갈증을, 낡은 내 그림자는 당신을 붙잡지 못하겠지만 우린 모두 폐인이 되어서야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안녕, 달콤한 슬픔의 중독이여.”-김말화 시 ‘밤의 카페’전문포항에서 활동하는 여류 김말화 시인이 자신의 인생이 담긴 시집‘차차차 꽃잎들’(애지)을 펴냈다.그의 시집 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20년 가까이 써내려간 수백편의 시만큼의 농도 짙은 감성이 시집 가득 배여 있다.쓸쓸한 시공간을 섬세하고 개성 있는 감성으로 불러내 충만과 탄생의 공간으로 치환한다. 소멸 쪽으로 기우는 시간들과 녹슨 추억을 닦아 허공에 내거는 시적 주체들은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와 있는 오늘과 새로울 것 없는 내일의 세계로 허밍허밍, 차차차, 걸어간다.시집에는 주로 상실과 슬픔을 노래하는 밤의 서정들을 적은 시 57편이 실렸다.‘보름달 증후군’에서는 “라, 라 붉은 루주를” 바르고 외출해 반짝이는 반지와 귀고리를 훔치고 별과 어둠을 훔치는 화자가 나오고, ‘밤의 카페’에서는 “상처를 할퀴는 건 이별이 아니라 얼음 같은 그대의 키스에요” 라고 말하는 무희가 등장하고, ‘달맞이꽃’에서는 “밤마다 등에 별을 박고 짐승처럼”우는 화자가 있다. 한숨과 회한의 시어들 사이로 낯선 이미지들을 충돌시켜 상실과 슬픔을 빗질하는 시선이 새롭다.표제는 시 ‘벚나무 집에 갇히다’에서 따왔는데, 연분홍 벚꽃잎이 꽃비로 내리는 풍경을 차차차 스텝으로 바라본 시선도 인상적이다. 이처럼 붉은 시간을 노래하는 시인의 화법은 절묘한 리듬을 거느리고 있어 마치 육성을 듣는 듯 생생하다.김말화 시인.해설을 쓴 이병철 평론가는김말화 시인의 시세계를 “사막에 내리는 천 개의 달빛”으로 요약하며 “과거를 향해 보내는 가장 아름답고 곡진한 작별인사”라고. “뼈아픈 자기진단을 통해 타자와의 합일에 이르고 있다”고 말한다.늦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했고 더 단단해지기 위해 하늘을 보는 버릇이 있다는 김말화 시인은 ‘우포늪’에서 “늪은,/ 늪의 탯줄을 따라 새로 태어나고 있다”고 밝혔듯 우리 생의 쓸쓸하고 아픈 시간들을 잘 달여 ‘시, 시집’이라는 좋은 그늘로 엮었다.김말화 시인은 포항 토박이로 2008년 ‘포항문학’으로 등단했다. 포항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현재 시동인 푸른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1-17

1920년대 프랑스 전원마을을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본성·욕망·좌절 냉철히 그려낸 걸작

미국 문학사에서 독특하고 이색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글렌웨이 웨스콧의 대표작 장편소설 ‘순례자 매’(민음사)는 길지 않은 분량과 뛰어난 가독성으로 한 호흡에 빠르게 읽히는 작품이다.이 소설은 비록 지난 세기에 쓰인 작품이지만 마치 어젯밤 벌어진 술자리를 기록한 것처럼 생생하며, 지극히 모던한 방식으로 ‘사랑과 욕망’이라는 감정을 담고 있다.일견 20세기 중반의 귀족적 생활양식과 이성애 결혼 제도를 희화화한 것처럼 보이는 ‘순례자 매’는 웨스콧의 정수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순례자 매’인 루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성과 욕망, 좌절과 적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한 차례의 전쟁, 지난 세기의 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술렁이던 1920년대 프랑스.‘순례자 매’의 화자(이자 작가의 분신) 알윈 타워는 1920년대 후반, 프랑스의 전원 마을 샹셀레에 자리한 절친한 친구이자 미국 출신의 부호 알렉산드라 헨리의 저택에 머물며 하루를 보낸다. 앞으로 닥쳐올 어떤 파국(2차 세계대전)을 전혀 예감하지 못한 듯, 지루할 정도로 고요한 이곳 샹셀레에 세계 전역을 여행하는 지방 귀족이자 유산 계급의 컬렌 부부가 찾아온다. 화려한 용모를 지닌 데다 수다스러운 컬렌 부인, 그녀의 남편이자 어딘가 권태로워 보이는 얼굴의 래리 컬렌. 그리고 그들 사이에 엄숙하게 버티고 앉은 한 마리의 매, 루시. 오직 반나절 동안, 아름답고 나른한 풍광을 배경으로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는 밑도 끝도 없는 열망과 치명적인 불만,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감정의 도가니가 칼에 베인 상처처럼 움푹 입을 벌린다. 마치 연극 무대에 오른 듯 스러져 가는 모든 것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컬렌 부부와 그들의 어긋나 버린 관계를 잔인할 만큼 냉정하게 관찰하는 주인공, 또 저택 뒤편에서 자기들만의 격정적인 드라마를 피로(披露)하는 하인들…. 샹셀레 저택에 짙은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순례자 매’는 마침내 충격적인 결말로 치닫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1-17

“지친 벗들에게 희망의 메신저 되고파”

포항지역에서 ‘정치 전문가’로 잘 알려진 정치학박사 김만수(57)씨가 자서전적인 성격을 띈 책 ‘김만수의 SNS通 365’(자치시대)를 펴냈다.김씨는 선거홍보전략센터를 운영하면서 정치권에서‘당선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정치 기획과 홍보에 남다른 실력을 보여왔다.영덕 태생인 김씨는 단국대와 영남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학을 전공했다. 2017년 7월에는 영남대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시골장터에서 국회의원후보들의 합동연설회에 매료돼 웅변을 시작해 1997년 3·1 민족정신계승 전국나의주장웅변대회에서 ‘민족의 봄’이란 연제로 스피치인의 최고 영예인 대통령상을 경북최초로 수상했다.그동안 대통령선거에서 후보자 수행연설원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지난 20여 년간 ‘선거홍보전략센터-YJ’를 운영하면서 후보자들에게 로고송과 홍보물 기획·제작 TV 토론 및 선거연설문을 작성·지도해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 광역 및 기초의원 등 500여 명의 당선자를 배출해 ‘당선 제조기’란 별칭을 가지고 있다.김씨의 25번째 저서인 ‘김만수의 SNS通 365’은 저자가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기획하면서 개정한 페이스북을 통해 페친들과 지난 365일 동안 소통하고 공유한 사진과 글들을 한 데 묶은 것이다.1, 2장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와 관련된 내용들로 ‘사진으로 보는 별난 이력’과 ‘참회록(懺悔錄)’을 담았다. 3장은 평범한 일상을 다룬 ‘동행’, 4장은 ‘6·13 선거와 SNS의 위력’, 5장은 그 동안 신문지상을 통해 발표한 칼럼 중 일부를 정리해‘마중물 논단(論壇)’으로 분류해 정리 수록했다. 서체는 SNS상의 서체를 사용했으며, 화면 캡쳐 방식으로 편집했다.김씨는 서문에서“그 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주목한 건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많은 날들을 긴밤 지새우며 SNS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삶에 지치고 방황하는 동시대의 벗들에게 부족하나마 나름 희망과 용기를 주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 함께 더불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책을 엮으면서 나는 나를 되돌아보고 적극적인 피드백을 통해 내 마음을 가다듬고 싶었다. 나도 이젠 좀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주변의 벗들에게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맑고, 달달하고, 따뜻한 글과 사진들을 올려 희망의 메신저로 거듭나도록 노력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채찍하고 다짐해 본다”고 적었다.김만수 다산소통연구소장.김만수씨는 현재 포항에서 다산소통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대학·관공서·기업체에서 ‘인간관계, 리더십, 스피치’를 주제로 한 활발한 강연활동을 벌이고 있다.저서로 ‘연단의 메아리’, ‘선거연설과 당선전략’, ‘조국을 위하여-가슴으로 말한다’, ‘화술의 강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스피치 방법론’ 등이 있다. 오는 19일 오후 3시에는 포스코국제관 대연회장에서 이번 저서 출판 기념회를 겸한‘김만수 박사 북콘서트’를 갖는다. ‘김만수의 SNS通 365’도서 판매수익금은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기금으로 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1-17

묵직한 역사와 날렵한 무협 넘나드는 분방한 이야기 속 권력의 맨얼굴 포착

‘이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성석제가 역사소설‘왕은 안녕하시다 1,2’(문학동네)로 돌아왔다.‘투명인간’이후 5년 만의 장편소설이자 원고지 3천 매에 달하는 본격 대작 역사소설이다.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전반부를 연재한 뒤 오랜 시간을 들여 후반부를 새로 쓰고 전체를 대폭 개고해 완성했다. 조선 숙종 대를 배경으로 우연히 왕과 의형제를 맺게 된 주인공이 시대의 격랑 속에서 왕을 지키기 위해 종횡무진하는 모험담이 특유의 흥겹고 유장한 달변으로 펼쳐진다. 묵직한 역사소설과 날렵한 무협소설을 넘나드는 분방한 이야기 속에 역사의 흐름과 권력의 맨얼굴, 당대를 살아간 보통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주인공 성형은 한양에서 제일가는 기생방 주인인 할머니 덕에 놀고먹는 “장안에 호가 난 알건달에 파락호”. 이야기는 그가 어느 날 우연히 비범한 풍모의 꼬마를 만나 그와 의형제를 맺으면서 시작된다. 알고 보니 꼬마는 장차 대위를 이을 세자(숙종)였고, 얼마 뒤 그가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성형은 졸지에 그림자처럼 왕의 주위에 머물며 왕을 지키는 왕의 최측근이 된다.어린 왕이 남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목소리를 높이는 조정 신하들 사이에서 위태로운 왕위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가운데 성형은 궁궐 안팎을 오가며 각계각층의 사람살이를 경험하고 왕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을 판별하며 왕의 안위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숙종 연간의 정치사가 권력의 중심이 남인에서 서인으로, 다시 남인으로, 다시 서인으로 뒤바뀌는 세 차례의 어지러운 환국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 과정에 희빈 장씨의 등장에서 폐비, 인현왕후의 복위로 이어지는 왕실의 권력투쟁이 얽혀 있음은 익히 아는 바. 하지만 왕의 숨은 형으로 암약하는 가상의 인물, 시정잡배 출신답게 지체 높은 이들에게 고분고분한 법이 없는 성형의 눈과 귀에 포착되고 그의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익숙한 역사적 소재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 탈바꿈한다.성형은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권력의 향방을 가르는 결정적인 국면을 목도하거나 은밀히 그에 개입하며, 할머니의 배경과 인맥을 바탕으로 장사 수완을 발휘해 왕실의 재산을 불리는 데 힘쓰기도 한다. 진기한 칼을 얻어 위기에 처한 왕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청나라의 무예 고수와 대결을 벌이는 활약도 펼친다.‘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쓴 김만중을 형님으로 모시며 가까이하기도 하고, 강직한 선비로 이름높은 박태보를 지켜보며 흠모하기도 하고, 훗날 희빈 장씨가 될 장옥정에게 연심을 품기도 한다. 종횡무진 숨가쁘게 이어지는 사건의 갈피마다 성석제 특유의 능청스러운 유머가 곁들여져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읽기를 쉬이 멈출 수 없게 한다.성석제 작가. /연합뉴스왕과 왕을 둘러싼 세력들 사이의 갈등과 암투, 대립과 이합집산이 거듭되면서 주인공 성형과 갖가지 인연으로 맺어진 이들의 운명도 권력의 향방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왕은 어느덧 자신의 자리를 위해 숱한 목숨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두려운 존재가 돼가고, 성형과 왕의 관계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왕은 안녕하시다’는 왕의 의형제 성형의 모험담인 동시에 권력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명분과 도리, 왕의 말 한마디와 신하와 유생의 상소 한 장이 엄청난 위력을 지닌 무기가 돼 진퇴와 생사를 가르고,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민심을 움직이고 어느새 실체가 돼 드러나는 과정이 신랄하게 그려진다. 숙적을 끝내 죽음으로 몰고야 마는 잔인한 권력의 맨얼굴과 그럼에도 대의를 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이들의 결기가 선명하게 맞부딪친다.그러면서도 ‘왕은 안녕하시다’는 역사가 결국 뭇사람들의 오욕칠정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당대의 정세와 경제, 문화뿐 아니라 세태와 풍속, 보통 사람들의 생활상과 음식과 시정의 패설과 속요에 대한 관심이 이야기의 바탕에 짙게 깔려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생생한 무대 위에서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웃으며, 누군가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어떤 이는 사라지고 어떤 이는 남는다는 것, 그러면서 세상과 사람은 조금씩 다른 것이 돼간다는 것. 그렇게 성형의 이야기는 곧 작가의 말처럼 “역사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역사의 흐름을 바꾸거나 역사 그 자체가 된 무명 또는 익명의 존재”(‘작가의 말’)에 관한 이야기로 다가온다./윤희정기자

2019-01-10

바다를 통해 본 동아시아 700년 문명 교류사

우리는 흔히 역사를 육지에 기반을 둔 국가를 중심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는 일을 피할 수 없다. 일국사의 관점에 머물기에 십상이고, 고개를 든다고 하더라도 몇몇 이웃만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바다의 관점에서 보는 역사는 다르다. 바닷길을 통해 연결된 수많은 이웃이 시야에 잡히면서 인식의 범위를 크게 확장한다. ‘바다에서 본 역사’(민음사)에서 바다는 육지의 부속물이나 자연의 경계가 아니라 ‘해역’이라는 주체적인 역사 공간으로 제시된다.이 책은 여러 역사가가 모여 명확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도쿄 대학 부학장인 석학 하네다 마사시를 필두로 일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장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스물여덟 명이 참여했다. 각책은 바다에서 본 동아시아의 역사를 크게 △1부: 1250~1350년, 열려있는 바다 △2부 : 1500~1600년, 경합하는 바다 △3부: 1700~1800년, 공생하는 바다 등 세 시기로 나눠 엮어졌다.△‘개방’: 세계 제국 몽골이 바닷길을 잇고 동서 교류를 촉진하다당 제국 시절부터 중국의 대도시와 항구는 바다를 건너온 상인과 사절, 승려로 붐볐다. 바다와 그 건너편에서 온 사람과 물품은 익숙한 존재였다.13세기에 등장한 몽골(원)은 동아시아의 바다가 지닌 개방성을 더욱 강화했다.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제국이 탄생하면서 ‘팍스 몽골리카(몽골의 평화)’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바닷길 또한 전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이탈리아의 마르코 폴로와 모로코의 이븐 바투타는 이 시기에 중국을 여행하면서 세계 최대의 항구인 천주의 번영에 관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경합’: 유럽 세력이 등장하고 동아시아의 바다가 지구 전역과 연결되다16세기에 이르러 동아시아의 바다는 격변을 맞이했다. 명 제국의 해금(海禁) 정책과 조공 체제가 흔들리면서 전통적인 질서가 무너지는 가운데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1571년에는 에스파냐가 필리핀에 마닐라시를 건설함으로써 멕시코의 아카풀코와 연결되는 태평양 항로가 탄생했다. 책은 지구 전역을 연결하는 무역이 시작되면서 나타난 경쟁의 양상에 주목한다.△‘공생’: 육지의 정치권력 강화와 함께 해양 세력들이 자립성을 상실해 가다중국에서는 명이 청으로 교체되고,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가 성립하면서 육지의 정치권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성해졌다. 동아시아 각국은 강해진 힘을 바탕으로 해양 세력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청 제국은 대만을 점령했고, 에도 막부 휘하에 있는 사쓰마 번은 오키나와의 류큐 왕국을 침공했다. 책은 육지의 정치권력이 바다를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했는지를 보여준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1-10

“책은 쓰인 것보다 읽히는 데 가치 있어”

“독서는 우리 삶에 유익하다. 그러나 만일 정신의 개인적 삶에 눈을 뜨게 해 주는 대신 그 삶을 대치하려 한다면 독서는 위험해진다. 즉 진리가 성숙된 사고와 감성의 노력에 바탕해야만 실현 가능한 하나의 이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손에 이미 만들어져 책갈피 사이에 끼어 있는 하나의 완성된 물건으로 간주될 때, 그리하여 단순히 서재 선반들에 꽂힌 책들에 손을 뻗어서 펼친 다음, 몸과 마음이 쉬는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맛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될 때 독서는 위험해진다.”ㅡ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에서‘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민음사)는 영국 굴지의 사상가이자 사회 운동가 존 러스킨과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학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표 작품 3편을 번역한 책이다.존 러스킨에게 ‘책’은 소중했다. 곧 사라질 형편없는 책을 논외로 하고도, 그는 좋은 책 중에서 곧 사라지는 좋은 책을 기어이 거둬 냈다. 지식을 전달하는 유익한 책, 지각 있는 친구의 말처럼 유쾌한 여행담, 재치있는 토론, 소설 형식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아까워도 솎아 내고, 그제서야 남은 오래 두고 볼 좋은 책의 가치를 그는 역설한다. ‘참깨 : 왕들의 보물’은 잠재적 독자로 하여금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을 외쳐 보기를 권한다.목소리를 증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목소리를 보존할 목적으로 쓰인 책, 작가 내면의 진실한 영감을 총동원해서 그러모은 한 사람의 비문(碑文) 같은 책이 건네는 호의와 교훈을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한편 ‘백합 : 여왕들의 화원’에서 러스킨은 당시의 소외된 여성 교육을 독려하는데, 이때 근거로 삼는 출처 역시 책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월터 스콧의 문학을 독파하며 남자 영웅의 부재, 여자 주인공의 지혜와 미덕을 도출해 내는 데서 고전의 독서가 사회적 감각의 회복제이자 개인의 행동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오랜 가치를 입증해 준다. 독서로써 무감동을 벗어나 감정의 동요를 경험하고 공감을 회복하자는 러스킨의 고루할 정도로 순박한 제안은 가치 중립적인 텍스트의 물량에 압도당하기 바쁜 21세기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언어도, 사는 지역도 달랐으나 러스킨의 예술론, 취향과 삶의 방식 면면까지 고무됐던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기 나라에 러스킨의 메시지를 소개할 목적으로 ‘참깨와 백합’을 번역한다. 그때 옮긴이로서 붙인 서문이 우리가 잘 아는 에세이 ‘독서에 관하여’다. 어린 시절부터 책벌레였고, 학습보다는 자유로운 독서의 취미를 일찍부터 들였던 프루스트에게 책이 중요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프루스트는 러스킨을 옮기면서 새로운 반감을 마주한다. 책은 씌인 데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읽히는 데 가치가 있으며, 정작 수용자가 얻는 책의 효용은 내용 자체가 아니라 독서를 둘러싼 개인적인 체험·경험임을 깨달은 것이다.러스킨의 ‘씌인 책’과 프루스트의 ‘읽히는 책’ 경험이 한 권의 책에서 가능함은 물론이다. 러스킨이 돼 이 책을 쓴 절박한 동기와 선한 의지를 음미해 봄과 동시에, 프루스트가 되어 “진정 우습다고 생각되는 말에만 웃”고, 이 책이 “유명하건 상관없이 바로 제자리에 갖다 꽂”는 것도 우리에게는 자유다. 이 자유 속에서 무엇을 기억할지, 무엇을 취할지는 우리 독자의 몫일 터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1-03

삶에 찌든 뭇사람에 즐거움 준 포항 기인 권달삼 이야기

“권달삼은 돈이 없었다. 하도 가난해서 제사 모실 형편이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제삿날을 그냥 넘길 수도 없고 해서 고민하다가 돈 안 들이고 제사 모시는 방법을 그의 번뜩이는 머리로 떠올렸다. 지방을 하나 써서 흥해 시장으로 달려갔다. 먼저 과일전에 가서 사과와 배 앞에 지방을 붙여 놓고는 절을 한 다음에, 어물전으로 옮겨 조기 앞에 지방을 붙여 놓고는 절을 하는 방법으로 제사를 지냈다 한다”-‘포항의 기인 권달삼 이야기’중 ‘시장 바닥에서 지내는 제사’포항에 살았던 전설적 인물 권달삼(1881∼1952)은 우리나라에서 기인으로 명성을 가진 봉이 김선달, 하원 정수동에 버금가는 포항지역의 해학자였다. 그는 임기응변으로 숱한 일화를 남겨 삶에 찌든 뭇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또 촌철살인의 독설과 풍자로 세상을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가 생존해 있을 당시 이 지방에는 그의 재담과 유창한 화술로 인해 ‘산에는 산삼, 바다에는 해삼, 육지에는 달삼’이란 속설이 전해질 정도였다고 한다.포항문화원이 최근 펴낸 ‘포항의 기인 권달삼 이야기’는 민속학자 박창원씨가 지난 1988년부터 2000년까지 현지조사를 통해 17명의 제보자로부터 수집한 권달삼 이야기 55편을 실었다.이 책은 1장 권달삼과 권달삼 이야기, 2장 풀어쓴 권달삼 이야기, 3장 권달삼 전설연구, 4장 포항말로 채록한 권달삼 이야기 등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권달삼과 권달삼 이야기를 대략 소개하고 있으며 2장은 대표적인 권달삼 이야기 중 40편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적었다. 3장은 권달삼 전설에 대한 연구 논문을 실었으며 4장은 1990년대에 제보자로부터 녹취한 자료 55편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몇 가지만 읽어 봐도 그의 일화 속에 담긴 해학과 재치에 저절로 미소짓게 된다. 특히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들에게 봉이 김선달을 뺨치는듯한 그의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온다.특히 권달삼 이야기 속에는 요즘 들을 수 없는 채록 당시의 포항 사투리들이 많이 섞여 있어 쏠쏠한 재미를 더해준다.사투리라는 것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촌스럽고 품위 없는 말이라는 편견도 있지만 그 지역의 정서와 문화가 그대로 녹아있는 친근한 언어이기에 사투리 자료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박창원씨는 “최근 권달삼과 같은 기인으로 유명한 김선달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되고, 정만서나 방학중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거나 스토리텔링의 자료로 쓰이는데 비해 권달삼 이야기는 연구나 활용에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아쉬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포항문화원에서 ‘일월문화’ 시리즈로 ‘권달삼 이야기’를 단행본으로 묶게 된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9-01-03

민족주의 지식인 안재홍의 생애와 사상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학자로서 한국 근현대사를 이끈 ‘고절(高節)의 국사(國士)’ 민세 안재홍의 삶을 그린 ‘안재홍 평전’(민음사)이 출간됐다.한국 정치사상 연구에 매진해 왔으며 안재홍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한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의 질곡을 거치며 민족의 독립와 통일민족국가 건설에 힘썼던 안재홍의 삶을 통해 고결한 정치 리더십의 전범을 보여 준다. 이 책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최초로 독도 현지조사를 실시한 내용 등 안재홍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고루 담았으며, 단순히 생애를 전달함에 그치지 않고 두 편의 논문(‘1930년대의 안재홍의 문화건설론 연구’, ‘안재홍의 ‘신민족주의’ 역사의식과 평화통일의 과제’)을 통해 안재홍의 정치사상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1891년(고종 28년)에 태어나 구한말의 기울어 가는 국운과 불안한 시국 속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안재홍은 일찍이 글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는 문장명세(文章鳴世)의 뜻을 세웠다. 주권을 빼앗긴 엄혹한 시대에 그는 시대일보 논설위원과 조선일보 주필, 부사장, 사장을 거치며 직설탁견(直說卓見)의 날카로운 논설로 일제를 비판하고 청년외교단사건, 신간회 창립,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 조선어학회사건 등에 관여하며 정치·사회·문화 다방면에서 국내 항일운동의 맥을 이어 갔다. 해방 후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 부위원장, 국민당 당수, 좌우합작 위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의원, 미군정의 민정장관, 한성일보 사장 등으로 활약하며 분단 시대의 고단한 정치 과정에서 통일국가의 건설을 위해 진력했다. 그러나 민족의 평화통일과 진정한 민주주의 확립을 위한 안재홍의 정치 활동은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당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6·25전쟁 발발과 뒤이은 납북으로 중단되고 말았다.1965년 3·1절에 눈을 감을 때까지 안재홍의 일생은 진보적 민족주의자로 일관된 삶이었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부터 여타 많은 보수적 인사들과 달리 공산주의 세력과의 접촉도 두려워 않은 참된 민족주의자였다. 민족자주 노선을 기반으로 한 안재홍의 민공협동(民共協同) 노력은 1920년대 신간회 활동과 해방 후 건준 및 좌우합작위원회 참여로 나타났다. 또 그는 미군정기에 어지간한 정치인이라면 모두 꺼려한 민정장관으로 일하면서 극좌와 극우를 배제하는 민족진영 중심의 통일국가 건국을 기도했다. 납북된 후에도, 그를 대남 정치 공세에 활용하고자 하는 북한 정권의 계속된 간섭과 압력에 굴하지 않고 “나는 진보적인 민족주의자로서 여생을 생활하여야 할 것”이라며 자신의 이념을 지켰다. 이로정연한 논리와 언행일치한 처신으로 오로지 민족의 자주와 통합을 바랐던 그의 삶은 분열과 갈등을 좀체 극복하지 못하는 현재의 한국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납북된 많은 인사들이 그렇듯이 안재홍도 분단의 파고에 휩쓸려 한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안재홍의 저술을 모으는 작업이 추진되고 1970년대 후반 해방 전후사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정치학, 역사학, 언론학, 사회학, 교육학 등 여러 분야에서 안재홍을 연구한 논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인 정윤재 교수 역시 일찌감치 안재홍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30여 년간 안재홍과 관련한 다수의 자료를 발굴하고 수합해 그의 활동과 사상을 분석해 온 정치학자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행해진 조사와 연구를 망라해 언론인으로서, 항일운동가로서, 그리고 국사학자로서 안재홍의 생애를 촘촘히 조명하며, 국제적 민족주의론과 다사리이념으로 대표되는 정치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부각하고 있다.민세 안재홍안재홍의 국제적 민족주의론과 다사리이념은 해방 이후의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좌파 급진 혁명을 제어하고 친일 협력자들의 정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었다. 당시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대한 비판적 대응에서 비롯한 ‘국제적 민족주의’는 정치적 자주독립과 문화적 독자성을 전제로 하는 국제 교류와 이를 통한 세계 평화의 구현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또한 ‘다사리이념’은 “모두를 다 사리어(말하게 하여) 정치에 참여케 하는” 정치 방식으로서의 진백(盡白)과 “복지를 증진시켜 모두를 다 살리는” 정치 목표로서의 진생(盡生)의 가치를 묘합해 한국 민주주의 정치 과정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자 한 시도였다. 이러한 독자적 사상을 바탕으로 통일된 민주공화국 건설을 위해 분투한 안재홍은 민족 구성원 모두를 건강한 공동체로 끌어안고자 했던 ‘순정우익(純正右翼)’, 즉 순수하고 바른 우익의 모범을 보인 정치 지도자이자 사상가였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8-12-27

유교,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접근 방법

우리나라는 유교문화가 사회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사회다. 예절과 효 등을 중시하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등의 문화는 유교의 그것이 틀림없다. 이렇듯 우리 생활에 유교가 부지불식간에 배어있지만 정작 유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타임과 월스트리트저널의 특파원으로서 20년 가까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자가 만든 세상’의 저자 마이클 슈먼은 한국을‘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나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유교의 원조국인 중국을 제치고 유교문화의 대표가 된 한국. ‘유교적’이라는 말이 긍정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유교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수필가이자 정형외과 전문의(상주시립요양병원) 이원락(74)씨는 최근 펴낸 저서 ‘유교문화의 미래전망’(중문출판사)에서 중국과 달리 건국 이래 ‘한결같이 유교적인 국가’였던 한국사회에서 유교는 오늘에 이어 미래에도 살아있을 우리의 전통이라고 강조한다.이씨는 “서양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공동체 중심, 인륜중심, 상대의 처지를 먼저 고려하는 문화로 이뤄진 유교적 세상에서 후손들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펴내게 됐다”고 말했다.그는 “세상을 더 보람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접근 방법이 유교라고 생각한다. 모든 종교가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이에 더해 예(禮)와 더불어 우리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유교”라고 설명했다.책은 ‘유교란’을 시작으로 ‘유교와 환경’, ‘삶과 유교’, ‘노년에서 나의 생각들’등 총 5장에 걸쳐 299쪽으로 엮어졌다.이씨는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이타(利他)적인 삶이 유교의 생명이고 시대적 가치라고 주장한다.공자가 천명(天命)을 운위(云謂)하면서 그토록 제창한 인의(仁義)라는 두 글자는 도덕성의 대표이고 그 속에는 인류의 소망과 꿈이 깃들어 있다는 것. 세계의 평화와 대의, 정론(正論)이 그 속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12-27

김수영, 그와 끝내 헤어질 수 없음에…

한국문학사에서 여전히 살아 있고 ‘영원히 뜨거울’ 시인 김수영(1921∼1968). 김수영 시인 작고 50주기를 추모하며 그의 문학과 절실하게 마주쳤고 끝내 헤어질 수 없었음을 고백하는 후배 문인 21명의 헌정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창비)가 출간됐다.김수영의 삶과 문학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생생한 증언으로 회고한 백낙청·염무웅의 특별대담을 필두로 김수영과 동시대를 호흡했던 이어령·김병익 평론가를 비롯한 황석영 김정환 임우기 나희덕 최정례 등의 원로·중견 문인부터 심보선 송경동 하재연 신철규 등의 젊은 작가들, 김상환 김종엽 김동규 등의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학술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21명의 기라성 같은 필자들이 김수영을 만나고 사유했던 깊고 뜨겁고 때로는 애잔하기까지 한 순간을 담은 책이다.권두의 특별대담은 백낙청·염무웅 두 문학평론가가 김수영 시인과 얽힌 그 시절의 추억을 담았다.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하며 시인과 오래도록 술잔을 기울였던 어느 겨울밤(염무웅)이나 잡지 출간기념회에서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던 시인의 형형한 모습(백낙청) 등을 회상하는 가운데 우리 문학사에서 김수영이 차지하는 위상과 그 의미를 짚고, 제대로 된 ‘김수영 읽기’의 방법까지 모색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두 원로가 김수영을 계기로 처음 둘만의 대담을 나눴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거니와 이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귀한 증언들이 가득하다.당대에 김수영 시인과 벌였던 ‘순수/참여 논쟁’으로 잘 알려진 이어령의 산문은 비평가로서 시인에게 선사하는 최선의 발로로 묵직하고 선명하다. “오랜만에 향을 피우는 마음”이었다는 그는 ‘맨발의 시학’이라는 명명으로 본인의 김수영의 시론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서로 누운 자리는 달랐어도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라는 마지막 문장이 먹먹하다.김병익은 문화부 신참 기자로서 김수영을 인터뷰한 당시를 실감나게 회고한다.그외에도 유신과 광주의 시대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자력을 느끼며 읽은 김수영을 고백하는 김종엽, 김수영 문학에 내재한 자유와 사랑과 절망을 예로 들며 정직한 목소리로 사는 현재를 고민하는 송종원 등 김수영을 구심점으로 한 산문이 이어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12-20

김정은 시대 부모·자식 간 세대 갈등 다뤄

북한 최고의 드라마 작가 리희찬의 ‘단풍은 락엽이 아니다’(아시아)는 김정은 시대의 부모 자식 간 세대론적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리희찬은 북한의 영화 시나리오 전문 창작기관인 조선영화문학창작사 사장을 지냈고, 북한은 물론 중국에서도 번역 제작돼 유명한 영화문학 시리즈 ‘우리 집 문제’의 저자이기도 하다. 웃음 속에 신랄한 비판, 특색 있는 교훈을 주며 북한의 ‘가정혁명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는 이 작품은 북한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전해진다.‘단풍은 락엽이 아니다’는 일기장을 통한 소통과 교감, 자유주의와 놀새 등의 표현, 지배인 아들의 대학 진학 문제, 청년동맹원들의 우정과 사랑, 정년을 앞둔 은퇴(명예퇴직) 문제, 돈의 양면성, 공적 모범과 사적 기대가 충돌하는 가정교육 문제, 야근을 반복하는 과잉 노동, 사회주의 사회의 위계화된 구조 등 김정은 시대 다면적 표정의 북한식 사회주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소설은 2011년 가을에서 2012년 가을까지를 주 배경으로 하며, 급양관리국에서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당의 호소를 받아들여 돼지목장 확장공사를 진행하면서 동맹위원장 기옥과 창고원 경식의 만남이 이어지고 인격을 둘러싼 계도와 연애담이 그려진다. 부부의 사랑의 결실인 자식을 눈먼 부모가 잘못 양육함으로써 발생하는 가정교육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기옥과 경식의 우정과 연애 감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외동아들인 경식의 자유주의적 기질을 그의 부모인 홍유철과 진순영이 방치함으로써 그릇된 인격을 형성하게 만들었음을 깨닫는 각성 구조를 그린 것이다.이 소설은 긍정적 인물이었던 홍유철과 진순영이 작품 초반부를 넘어서면서 자식을 과잉보호하는 부정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고상한 인물의 무갈등적 캐릭터를 형상화했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성격의 변화를 보여주는 입체적인 인물의 형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긍정인물의 부정성이 함께 거론되고 부정인물로까지 호명되면서 성격과 감정의 변화 속에 인물의 입체성을 드러내는 작품이 북한 텍스트에서는 보기 드물다는 점에서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인물 형상화로 판단할 수 있다.감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북한 문학의 새로움을 선사한다. 지배인 홍유철이 최국락을 은퇴시키거나 자식에게 폭언을 퍼붓고, 운전수 최국락이 가부장적 모습을 보이거나 강제 명퇴를 당하고, 진순영의 드라마적 오해와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 오순의 상급자 집안에 대한 분노와 감정의 직설적 표현, 기옥의 과감하고 솔직한 타인 평가 등이다.타인에 대한 분노를 적절하게 형상화한 표현들이 곳곳에 등장하면서 실감나는 이야기로서의 공감대를 확보한다. 공산주의적 인간형으로서 신념의 화신이 아니라 감정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인간적인 인간의 형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이 소설은 등장인물 내면 심리의 유연성과 유동성을 포착해 기존의 북한 소설이 지녔던 획일화된 캐릭터의 면모를 벗어나게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8-12-20

개혁군주 정조의 국가 경영과 고뇌의 삶

“정조 시대는 변화와 희망이 꿈틀대던 때였다. 서울 등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주변 지역에 채소, 과일 등 상업적 농업이 발달했고, 금난전권의 혁파로 신흥 상업 세력이 부상했다. 서얼과 아전 등은 신분적 제약을 타파하기 위해 통청 운동을 전개했으며, 15만여 명이 과거를 보겠다고 하루 동안 도성 안을 가득 메우던 ‘과거 열풍’의 시대였다. 그런가 하면 과거 시험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전문 분야에 몰두하는 마니아 그룹이 등장했고, 소설을 목판으로 찍어 돌려야 할 만큼 출판문화가 번성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문예 부흥의 배경에는 국왕 정조의 개혁 정책이 있었다. 정조는 즉위 초에 “나라의 근본은 민생에 달려 있고, 먹을 것이 풍족해야 교육의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며 국정의 첫 번째 목표를 경제 개혁으로 정했다. …. 정조는 또한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온 신민(臣民)이 “다 같은 동포”이자 “한집안 식구”처럼 서로 화합하고 오복(五福)을 더불어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약용과 박제가 그리고 김홍도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가 당파와 신분을 초월해 인재를 등용하고, 규장각을 활성화해서 국가 경영에 필요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조 평전’ 부분 세종과 정조, 정도전과 최명길 등 조선조 왕과 재상의 리더십을 연구하는 박현모 여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가 정조의 리더십과 탕평정치의 본질을 다각적으로 들여다본 저서 ‘정조 평전’(민음사)을 펴냈다. 1999년 ‘정조의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정치가 정조’, ‘정조 사후 63년’ 등 정조 관련서와 논문을 다수 발간·발표했다.‘말안장 위의 군주’라는 부제가 정조가 문무에 두루 능한 군주였다는 의미와 평생을 말안장 위에 앉은 듯 긴장 속에 살았다는 의미를 내포하듯, 저자는 군주이자 정치가로서의 정조를 살피는 한편, 아버지 사도세자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영조조차 듬직한 의지처가 되어 주지 못했으며 가장 의지하는 두 신하(노론의 김종수와 남인의 채제공)마저 대립하고 갈등해 왕실과 조정 어느 한 곳도 온전히 믿고 의지할 데 없었던 정조의 고뇌를 들여다보고 있다.저자는 정조의 지식 경영(싱크 탱크 규장각의 설치와 운용)과 인재 경영(당파와 신분을 초월해 인재를 등용), 경제 개혁(신해통공)과 군제 개혁에 이르기까지 개혁 군주 정조의 국가 경영과 리더십에서 현대적 가치를 찾는 동시에 개혁정치의 미완에 대한 아쉬움과 과오 또한 서술하고 있다.15세기 세종 이래 오늘날에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군주 정조의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릴 만큼 흥성했지만 그 안에는 끊임없는 대립과 모순이 배태돼 있었다. 정조는 지배자가 최소화된 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정조에게 좋은 정치란 중간의 장애물이 없이 왕과 백성이 직 접 소통되는 정치이므로 지배자는 국 왕 한 사람이면 족했다. 종래 사림 정치의 구도, 즉 군(君)-신(臣)-민(民)의 3단계 구도에서 신의 역할을 부정 내지 최소화하고 군-민의 2단계 구도를 천명한 것이다. 정조는 이를 위해 청요직을 혁파하고 재상권을 강화하는가 하면, 군사 조직을 개편하여 국왕의 재량권을 넓혔다. 또한 영조에 이어 고질적인 당쟁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언관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켰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개혁 조치들이 조선 왕조를 오랫동안 지탱시켜 온 메커니즘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해 공론 정치를 변질시켰다고 말한다. 언관의 비판활동이 저조해진 가운데 국왕의 금령이 남발되었던 상황이며, 특히 그의 사후 전개되는 세도정치라는 정치적 암흑기도 그에 기인한다는 것이다.책은 크게 아홉 부분으로 구성된다. 1장은 정조 재위 24년의 주요 사건과 그에 대한 정조의 대응을 개괄하고, 2장에서는 어린 시절 감수성이 풍부했던 정조의 인간적 면모,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살핀다. 3장은 즉위한 정조가 영조로부터 물려받은 무거운 유산, 즉 사도세자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갔는지 알아보며 4장은 규장각을 활용하는 정조의 지식 경영 리더십 및 18세기 지식인들의 지식 정보 네트워크에 대해 살핀다. 5장은 정조가 발휘한 대통합의 리더십, 즉 탕평 정치의 본질에 대해 알아본다. 6장에서는 경제 분야의 신해통공 조치와 군사 분야의 장용영 창설 과정 등 정조가 계획하고 추진한 일련의 개혁조치들에 대해 경장(更張)의 정치라는 관점에서고찰하며 7장에서는 복합적인 개혁 프로젝트인 수원 화성 건설을 디자인 경영 측면에서 고찰한다. 8장에서는 천주교의 확산과 조정의 대응 방식을 살피며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정조 시대의 대외 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당시 북경과 나가사키에 서양의 상인과 선교사들이 줄지어 오가고, 인근 해역에는 수많은 이양선이 출몰했음에도 모두 사대교린의전통적 대외 정책으로 통제되리라 여겼던, 그 시대의 안이함을 세도정치기의 대외 정책과 연계해 고찰한다. 책 말미에는 재위 1년부터 24년까지, 정조의 행적과 어록이 정리돼 있다. /윤희정기자

2018-12-14

형산수필문학회, 회원수필집 ‘형산수필 34집’ 출간

영남권 대표 수필문학 단체인 형산수필문학회(회장 이상윤)가 회원수필집 ‘형산수필 34집’을 펴냈다.형산수필은 포항지역 수필가들이 1984년 7월 7일 창립 이후 34회에 걸친 ‘형산수필’을 출간해 왔는데 이번 호에도 지난 1년간 회원들의 땀과 정성이 배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기획으로 ‘추모특집 고(故) 성홍근’을 실었으며 서상은, 이삼우, 조유현, 윤영대, 이상윤, 이화련, 박안복, 서강홍, 성정애, 전미라, 조효선, 김경일, 김춘희, 손성범, 장숙경, 김순애, 오학임, 서상문, 송귀연, 이명우, 김태선 등 회원 21명의 신작수필 44편을 실었다.‘추모특집 고(故) 성홍근’에는 지난 2월 별세한 형산수필 발기인 중 한 명인 수필가 고(故) 성홍근을 추모하는 윤영대, 박인복, 성정애, 이화련, 전미라 회원의 추모글 ‘故 행림 선생님 영전에’ 등 6편과 고인의 동생인 성현수씨의 글, 고 수필가 성홍근의 유고 수필 ‘우리는 왜 실패하는가?’등 2편이 실렸다.‘신대륙, 새물결 수필의 세계’, ‘웃는 것도 능력이다’, ‘세월의 흔적’, ‘수필은 고독을 꿈으로 채워준다’, ‘의성 메아리’, ‘부질없는 걱정’, ‘은행나무 아래에서’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읽다 보면 원로와 중견, 신인들의 작품이 대조를 이뤄 세대감과 연륜을 느낄 수 있다.회원지 말미에는 제7회 형산수필문학상 당선작 김보영씨의 ‘겨울꽃’과 당선소감, 가작 이장수씨의 당선작 ‘푸른 별’과 당선소감, 심사평 등을 실었다.이밖에도 교류수필로 보리수필 회원인 신정애씨의 수필 ‘대구’와 회원 동정으로 서상은 문학기념비 제막식, 오학임 회원 제2회 포항스틸에세이 가작, 전미라 수필집 ‘꿈을 따라 걷는 길’ 등을 사진과 함께 화보로 실었다.한편, 형산수필문학회는 1984년 7월7일 수필가 김규련 초대회장을 중심으로 빈남수, 서상은, 장현, 성홍근, 이삼우, 박성준 등 7인의 작가가 모여 창립했으며 지난 34년간 향토적이고도 문학적 가치가 높은 수필이 실린 회원수필집‘형산수필’을 매년 발간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포항 및 경북 동해안 지역의 역량있는 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수필 공모전인 ‘형산수필문학상’을 개최하고 있다. /윤희정기자

2018-12-14

어제의 ‘한강’을 읽는다

▲ 작가 한강. /문학과지성사 제공“오늘의 한강을 있게 한 어제의 한강을 읽는다”1993년 등단 이후 단단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줄곧 삶의 근원에 자리한 고독과 아픔을 살펴온 작가 한강(48).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이라 손꼽히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고 2018년에 같은 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세계 속에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인 주인공. 그가 현재까지 출간한 소설집 전권(총 세 권)이 재출간됐다.1995년 한강의 첫 소설집이자 통틀어 첫 책인문학과 지성사 ‘여수의 사랑’과 5년 만에 출간된 두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그리고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출간한 ‘노랑무늬영원’이다.돌아보아야 궤적을 발견할 수 있다. 소설집 세 권이 출간되는 동안 한강 단편소설에서 변화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여수의 사랑’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갈망을 간절하게 드러내며, 떠나고, 버리고, 방황하고, 추락하는 고독하고 고립된 존재들은 ‘내 여자의 열매’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세상과 서로를 서툴게 받아들이려다 어긋나버리고 상처 입는다. 그리고 ‘노랑무늬영원’에 이르러 재생의 의지와 절망 속에서 생명력은 더 강하게 타오른다. 존엄해진 존재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마침내 상대를 껴안으려 시도한다. 끝내 돌아가고야 말 어딘가이자, 잎맥을 밀어 올리는 이파리, 회복기에 피어난 꽃, ‘점을 잇는’ 작업 동안 오롯이 담아내고자 했던 자연스러운 변화와 흐름은 표지에 사용된 사진작가 이정진의 작품과 조화를 이룬다. 한편 변함없는 것은 한강의 치열한 물음이 아닐까. ‘살고 싶다, 살아야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며, 인간이라는 존재, 삶과 죽음, 이 세상에 대해서 스물한 편의 소설 내내 묻지만 필연적으로 답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파르스름한 불꽃 같은 그 물음 자체가, 물음에서 파생되는 고독의 열기와 세심한 슬픔이 작품 속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고 살아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변화했으나 변하지 않았으므로, 신중하게 소설들의 배치를 바꿨고 몇몇 표현들을 손봤지만 둬야 할 것은 그대로 뒀다. 작가의 첫 책이자 첫번째 소설집‘여수의 사랑’은 삶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고단함을 섬세하게 살피며 존재의 상실과 방황을 그려낸다. 이번 출간을 통해 소설 배치를 바꾸고 몇몇 표현을 다듬었다. 여수발 기차에 실려와 서울역에 버려진 자흔과 아내를 잃은 아버지가 자신과 동생을 데리고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정선(‘여수의 사랑’), 동생의 죽음을 목격한 인규(‘질주’), 식물인간이 된 쌍둥이 동생의 삶까지 살아내야 하는 동걸(‘야간열차’), 여수는 어딘가 상처 입고 병든 이들이 마침내 다다를 서러운 마음의 이름이다. 운명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시선이 일곱 편의 단편에 녹아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12-07

숲, 꿈을 찾는 여행

▲ 강판권 교수인문학과 식물을 결합한 연구를 하는 강판권(57) 계명대 사학과 교수는 ‘나무 인문학자’로 불린다. 생태사학자로서 나무를 인문학 차원에서 정립한 수학으로 독자적 자기 정체성을 굳혀가고 있다. ‘나무철학’,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 ‘선비가 사랑한 나무’, ‘나무 열전’ 등 나무와 관련된 22권 책을 집필했다. 나무의 생태학을 인문학에 접목함으로써 학문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강 교수는 최근 나무를 넘어 숲을 예찬한 신간 ‘숲과 상상력’(문학동네)을 펴냈다.‘숲과 상상력‘에서 강 교수는 숲을 통한 성찰과 힐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숲과 상상력’은 지난 6년 동안 전국 숲을 돌아다니며 얻어낸 새로운 결실이다. 강 교수는 “숲을 찾아 나서는 길은 곧 꿈을 찾아가는 여행과 같다”면서 “그동안 나무와 숲을 만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나무와 숲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회고한다.책은‘사찰과 숲’, ‘역사와 숲’, ‘사람과 숲’3부로 구성된다.△자연박물관인 산중 사찰우리나라 한국 산중 사찰은 자연생태와 인문생태의 보고다. 1부에서는 보은 법주사 오리숲, 합천 해인사 소나무숲, 영천 은해사 소나무숲 등 사찰과 함께한 숲을 소개한다. 법주사는 갈참나무의 모습이 웅장하며, 계곡에는 물억새, 벚나무, 물푸레나무가 어울려 산다. 해인사로 가는 길은 소나무숲길로, 길가에서 간혹 호랑이 무늬 껍질이 아름다운 노각나무를 볼 수 있다. 은해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느티나무 가지가 굴참나무로 다가가 서로 만난 연리지가 있다. 사찰을 둘러싼 숲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정화하는 장소를 제공하고 각종 문화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찰과 어우러진 숲은 박물관의 유물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자체로 값어치 있는 자연박물관이다.△역사를 간직한 숲역사를 간직한 숲은 자연생태와 인문생태를 모두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화성 융릉과 건릉은 울창한 숲에 조성돼 있다. 정조는 원통하게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며 왕릉 주변의 소나무를 극진히 보호했다. 사도세자를 그린 정조의 애틋한 사랑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숲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한편, 한국의 조영은 건축물만이 아니라 자연생태까지 포함한다. 종묘는 그 자체로 거대한 숲이다. 종묘의 건축물과 더불어 숲은 그 어떤 공간보다 신성하다. 종묘는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공간이기에 건물과 담에는 화려한 꽃이 피는 나무와 풀을 장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숲 곳곳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경주 계림은 신라시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으로 전해진다. 숲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나뭇가지에 걸린 금궤 안에 사내 아기 김알지가 있었다고 한다. 함양 상림은 최치원이 조성한 최초의 인공 숲으로, 신라시대 위천의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상림은 무려 1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형에 가깝게 현장이 보존된 숲이다. 횡성 청태산 잣나무숲은 이성계가 휴식하면서 횡성 수령에게 점심 대접을 받은 곳이다. △숲을 일구다사람의 숭고한 정신 덕분에 나무가 숲을 이룬 경우도 있다. 장성 편백숲은 한 인간이 평생 숲을 만드는 데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임종국은 1956년부터 21여 년간 지독한 나무 사랑으로 우리나라 헐벗은 산림을 복원했다. 그는 나무를 살리려고 지게로 물을 져 날랐고, 수십 년 동안 인내심을 갖고 나무가 온갖 풍파를 견디면서 살아남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임종국은 조림에 필요한 자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채업자와 채권자들에게 자신이 평생 가꾼 숲을 넘겨줘야만 했다. 임종국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평생 일군 숲은 지금도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광양 청매실농원은 일제강점기 율산 김오천이 광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밤나무와 매실나무를 심어 가꾼 곳이다. 김오천의 며느리인 홍쌍리가 시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이곳을 지금의 청매실농원으로 성장시켰다. 청매실농원에서는 매화를 군자로 삼아 사랑한 조선 선비들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이어받아 매실나무를 가꾼 사람들의 정신을 함양할 수 있다. 횡성 미술관 자작나무숲은 사진작가인 원종호가 1991년 이곳에 정착해서 1년생 자작나무 1만2천여 그루를 심은 숲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12-07

행복해지고 싶다면, 노인들처럼 생각하라

“당장 눈앞의 즐거움을 찾아. 미래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나이 드는 맛’중 프레드의 가르침미국의 중견 언론인 존 릴런드(59· 뉴욕 타임스 기자)는 저서 ‘나이 드는 맛’(웅진지식하우스)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다면 노인처럼 생각하며 살라”고 조언한다. 흔한 얘기로 ‘꼰대’ 아닌 ‘어른’으로 아름답고 풍요롭게 나이 들어갈 때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러나 우리는 노년의 삶이 어떠할지 알 수 없다. 돈을 많이 모으면 행복한 노후가 보장될까? 어떻게 늙어가고 싶은지, 괜찮은 롤모델은 있는가? 초고령사회는 우리에게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의 저자 존 릴런드는 뉴욕에 거주하는 85세 이상의 노인 여섯 명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무려 1년에 걸친, 그야말로 야심 찬 프로젝트였다. 그가 만난 여섯 명의 노인들은 정이 많고 괴팍하며 까다롭고 자주 깜빡깜빡했다. 또 유쾌하고 현명했으며 같은 말을 자꾸만 반복하거나 가끔은 말 섞기 힘들 정도로 피곤하게 굴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나 그렇듯 그들은 죽어가고 있었다.노인들과 시간을 보내고 또 일곱 번째 스승인 자신의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저자는 노년의 삶을 행복한 시간으로 채우려면 어떤 가치관과 태도를 가져야 할지 개인적·사회적 관점에서 깊이 생각하게 됐고 그 해답은 지금까지의 관념에서 벗어나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저자는 초고령자들의 시시콜콜한 일상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담하고 세밀하게 기록하며 이를 통해 얻은 나이 듦에 대한 성찰을 오롯이 담아냈다.그는 당초 뉴욕에 사는 85세 이상 초고령자들의 취재를 시작할 무렵만 해도 고령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게 되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을 노인들과함께 보내면서 그는 예상과는 다른 삶의 모습들과 마주했다. 죽기에는 너무 건강하다 투덜거리고 자주 연락하지 않는 자식들이 못마땅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찾는 나날. 그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노년의 삶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노년뿐 아니라 어쩌면 인생의 모든 시기에서 가장 필요한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행복해지고 싶다면, 노인처럼 생각하라”.저자가 1년간 초고령자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배우고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바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노인들처럼 살면 된다”는 것. 그들이 지나온시간 동안 쌓인 내공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의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노인들이 바로 그 비결을 전해주는 스승들이며 저자는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함께 소개하며 이러한 주장들을 탄탄히 뒷받침하고 있다.“기쁨에 너무 들뜨지 않고 슬픔에 너무 처지지 않는 그것이 나이 드는 맛.”그 누구도 원치 않지만 절대 피해갈 수도 없는 인생의 과정. 저자는 늙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인정하면서부터는 우리가 인생과 행복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 말한다. 결국 남은 삶을 행복하게 채우는 것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그러니 이제 자연스레 고령자들의 시선으로 인생을 보는 연습을 시작해 보자.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게 되면 당장 세상이라도 끝날 것처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느라 혹은 쓸데없는 걱정거리들을 끌어안느라 현재를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되돌아보며 말이다.책에서 인용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양로원이나 호스피스의 노인들 중 더 현명하다고 평가된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삶에 더 만족하는 경향을 보였다. 현명한 사람은 더 현실적인 기대를 하며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덜 실망한다. 그들은 쓸 수 없는 돈에 욕심을 내거나 이룰 수 없는 욕망을 품지 않는다. 게다가 기억이 나지 않으니 모욕 당했다며 복수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지도 않는다. 바꿀 수 없는 것, 하찮은 것에 쓰던 에너지를 이제는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핵심적인 것에 쏟아붓는 것이다. 저자가 만난 노인 중 한 명인 프레드의 말처럼 ‘행복은 지금 당장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8-11-30

주목받는 작가 초대작·시·수필 등 70여 편 실어

포항문인협회(회장 최부식)는 최근 기관지 ‘포항문학’ 통권 제45호를 발간했다. 연간지로 발간하는 ‘포항문학’은 이번 45호에서 특집1 좌담 ‘도시, 포항’과 특집2 포토에세이 ‘땅이 흔들렸다, 삶이 흔들렸다’를 필두로 전국에서 주목받는 작가들의 초대 작품들과 문인협회 회원들의 시, 수필, 동화, 소설, 서평, 탐방 등 70여 편의 작품들을 실었다.호를 거듭할수록 전국 문단과 문인들의 주목을 받아온 ‘포항문학’은 올해 지역사회에 좀 더 천착하고자 특집을 마련했다. 이는 ‘포스코 창립 50주년’과 지난 해 ‘포항지진’을 계기로 ‘도시, 포항’이 어떻게 형성돼 왔고 현재의 형상은 어떠한지, 이 도시를 일궈온 시민의 삶은 어떠했는지, 위기에서 도약을 위한 희망의 불씨를 어떻게 지펴야할지 등 사회문화적인 시각과 의견을 제시하고,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특집1 ‘도시, 포항’ 좌담에는 김주일(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학부 교수),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춘식(동신대 에너지융합대학 교수)가 참여해 전문적인 시각과 분석으로 ‘도시, 포항’의 발달 과정과 원도심, 부도심의 형태, 문제점을 살펴보면서 앞으로의 전망을 짚어봤고, 지진 등의 재해를 극복하면서 새롭게 발전하기 위한 방법도 논의했다. 특집2 포토에세이에서는 지난해 발생한 포항지진의 상처 속에 희망을 키우는 포항시민의 모습을 담았다.문예지 특성을 살린 본격 문학작품으로 전동균, 권성훈, 하상만, 임재정, 김준현, 권상진 시인들의 신선한 시들과 장정희 소설가의 소설 ‘흔들리는 동안’을 실었다. 소설 ‘흔들리는 동안’은 자수성가한 노인의 임종을 다룬 글로 코믹하면서도 삶의 허무함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로, 초대작품들은 현 한국문단의 흐름과 수준을 가늠케 하는 수작들이다. 또한 포항문인협회 작가들은 지역과 이웃의 삶을 통해 그 수고로움과 아픔, 기쁨 등을 문학적 언어로 담아냈다.최부식 포항문인협회장은 “이 모든 것은 ‘포항문학’과 포항문인협회가 지역을 바탕으로 추구해온 문학정신이며, 작품세계이다. 우리 일상이 문학이고 지역 문학이 한국 문학의 바탕임을 새삼 일깨우기 위해 ‘포항문학’은 또다시 지평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11-30

르네상스~바로크 시대~계몽주의로의 철학여행

철학서적 역사상 전례 없이 280만 부 판매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나는 누구인가?’의 저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신작‘너 자신을 알라’(열린책들)가 출간됐다. 독일 철학계의 슈퍼스타로 불리는 저자의 ‘철학하는 철학사’ 3부작의 제2편. 첫 번째 시리즈가 기원전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부터 14세기 이탈리아 인문학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까지 약 2천년에 걸친 고대·중세 철학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15~19세기 중세와 근대 철학들을 살펴본다.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철학부터 계몽주의와 독일 관념론에 이르는 철학 여행이 펼쳐지는 동안 로크, 제임스 해링턴, 라이프니츠, 헤겔 등 주요 철학자들이 등장한다.‘철학하는 철학사’ 3부작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서양 철학사를 집필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연작 기획이다. 전작 ‘세상을 알라’를 통해 새로운 철학사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과 결과를 보여 준 바 있는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이번에 출간된 두 번째 책 ‘너 자신을 알라’에서도 서양 철학의 발전 과정을 당대의 사회, 경제, 문화의 측면에서 기술하며 예의 치밀함과 균형감을 이어 나간다.현재 2권까지 출간된 ‘철학하는 철학사’는 독일에서 인기를 끌며 최근까지 누적 판매량 23만부를 넘어서며 철학서, 그중에서도 철학사 분야로선 전례가 없는 인기를 얻고 있다. ‘현대 철학’에 대해 다룰 3권 ‘너 자신이 되어라’는 현재 집필 중이다.‘너 자신을 알라’가 다루는 주제는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바로크, 계몽주의, 그리고 독일 관념론으로 이어진다. 기존의 철학사와 비교한다면 즉 철학의 시대적 분류와 관련해서라면 이 책은 불친절하다. 프레히트가 말하는 이 책의 목적은 일련의 분류를 ‘그저 일목요연하게 개관하는 것’이다. 기존의 철학사들이 손에서 놓지 못했던 ‘시대 구분과 같은 형식적인 틀의 문제’에 구애받고 싶지 않은 것이 그 이유다. 가령, 르네상스의 시작과 끝이 언제인지, 바로크는 역사적 시기인지 예술 양식인지, 어떤 ‘시대’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은 프레히트의 관심사가 아니다.형식으로부터의 자유가 만든 틈을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은 철학사적 행간들, 즉 이야기다. 프레히트가 ‘시대적 육체성과 생물학’이라 표현하는 각 철학 시대의 현장감은 이 책의 구석구석에 포진해 역사, 정치, 사회적 사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아교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는 이런 이야기들은 ‘물줄기가 거의 바뀌지 않는 강’처럼 흐르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을 향해 내달린다.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프레히트는 ‘전문 영역과 전문가들의 세계’라고 정의한다. 그는 동시에 지식인이 처한 작금의 상황을 꽤나 부정적으로 바라본다.‘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축적돼 온 전문 지식의 양이 너무나도 부담스럽다’는 고백도 뒤따른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방향 정립에 필요한 지식으로서 잃어버린 것들을 보충하는 것’이며, 철학사는 ‘지식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영역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새로운 철학사에 대한 프레히트의 열망은 여기에 있다.‘너 자신을 알라’에서는 쿠자누스부터 헤겔까지 서양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소개된다. 그들에 대해서 프레히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철학의 역사이면서 회가 거듭되는 연재소설과도 같다. 등장인물들의 일면은 이야기에 재미를 더한다. 라이프니츠는 ‘서술한 보람이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적 캐릭터로 딱 잘라 묘사된다. 계몽주의의 아버지 로크가 흑인과 인도인의 인권에는 무관심했다는 모순적이고 희극적인 지점이야 말로 시리아 난민과 저녁 메뉴를 동시에 걱정하는 인간 사회의‘특수 도덕’의 좋은 예시라는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윤희정기자

2018-11-23

하흥규 시인 루게릭병 투병 중 쓴 시 100편 담아

“산기슭 절개한 절벽 밑동/박토에 발묻고/아슬아슬 난간에 떨어질듯/생명줄 하나 붙잡고/몸뚱아리 배배 꼬며/얽히고설켜서/하늘보고 야금야금 오르며/나목이 부끄러운지/ 연둣빛 웃음 짓는다.”‘무시듬’(기획출판 오름)이라는 시집에 실린 ‘등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시집을 출간한 사람은 온몸이 점점 굳어가는 루게릭병에 걸려 투병 11년차인 하흥규(68)씨다.인생의 절정을 맛볼 나이인 58세에 루게릭병에 걸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불치의 병과 싸우면서 느낀 자신의 감정을 시로 쓰고, 그 시들을 모아 시집을 출간한 것이다.하씨의 시집 출간은 지난 2008년 루게릭병으로 동의대한방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천상병 시인의 시집 ‘귀천’을 읽고 병상에서 시를 쓰는 것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9월엔 ‘한국문학시대’ 제50호에 ‘물봉선화’외 4편의 시를 발표해 2017 한국문학시대 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하씨는 “글을 쓰기 시작하니 머릿속 기억들이 모두 살아나고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아름답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점점 나빠지는 아픔을 잊을 수 있었으며 내 삶의 보약 같은 활력소가 되었습니다”고 밝혔다.실제 시집은 지난 10년 동안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그가 병에 걸리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 떠가는 과정이 담겨져 있다. 그의 시편들에는 2008년 발병 때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루게릭과 싸우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 있어 가슴 뭉클하게 한다.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포가 그에게는 “결함있는 삶이 어떻게 충만해질 수 있는지, 깨진 꿈이 어떻게 우리를 더 완전한 상태로 깨어나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스승이 됐다. 시집 제목‘무시듬’은 하씨의 고향 마을 이름을 붙인 그의 표제시에서 따왔다.하씨는 “한 송이 꽃도 설한풍과 용광로 같은 뙤약볕, 장맛비를 맞으며 참고 견디어 한 열흘 꽃피웁니다. 풀꽃 하나 나무 한 그루가 꿈을 이루려는 노력의 대가로 제 생명을 연장시켜주고 있습니다”고 언급했다.시집이 출간됐지만 하씨는 여전히 전신마비의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한다. 다만 숨쉬는 동안의 소원 중에 하나였던 시집을 낸 만큼 앞으로 더 넓고 깊고 높은 심미적 감성으로 우주안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가치를 노래하는 시들을 더 쓰고 싶다고 했다.▲ 하흥규 시인하씨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눈 뜨고 잘 때까지 시집을 놓지 않고 좋은 표현은 메모하고 써보니까 시 맛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며 “난치병을 앓고 있는 만큼 시집 이외에도 장애인 분들과 희귀난치병으로 고통받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는 글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씨의 시집‘무시듬’에는‘무시듬 내 고향’, ‘꽃은 피고 지는데’,‘느그들은 그리 살지마라’,‘떠나리라’, ‘여보 미안해’ 등 5부에 걸쳐 100편이 담겼다.하씨는 투병의 고통과 외로움에 대처하기 위해 내면의 참된 자신을 믿으며 삶 자체에 깨어있었다. 자신에게 찾아온 병을 통해 인생의 남은 날들을 새롭게 설계했다. 더 나아가 루게릭병 환자라는 사실을 온 마음으로 인정하고 병 극복의 역량을 키우고, 병을 인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만들고 있다.하흥규씨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1976∼2007년 포스코에서 근무했다./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8-11-23

미국 첫 흑인 퍼스트 레이디의 인생 고백

“내게 무언가가 된다는 것은 어딘가에 다다르거나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진화하는 방법, 더 나은 자신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이다. 그 여정에는 끝이 없다. ”-‘비커밍’554쪽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54)의 자서전 ‘비커밍’(Becoming·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이 국내 번역 출간됐다.14일 전 세계 31개 언어로 동시 출간된 이 책은 올해 초부터 출간 예고되면서 미국 민주당 지지층을 비롯한 세계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역대 미국 대통령 부부 자서전 사상 최고액(약 730억원 추정)으로 판권이 팔린 후 예약 판매만으로 아마존 종합순위 1위에 올랐다.‘비커밍’은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 레이디인 미셸 오바마가 처음으로 펴내는 자서전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어린 시절 가족의 이야기와 학창 시절, 법률 회사에서 젊은 오바마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게 된 과정, 그리고 그 후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여성들의 롤모델로 거듭나기까지의 스토리를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시카고 변두리에서 태어나 여성과 약자들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미셸의 삶은 포기하지 않은 한 인간의 성장 스토리이자 험난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피워내는 진정한 용기를 전해준다.책은 프롤로그, 내가 되다 (Becoming Me), 우리가 되다 (Becoming Us), 그 이상이 되다 (Becoming More), 에필로그, 감사의 말 등 총 564쪽으로 구성됐다.이야기는 미셸이 어릴 적 살았던 시카고의 사우스사이드에서 시작된다. 그녀가 자랐던 사우스사이드는 원래 백인과 흑인들이 어울려 살던 동네였다. 그러던 것이 백인들이 차차 동네를 떠나면서 가난한 흑인 동네로 변해간다. 한번은 백인들이 사는 동네에 갔다가 누군가 미셸네 차를 길게 긁어놓는 일을 겪기도 한다. “남들보다 두 배 이상 잘해야 절반이라도 인정받는” 흑인 사회의 현실을 어린 미셸은 깨달아간다.그러나 미셸네 가정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늘 스스로 판단하게 하고 의견을 존중해줬던 엄마, 다발성경화증이라는 불치병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삶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아빠, 재능을 활짝 꽃피운 믿음직한 오빠 아래에서 어린 미셸은 단단하게 영글어간다. 미셸은 특유의 성실함과 승리욕으로 우등생으로 자라난다. 헌신적인 부모 덕분이기도 했지만, “나는 이대로 충분할까?”라는 불안감이 스스로를 추동한 결과였다. 고등학교 진학 상담사가 “네가 프린스턴에 갈 재목인지 잘 모르겠구나” 하며 적대적인 말을 내뱉었을 때에도 그녀는 “두고 보라지” 하면서 기어코 프린스턴대에 입학한다. 그후 하버드 법대에까지 진학하고, 오로지 현실적인 성공을 향해 앞만 보면서 나아간다. 그러고는 마침내 고향 시카고로 금의환향해 일류 법률 회사인 시들리 앤드 오스틴에 변호사로 취직한다. 이때까지 미셸은 ‘성공’을 향해 앞만 보면서 나아가는 ‘애석한’ 존재였다고 한다. 고향 시카고에서 다니던 로펌에 “희한한 이름”을 가진 신입 인턴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버락 후세인’이라는 흔치 않은 이름을 가진 남자의 성을 따르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였지만, 키가 크고 인상 좋은 신입 사원 오바마에게 그는 조금씩 끌렸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어느 밤, 오바마와 키스를 나눈 뒤 미셸의 인생 항로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한다.버락과의 결혼 후 미셸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의 일과 가정생활을 병행하기 위해 초인적인 스케줄로 일하는 한편,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들을 만들어간다. 청년들의 공직 커리어를 돕는 ‘퍼블릭 앨라이스(Public Allies)’를 출범시키고, 고향 시카고 시정부와 시카고대 부속병원에서도 중책을 맡는다.그러나 버락이 뜻밖에 정치적 인기를 얻고 결국 대통령이 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미셸은 책에서 오바마가 대선에서 이기고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행동하는 퍼스트 레이디’로 고유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 했던 사례들, 권력자답지 않은 소탈한 일상의 모습들을 자세히 소개한다.2009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하며 백악관에 입성한 미셸. 이후 놀라운 행보를 거듭하면서 전 세계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일했다. 미셸은 아동 비만과 전쟁을 벌였고 건강한 식탁을 만들기 위해 식품회사들과 싸웠다. 전 세계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흑인 여성에 대한 편견에 당당하게 맞섰다. 그녀는 귀여운 두 딸과 함께 백악관을 역사상 가장 따뜻한 곳으로 만들었으며, 고루한 권위를 깨뜨리는 가장 지적이고 검소한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TV 쇼에 나가 펑크뮤직에 맞춰 춤을 추고, 차 안에서 비욘세의 노래를 불렀던 그녀는 이제 수많은 배척과 질투, 뿌리 깊은 두려움을 물리치고 세계 여성들의 롤모델이자 희망과 가능성의 아이콘이 됐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11-16

“이것이 인간인가, 종이에서 시가 싹트리라 기대하지 마라”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30년간 투명한 서정과 깊은 삶의 언어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나희덕 시인이 여덟번째 시집‘파일명 서정시’(창비)를 펴냈다.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사랑과 생명력으로 가득한 낯익은 세계에서 벗어나 블랙리스트나 세월호사건과 같이 ‘지금-여기’에서 발생하는 비극과 재난의 구체적 면면을 시 속으로 가져온다. 표제작 ‘파일명 서정시’에서는 냉전기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쩨를 감시하며 작성한 자료집(‘Deckname Lyrik’, 파일명 서정시)을 소재로 차용해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민간인 사찰이 자행된 우리의 현실을 짚었다. 시인은 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미처 하지 못했던 말, 그러나 해야 하는 말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이없는 죽음들부터 자본주의의 균일적 사고와 착취까지 절망과 파국의 현장을 낱낱이 들추는 ‘폐허의 시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나희덕의 시세계는 최근작들을 통해 변모와 전환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죽음과 부재와 결핍이라는 서늘한 세계에 발을 딛고 선 이곳에서 시인은 “이것이 인간인가”(‘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되물으며 “종이에서 시가 싹트리라 기다리지 마라”(‘종이감옥’)고 선언한다. 어쩌면 시인이 처음 내뱉는 거칠고 직설적인 어법은 존재의 아픔과 곳곳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낱낱이 헤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론이자 이 자체로 새로운 미학을 향한 내면의 고투다.삶의 숱한 참혹과 어이없는 죽음들 앞에서 시인은 무언가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무엇도 말할 수 없다는 절망감 사이에서 어떤 말도 무의미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러나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들”과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기에 시인은 “간신히 벌린 입술 사이로 빠져나온 말들”과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말들”(‘문턱 저편의 말’)을 뱉는다. 이 비명 같은 말들은 서로 이어져 말다운 말이 되고, 다시 다른 말을 불러내 끝내 노래가 된다.시인은 고대 인도의 탄센 설화,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쩨를 사찰한 기록,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쁘리모 레비의 증언,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 끌라우디아 요사 감독의 영화, 공동체주의자 찰스 테일러 등 다른 장르의 텍스트를 재구성해낸다. 세계의 참혹을 응시하는 다른 눈들과 눈을 마주치며,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부르는 자신의 노래가 여전히 아름다운 화음이 되기를 바라며 특유의 언어적 감각과 생태주의적 관점을 통해 인간 현실의 문제부터 존재의 심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윤희정기자

2018-11-16

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영화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4년 만에 새로운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을 펴냈다. 이번 산문집은 ‘한겨레21’에 실었던 칼럼‘신형철의 문학 사용법’등을 비롯해 2010년부터 8년 동안 일간지와 문예지 등에 연재한 글과 미발표 원고를 모아 엮은 것이다.그간의 글을 매만지며 자신의 글 다수를 관통하는 주제가 슬픔이었음을 깨달은 저자는 ‘타인의 슬픔’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를 풀어놓는다. 평론가로서 작품과 세상 사이에 가교를 놓고자 했던 저자의 성실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1부는 ‘슬픔’을 공부한 글을 묶었다. 헤로도토스‘역사’에서부터 헤밍웨이를 지나 박형준과 김경후의 시에 이르기까지, 작품 속의 슬픔, 허무함, 덧없음, 상실 등을 꼼꼼히 읽어간다. 2부는 ‘소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카뮈, 보르헤스, 제발트부터 권여선, 임철우, 박완서, 배수아, 김사과, 은희경, 김숨까지 국내외 작품을 읽고 우리는 문학을 통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3부는 참여적 주제의 글을 싣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부터, 태극기 부대, 성소수자 문제와 미소지니, 트럼프, 국정 농단, 멀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과 4대강사업, 용산참사, 희망버스, 천안함 사건까지 사회적 이슈를 마주한 평론가의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시선을 담았다. 4부는 ‘시’라는 주제 아래, 우리는 왜 시를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행간으로 권하는 글을 묶었다. 릴케, 김수영부터 황인찬 그리고 비틀스 노래 ‘노위전 우드(Norwegian Wood)’까지 다양한 시와 노래를 읽는다. 여러 출판사의 시인선 기념호에 부치는 글들도 함께 묶었다. 마지막으로 부록에는, 읽을 만한 짧은 소설을 권하는‘노벨라 베스트 6’, 그간 써온 추천사 모음 ‘추천사 자선 베스트 10’, 경향신문에 닷새간 연재했던 ‘인생의 책 베스트 5’등을 수정, 보완해 수록했다.책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슬픔’이다. 저자는 영화 ‘킬링 디어’를 통해 타인의 슬픔을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한계를 본다. 그러나 타인의 슬픔을 결코 알 수 없으리란 결말을 알면서도 다른 이의 슬픔을 공부하는 것이 인간이기도 함을 그는 지적한다. 제목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데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이해하려 애쓰는 것에서 오는 역설적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다.이 외에 책에서 말하는 ‘슬픔’의 면모는 다양하다. 발터 벤야민을 통해 패전국의 왕 프삼메니토스는 왜 가족의 죽음이 아닌 시종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는지 살피며 슬픔을 해석하는 방법을 고찰하기도 하고 프로이트의 “꿈은 소원 성취”라는 명제를 소개하며 그렇다면 물속에 잠긴 아이들의 꿈을 꾸는 유가족의 꿈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되묻기도 한다. 문학이 독자를 위로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을 생각해보는가 하면 트라우마는 내가 잊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나를 놓아주는 ‘주체’가 아닐까 이야기하며 현재진행형의 역사적 사건을 꺼내기도 한다.그러한 슬픔은 궁극적으로는 3부의 참여적 글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문학작품과 사회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슬픔을 분노로 표출한다. 3부의 ‘굿바이, 박정희’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름을 알린 저자가 때로는 이렇게도 매섭고 신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윤희정기자

2018-11-09

이반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 국내 최초 완역

러시아 대문호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1818-1883)의 산문시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민음사)가 번역, 출간됐다. 투르게네프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투르게네프 산문시 83편 전편을 원어에서 완역했다. 자연과 여성심리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러시아 제일의 문장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투르게네프는 언어의 장벽을 깨고 러시아 문학을 서구에 처음으로 소개한 작가.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등 19세기 러시아의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소설들로 국내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경력을 시로 시작한 시인이기도 하다.이번 산문시집은 그의 말년에 창작된 것으로, 거장이 남긴 마지막 작품들이다. 투르게네프 특유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 그리고 환상적 이미지, 이 모든 것들이 길게 말하지 않고도 본질을 꿰뚫는 대가의 솜씨로 이 한 권의 시집에 완성돼 있다.“어미 새가 새끼를 구하기 위해 돌진했고,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새끼를 구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몸뚱이는 공포로 벌벌 떨었고, 어미 새의 가냘픈 목소리는 거칠게 쉬어 버렸다. 어미 새는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이다!(….)생각해 보니, 사랑은 죽음보다, 죽음의 공포보다 더 강하다. 삶은 사랑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움직인다.”― 투르게네프 ‘참새’에서20세기 초 식민지 조선에서 러시아 문학은 다른 어떤 외국문학보다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중 투르게네프는 이광수, 톨스토이와 함께 당시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읽혔던 3대 작가 중 하나였다. 투르게네프 산문시의 쉽게 읽히는 시어와 거기에 담긴 삶의 지혜와 통찰은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투르게네프는 프랑스의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프랑시스 잠 등의 산문시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의 산문시는 다시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에 전통의 정형시를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근대적인 시를 모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투르게네프의 산문시 중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바로 ‘거지’였는데, 1910년~1930년 사이 최소 12회 반복해 번역됐다. 가난이라는 시대의 현실 앞에서 민중에게 손 내밀고자 하는 공감과 연민의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는 당시 지식인들의 영혼에서부터 공명을 이뤄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명은 투르게네프의 시를 번역하고 탐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창작으로 이어졌다.“가지고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거지는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내민 손이 힘없이 떨린다.어쩔 줄 몰라 당황한 나는 떨리는 그의 더러운 손을 꼭 잡았다….“형제님, 미안하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소.”거지는 충혈된 눈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았다.그의 파리한 입술에 엷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이번에는 그가 차디찬 내 손가락을 꼭 잡아 주며 속삭였다.“형제님, 저는 괜찮아요.이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형제님, 그 역시 적선이지요.”그때 나는 이 형제한테 내가 적선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르게네프 ‘거지’에서투르게네프 특유의 “꿀과 기름처럼 완벽하게 유연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러시아의 풍경, 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는 예술적 특징은 그의 시적 내면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그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그의 산문시집에서도 역시 19세기 러시아의 가혹한 농노제 아래 일어났던 어두운 이야기들을 고발했던 리얼리즘 소설 대가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산문시집의 투르게네프의 목소리는 대체로 슬프고 다정다감하지만 때때로 냉정하고 신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산문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삶의 불가해함에 대한 체념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한편으로는 바로 그것이 선물처럼 가져다 줄 화해와 용서에 대한 기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11-09

전쟁 고아를 품고 가난한 이들의 이웃으로 평생을 살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교육의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우리글을 깨우치지 못한 시민들의 수가 엄청났다.이들에게 문해학교인 애린공민학교를 자신의 집에 설립해 운영했다. 이 학교를 거쳐 간 시민이 수천 명이었다.또 주변의 폭력과 괄시에 시달리다 못해 도움을 요청해 온 흥해 음성 한센인들의 후견인이 돼 이들의 선한 이웃이 돼 주었으며 애도농장과 애도교회 설립을 주선했다.”애린복지재단,인간 상록수 재생 이명석 선생일대기 출간선생의 생애·활동·업적생생한 증언·사진과 함께 실어포항지역에서 문화예술의 씨를 뿌리내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이웃사랑을 실천한 선각자.재생 이명석(再生 李明錫·1904∼1979) 선생의 평생 동안 자기 희생을 통해 기독 정신을 실천한 일대기를 담은‘재생 이명석’(새암출판사)이 출간됐다.‘재생 이명석’은 평생을 선린(善隣)·애린(愛隣)의 정신으로 일제감점기와 6·25 전쟁을 통해 피폐하고 암울했던 포항 지역사회의 등불이 되어준 한 지도자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재)애린복지재단(이사장 이대공)은 설립 20주년을 기념해 그의 삶과 정신을 공유하기 위해 펴냈다. 책은 6·25 전쟁 후 전쟁고아들을 위한 선린애육원 설립과 운영에 선도적 역할을 했으며, 애린공민학교를 설립해 전쟁 중 학업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들에게 문해교육을 실시했고, 어려움에 처한 성곡마을 한센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정착촌 마련을 도왔으며 또한 포항 지역의 문화예술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감당하며 오늘날 포항 문화예술의 토대를 마련한 재생 선생의 활동과 정신을 자료와 함께 싣고 있다. 재생 선생은 1904년 경북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에서 이규조 옹과 방구 여사에게서 태어났다. 끼니 해결이 어려울 정도로 집안이 어려웠지만 부친이 기독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앙을 통해 힘을 얻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삼사리에서도 한참이나 먼 장사리의 양성교회에서 운영하는 장사학교에서 한글 해득을 한 소년 이명석은 그림에서 남다른 소질을 보이며 교사들의 눈에 띄었던 모양이었다. 교사들의 칭찬은 소년 이명석을 더 넓고 큰 세상으로 이끌었다. 소년은 단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열두 살에 집을 떠나 포항을 거쳐 대구로 갔다.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장사학교 선생님이 알려준 사립학교를 찾아갔지만 일제에 의해 폐교된 것을 알게 되고 실망하게 된다.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찾아갔으나 자리가 없었고 몇 군데를 더 알아봤으나 명석을 받아주는 데는 없었다. 명석은 일단 대구 지리도 익힐 겸 해서 서문시장과 약령시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았다. 작은 심부름에서 물건 배달까지 힘든 삶의 아픔을 일찍 겪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4년 후 열일곱 살 되던 1921년 9월 명석은 국권회복을 위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한 사설 강습소인 교남학원 중등과에 등록한다. 입간판 만드는 일 등 학교일을 보면서 공부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명석은 중등과와 고등과를 합쳐서 4년 과정을 마친다. 1925년 큰 꿈을 위해 일본으로 떠난 명석은 간사이 미술원에 입학해 미술을 전공하고 스물세 살이 돼 고향에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논밭으로, 바다로 나가서 일을 시작한다. 당시로서는 큰 고을이었던 영해 원황마을 원황교회 도달석 집사의 장녀 도우술과 결혼한 명석은 1933년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해 도회지인 포항으로 이사한다. 낯선 곳 포항에서는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명석은 가족을 포항에 남겨두고 다시 일본으로 떠난다.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명석은 공장 굴뚝이 무너지는 큰 사고로 다치게 돼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곳에서 결핵이라는 병마에 시달리는 바람에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한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건강도 회복하게 된 명석은 페인트 일을 하게 된다. 색깔을 만들어 내는 일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던 명석은 일본인들의 주택 벽면이나 창틀 페인트 작업을 간판직업으로 삼았다. 일을 잘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부두로 나가서 선박 도색 작업까지 작업 범위를 넓혀 나갔다. 그러던 중 1938년 대구일보 기자로 포항에 온 박영달과 포항읍사무소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김대정을 만나게 된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나름대로 식견을 갖고 있던 이들이었다. 명석은 그들과 의기투합해 호형호제하며 지냈다. 일제에 억눌린 문화운동을 민족 계몽운동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포항교회(현재 포항제일교회)에 등록한 명석은 일제강점기 강압적인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정책을 온몸으로 견뎌냈으며, 포항제일교회 청년들로 관악대를 조직해 농촌 계몽운동과 피폐된 식민지 농어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포항에서 유일하게 남았던 포항제일교회를 찾아온 미해병 군목과 협의해 선린애육원과 재단 설립을 주도해 부모를 잃고 거리를 떠도는 고아들을 돌보았다. 특히 재단의 공공성을 갖추기 위해서 당시 포항을 대표하던 5개 교회가 참여하도록 정관을 만들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교육의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우리글을 깨우치지 못한 시민들의 수가 엄청났다. 문맹자로 전락한 그들의 생활은 불편하기도 했지만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직업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해방과 전쟁은 끝이 났지만 문맹자를 도울 수 있는 정부의 대책도 요원한 지경이었다. 이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주는 바탕을 마련해 주기 위해 문해학교인 애린공민학교를 자신의 집에 설립해 운영했다. 이 학교를 거쳐 간 시민이 수천 명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주변의 폭력과 괄시에 시달리다 못해 도움을 요청해 온 흥해 음성 한센인들의 후견인이 돼 이들의 선한 이웃이 돼 주었으며, 애도농장과 애도교회 설립을 주선했다. 더욱이 이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아 정착해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유지 불하의 어려운 법적 절차까지 지원했다. 6·25 이후 지역민들에게 일제 강점기와 전쟁에 따른 정신적 상흔들이 가슴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치유하고 시민들 삶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길은 문화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문화원 설립을 주도해 지금의 포항문화원을 설립했으며 포항 최초의 문화제인 ‘개항제’를 4회까지 운영했다. 예술 단체가 전무하던 시절, 포항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예술인들의 구심점이 돼 그들의 활동을 지원 육성했으며, 부지런히 후학들을 길러냈다. 그들 중에 화가 권영호, 김두호가 있으며, 문학가로는 손춘익, 박이득, 연극에는 신상률, 김삼일 등이 선생의 정신과 뜻을 잇고 있다. 오늘날의 포항예총도 재생 선생이 놓은 주춧돌 위에 쌓아올려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960년 초 독서운동과 도서관 설립 운동을 시작했다. 미 해병으로부터 임대한 퀀셋에 시립 도서관 이름을 걸고 시민들에게 독서 활동을 장려했다. 이때 대부분의 장서는 재생 선생의 집에 있던 책을 기증한 것이었다. 이 일이 기반이 돼 시립서경도서관이 세워질 수 있었으며 오늘날 시립포은도서관의 모체가 됐다. 재생 선생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비극의 뼈아픈 시련을 몸소 겪으면서도 예수님의 이웃 사랑 정신을 실천하고 문화예술 부흥을 통해 인간다움을 실현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인간 상록수 훈장을 받았고 1998년에는 포항지역 문인들이 뜻을 모아 선생이 생전에 자주 찾던 포항시 북구 수도산 덕수공원에 문화공덕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간된 책에는 재생 이명석 선생의 이 같은 생애와 활동, 신심과 업적, 일제강점기와 6·25 전후의 현실 등을 알려주는 재생 선생의 활동상과 사진들이 실려 있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문맹과 가난에 허덕였던 우리나라 사정도 볼 수 있다. 특히 85가지의 각주가 달릴 만큼 충실한 자료와 생생한 증언에 따른 기록으로 재생 선생의 활동과 함께 당시의 포항 지역 사정까지 읽어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적 가치를 갖고 있는 책이다. 이대공 애린복지재단 이사장은 “아버지는 가난한 이들의 이웃으로 평생을 사셨던 분이며,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혼란기를 거치며 시민들이 가졌던 상처 난 마음을 문화라는 손길로 다독여 주셨던 분”이라며 “그런 삶과 정신은 기독교 신앙에 따른 것이며 바람이 있다면 아버지의 선린과 애린 정신이 오늘날 포항시민들의 삶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재생 이명석 선생 연보1904년 영덕 강구면 삼사리 출생(부 이규조, 모 방구)1913년 장사학교 한글 수학1916년 포항을 거쳐서 대구로 공부를 위해 집을 나섬1921년 교남학원 입학1924년 대구교남학원 중등, 고등과정 4년 수료1925년 일본으로 출국1925년 일본 관서미술원 입학1927년 관서미술원 휴학1927년 귀국, 부모님 밑에서 농업1928년 결혼 (영해 원황교회 도우술 1912년생)1932년 1남 진우 출생1933년 포항 상원동 이주1934년 일본 재 출국1935년 1녀 딸 매리 출생1935년 귀국1936년 8월 2일 삼사교회에서 포항제일 교회로 이명(移名) 당회 결의1937년 12월 26일 포항제일교회 서리집사1938년 2남 태우 출생1939년 일제의 강제적인 포항 기독교 신사참배 행사를 무산시킴1941년 3남 대공 출생1941년 창씨개명으로 일제 저항이진우(쯔끼시로 오오히로 / 月城大仁),이매리(쯔끼시로 매리 / 月城梅理)이태우(쯔끼시로 오오쿠니 / 月城大國),이대공(쯔끼시로 오오기미 / 月城大公)1945년 해방, 도서 대본소, 간판 및 페인트 가게 운영1946년 포항문화협회 조직1948년 3월 21일 장로 피택1949년 당회에 질병으로 인한 장로시취(試取) 연기 요청1950년 6.·25 전쟁 동안 오천읍 진전으로 피난1950년 전쟁 참화로 집을 잃음 (상원동 260-5번지 육거리 하나은행 자리)불타고 남은 도서는 서경도서관이 생길 때 기증그 후 도로정비로 인하여 대토1950년 10월 22일 장로장립결의1950년 애린 공민학교 운영1950년 11월 제일교회 장로 장립 예배1951년 포항후생주택조합장1952년 12월 선린복지재단 2대 이사장1952년 애린성경구락부 설립 운영1953년 9월 선린복지재단임시 이사회 의장을 맡아서복지재단 설립 의결 및정식 인가 등록1955년 애린공민학교 설립 운영1956년 성곡동 음성 한센병 환자 지원,애도원, 애도교회 지원 및 작명1958년 선린애육원 제4대 법인 이사장1961년 포항문인협회 창립1963년 미인가 한국예총포항지부장1963년 포항기독청년회 창립1964년 4대 선린애육원 원장1964년 연일교육재단 분규 수습위원장1965년 사단법인 포항문화원 원장1965년 이진우 검사의 도움으로애도원 정착 지원금 신청1966년 애도원 정착을 위한 토지 구입 성사1966년 『재생』이라는 아호 사용1966년 포항의 첫 문화제인「포항개항제」운영1970년 2월 문화원 부설 독서회 조직1970년 애도원 보조 (매월 2,000원)제일교회 당회 결의1975년 3월 포항제일교회 원로장로 추대1979년 4월 5일 2남 거주하는 미국 여행1979년 9월 28일 소천

2018-11-02

포스트 게놈, 생명체를 편집하고 창조하는 시대

21세기 초, 인간 유전체의 정보를 읽어내겠다는 인간 유전체 계획(Human Genome Project, 인간 게놈 프로젝트)이 완료된 이후 생명 과학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2016년 5월 합성 생물학의 세계적 대가들이 하버드 의과 대학에 모여 인간의 유전체를 합성하는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논의한 바 있고, 2017년 8월에는 우리나라와 미국 공동 연구 팀이 크리스퍼 카스나인(CRISPR-Cas9)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인간 배아의 유전체 교정에 성공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2018년 여름, 중국 과학 아카데미의 합성 생물학 연구 그룹과 뉴욕 대학교의 제프 보에케 교수 연구팀은 효모의 염색체 16개를 각각 1개, 2개의 염색체로 이어 붙여 재설계했고 이 효모들이 문제없이 생명 현상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고했다. 이렇듯 인간이 직접 유전체를 합성해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포스트 게놈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는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시대’(사이언스북스)에서 게놈 프로젝트 이후 생명 과학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합성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소개하고 크리스퍼 가위, 세포 치료제 등 실제 이 학문을 통해 생명체를 변형시킨 여러 실례와 위험성 등을 설명한다.‘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는 합성 생물학, CRISPR-Cas9을 비롯한 유전자 가위, 줄기 세포를 설명하는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눠진다. 1부에서 3부는 합성 생물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한다. 1부는 합성 생물학이 출현하게 된 역사와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생명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합성 생물학의 행보를 보여준다. 2부는 합성 생물학을 적용하여 생명체를 변형시킨 여러 사례들을 소개한다. 바이러스를 복원해 확산시키면 심각한 사회적 해를 끼칠 수 있지만 멸종한 동물을 살려내 생명 다양성을 지킬 수도 있는 합성 생물학의 양면적 특성도 논한다. 3부는 합성 생물학이 위험하게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고하고 2018년 여름 발표된 효모 유전체 재설계 연구와 그 의의를 소개하며 합성 생물학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열린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한다.4부에서 7부는 합성 생물학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술인 유전자 가위 기술,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CRISPR-Cas9)를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4부는 유전자 가위의 역사를 기술한다. 크리스퍼 이전의 유전자 가위의 역사를 훑고 크리스퍼 출현 이후 합성 생물학의 발전 경과를 정리한다. 5부에서는 크리스퍼의 발전으로 실현이 가능하게 된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과 유전자 치료 등 새로운 유전자 가위의 활용법을 소개한다. 6부에서는 인간 배아 유전체 편집에 사용되는 유전자 가위 기술과 그에 따르는 사회적 쟁점을 정리하고 있으며, 7부에서는 다른 유전자 가위 기술과 비교하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장점과 단점을 소개하고 유전자 가위 기술의 미래를 개괄한다.8부는 세포 치료를 주제로 한다. 세포 치료에는 세포를 추출해 병을 유발하는 특정 세포만 파괴할 수 있도록 유전적으로 변형해 다시 주입하는 면역 세포 치료와, 생체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세포의 줄기 세포를 체내에 주입해 생체 기능이 회복되도록 하는 줄기 세포 치료 두 가지가 있다. 세포 치료는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약을 통한 기존의 치료는 완전히 사라지고 세포를 이용한 개인 맞춤 치료가 대세를 이루게 될 수 있음을 예견한다. /윤희정기자hjyun@kbmaeil.com

2018-10-26

조선시대 사대부 한시 창작교과서 ‘오언당음’ 풀이

조선 선비들은 왜 학동들에게 한시를 가르쳤을까? 한시를 모르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은 지식인들이 관직으로 진출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는데, 과거시험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한시 짓는 능력이었다. 한시는 복잡한 규칙을 가진 문학 갈래다. 한자의 특성 중의 하나인 사성(四聲)을 둘로 나누어 평성(平聲)과 측성(仄聲)으로 구분하고, 평측을 맞춰 글자를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짝수 행의 마지막 글자에는 같은 계열의 소리로 운(韻)을 맞춰야 한다. 또한 구절끼리 대구(對句)를 맞춰서 표현해야 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규칙들이 더 많이 적용된다. 이렇게 어려운 규칙을 지키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순식간에 한시를 짓는 능력은 곧 그가 천재에 가까운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했다.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한시 창작 교과서였던‘오언당음’이 김풍기 강원대 교수(국어교육과)의 새로운 평설로 다시 소개됐다.‘당음’은 원나라 때 편집된 당시(唐詩) 선집으로, 시음·정음·유향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그중 조선의 지식인들이 ‘당음’의 본론 격으로 삼은 것이 ‘정음’이고, ‘오언당음’ ‘정음’을 중심으로 오언절구만을 뽑아서 편집한 책이다. 당나라 초기부터 후기까지 시대순으로 편집된 이 책은 당시를 기반으로 하는 한시 창작의 교과서처럼 널리 읽혔다.다양한 저서를 통해 ‘옛 시 읽기의 즐거움’을 피력해 온 김풍기 교수는 ‘김풍기 교수와 함께 읽는 오언당음’(교유서가) 에서 평소 한시를 번역하면서 느끼는 ‘미묘한 어긋남’을 이번에 평설(評說)의 방식을 통해 넘어서려 했는데, 이전의 번역에 상당 부분 동의하면서도 한시의 맥락과 내용을 자기 나름으로 풀어 쓰고자 많은 공을 들였다.김풍기 교수는 “당대 최고의 시인인 당나라 시인들의 작품에서 우리는 새로운 이미지와 상상력을 만나게 된다”고 전한다.조선에서 ‘당음’을 출판한 기록은 왕조실록에 보인다. 당나라 초기부터 후기까지 시대순으로 편집된 이 책은 당시를 기반으로 하는 한시 창작의 교과서처럼 널리 읽혔다. ·한시는 인간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문학 양식이다. 한자의 특성상 한시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한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료 해독’이라는 난제를 수반한다. “더구나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생기는 미끄러짐, 즉 번역 과정에서 생기는 미묘한 어긋남을 피할 수가 없다.”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은 자신의 시대가 구성한 일반적인 문학적 구성을 가지면서도 그러한 패턴을 탈피함으로써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다. 익숙하지만 어디선가 그 익숙함을 깨는 듯한 작품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한 한시를 우리는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日日人空老 날마다 사람은 부질없이 늙어가지만年年春更歸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오누나.相歡在樽酒 서로 기뻐함은 술동이에 있나니不用惜花飛 꽃잎 날리는 걸 안타까워할 것은 없지.”내 생애를 자연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아득한 슬픔에 젖어든다. 무한한 우주의 운행에 비하면 우리의 생애는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空’(공, 부질없이)과 ‘更’(갱, 다시)은 절묘하게 대구를 맞춘 글자다. 그렇기 때문에 ‘歡’(환, 기쁘다)으로 나아가는 명분이 생긴다. 이태백도 자신의 글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浮生若夢, 爲歡幾何?”라고 했다. 뜬구름 같은 인생은 꿈과 같으니 우리 생에서 기뻐할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좋은 벗이 있고 좋은 술이 있는 좋은 봄날 밤이면 당연히 즐겁고 기쁘게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_349∼350쪽에서 /윤희정기자

2018-10-26

한 맺힌 유골들, 현해탄을 건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아시아)는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유골봉환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사)아태평화교류협회 안부수 회장이 지난 2004년부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사업에 착수,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곳곳을 수백 차례 탐방하고, 2009년, 2010년, 2012년 세 차례에 걸쳐 일본에서 177위의 희생자 유골을 고국으로 봉환해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했다.이 책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된 한인은 총 800만명(국내 650만, 국외 150만)에 이르며 이중 성동원(위안부)은 약 20만명으로 학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한인 유골이 해외에 있을텐데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태무심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골봉환을 민간단체가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료 수집에서부터 유골 발굴과 수습, 봉환에 걸리는 오랜 시간, 막대한 비용, 복잡하고 까다로운 국내외 행정절차는 정부기관이라야 해결할 수 있다. 저자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 없이 온전히 자력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그 지난한 과정과 숱한 우여곡절을 엮었다.저자가 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탄광으로 끌려간 아버지는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와 “일본에서 같이 일하다 죽은 사람들 얼굴이 자꾸 어른거려. 그 사람들 유골을 찾아 고향땅에 묻어주고 싶어.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버릇처럼 중얼거리다가 저자가 돌이 되기도 전에 숨을 거뒀고, 어머니는 이 얘기를 저자에게 수시로 일러줬다.삼십대에 사업을 해서 돈을 좀 벌기도 했던 저자는 세파를 겪으며 돈이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2004년, 불혹에 접어든 저자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궁리를 하다가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게 되고, 이것은 저자의 운명이 된다. 마침 2004년 노무현·고이즈미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강제동원 유골 봉환에 대한 물꼬가 터졌고, 저자는 현지답사를 통해 오지에 방치된 무수한 한인 유골을 목도하게 된다. 낯선 땅에서 노예처럼 일하다가 지치고 병들어 죽으면 개처럼 묻혀버리는 처참한 현장에서 그들의 영혼을 반드시 조국으로 모시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진행되지 못하고 불안감이 수시로 밀려오던 2007년 7월경, NHK 계열의 한 방송사에서 유골 봉환사업과 관련해 출연 제의가 들어온다. 저자는 “이 추세대로 간다면 한인 유골은 영영 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인 유골이 묻혀 있는 장소만 알려 주십시오. 저는 어떤 보상도 대가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호소했고, 일본 각계각층에서 저자를 돕겠다는 연락이 쇄도한다.우리 정부의 비협조와 숱한 암초를 극복하고 2009년 1차 110위, 2010년 2차 21위의 유골을 봉환한 저자는 2011년에 일본 후쿠시마를 발바닥이 닳도록 다닌 끝에 유골 62위를 수습해 바닷가 사찰 납골시설에 보관해두고 3월 8일 잠시 귀국한다. 사흘 후, 쓰나미가 후쿠시마를 뒤덮는 대비극이 일어난다. 천우신조로 죽음을 피한 저자는 방사능으로 오염돼 출입이 통제된 유골보관 장소에 ‘모든 책임은 나의 일방적인 것’이라는 자술서를 작성하고 들어간다. 하지만 쓰나미에 휩쓸려간 62위의 유골은 영영 찾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울음을 터트린다.2014년, 사업자금이 바닥나고 일본에 있던 정신적 지주마저 작고하면서 저자는 절망감에 휩싸인다. 이듬해, 아태평화교류협회 일본본부에서 보내온 200만 엔으로 서울역 광장에서 광복 70주년 기념 유골 봉환 자료전시회를 개최하는데, 취지에 공감한 서울역 노숙자들이 성금을 모으고 전시회 질서를 잡아주는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이 기적으로 바닥을 딛고 일어선 저자는 그해 12월 강제동원 진상규명과 피해조사·지원 컨트롤 타워인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동원희생자등 지원위원회’(대일항쟁기위원회) 폐지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펼치고, 국회와 청와대에 청원과 탄원서를 제출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 강제동원시설(군함도 등 7개) 세계문화유산 등재 반대 범국민서명운동, 대일항쟁기위원회 소장 강제동원 기록물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범국민 서명운동에도 앞장선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저자의 꿈은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을 모시고 위로할 수 있는 독립묘역,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평화의 공원, 세계인이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는 인류애 실현의 공원을 만드는 것을 남은 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있다. 저자의 개인사라는 씨줄과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이라는 날줄로 엮은 이 책은 저자의 꿈이 단순히 한 개인의 꿈이 아니라 분단체제가 평화체제로 이행되는 이 시점에 우리 겨레의 중대한 숙원이 돼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밖에도 2013년 일본의 사단법인 청진회와 손을 잡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유골 발굴, 추모, 유골 모국 봉환과 아태 지역 평화와 공존의 미래를 지향”하기 위해 업무제휴 협약을 체결하게 된 사연, 지난 8월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초청을 받아 평양을 방문하게 된 과정과 성과도 이 책의 무게를 더해준다. 또한 대일항쟁기위원회가 작성한 ‘대일항쟁기위원회 존속에 관한 의견서’ 등의 자료를 통해 정부 차원의 강제동원 진상규명과 피해조사·지원 컨트롤 타워가 왜 부활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