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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온갖 특혜 받고 일 안하는 국회, 존재가치 있나

지난주에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누리는 각종 특권 폐지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51명은 “불체포특권이 국회의원의 부정부패를 방어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면서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회의원 세비,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하면서 ‘2021년 기준 대한민국 가구당 평균소득은 연 6천415만 원, 국회의원 세비는 연 1억 5천500만 원, 월평균 1천285만 원이다. 가구당 평균소득에 맞추자”고 썼다. 특권폐지 국민운동본부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은 200여 가지의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정치개혁을 위해 국회의원 월급을 근로자 평균임금으로 하향하고 의정활동 경비는 국회사무처에 신청해 사용할 것, 그리고 헌법을 개정해 국회의원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사실 이러한 국회의원 특권 폐지 이슈는 총선 때마다 거론돼온 단골메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일회성에 그쳤다. 19대·20대 국회에서는 불체포특권 폐지 법안이 실제 발의됐지만 아무 성과도 내진 못했다. 특권폐지 국민운동본부가 지적한 내용처럼, 우리나라 국회는 선진 주요국에 비해 많은 세비(국민 1인당 소득 대비 1.5배)와 보좌진(의원 1인당 9명), 엄청나게 넓은 사무실 등 각종 특혜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문제는 이러한 특혜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국민 분열과 대립의 진원지로 지목받고 있다. 지난 2021년 3월 입법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국회법’이 제정됐지만, 이 법은 휴지조각 취급을 받고 있다. 이번 국회는 특히 상임위별 계류법안이 역대급에 이를 정도로 ‘일 안하는 국회’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5월 정권교체 이후 여소야대 상황이 되면서 국회가 사실상 마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가 지금처럼 보수·진보 기득권세력 진지전(陣地戰)의 사령탑 같은 역할만 할 경우, 국익을 위해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백해무익한 입법기관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2023-03-26

글로컬대학 발전을 저해하는 개념들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교육부는 ‘글로컬대학 30’ 추진방안 시안을 공개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해 지역의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한다.올해 비수도권 지역 총 10개 내외 글로컬 대학을 지정할 계획이고, 내년부터는 매년 5개 내외 글로컬대학을 지정해 2027년까지는 총 30개를 지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선정된 대학은 총 5년간 1천억원(매년 200억)을 지원 한다고 하니 파격적인 지역대학 지원책이다.또한,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제안서보다는 대학의 혁신비전과 과제를 핵심적으로 제시한 신청서 5쪽 분량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제안서 접수부터 혁신적이고 신선한 감을 주고 있다.지자체의 참여를 필수로 하고 있다는 점도 시선을 끈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내에서 인재양성-취·창업-지역정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구축하기 위해 글로컬 대학에 집중 투자를 지원하도록 유도하고 정부가 매칭 형태로 지원하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정부는 “앞으로 글로컬 대학을 시작으로, 우리 대학이 도전 의식과 혁신 의지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경계를 허물고 담대한 변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범부처와 지자체가 함께 장벽 없는 지원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그런데 이런 ‘글로컬 대학 30’ 육성전략의 발표 기사 옆의 안동시의 퇴계학당의 관련 기사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지난해 안동시 퇴계학당에서 공부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75명 가운데 54명이 수도권 대학에 합격해 지역 학부모들의 이목을 끌었다고 자랑스럽게 보도를 하고 있었다.지난 2012년 학당 개설 이후 퇴계학당은 고교특성화 교육 사업으로 안동시장학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지만, 서울 유명학원의 강사를 초빙해 수도권 대학의 진학률을 높이는 걸 큰 자랑으로 홍보하고 있었다.지역발전의 초석이 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퇴계정신에 입각한 인성교육은 물론 다양한 교육시책을 발굴·추진해 서울 및 대도시권에 못지않은 경쟁력 있는 교육여건을 지역 학생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 퇴계학당의 목표이면서 그 최종목표는 수도권대학의 진학률을 높이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아이러니컬 한 사실이다.수도권대학의 진학이 중요하다면 지역대학의 발전과 진학도 동시에 중요하다는걸 퇴계학당이 깨달아야 한다. 안동이 포함된 경북대구권의 경북대, 포항공대 등 명문대 진학률도 함께 공개하는 것이 퇴계학당의 취지에 맞는 것일 것이다.언젠가 포스코교육재단 관계자들이 서울대 합격률을 자랑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1986년 지역에서 세계적 명문대학을 만든다는 취지로 설립된 포스텍은 포스코에 의해 설립되었고 포스코교육재단은 당연히 포스텍 합격률을 서울대 합격률과 함께 자랑해야 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자기가 나온 대학을 ‘지방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세간의 비판을 받았다. 해당 의원은 과거에도 ‘지방대 출신임에도 블라인드 채용으로 KBS 아나운서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발언을 했는데, ‘블라인드 채용법’의 취지를 강조하기 위한 열성에서 나온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출신 대학을 낮춘 것에 해당대학 학생들의 큰 반발이 있었다.우리는 사실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란 단어 자체를 쓰지 않아야 한다. 한국에서 지방이란 단어는 열등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 지방공무원, 지방대학, 지방신문 등등, 지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이다. 문제는 지방이란 단어가 한국에서 중앙에 대한 대등한 개념이 아닌, 열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방대’란 단어이다.세계화 시대에 반드시 고쳐져야 할 개념이 ‘지방’이란 단어의 사용이다. 한국은 더 이상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져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거의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 국토에 걸쳐 사람들이 퍼져 살고 있다. 그만큼 좁은 나라다.좁은 나라의 미래의 번영은 세계화에 있다. 우리는 일체 ‘지방대’는 물론 ‘지방’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지 말아야 한다. 지방에 있다고 열등한 것도 아니고 중앙에 있다고 우수한 것도 아니다. 각 지역의 객체들은 세계로 도약하며 각개 약진을 해야 한다.정부가 수천억 수조원을 들여 글로컬 대학에 투자한들 퇴계학당처럼 수도권대학의 진학률을 목표로 하고 서울대 합격률을 자랑하는 지역의 풍토에서 어떻게 글로컬 대학의 육성이 가능할 것인가?글로컬 대학의 발전은 교육부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우선 우리 자신들의 지역대학에 대한 인식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글로컬 대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은 바로 우리자신이고 우리의 잘못된 개념에 있다. 그러한 개념이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지역대학에 투자를 해도 지역대학의 글로컬 대학으로의 도약은 암울할 뿐이다. 정부가 일체 ‘지방대학’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글로컬 대학의 육성과 투자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개념이다.

2023-03-26

RE100은 우리 손에 달렸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RE100(Renewable Energy 100)은 기업이 제품의 생산, 유통, 보관 전 과정에 걸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제 캠페인이다. 구체적으로는 2050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100%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글로벌기업 간의 자발적 협약이다.2022년 현재 구글, 애플, GM, MS, 이케아 등 370개 글로벌기업이 이미 참여를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SK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한화큐셀, 고려아연,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KT, 삼성그룹 등이 참여를 공표했다.RE100이 그나마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해 2월 40% 가까운 시청률을 보인 대선후보 TV토론을 통해서였다. 당시 이재명 후보가 윤석렬 후보를 향해서 “RE100을 아느냐”고 던진 질문 덕분에 기후변화와 에너지정책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RE100가 기업 간 자발적 협약에 불과한데도 기업경영의 현실적인 위험요소로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업이 RE100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품과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전달되어 사용되기까지 전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는 점이다.예컨대, 특정 업체가 판매하는 완성품을 구성하는 모든 부품 생산업체도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해서 제품을 생산해서 납품해야 하고, 운송과 애프터서비스에 필요한 에너지까지 전 과정에 모두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RE100이 글로벌기업이나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모든 업종에 걸쳐 모든 중소기업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RE100은 대기업이나 기업인, 혹은 국가만의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이다. 국민 모두가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100%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 나간다면 RE100은 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국민이 스스로 RE100에 참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각자 집에서 사용하는 전기·전자 제품을 모두 고효율·절전 제품으로 바꿔야 한다. 당연히 냉·난방 에너지를 최대한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은 지붕과 주차장에 태양광을 설치해서 전기세 제로를 실천해야 한다. 아파트에 산다면 옥상과 벽면, 거실 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전기세 제로를 달성해야 할 것이다.지금은 이를 위한 기술적인 문제와 비용의 문제가 거의 해결된 상태다. 주민들의 참여와 노력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공장을 운영한다면 우선 사용하는 에너지를 효율화하여 낭비 요소를 없애야 한다. 옥상, 벽면, 주차장에 태양광이나 소형 풍력발전기를 설치하여 신재생에너지로 소요전력을 충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만큼 스스로 실행해야 한다.중요한 것은 참여다. ‘우리는 안 해도 되잖아’라면서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RE100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거대한 선언이고 협약이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고 세밀한 실천운동이 따라줘야 한다. 국민 개개인의 참여는 물론이고 모든 빌딩과 공공기관, 산업체가 반드시 참여해야 비로소 효과를 거둘 수 있다.각급 지자체는 독자적으로 해당 지자체의 전기 총수요와 총사용량을 파악하여 스스로 RE100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농지나 유휴지에 태양광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현재 조례로 규제 중인 이격거리에 관한 주민들의 거부반응과 반발성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주민들을 이해시키고 분쟁을 조정하는 과정에 시·군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태양광 설치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이끌어 나가야 한다.태양광 설치에 한국은 5년, 독일은 6개월, 중국은 2개월 걸린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태양광과 소형 풍력발전에 관한 법령 또한 미비한 실정이다. 독자적인 법령이 없이 사안이 있을 때마다 관련 법안에 끼워넣기식으로 대응한 탓에 정책의 일관성이나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과 법령정비가 필수적이다.RE100 달성은 시대적인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에너지전환 시대에 앞서가는 국가는 선진국이 되었고, 뒤따라가는 국가는 추락했다. 더군다나 신재생에너지는 원재료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햇빛과 바람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모든 자원이 부족하여 항상 자원을 수입하느라 막대한 돈을 내보내야 했던 우리나라로서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신재생에너지 선진국 독일보다 우리나라의 일조량이 38%나 더 많다고 하니 얼마나 큰 축복인가?대전환 시대에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재편하고, 동시에 전 국민이 각자의 처지에서 RE100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에너지 자립을 바탕으로 에너지안보와 국가경쟁력 확보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에너지 경쟁력이 기업의 경쟁력이고 동시에 국가경쟁력인 시대다. 국민 모두의 참여로 대한민국을 국가경쟁력과 에너지 경쟁력에서 새로운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RE100! 우리 손으로 해낼 수 있다.

2023-03-26

강건한 기업 생태계의 촉매제, 동반성장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12대 400년 동안 덕망으로 부와 명예를 이어오면서 한국적 자본주의의 모범을 보여준 경주 최부잣집,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현하여 오랜 기간 변함없이 주위의 존경을 받아 온 명문 가문, 참부자 정신실현을 통해 지역사회와 동반 성장한 최부잣집의 정기를 받아 보고자 지난 주말 지인들과 함께 경주 교촌을 찾았다. 오랜 세월 많은 과객이 드나들던 나지막한 용암 고택에 들어서니, 나무와 쌀의 향기가 배어있는 커다란 곳간이 보였다. 그 곳간 앞에는 작은 쌀통이 놓여 있었는데 욕심내지 말고 한 손으로 자기 먹을 양 만큼만 쌀을 가져가라는 나눔 철학의 글이 쓰여 있었다. 필자는 온 마을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그곳에서 주위 이웃들과 동반 성장한 최부잣집의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부와 명성을 누린 세계적인 명가 메디치 가문 역시 200년의 부를 유지했을 뿐인데, 어떻게 경주 최씨 가문은 400년이란 세월 동안 부와 명성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필자는 그 비밀의 핵심은 사회와 동반 성장한 결과라고 결론을 내렸다.동반성장이란 규모 차이가 있는 대상끼리 상생과 협력을 통해 더불어 성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도움이 되어 산업 생태계를 강건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최부자는 농사를 지을 때 소작인들과 동반성장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농사할 때 땅의 지주와 소작인의 비율을 7:3 이하로 분배하던 시기에 최부자는 5:5로 파격적으로 바꾸어 소작인에게 더 많은 성과를 주었고, 전체 수확량 만석의 총량을 정해 놓고 그 이상으로 거두어들이지 않으므로 소작농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다. 그러면서 흉년이 들면 정도에 따라 소작료를 감면해 주기 때문에 소작인들은 최부자의 땅이 늘어나서 자기가 소작할 땅이 더 많아지기를 원했던 것이다.욕심부리지 않고 나눠 줬는데 더 돌아오는 기발한 지혜다. 일찌감치 나눔과 상생 경영을 실천한 최부자는 적정이윤 추구와 정당한 재산 증식을 통해 명예와 부를 400년 넘게 유지했다.포스코는 2005년부터 동반성장 전담 조직을 만들어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길을 택했다. ‘동반성장 지원단’, ‘혁신성장 지원단’ 등은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고 국내 산업계의 공급망을 강화하는데 많은 이바지를 했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고리를 풀고 상생의 해법을 보여주는 본보기가 됐다.‘동반성장 지원단’은 사업파트너, 고객, 지역사회 등의 이해관계자와 영속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유지하였고, ‘혁신성장 지원단’은 중소기업의 혁신을 컨설팅하여 스스로 성장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철강기업의 계약상의 잠재력을 급속히 늘리는 등 기업의 영속성에 이바지했다.물통에 물을 담을 때 단면의 높이에 차이가 있으면 가장 낮은 수준까지만 물을 담을 수 있다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기업들이 최부자나 포스코와 같은 지속적인 동반성장 플랫폼을 만들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주면 더 부강하고 더 윤택하고 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2023-03-26

어떤 경제적 자유인가?

유영희 작가 3천890원, 이 금액은 얼마 전 N이 SNS에 올린 이번 3월 도시가스 요금이다. 이 액수는 같은 기간 우리 집 요금의 50분의 1이고, 작년 8월 요금 4천180원보다 적다. N은 십여 년 전 어느 모임에서 만나 가끔 소식을 전하는 남자 후배인데 지방 출장이 자주 있어서 1년 365일 집에서 지내는 나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손이 너무 시릴 때만 조금 온수를 켰다고 하니 엄청난 근검 절약이다. 그가 한 만큼 따라할 수는 없지만, 이 포스팅을 보고 자극받아 나도 실내 온도를 2℃ 낮췄다가 이틀 만에 감기에 걸려 바로 원위치했다. 그의 친구들이 건강 걱정을 할 만하지만, 그래도 그가 이토록 절약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즘 일찌감치 경제적 자유를 얻어 파이어족이 되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많다던데, 혹시 N도 파이어족이 되고 싶은 것일까?경제적 자유란 임금노동을 하지 않고 자산소득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상태이고, 파이어족은 어느 정도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이 조기 은퇴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경제적 자유가 있다고 파이어족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파이어족이 되려면 경제적 자유는 있어야 한다.어쨌거나 자산소득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자신이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과 주식, 코인 등에 투자해서 100억 자산가가 되었다는 개그맨 황현희도 경제적 자유를 얻어서 좋은 점이 시간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아무리 자산소득이 충분하다고 일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 최고의 부자라는 이재용도 일하고, 1년에 100억원 이상을 번다는 일타 강사들도 이미 충분한 자산소득이 있을 텐데 다른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전히 장시간 일한다. 황현희 역시 출퇴근 시간은 자유롭겠지만, 좋은 투자 종목을 찾기 위해 온 시간을 다 썼을 것이며 앞으로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자유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방해받지 않는 상태이다. 소극적 자유라고 하는 이 상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조건이다. 경제적 자유 역시 자신이 추구하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일 뿐이다. 경제적 자유를 얻었어도 계속 일하기도 하고, 파이어족이 되어 더 이상의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자기가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활동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시간을 통제하고 싶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 시간이 필요한지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내가 하고 싶은 일이 1억 드는 일이라면 10억 가진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고, 그러면 괜한 일에 힘 빼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남들이 좇는 경제적 자유를 따라 하느라 내게 필요한 것보다 더 힘을 쓴다면, 그만큼 내 꿈도 지연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마도 N은 분명한 자신의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한겨울 도시가스 요금 3천890원은 빛이 난다. 이참에 남은 시간 나의 경제생활의 목표는 무엇일까, 새삼 다시 점검해본다.

2023-03-26

실직 중 지역가입자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 지원

남상헌 국민연금공단 포항지사장 국민연금공단은 제도 시행 34년 만인 2022년 5월 ‘수급자 6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현재 수급자 622만 명에게 매월 2조8천억원의 연금을 지급하고, 포항지사 관내(포항시, 영덕군, 울진군, 울릉군) 수급자 7만4천명에게 매월 441억원의 연금을 적기에 정확하게 지급하여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수급자의 급속한 증가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생활 안전망으로서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하나, 이런 성장의 이면에는 팍팍한 생활로 보험료 납부가 부담스러워 못 내는 분들이 아직 많다. 매월 내야 하는 보험료가 부담스러워 납부를 기피하기도 하며 소득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한다.한편 지역가입자인 국민은 연금보험료 중 일부를 사업주가 내주고 있는 사업장의 근로자와 달리 보험료 전부를 본인이 내고 있어 보험료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볼 수 있음에도 그간 지역가입자인 국민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복지 당국과 공단에 형평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또한 실직, 휴직 또는 사업중단 등으로 연금보험료 납부예외를 신청하신 분들은 대표적인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들로서 소득이 발생하여 보험료 납부를 재개하는 경우에도 경제적 사정상 다시 납부예외를 신청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이런 분들에 대한 우선 지원이 절실하였다.이에 작년 7월부터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동안 영세사업장에만 적용된 보험료 지원이 지역가입자인 국민까지 확대된 것이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제도가 국민에게 월 최대 4만5천원의 혜택을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실직, 휴직 또는 사업 중단하신 분들의 보험료 부담도 최대 12개월까지 경감하게 되어, 제도 시행 6개월 만에 약 4만 명이 48억 원의 보험료를 지원받아 든든한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을 다시 납부하고 있다.이제 공단은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제도를 사각지대 해소의 초석으로 활용해 더 많은 국민이 연금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자 한다. 가능한 모든 국민이 ‘1개월 이상’ 가입하고 가입자는 최소 ‘10년 이상’ 가입해 월 ‘1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 기본이 바로 국민연금이므로, 연금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시길 바란다.

2023-03-23

역사는 흐른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역사의 강은 멈추지 않는다. 세월을 거슬러 거꾸로 흐르지도 않는다. 그 역사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지금 우리들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있다. 중국과 일본은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역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이웃나라다. 중국과는 오랜 세월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는 종주국의 관계였고, 일본에게는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역사지만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지금도 중국은 우리나라가 과거 속국이었음을 말하고, 일본은 침략과 수탈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무시당하고 핍박받는 약소국이 아니다. 지도자, 경제적 영향력, 정치적 영향력, 강력한 국제동맹, 강력한 군사력, 수출 등 여섯 가지 지표를 점수화해서 순위를 매긴 ‘2022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에서 한국이 프랑스와 일본을 제치고 6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실로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나 꿈도 못 꾸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세게 굴지의 경제대국 일본의 선진기술을 베끼고 배우기에 급급했던 우리가 드디어 일본을 따라잡고, 반도체산업과 휴대전화기 같은 일부 품목에서는 오히려 추월하는 기적을 이뤄낸 것이다. 아직도 전체적인 경제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산업이나 문화 전반에 걸쳐 당당하게 어깨를 견줄 위치에 올랐다. 그리고 일본은 지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이념을 공유하는 이웃 나라다.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된지 20년 만인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고 12월 비준서가 교환됨으로써 주권의 상호존중과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한 국교정상화가 실현되었다. 반대 진영의 극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비상계엄령까지 선포하면서 강행을 한 것은 우리의 처지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다. 양국 간의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66년도부터 1975년도에 걸쳐 도입된 5억 달러의 대일청구권자금은 농림·수산업·광고업·과학기술개발·사회간접자본 확충 및 서비스 부문 등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바탕이 되었다. 미진하게 남아있던 앙금의 대부분은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 중에 오브치 게이조 총리와의 공동선언을 통하여 상당부분 해소가 되었다. ‘양국 간의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한 것이다. 역사에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불구대천의 적국이었던 나라들도 필요에 따라서는 손을 잡는 게 역사다. 북중러 공조와 북핵의 위협 앞에 한미일의 공동대처는 당면한 필요조건이다.윤석열 대통령의 방한으로 독도 영유권 문제와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 등으로 악화된 한일관계에 다시금 정상화의 물꼬가 트였다. 더도 덜도 말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가치와 정신만 되살리면 서로의 국익에 상당한 득이 될 것이다. 매국이니 굴욕외교니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퇴행일 뿐이다.

2023-03-23

춘분 다음 윤2월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이 지났다. 천문학적인 봄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부터 북반부는 여름으로 향하고 남반부는 겨울을 향한다. 봄보리를 갈며 춘경(春耕)을 하고 담장도 고치고 파릇한 들나물도 캐 먹는다.춘분에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고 동풍이 불면 보리 풍년이 든다고 했는데 올해는 비가 오지 않았으니 코로나가 또 늘어 날려나? 요즘 같은 기상이변으로 3월의 온도가 역대 최고로 거의 20도를 웃돌고 꽃들도 한창이다.마스크를 벗어 던진 가벼운 기분으로 신광(神光)의 백련봉에 올랐더니 분홍 진달래가 산길마다 가득하고 노란 생강나무는 아랫마을에 피어있는 산수유와 샛노란 꽃잎을 겨루고 있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봄비에 젖어 질퍽거리던 오솔길에는 마른 낙엽들이 쌓여 작은 불씨에도 금방 불이 붙어 번질 것만 같다. 연초록 새싹이 돋아난 찔레꽃 나무 가시에 팔뚝을 긁혀가며 얕은 계곡을 헤매기도 했다.22일은 물의 날, 23일은 세계기상의 날이다. 근래 세계 곳곳이 기상이변으로 엄청난 자연재해를 맞고 있지만 ‘날씨, 기후, 물의 미래’라는 슬로건처럼 스스로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올봄과 같은 극심한 가뭄에 산과 들, 강이 마르고 있어서 산불이 많이 발생하며 농사도 어려울까 염려된다. 24일은 제8회 서해수호의 날.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그리고 천안함 피격사건 등 북한군의 기습 도발을 겪으면서 서해북방한계선 NLL을 지키며 영해 사수 의지를 가슴에 품고 산화한 55인의 용사를 기리기 위한 날이다. 이날 우리 해군은 전 해역에서 대규모 해상 기동훈련을 실시하며 그 의지를 재다짐한다.춘분 다음날부터는 윤달의 시작이다. 윤달은 양력과 태음력 상의 계절이 서로 어긋나는 것을 막기 위해 19년마다 7번, 보통 2~3년에 한 번씩 끼워 넣는데 올해는 윤2월이다. 만세력(萬歲曆)을 살펴보니 윤5월이 가장 많고 윤2월은 지난 2004년 이후 20년 만이다. 윤달은 ‘썩은 달’ 또는 공달[空月], 덤달, 여벌달이라기도 하며 옛날부터 천지신명이 인간의 행위를 감시하지 않고 쉬는 달로 여겨서 묘의 이장 또는 수의를 하곤 했는데 ‘걸릴 것도 없고 탈도 없다’ 하더라도 나쁜 짓 하지 말고 조심스레 보내야 한다. 2월에 윤달이 들면 장을 담그고 팥죽 쑤어 먹으며 가택신들에게 가족의 안녕을 빌기도 했었다. ‘부정이나 액이 없다’라고 하며 집수리도 하고 장독대도 옮겼다 하니 집안도 두루두루 말끔히 정리해보자.3월은 벚꽃의 계절이다. 올해는 따뜻한 날씨 덕분인지 전국적으로 꽃들이 앞당겨 피어났다. 포항에도 개나리, 진달래가 10여 일이나 빨리 꽃망울을 터트렸고 벚꽃도 벌써 피어나 다음 주 만개할 예정이란다. 환호공원과 효자 영일대, 마장지 등에는 벌써 상춘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경주 보문관광단지에도 3월 말 만개할 예정이며 제30회 벚꽃 마라톤도 열린다.양력과 음력 간의 계절 느낌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윤달을 끼워 넣듯, 요즘 윤 대통령의 일본과의 대화에 대한 여야의 어긋난 정치 감각 차이를 메꾸어 주는 멋진 한 수를 놓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23-03-23

서문시장 100주년… ‘대구큰장’으로 거듭나길

오는 4월 1일은 대구·경북 시도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대구 서문시장이 10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날이다. 대구시와 중구청은 이날 오후 6시 서문시장 내 대신119안전센터 앞 야시장 야외무대에서 기념행사를 할 예정이다. 행사는 ‘큰장별곡’ 뮤지컬을 시작으로 개막식, 큰장가요제 순으로 진행된다. 대구시는 행사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초청하는 방안을 대통령실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윤 대통령 부부는 서문시장을 ‘정치적 고향’으로 여길 만큼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21년 6월 대선출마를 선언한 이후 위기를 겪을 때마다 서문시장을 찾아 자신감을 회복하곤 했다.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도 지난 1월 설을 앞두고 새해 첫 단독행보로 서문시장을 찾아, 윤 대통령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준 이 지역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서문시장은 조선중기 대구읍성 북문밖에 자리 잡았다가, 1923년 일제 강점기 때 천황당못이 있었던 현재의 자리를 흙으로 메워 이전했다. 규모와 역사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규모 시장이어서 지금도 ‘큰장’으로 불린다. 현재 4천600여 점포에서 상인 2만여 명이 장사를 하고 있으며, 대구 섬유업계 부자들을 배출한 산실이기도 하다. 주거래 품목은 아직도 섬유관련 제품이다. 최근 들어서는 서문시장이 이 지역 민심을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면서 총선이나 대선 때마다 유력 정치인들이 지지세 확산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1980년대 들면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장, 서울·부산의 상권잠식 등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서문시장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전 상인들이 전력을 쏟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주차장 시설이 부족해 젊은 고객들이 외면하는데다, 시장 한복판에 있는 4지구가 2016년 화재로 다 타버린 후 아직 복구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100주년을 맞아 이러한 현안이 하루빨리 해결돼 서문시장이 과거의 화려한 명성을 되찾길 기대한다.

2023-03-23

최악 황사

우정구 논설위원 아랍의 사막이나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서 불어닥치는 모래바람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곳에서는 이런 모래 바람을 ‘함신’이라 부르는데, 이는 아랍어로 ‘50’을 뜻한다고 한다. 일반 모래바람보다 50배가 강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아랍권 남성들이 입는 복장이나 모자 등은 모두 모래바람에 대비한 그들 생활 지혜의 한 부분이다.황사는 중국의 고비사막 등 사막지대에서 발생한 미세한 모래 먼지가 대기 중에 퍼져서 하늘을 덮었다가 서서히 떨어지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편서풍을 타고 중국에서 넘어오는 황사의 피해가 많은 지역이다. 지난 22일 중국에서는 올 들어 3번째 최악의 황사가 발생했다. 베이징환경보호관측센터는 베이징 전역의 공기질지수(AQI)가 최악인 6급 ‘엄중오염’ 상태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500㎍/㎥는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인데, 이날 베이징의 평균 AQI가 500㎍/㎥이었다.짙은 황사로 베이징 도심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고, 사람들은 마스크와 고글을 착용한 채 외출을 한다. 실외에서 눈을 뜨거나 숨을 쉬는 것조차가 힘들다니 황사의 폐해가 심각하다.황사는 인체뿐 아니라 반도체와 항공기 등 정밀기계 작동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반도체 원료인 실리콘웨이퍼를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황사가 일어나면 실내 공기정화기를 100% 가동해도 불량품이 증대한다고 한다.항공기는 안전에 영향을 미쳐 운항 편수가 대폭 줄어든다. 축산농가를 시름에 빠뜨리는 구제역도 황사 때문에 생긴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22일 발생한 중국의 최악 황사가 한반도에 상륙할 거란 관측이다. 모처럼 마스크를 벗고 해방감에 젖은 우리 국민에게 중국의 황사가 못된 방해꾼으로 등장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23

잊혀진 민족교육자 홍주일

홍석봉 대구지사장 경북 청도 출신의 홍주일(洪宙一·1875~1927)은 개화기의 선각자다. 민족교육에 눈 뜬 그는 일본 유학 후 귀국, 교사로 일하며 학교 설립에 정성을 바쳤다.민족교육에 치중하는 한편 국권 회복을 위해 항일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대구·경북 교육의 사표(師表)이자 민족교육의 선각자로, 항일애국지사로 묵직한 이름을 남겼다.그는 31세(1906년) 때 일본에 유학한 후 돌아와 평북 옥천학교, 안동 예안학교, 구포 구명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10년 한일강제합방 후 대구 협성학교 교사로 대구에 정착했다.협성학교는 1899년 달성학교에서 출발했다. 1909년 고등과가 협성학교로 바뀌었다. 협성학교는 홍주일이 구심점이 돼 민족교육이 이뤄졌다. 그러나 1916년 일제가 관립 대구고보를 신설하면서 폐교됐다. 1917년엔 명신학교(현재 복명초등) 교장을 잠시 맡았다.홍주일은 1913년 서상일 등과 함께 1908년 계몽운동을 위해 결성됐다가 활동 중단된 달성친목회를 재건했다. 달성친목회는 배일사상을 고취한다는 혐의로 일제에 의해 2년 만에 강제 해산됐다. 홍주일은 1916년 정운일·최병규·김진만·서상준 등과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구 부호 서우순의 집에 권총을 들고 침입, 현금을 탈취하려다가 실패했다. 이후 일제 경찰에게 체포돼 홍주일은 1917년 징역 5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홍주일은 서상일이 운영하는 대궁상회 점원으로 일하면서 대구 3·1운동 참여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일제 관헌의 예비검속에 걸려 격리 조치됐다.홍주일은 1921년 9월 정운기·김영서 등과 대구 북성로 우현서루를 가교사로 사용하는 교남학원(嶠南學院·대륜고 전신)을 설립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대구 유지들이 끓는 피로서 설립한’ 학교라는 기사가 보도됐었다. 그만큼 대구시민들의 기대가 컸다. 홍주일은 6년 간 교남학교 교사로 일했다. 1927년 6월 교남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 한 달 여 만에 숨졌다. 당시 신간회 대구지회 설립 준비위원으로 선임돼 활동 중이었다. 홍주일의 장례식은 학교장으로 치러졌다. 언론은 대구교육계의 은인이 서거했다며 애도했다. 후일 국회의장을 지낸 이효상은 ‘스승 홍주일은 사상가였고 애국자·독립운동가였다’고 회상했다.홍주일은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002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그의 교육 기여 뜻은 종손인 홍영기가 청도 운문에 설립, 경산으로 이전한 문명고등학교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잊혀진 인물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독립운동자료집의 재판 기록과 경북중고등학교60년사 등에 기록이 남아 있어 겨우 그의 흔적을 짚어볼 수 있을 따름이다.홍주일은 20년 간 교육과 독립운동에 몸바쳤다. 민족교육의 선구자이자 항일애국지사인 그를 국민의 사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지역 교육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늦었지만 관련 자료를 확보, 교육박물관 등에 전시하고 그의 헌신을 기릴 수 있길 바란다.

2023-03-23

고령자 교통사고, 좀더 치밀하게 대책 세워야

고령자가 많이 살고 있는 농촌지역의 비중이 높은 경북에서 고령자 교통사고가 많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2017-2021년) 경북도내에서 60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모두 1만9천835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20세미만과 20대와 30대 전 연령층에서 낸 사고 1만8천193건보다 더 많았다.특히 이 기간동안 교통사고로 인한 전체 사망자 1천876명 중 60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낸 사망사고가 40%를 차지했다. 사고로 인한 치사율도 3.77%로 다른 연령대보다 더 높게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공단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령운전자는 비고령운전자보다 위험운전행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급출발, 극좌·급우 회전, 급유턴 등에서 위험행동을 많이 한 것으로 조사됐다.한국사회가 빠르게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는 수년 전부터 사회문제로 제기됐다. 정부서도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고령운전자 운전면허증 반납제도, 조건부 운전면허제도 도입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는 데는 역부족이다.일각에서는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가 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고령층 비중이 커져 있으므로 젊은 층과의 상대적 평가는 옳지 않다는 지적도 한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인지능력과 순발력이 떨어지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고 나이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재단한 것은 옳지 않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층 못지않게 운전 능력을 발휘하는 이도 많다.특히 운전을 생계 수단으로 삼는 계층에게는 제도 하나로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정책은 노인의 이동권 보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얼마 전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은 야간 및 고속도로로 운행을 금지하는 조건부면허제를 검토하다 탁상행정이란 비판을 받았다.우리나라는 2025년부터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가게 된다. 교통사고 예방책도 노인의 기준과 특성에 맞는 좀 더 치밀한 연구와 대책이 나와야 한다. 우리보다 고령사회를 일찍 경험한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사례 연구도 도움이 된다.

2023-03-23

계사(癸巳)

육십갑자 중 서른 번째에 해당하는 계사(癸巳)다. 천간(天干)의 계수(癸水)는 약한 음수(陰水)다. 깨끗한 물, 비, 연못을 의미한다. 지지(地支)의 사화(巳火)는 불꽃, 연기 등을 상징한다. 동물로는 검은 뱀이다.계사일주는 물과 불의 만남이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기운이다. 12운성으로 ‘태(胎)’다. 태(胎)는 생명이 사라진 후 다시 시작하는 단계다.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은 시작의 단계이므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순수하고 낭만적이며, 보이지 않는 꿈을 먹고 사는 이상주의자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형이다.계사일주는 물속에 사는 뱀의 모습이다. 또한 수화상전(水火相戰·물과 불이 서로 싸우는 모습)이니 성급한 성미와 함께 변덕스러운 성향을 보일 수가 있다. 음양이 극과 극을 오가니 그만큼 감정의 기복이 심하여 정신적인 질환을 겪을 수가 있고,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뱀은 이빨에 독이 있어 독한 말을 하며, 혀가 둘로 갈라져 있어 두 말을 잘한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말을 잘 바꾸는 단점이 있어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그리스신화에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가운데 두 번째는 레르나늪에 사는 머리 아홉 달린 거대한 물뱀 히드라를 죽이는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물뱀을 처치할 방법을 조카 이올라오스에게 상세히 설명한다. “히드라의 머리는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나온다고 한다. 내가 낫으로 히드라의 머리를 벨 터인즉 너는 불방망이로 그 벤 자국을 지져버려라. 불과 물뱀 히드라는 상극이 아니겠느냐. 우리는 히드라를 불로 잡아야 한다.”헤라클레스는 칼로 히드라의 대가리 하나를 잘랐다. 그때 이올라오스가 재빨리 불방망이로 잘린 곳을 지졌다. 불에 지져진 곳에서는 다시 대가리가 생겨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와 이올라오스는 히드라의 대가리를 길가에 묻고 무거운 돌로 눌러 놓은 다음 뮈케나이로 돌아갔다. 제우스신이 히드라를 하늘로 불러 올려 별자리로 박아주었다. 우리가 ‘물뱀자리’라고 부르는 별자리이다.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미움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술에 취하여 아내와 자녀를 죽인다. 그는 죄책감에 스스로 벌을 받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12가지 과업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운명에 맞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고난 운명이라면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일지 사화(巳火)가 배우자궁으로 좋은 배필을 만나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한다. 남자는 역마와 재물이 깔려 있어 좋은 집안의 여자를 맞이하고, 사회생활을 잘하는 배우자를 얻게 된다. 여자는 현실적인 감각이 있어 조건이나 배경을 잘보고 결혼상대를 결정하여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부부 금슬도 역시 좋다.계사일주는 천을귀인으로 공직 등 명예로운 직업을 갖고, 사회적 성공에 이르는 일주다. 물이 필요한 여름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처럼 두루 쓸모 있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으며, 역마 기운이 있어 일생을 바쁘게 살아가는 것을 암시한다.또한 일귀(日貴)격이라 순수하고 품행이 단정하고 성정이 자비롭고 용모도 준수하고 지혜로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원칙에 밝고 실리를 중시하니 개인사업으로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는 조직 내에서 대표나 고위직을 보좌하는 참모형이 제격이다.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 말기에 인상여는 조나라의 내시였던 무현의 식객이었다. 무현이 우연히 시장에서 산 옥구슬은 보물 화씨의 벽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혜문왕은 무현에게 구슬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보여주면 화씨의 벽을 빼앗길 게 뻔해 무현은 화씨의 벽을 도난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느 날 무현이 출타한 사이 집을 뒤져 보물을 가져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무현은 연나라로 도망하려 했다.인상여가 말했다. “연나라는 조나라보다 약하므로 조나라가 공을 포박해 조나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 차라리 공께서 어깨를 드러내고 형틀에 엎드려 죄를 청하는 것이 나을 것인데, 그러면 요행으로 죄를 벗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무현이 크게 깨닫고 조왕에게 사죄하자 조왕은 다행히도 무현을 용서했고, 무현은 인상여의 용기와 지모를 높게 평가하게 되었다.인간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괴로워한다. 이미 보물을 취한 조혜문왕은 성취감에 취해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했기 때문에 무현을 용서해준 것이다. 인상여는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 탁월한 판단으로 주인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다.우리가 자주 쓰는 ‘완벽하다’의 ‘완벽(完璧)’은 인상여가 천하의 보물인 화씨의 벽을 탐낸 진나라 왕으로부터 죽음을 무릅쓴 용기로 다시 가져온 데서 유래했다. 그 공으로 재상이 되었다. 그러한 용기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전략가 염파장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개 식객에서 재상이 되자, 염파장군이 시기하는 것을 알고 맞대면하는 것을 피했다. 식솔이 그 이유를 묻자 “내가 염파장군을 일부로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염파가 이 말을 듣고는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빈객으로서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저는 상경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다. 부형청죄(負荊請罪)와 문경지교(刎頸之交 ) 고사가 여기에서 나왔다.조나라가 한때 최강국인 진나라와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염파, 인상여와 같은 충성스런 장군과 신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죽거나 쫓겨나면서 조나라는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뱀 같이 냉철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스스로 적을 물리칠 능력이 양성될 때 외교력도 발휘되는 것이다.통 큰 사람은 남에게 호의와 친절을 베푸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그리고 자기가 남에게 의지하고 호의를 받는 것은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호의와 친절을 베풂은 우월감의 상징이며, 그 반대는 열등감을 나타내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2023-03-22

버려진 사진

윤명희 수필가 친구가 운영하는 고물상에 들렀다. 부탁해 둔 주물난로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은 그 날은 겨울 추위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친구는 화물차에서 묵은 짐들을 내렸다. 요양원에 간 이웃 할머니의 살림을 정리 중이라 했다. 냉장고에서 나온 계란 몇 알이 소쿠리에 담겨 있고 그 옆에는 미숫가루가 반쯤 담긴 통과 고춧가루 통이 발치에 차였다. 냉동실에서 나온 고등어와 얼어붙은 시루떡 몇 뭉치에 지난 가을에 넣어 둔 홍시까지 혼자 살아 온 할머니의 생활이 다 보이는 듯했다.바닥에 떨어진 수주(數珠)를 줍는데 발밑에 사진이 있었다. 남의 얼굴을 밟고 있는 것 같아 발이 화들짝 놀라 뛰었다. 고물상의 흙먼지를 덮어쓴 여러 장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에는 할머니와 단발머리의 소녀가 있었고 친구인지 형제인지 모를 동년배의 모습도 있었다.짐을 내리던 고물상 친구는 할머니의 자식들이 이런 걸 왜 챙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넘어진 박스를 세웠다. 박스에는 효자손을 비롯한 잡동사니와 많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여러 짐들이 분류되어 고철더미 위로 던져지고 잡동사니들은 대형 쓰레기봉투로 들어갔다. 친구는 안이 훤히 보이는 쓰레기봉투에 사진을 넣기가 뭣한지 한쪽으로 모았다. 할머니는 자기 얼굴이 고물상 바닥에서 남의 발에 밟히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 봤을까.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손때 묻은 살림들을 정리하고 남은 것이 앨범이었다. 동생들과 둘러앉아 앨범을 펼쳤다. 엄마가 살아 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모여 있었다. 대청마루에 앉은 외할머니 흑백사진부터 자식들의 결혼사진, 손자의 돌 사진까지 찰나의 순간들이 영원으로 남았다. 사모관대를 한 아버지와 족두리를 쓴 엄마의 흑백사진은 손이 빠른 첫째 동생이 챙겼다. 자기가 주인공이었던 결혼사진은 제 각각 가방에 넣었다. 손자들과 함께 웃는 사진을 보며 그때의 이야기로 눈물을 찍어냈다.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엄마만의 사람들이었다. 연분홍 저고리가 진달래 꽃밭에 숨어있는 친구들은 내 나이보다 더 젊었다. 장구 장단이 흥에 겨운 동네 분들의 사진에서는 내 어릴 적 친구들의 부모들도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행적은 아무도 챙기지 않았다. 그 인연들은 우리에게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기억하고 싶어 찍어 둔 관광지의 사진들은 길바닥에 버려지는 광고 전단지나 별다르지 않았다. 남은 사진들을 모으니 앨범 한 권이 되었다. 맏이인 내가 보자기에 싸서 집에 가져왔다. 그 후로 나는 카메라 앵글에서 멀어져갔다.기회만 되면 태우겠다는 약속은 빈말이 되어갔다. 그 앨범은 이사할 때마다 창고에서 창고로 옮겨졌고, 이삿짐 속에 묻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할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아스라한데, 한 번도 뵌 적 없는 동네할머니의 사진 앞에서 뒤늦게 그 앨범을 떠올리고 있다.고물상 마당에 있는 주물난로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의 자식들을 대신 해 사진을 한 장 한 장 집어넣었다. 삶의 조각들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멍청히 듣고 있다. 할머니의 모습이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창고를 뒤졌다. 먼지 앉은 보자기를 푸는 손이 바빠졌다. 앨범은 서로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자 오랫동안 잠을 잤던 사진의 한 귀퉁이가 찢겨나갔다. 한 장 한 장 빼며 사람들 속에 묻힌 엄마와 마주했다.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당신의 지난 시간들이 누구도 보지 않는 사진으로 남았다.당신의 소중했던 순간들을 가져가시라고 불을 붙였다.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휴대폰에 저장된 내 사진들을 넘겨보았다.메모처럼 넣어둔 오래된 것부터 하나하나 삭제했다. 폰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일어서는데 sns에 올려놓은 흔적들이 딴죽을 걸었다. 만인이 보는 앨범에 내 생활을 펼쳐 놓고는 열쇠마저 감춘 나도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 인터넷 계정의 비밀번호는 oooo이라고.

2023-03-22

우리집 강아지 베리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지난 겨울 베리가 많이 아팠다. 남편이 데리고 병원 다녀오더니 방광암이 의심된다는 거였다. 약물로 치료하되 나을 기약을 할 수 없단다. 힘겨워하는 베리를 안고 며칠 밤을 같이 지샜다. 얼마 못갈 것같아 울며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영정사진도 찍어야 하나 아득해하며 또 울었다. 힘든 약물치료보단 좋아하는 것 실컷 먹이며 여생을 보내게 하자 결정했다. 사람 나이로 치면 90 아닌가. 노령견에게 좋다는 저지방 사료에, 황태와 닭을 푹 고아 갈아 먹였다. 사골국물에 사료를 말아 먹이기도 했다. 마룻바닥엔 매트를 깔았다. 기저귀도 채웠다. 그렇게 정성을 쏟으며 겨울을 났더니 많이 나아졌다.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고 기저귀가 벗겨지면 집안 곳곳에 오줌스팟을 만들긴 하지만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다. 코끝이 반들거리는 걸 보고는 건강해진 것 같아 안도해한다.11년전, 4살의 베리가 왔을 때는 그야말로 까도녀였다. 까칠하고 도도하고 세련된 미니핀. 눈썹 위, 발목 부분의 노란 색을 제외하곤 온몸이 윤기나는 짧고 검은 털의 베리는 매력적인 도시여자같이 예뻤다. 유기견인 강아지를 보호하던 아들이 동물보호센터에 보낼 수 없다며 데려왔다. 똑똑하고 깔끔하여 배변 문제로 속 한 번 썩이지 않았다. 뭐든 너무 잘 먹는 게 단 하나 흠이었다. 처음 올 때 날씬하던 몸매는 2년만에 마치 까만 베개같았다. 산책 때 사람들이 뚱뚱하다고 입대면 미니핀 아니고 미니픽이에요 할 정도였다. 다이어트하면서 체중계를 내오면서 “몸무게”라면 달랑 올라앉았다.그 식탐이 문제가 되었다. 아무거나 먹고는 탈이 낫고, 어김없이 응급실행. 병력도 화려하다. 입원 4번, 수술은 두 차례나 했다.첫 기억은 지금도 아찔하다. 비 오는 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베리가 토하고 비틀댄다며 남편이 걱정했다. 119로 전화했더니 강아지는 안된단다. 남편이 아는 수의과 교수에게 전화해서 큰 병원으로 갔다. 병원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울었다. 장장 4시간의 검사에 치료를 한 후, 위기를 넘겼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그 후에도 몇 차례 응급실을 찾았고 비용도 만만찮았다. 우린 종종 천만 베리라고 한다. 병원비가 천만 원 이상 든 때문이었다.작년 여름, 또 한밤중에 병원을 찾았다. 췌장염으로 열흘이나 입원하였다. 코로나 시국이라 면회도 못해 전화로 상태를 전해 듣곤 하던 때였다. 우리집엔 베리말고 아키라는 갈색 푸들이 한 마리 더 있다. 5년전 베리 친구 삼는다고 아들이 키우던 애를 데려와 같이 놀던 베프다. 베리가 없자 아키가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겨워했다. 아무것도 먹질 않고 베리의 담요에 엎드려 꼼짝 않는다. 베리가 그리워 그러는 것 같았다. 병원에 전화하여 상황을 얘기하고 면회를 간청했다. 병원 측의 배려로 입원실 대신, 병원 뜰에서 둘은 상봉했다. 어쩜 그리도 애틋할까. 서로 몸을 부비며 즐거워하는 걸 지켜보는 우리 부부가 더 감격해했다. 집에 온 아키는 사료를 폭풍흡입했다. 90 노인 수발들 듯하는 요즘이지만 베리가 잘 먹고 신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 닥치지 않은 일은 미리 생각하지 않으려한다.

2023-03-22

나잇살은 안 빠진다구요?

나선택 포항 행복한의원장 50대 환자분들과 상담하다 보면, 젊었을 때는 체중 조절이 어렵지 않았는데 나이 들면서 노력해도 살이 빠지지 않아서 고민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이 줄어들고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호르몬의 불균형이 생겨 내장지방 등의 축적이 빨라지는 것을 나잇살이라고 한다. 이 나잇살은 못 빼는 걸까 안 빼는 걸까?중년이 되면서 콜레스테롤 약을 먹는 분이 많다. 콜레스테롤에는 나쁜 콜레스테롤(LDL)과 좋은 콜레스테롤(HDL)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비만의 주범인 지방에도 나쁜 지방(백색 지방)과 좋은 지방(갈색 지방)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갈색 지방은 백색 지방이 공급해주는 연료(포도당)를 사용해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동물이나 어린 아이에게 많고, 어른에게는 거의 없다. 사람은 신생아시기에 가장 많은 갈색 지방세포를 가지고 있어서 운동량이 적어도 체온 유지를 잘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갈색 지방 세포는 줄어들다가 없어지니까 나잇살은 못 빼는 걸까?하버드 의대 연구진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운동할 때 우리 몸에서 ‘아이리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이 백색 지방세포에 작용하면 백색 지방세포가 갈색 지방세포처럼 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백색 지방세포가 갈색 지방세포처럼 변한 것을 ‘베이지색 지방세포’라고 한다. 이 베이지색 지방세포 60g은 1년에 4kg 정도의 지방을 태운다고 한다. 즉, 우리가 운동 등을 통해서 백색지방 세포 60그램을 베이지색 지방세포로 바꾸기만 하면 1년에 4kg은 그냥 빠진다는 말이다. 아이리신 호르몬은 운동할 때 나온다. 저강도의 지속적인 운동이나 고강도의 짧은 운동에 상관없이 나온다. 다만 저강도의 지속적인 운동에서 좀 더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걷기 달리기 등산 수영 등 어떤 운동이든지 꾸준히 하는 것이 나잇살을 없애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자.또 다른 실험에 의하면 베이지색 지방세포가 증가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조금 추운 상태에서라고 한다. 16도 이하에서 베이지색 지방세포의 활성도가 많이 증가하고 27도 이상에서는 활성도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한다.음식 중에서는 녹차에 많이 함유된 카테킨을 12주 이상 꾸준히 복용한 경우에 베이지색 지방의 밀도가 증가하고 근육 세포의 지방 함량이 줄었다고 한다.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이나 파프리카에 많은 캡시노이드 성분을 6주 이상 먹었을 때도 베이지색 지방의 활성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탄수화물의 섭취량을 줄이고, 신선한 야채를 곁들인 식사를 하는 것이 나잇살을 없애는 식단이라는 뜻이다.한방에서는 비만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방풍통성산 같은 처방들로 연구한 결과 백색 지방세포의 크기가 줄고 베이지색 지방세포의 활성도가 증가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족삼리 천추 등의 혈자리에 맞는 전침 역시 백색 지방세포가 베이지색 지방세포로 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중년의 다이어트, 나잇살 빼기 방법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생활습관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꾸준하게만 하면 1년 뒤에는 날씬하고 건강해진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2023-03-22

개구리소년과 와룡산의 진실

홍석봉 대구지사장 다시 봄이다. 봄만 되면 비통한 기억에 가슴앓이를 한다. 개구리소년 유족들이다. 오는 26일은 개구리소년 실종사망사건 32주년을 맞는 날이다. 관내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대구 달서구도 유가족 못잖게 몸살을 앓았다. 달서구는 32주년을 맞아 아동권리와 안전의식을 높이는 각종 행사를 한다. 기념식과 추모식, 캠페인 등 행사를 갖는다.지역아동센터는 아동 등을 대상으로 성폭력 등 위험상황에 대처하는 교육을 할 예정이다. 네거리와 지하철역에서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이 펼쳐진다.달서구 용산동 선원공원 개구리소년추모비 앞에서 5개 지역아동센터 아동 30여 명이 개구리소년을 추모한다. 유가족들도 26일 추모행사를 갖는다.지난 1991년 3월 26일 도롱뇽 알을 주우러 와룡산에 갔다가 실종, 11년 만에 유골로 발견된 초등학생 5명을 기리기 위한 행사다. 타살로 결론나고 미제사건으로 남았으나 아직도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다.경찰은 사건 초기 단순 가출로 판단했다가 단서를 찾을 기회를 놓쳤다. 국내 단일 실종 사건으로는 최대인 연인원 35만 명의 수색 인력이 투입되고 전국에 1천만 장의 전단지가 뿌려졌지만, 아이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개구리 소년 찾기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안타까운 사연은 노래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범인은 물론 범행 도구도 밝히지 못했다. 결국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나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 후 한 차례 경찰이 재수사했지만 별다른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사건은 모두의 가슴 속에 묻었다. 우리 사회는 재발방지와 아동들의 안전과 꿈을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다시는 아이들의 억울한 주검이 있어서는 안 된다. 3월의 다짐이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3-22

복수가 해결책일까

장규열 전 한동대 교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며 우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에 열광하였다. 폭력에 대한 징악과 보복을 탓할 수는 없다. 감정적으로 시원하고 최후 승리를 거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학교폭력’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 방법으로 보복과 복수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학교, 교육청과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학교폭력이 사회적 담론의 이슈가 되는 경로가 있다. 미디어가 전하는 뉴스나 드라마를 통하여 학교폭력의 실상이 전달되면, 대중적 분노를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일시적으로 생성된 피해의식과 응보감정을 정책마련의 근거로 삼는다. 분노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적 관심은 자연스럽게 가해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일에 방점을 둔다. 가해자는 처벌을 피하려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학교폭력의 처리과정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입은 피해로부터 회복하는 일은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만다. 한국청소년학회의 보고에 따르면, 20대 성인들의 34% 정도가 어린 시절에 학교폭력을 경험했다고 하며 그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자살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학교폭력은 피해자들에게 씻어내기 어려운 온갖 피해를 안긴다.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만성적이며 장기적인 외상을 안긴다. 발생했던 학교폭력을 가해자들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피해자들은 방금 벌어진 듯 생생하게 되뇌이며 마음에 입은 상흔을 털어놓곤 한다. 피해학생과 가족들이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언론과 미디어의 충격적인 보도에 대한 관심의 강도는 약간 증가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에는 아직도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학교폭력 가해자를 다루는 사회적 기관들은 넘쳐나는 가운데, 피해자와 가족들의 상처와 회복에 관심을 두는 공적 기관은 드문 형편이다.학교폭력을 바라보는 학교의 시선도 문제다. 학생들의 바른 인성을 길러내기 위해서도 ‘폭력’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노력을 교실에서부터 기울여야 한다. 학교폭력을 교사가 성가시고 귀찮은 현상으로만 치부한다면, 폭력없는 학교가 온전히 회복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운영하는 대안학교 ‘해맑음센터’가 피해학생들을 맡아 돌보며 지도하지만, 정작 그들이 떠나온 학교는 교실 분위기에 어떤 변화를 시도하는지 의문이라고 한다. 학생을 기르는 일이 학교의 일이라면, 폭력없는 즐거운 교실을 확보하는 일은 교사의 당연한 책임이 아닌가.최근 증폭된 관심에 따라 교육부는 학교폭력근절대책을 준비한다고 알려졌다. 학교폭력 경력을 생활기록부에 적극적으로 기재하고 대학입시에 불이익을 가중한다는 방침은 학교폭력의 뿌리를 다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 처벌에 더하여 진정한 화해와 조정, 사후처벌보다 사전예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피해복구와 관계회복에 초점을 두는 피해학생 보호와 회복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폭력은 범죄다.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가해자를 벌하는 엄정한 접근과 함께 피해자와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폭력이 사라져야 교육이 산다.

2023-03-22

의정비 지급제한 앞장선 대구 서구의회

기초의회인 대구 서구의회가 조례 개정을 통해 논란이 된 비위행위 지방의원에 대한 의정비 지급을 제한키로 의결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동안 의원이 구속되면 의정비 중 의정활동비는 지급하지 않으나 월급개념인 월정수당 등은 제한 규정이 없어 비위행위로 구속이 돼도 계속 지급을 해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왔다.대구 서구의회는 지난 21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서구의회 의원 의정활동비 등 지급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키면서 의원이 구속되거나 출석정지 등 징계를 받으면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 여비까지 모두 지급하지 않도록 규정했다.지방의원의 의정비 지급 문제는 작년 11월 대구시의회 모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됐음에도 옥중에서 월정수당을 받자 시민단체가 나서 지급 중단을 요구하면서 지속 논란이 됐다. 시민단체는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돼 사실상 일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월정수당을 꼬박 받는 것은 선출직으로서 파렴치한 행위”라며 지급 중단을 촉구했다.비위행위 의원의 의정비 지급 관련해서는 국민권익위도 작년 12월 구속의원에 대해서는 예산 낭비 등을 이유로 의정비 지원을 제한하라는 권고를 지방의회에 통보한 바 있다. 특히 대구 서구의회는 구속뿐 아니라 의원이 징계를 받았을 때도 의정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함으로써 강화된 조례를 만들었다.이번 대구 서구의회의 의정비 강화 조례가 다른 지방의회에도 영향을 미치는 계가가 됐으면 한다. 의정비 지급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란 측면에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 옳다. 지방의회의 도덕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지방의회가 지역주민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선출직인 국회의원도 세비와 관련해 이런 문제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국회에서 이런 취지의 법안이 여러 차례 나왔으나 번번이 무산돼 국회의원의 도덕성이 추락한 게 사실이다.대구 서구의회가 앞장서 조례를 개정한 것은 선출직으로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뜻으로 칭찬받을 일이다. 지방의회는 지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다. 의정비 개선 노력이 신뢰의 또 다른 시작이길 바란다.

2023-03-22

TK신공항 특별법 3월 처리에 총력 쏟길

국회 국토교통위가 지난 21일 교통법안소위를 열고 TK(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 3개안(홍준표·주호영·추경호안)을 병합 심사한 뒤 수정 가결했다. 부산지역 야당 정치권의 반발로 원안이 일부 수정됐지만, 국비지원과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종전부지(동구 지저동 일원) 개발사업에 대한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의 핵심내용은 포함됐다.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소위를 통과한 만큼, 오늘 열리는 국토위 전체회의와 27일 법사위, 30일 본회의에서는 순조롭게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3월 임시국회에서 특별법이 최종적으로 통과돼 TK신공항이 빠르게 건설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TK신공항은 로드맵대로 이행되면 오는 2030년 개항한다.소위심사에서 핵심쟁점이 된 정부 재정지원 부분에 대해서는 ‘신공항 건설비가 종전부지 개발사업 수입을 초과할 경우 국가가 예산 범위 내에서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국비 지원의 근거가 마련됐다. 부산지역 정치권이 이 부분에 합의를 해 준 것은 기부대양여 사업의 차액에 대한 국비 지원이 공항개항 이후 정산돼 가덕신공항 국비 지원과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예산 지원 규모는 정부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해 기획재정부가 사실상 통제권을 갖게 됐다. 문제가 됐던 ‘중추공항’이나 ‘활주로 길이’ 표현은 삭제키로 했다.TK신공항 특별법이 발의된지 10여 년 만에 국회통과를 눈앞에 둬 다행이다. 해당 특별법은 지난 2013년 대구공항을 지역구로 둔 유승민 전 의원이 ‘군 공항 이전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3개의 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에 상정됐다. 홍준표 시장이 최근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을 만나서도 언급했지만, TK신공항 건설은 국토균형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다. 물류를 신속하게 처리할 국제항공노선이 개설돼야 대구경북도 살길이 생긴다. 대구시와 경북도, 그리고 정치권은 이제 남은 절차인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특별법이 또다시 묶이지 않도록 총력을 쏟길 바란다.

2023-03-22

기고 신종금융사기 범죄 수법을 알면 예방도 가능해요

김중환 경위 영천경찰서 남부지구대 경찰관은 금융사기로 인해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을 송금하여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112신고를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경찰관으로서 사전에 피해를 예방하지 못한 자책감을 느끼게 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112신고이다.피해자는 금융사기 범죄조직에 기망을 당하여 피해금을 송금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절대 알리지 말 것을 요구받고, ‘금융기관의 고액인출 고객이 있다’라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기망을 당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경찰관의 설득을 외면한다.금융사기 피해는 피해자가 땀 흘려 아끼고 아껴 모은 소중한 재산이기에 피해자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이렇게 피해를 예방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관으로서 피해자를 설득하지 못해 국민의 재산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공무적 책임이 마음속에 남게 된다.우리나라는 ‘06년 5월경 보이스피싱 범죄가 최초로 발생한 후로 금융사기 범죄 수법이 날로 발전하여 ’08년부터 스마트 폰이 보급되면서 신종금융사기 범죄가 해마다 증가할 뿐만 아니라 피해액도 많아지고 있다.신종금융사기 범죄에는 스미싱, 파밍, 메신저 피싱 등이 있다.“스미싱”은 문자(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인데, 인터넷 주소가 포함된 문자를 피해자의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보내 악성코드를 설치하도록 유도한 후 개인정보를 빼내 가는 범죄 수법이다.“스미싱” 피해 예방은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수신한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문자 메시지의 〈인터넷 주소〉 클릭을 절대로 하지 말고 바로 삭제하면 피해를 예방 할 수 있다“파밍”은 악성 프로그램을 통해 피해자가 가짜 금융 사이트에 접속하도록 유도한 후 금융정보를 조작하여 피해자의 금융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범죄 수법이다.“파밍” 피해 예방은 컴퓨터 또는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수신한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파일이나 E-mail은 즉시 삭제하고 또한 무료 다운로드 사이트 이용을 자제해야 하며, 컴퓨터와 E-mail 등에 공인인증서나 보안 카드 사진, 비밀번호 저장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면 피해를 예방 할 수 있다.“메신저 피싱”은 메신저에서 지인이나 금융기관 또는 공공기관을 사칭하여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빼내어 가는 범죄 수법이다.“메신저 피싱” 피해 예방은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로 개인정보나 금융정보를 요구하는 메신저 또는 문자를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받은 경우, 우선 의심부터 하고 절대 클릭하지 말아야 하며 먼저 전화로 그 상대방에게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휴대폰 등 모바일 기기에 ‘시티즈코난’이나 ‘피싱아이즈’ 앱을 설치하여 악성 앱 설치 여부를 반드시 검사하고 악성 앱이 설치되어 있다면 바로 삭제함으로써 예방 할 수 있다.『지피지기(知彼知己)이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처럼, 이제 신종금융사기의 범죄 수법이 무엇인지 알고 예방법을 통하여 국민과 금융기관, 경찰이 합심하여 신종금융사기 범죄 피해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2023-03-22

與圈은 ‘이너서클’로 총선 치르려 하나

심충택 논설위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일본에서 “반도체시장 한·일협력이 가능하냐”는 기자 질문에 “살아보니까 친구는 많을수록 좋고 적은 적을수록 좋다”고 한 말이 여운을 남긴다. 세계반도체 전쟁에서 일본이 경쟁상대이긴 하지만,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공생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말이다. 공감이 간다. 이 말을 총선을 1년여 앞둔 윤석열 대통령과 그 측근세력이 명심했으면 한다.집권당의 내년 총선전망은 어둡다. 승패의 최대변수가 될 ‘윤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지극히 나쁘다. 한국갤럽이 지난주(14∼16일) 발표(조사대상 1천3명)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지지율이 33%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20대 지지율이 17%에 그쳤다는 점이다. 당의 기반인 TK(대구경북) 지지율(49%)만 40%를 넘어섰다. ‘TK 꼰대당’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PK(부산울산경남 지지율 34%)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부정평가가 압도적이었다. 내년 총선은 윤 대통령 출범 2년의 중간평가 성격을 지녀, 대통령 지지율은 총선 성적표와 직결된다.더 비관적인 것은 민심이반을 막을만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연금·노동개혁은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지금 민주당 태도를 보면, 실현이 불가능에 가깝다. 하루빨리 민심을 얻을 묘수를 찾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레임덕이 올 수도 있다.윤 대통령에게 가장 큰 적은 이너서클(Inner circle)이다. 이너서클은 생리상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의 리더도 이너서클에 포위되면 외부 비판여론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게 된다. 국민의힘이 최근 당직자 인사에서 사무총장, 사무부총장 등 총선공천위원들을 이너서클 멤버로 채운 것은 아주 위험한 신호다.여당이 지금 서둘러야 할 일은 이준석 전 대표가 쫓겨나기 전 출범시켰던 ‘최재형 혁신위’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국민의힘 혁신위는 지난해 8월 당 공천관리위원회 권한이었던 ‘후보자의 부적격 심사권한’을 당 윤리위에 넘기는 안을 ‘1호 혁신안’으로 발표한 후 곧바로 해체됐다. 당시 이준석이 윤 대통령 측근들의 수도권 험지출마를 요구한 게 발단이 됐을 거라는 추측이 나돌았다.국민의힘이 3·8 전대 이후, ‘안철수·유승민은 되지만 이준석은 안 된다’고 정리를 했지만, 나는 이것이 최악의 수(手)라고 생각한다. 이준석은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과 함께 우리나라 정계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다양한 과제를 던진 청년이다. 진영논리보다는 실용지향적인 청년들을 정치권에 흡수시킴으로써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우리 정계를 한 단계 성숙시킨 인물이다.내년 총선은 TK와 호남 등 강한 진영논리를 가진 지역을 제외하고는, 젊은 유권자들의 의중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 곳이 다수일 것이다. 이들을 흡수하려면 민심을 감동시킬만한 공천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친윤계로 공천리스트를 짰다간 TK에서도 의석을 잃게된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하루빨리 이너서클 울타리를 벗어나 열린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2023-03-21

TK, ‘기회발전·교육특구’ 지정에 올인하라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2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 소위를 통과했다. 입법예고 된 지 5개월 만이다. 여야가 합의한 만큼 오늘 열리는 행안위 전체회의와 30일 본회의에서도 무난히 통과될 것 같다. 특별법은 그동안 대통령직속 자문기관으로 설치돼 있던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지방시대위원회’로 통합한 것이다. 지방시대위 위원장은 이미 우동기 현 국가균형발전위 위원장이 내정돼 있다. 특별법 핵심은 윤석열 정부 지방시대 국정과제인 교육자유특구와 기회발전특구 지정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특별법 입법예고 과정에서 “젊은이들이 지방으로 가려면 20대 대기업 본사나 공장,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 특목고를 함께 내려 보내야 효과가 있다”고 언급한 말은 특구 지정의 의미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기회발전특구는 비수도권 지자체와 기업이 협의한 후 정부가 지정하는데, 특구로 이전하는 기업과 직원에겐 법인세와 소득세 감면 등의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준다. 교육자유특구는 학생선발·교과과정 개편 분야에서의 규제 완화와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교육 공급자 간 경쟁을 통해 다양한 명문 학교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전 장관의 말처럼, 지자체 역량에 따라 서울 명문대의 특구이전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당초 법안에 수도권은 기회발전특구 지정에서 제외돼 있었지만, 법안심사 과정에서 수도권 의원들의 반발로 ‘수도권 접경지역이나 인구감소지역 중 지방시대위가 정하는 지역’을 포함시킨 부분은 아쉽다.지방시대위 발족은 비수도권 지자체들로선 둘도 없는 기회다. 만약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곧바로 다른 지자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물론, 인구소멸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대구·경북은 특별법에 명시된 기회발전특구와 교육자유특구로 반드시 지정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2023-03-21

일하는 노인이 많은 나라

우정구 논설위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파이어족이란 말이 유행했다. 30대말∼40대초까지 조기 은퇴를 목표로 회사 생활을 하는 젊은이를 두고 한 유행어다.이들은 수입의 70∼80% 이상을 저축하는 등 극단적인 절약을 생활화하며 산다. 일반적인 은퇴 연령인 50∼60대보다 빨리 은퇴생활을 시작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목표다.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조금 덜먹고 덜 쓰더라도 외식이나 여행을 즐기는 삶을 찾아 나서겠다는 것이다.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현상이다. 미국에서 시작해 영국, 호주 등 전 세계에서 이런 흐름이 나타났다. 학자들은 일에 대한 불만족, 높은 실업률, 경제적 불확실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우리나라는 OECD가 공식 인정하는 일하는 노인이 많은 나라다. 65세 이상 일하는 노인 인구 비중이 40%다. 일본 25%, 미국 18%, 홍콩 13%에 비해 월등히 높다.지난달 통계청 조사에서 우리나라 60세 이상 일하는 노인의 수는 577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10년 전보다 2.1배가 늘었고, 1996년 통계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통계청이 조사한 고령층의 취업실태에서 장래 취업 의사가 있는 인구 비율이 68%다. 그들이 밝힌 취업 의사 이유로는 “생활비의 보탬”이 57%로 가장 높았다. 이는 우리나라 노령층의 상당수가 생활고에 시달려 일을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우리 출산율과 고령화 추이를 보면 국민연금은 없는 돈으로 생각하고 각자 알아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실감난다. 늙어서 일한다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3-21

대구 현안에 전폭 지원하겠다는 국토부장관

원희룡 국토부장관이 작년 5월 취임 후 처음으로 대구를 찾았다. 그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만나 최근 국토부가 지정한 대구 미래스마트기술 국가산단과 대구경북신공항 지원에 관해 긴밀한 협의를 벌였다. 원 장관은 “달성군에 조성될 대구 스마트기술 산단의 조속한 추진과 국비로 지원되는 민간공항이 충분한 규모로 건설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특히 대구 미래스마트기술 산단은 신속한 예타절차를 거쳐 10개월 안에 모든 절차를 끝내고, 미래차와 로봇이 융합된 미래산업의 중심지로 대구 성장을 이끄는 첨단산업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전폭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 신공항건설과 관련해 국토부는 신공항특별법 통과에 함께 노력하고 신공항과 연결되는 교통망 구축에도 적극 협조한다는 뜻을 전했다.대구시는 이날 국토부가 국비로 건설하는 민간공항이 충분한 규모로 건설될 수 있도록 대구시 제안이 국토부 용역에 반영될 수 있도록 건의했다. 또 신공항과 연결되는 팔공산 관통 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제3차 고속도로망 계획에 반영해 줄 것도 요청했다.달성군에 들어설 제2국가산단과 대구경북신공항은 대구 미래의 운명을 가늠할 중요한 지역 현안이다. 홍 시장은 이를 두고 대구 굴기의 핵심사업이라 한다. 대구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국토부의 지원은 필수적이다.홍 시장은 “국토부가 대구시를 직접적으로 도와줘야 할 일이 많고 국토부 장관의 결단이 대구 미래 50년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30년 가까이 GRDP(지역내총생산) 전국 꼴찌를 유지하는 대구는 새로운 산업 유치와 신공항 개설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 새 정부 들면서 국가산단이 대구에 추가 지정되는 등 대구경제에 조금씩 비전이 보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원 장관의 대구 방문은 이런 점에서 대구시민에겐 관심사다. 특히 원 장관은 국토부와 대구시가 원팀이 돼 긴밀히 협조하고 책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지역 현안 해결에 무게감을 더해 준다. 국토부 장관의 약속이 지켜지길 기대하고 대구시도 이에 상응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3-03-21

기계다워지는 인간

전재영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 애틀랜틱 잡지에 기고한 니콜라스 카의 글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인간과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인간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검색엔진에서 찾은 정보를 일회용 플라스틱처럼 사용하고는 그냥 버려 버린다. 필요시 언제나 다시 검색 할 수 있는데, 굳이 칼로리를 소비하면서까지 자신의 뇌에 그 정보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창조의 신비인 우리의 뇌는 그렇게 버림받는 중이고,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은 이제 비와 함께 내린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보도했다.ChatGPT는 45 TB가 넘는 양의 웹 페이지, 책, 기사 등의 글을 가지고 학습되었다. 사람 한 명이 이만큼의 글을 읽으려면 최소 약 4천 번 정도 인생을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방대한 양을 가지고 학습되었기에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매우 중요한 것은 아날로그 방식이든 디지털 방식이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AI를 가능케 하는 핵심 동력 중의 하나는 글, 즉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글쓰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ChatGPT는 없다. 문제는 인간의 글쓰기 능력은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례로 서울대 자연과학대 입학생 25%는 정규 글쓰기 과목을 수강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글쓰기 능력이 부족했다. 미국과 호주 등 다른 나라도 비슷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ChatGPT의 출현은 사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촘스키 같은 언어학자들은 어떤 형태이든 문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ChatGPT는 웹에 있는 인간의 글들, 즉 데이터만을 가지고 인간 언어를 학습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들을 ‘생성’한다 (‘창작’이 아닌 ‘생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에 유의하자). 이렇게 생성된 글들은 인간들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다시 웹에 게시할 것이고, 이렇게 웹에 게시된 글들은 다시 ChatGPT의 학습 데이터로 사용되어지는 반복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좀 과한 비유를 하자면, 먹었던 음식(데이터)을 소화하고 배설한 후(생성), 그 배설물을 다시 먹는 격이다. 이런 악순환을 피하려면, 기계가 생성한 글은 학습데이터에서 제외하고 인간의 창작 글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해야한다. 문제는 주어진 글이 생성인지 창작인지 구분도 안 될 뿐더러, ChatGPT에 열광하는 우리는 순수 창작 글쓰기를 더 멀리 할 것이라는 점이다.존 컬킨은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 그 후에는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고 말했다. ChatGPT가 높은 품질의 답을 생성할 수 있도록 좋은 질문을 만드는 인간의 작업을 Prompt Engineering이라고 한다. 도구를 인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도구에 맞춰지고 있는 격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엔지니어링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몇 십 년 전에 검색엔진최적화(SEO)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가 기계를 인간답게 만드는 동안, 인간은 점점 기계다워지고 있는 것이다. 배설물을 가지고 다시 학습한다면 ChatGPT의 성장도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 인간이 계속 기계다워진다면 말이다.

2023-03-21

결핍의 시간을 지나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춘분에 즈음해서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온갖 꽃들이 앞서거니뒤서거니 울긋불긋 피어나고 새들은 나무를 새장 삼아 정답게 지저귀는가 하면, 부드러운 바람 결에 실버들은 연둣빛 머리채를 하늘하늘 풀어헤치고 있다. 메마른 땅에 어김없이 생동의 기운이 스며들어 그야말로 만화방창(萬化方暢)한 나날이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의 정취와 향기를 이제는 마스크 없이도 느낄 수 있다니,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봄날의 환희이던가.불과 4년 전의 겨울에 들이닥친 코로나19는 얼마나 위협적으로 지구촌을 옥죄여 왔던가. 조마조마한 가운데 초기의 확진자는 무슨 죄인(?)이라도 된 양 멸시와 냉대 속에 적개심마저 불러 일으키게 했고, 언제 걷힐지 모를 암울의 장막같은 불안과 침체의 늪에 허우적거리며 공포와 조바심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었다.그러나 언 땅에도 봄이 찾아들듯이, 끝이 보이지 않던 괴질의 아귀도 이제는 한 때의 고질(痼疾)로 여길 수밖에 없을 듯하다.올해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율의 확연한 감소세로 팬데믹의 긴 터널을 벗어난 듯해 사뭇 서로가 따뜻한 위로와 공감으로 다독이고 챙기며, 병은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재삼 되새기게 된다.어쨌든 코로나 이후 세번째의 봄날이 왔고, 좀 늦긴 했지만 감염병의 소멸추세에 사람들은 조금씩 안도와 평온의 일상을 되찾아가는 듯하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꿈결 같고 한 순간 같다지만, 희대의 코로나19는 혹독한 시련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팬데믹과 네트워크상의 소통, 공유 증가로 우리는 점점 직접 마주하는 기회가 줄어드는 비대면 문화와 일방적인 대화, 표현에 익숙해지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건조한 듯 단순해 보이고, 당연한 듯 무관심에 주눅들어가는 개인화와 비정(非情)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모종의 딜레마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싶다.‘春日短/幷且去/吾君邪/頻相處(봄날은 짧다/그리고 간다/우리 그대여/자주 만나자)’- 강성위 한시 단가(短歌) 致君(그대에게) 전문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난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지구는 한 개의 점이나 티끌에 지나지 않고, 한철이나 한 시대는 유구한 세월 속의 창해일속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만큼 길거나 크게 보면 현재와 맞닥뜨리는 일련의 현상은 한때의 미약한 움직임이고 아주 소소한 변화나 진배없을 것이다. 그에 비춰 보면 지겹기만 했었던 악몽 같은 코로나의 엄습도 ‘한때의 신음’ 정도가 되지 않을 듯싶다.3년만에 봄다운 봄을 푸근하게 맞이할 수 있음은 그만큼 억눌리고 발목 잡힌 누림의 결핍이 컸었기 때문일 것이다. 묵묵히 참으며 오랜 기다림이 있었기에 새롭게 맞이하는 봄날이 한결 따사로운지도 모른다. 짧기만한 봄날이지만 마음껏 즐기고 누리면서 분출되는 욕구를 구가하는 것도 괜찮을 일이다. 뜸해졌던 만남의 물꼬를 흔쾌히 트며 피어나는 봄꽃 마냥 환한 웃음꽃을 피워보자.

2023-03-21

‘덕질’은 구원입니다

‘덕질’이라는 말이 있다. ‘수집가’의 뜻을 가진 신조어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깊게 파고드는 행위를 뜻한다.쉽게 말하자면 그냥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기도 하고, 조금 더 깊게 이야기하자면 뭔가에 미쳐하는 행동을 ‘덕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미친 듯이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는 건 포켓몬 스티커 덕질이고, 미친 듯이 아이돌 관련 굿즈를 사 모으는 건 아이돌 덕질인 셈. 어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취향에 미친 듯이 몰입하는 것, 그걸 위해 얼마든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 그게 덕질인 셈.최근엔 ‘진격의 거인’에 미쳐 하루 종일 그것만 보고 지냈다. 집에 콕 박혀서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그 세계에 대해 상상하고 가슴 졸이면서. 그렇게 한 일주일을 살고 나면, 일상의 스트레스를 모두 잊어버리고 만다. 그게 중요해? 지금 엘런이 거인이 됐는데? 아르민이 불타 죽게 생겼는데? 말이 좀 그렇긴 하지만, 나한테는 나름 현실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힐링인 셈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일이 바쁜 시즌이 되면 흐름이 뚝 끊어지게 돼서, 강제로 ‘탈덕’ 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3월은 바야흐로 ‘탈덕’의 계절이다. 강의가 시작되고, 계간지의 새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니까. 프리랜서는 일 할 수 있을 때 일해 둬야 비시즌에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취미나 취향이나 애정보다 일이 앞서는 시기인 셈이다. (물론 이런 말을 했더니 출판사 팀장님은 나에게 “방학이 있는 삶에 감사하라”고 잔소리를 하시긴 했지만...) 좋아했던 모든 일로부터 멀어져 강의를 준비하고, 특집 원고를 준비하고, 새로 시작할 연구를 준비하고. 그나마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사는 입장이다 보니 이런 삶이 싫진 않지만, 바쁘게 일만 하면서 살다 보니 사는 낙이 없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런 때엔 술마저 맛이 없다. 마치, 일찍 잠들기 위해 수면제를 먹는 것처럼 술을 마시는 기분이 든다.최근엔 1학년 대상의 글쓰기 수업을 위주로 강의를 하고 있다.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하는 수업이다 보니 왠지 재밌게 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어 생글생글 웃기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도 나름 많이 준비해 가곤 한다. 그렇다보니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할 때에는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지곤 하지만, 막상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때면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떻게든 내일 수업을 또 준비하고, 다른 할 일들도 해야 하는데, 정작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지친 것인지 침대에 몸져눕듯 쓰러져 한 시간쯤 잠들어버린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먹기 싫은, 어른의 투정인 셈.그런 하루 중에 유튜브 알림이 울린다. 좋아하는 인디 밴드의 뮤직 비디오가 유튜브에 공개되었다는 알림. 겨우 손가락 움직일 힘만 남아, 가까스로 알림을 클릭한다. 검은 창에 유튜브의 마크가 뜨고,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와 영상이 나오기 시작한다. 와, 음악 진짜 좋다. 영상 진짜 멋있게 찍었네. 대박. 대박. 보컬 엄청 잘생기게 나왔어. 얘들 왜이래. 진짜 대박 나겠다. 이제 나만 아는 밴드 아니겠다. 속상한데 더 성공했음 좋겠다. 너네라도 성공해라. 난 이번 생은 글렀다. 와 근데 노래 진짜 좋네. 영상 대박 멋있어. 완전 대박. 어, 이거 만화 오마쥬인가? 소년 만화 주인공 같네. 멋있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실리카겔’이라는 밴드의 ‘Mercurial’을 그렇게 하루 종일 보고 들었다. 가사의 의미와 뮤비에 나온 오브제들을 보며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면서 이상하리만치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하루 버티길 잘했다 싶은 기분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심미적인 만족감 같은 걸까? 사실 잘은 모르겠다. 그냥 기분이 들뜨고 내일도 또 들어야지 싶고.내일도 또 들어야지, 지하철에서 뮤비 봐야지, 영상도 더 찾아봐야지. 어디 인터뷰나 코멘트 한 거 없는지 찾아봐야지, 그런 소소한 생각을 하다 잠들었다. 그런 때면 왠지 어릴 때 생각이 난다.좋아하는 게임 하나에 몰입해, 혼자 게임 세계에 대해 상상하고 이런 저런 살을 붙이고, 내일은 뭘 해야지 하고 계획하며 두근거리던 기분. 분명히 별 것 아니지만,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1인용 위안 같은 것들. 참 별 것 아니긴 한데, 그 사소하고 작은 ‘덕질’ 하나에 하루의 의미가 바뀐다. 버티고 버틸 뿐인 삶에서, 내일을 두근거릴 수 있는 삶으로. 그렇게, 오늘 나의 하루는 구원받는다. 사소한 애정이 나의 하루를 이토록 두근거리게 해줄 수 있다니 스스로에게 감탄하면서.

2023-03-21

나는 안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보면 동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고들 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물론이고 대중의 내밀한 욕망까지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인터넷 서점 사이트만 들어가 봐도 그렇다. 읽으면 부를 거머쥐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책과 욕심을 내려놓고 흘러가는 바람처럼 살아가자는 책이 나란히 놓여있다. 이러한 양극의 발화야말로 우리 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다.‘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외침과 ‘이번 생은 망했다’며 자조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고 헤매기 쉽다. 세상을 향해 힘차게 주먹을 휘둘렀으나 보이지 않는 손에 어퍼컷을 맞고 KO패 당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살면서 누구나 냉소와 허무를 맞닥뜨리기 마련이고 그날그날 편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다가도 문득 이렇게 나태하게 살 순 없다고,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압박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혼란한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는 명백한 답을 찾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그런 면에서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대한민국의 사이비 종교를 고발하고 집단적인 폭력에 관해 파헤치는 내용의 프로그램은 공개와 더불어 많은 사람을 분노하게 했다.그 어떤 이유라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인간의 존엄을 완전히 말살시키는 행위들. 어떠한 가치를 향한 의지가 크면 클수록 자기 존엄성보다 희생이 앞설 수밖에 없다. 사이비 종교 집단은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행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가감 없이 벌인다.다큐멘터리에서는 눈이 찌푸려질 만큼 자극적이고 적나라하게 피해 상황을 보여준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상황이나 권위를 내세우던 사람이 몰락하는 과정, 한 인간을 무분별하게 신격화하는 것의 위험성과 사람들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는 모습까지. 모두 인간이 행한 일이며 종결되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진리를 알고 그를 통해 구원받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정답을 나 혼자 알고 있다는 사실만큼 달콤한 것이 또 있을까. 당장의 현실은 고달플지 몰라도 믿고 따르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또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책을 덮고 당장 일어나 밖으로 나가라는 자기계발서의 조언을 따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지 나가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 정답이 있다고 보장되어있는 한, 누구나 자신만만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다.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적극적인 자기 확신과 맹목적인 자기 믿음은 다르다. 한 사이비 교주를 체포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애써왔던 사람은 그의 실체를 마주하고 이렇게 보잘것없고 겁 많은 사람을 쫓던 것이 허무했노라고 고백한다. 어떤 인간도 완전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신이라는 절대자를 붙잡는다. 인간은 완전해질 수 없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에 가깝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했던 그 유명한 변론을 떠올려 보라. 그가 유일하게 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던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의문하고 의심하고 전복하면서 철학과 과학과 종교는 발전되어 왔다. 사랑과 행복 같은 관념은 늘 선행적으로 존재한다. 결국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삶의 본질이다.언젠가 외부 강의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소설을 써야 소설가로 데뷔할 수 있습니까?” 질문 자체보다 거기에 무언가를 대답하려고 했던 나 자신에게 당황했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을 정답이라고 내어놓을 수도 있던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질문자의 얼굴에서 실망의 기색이 떠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이따금 생각한다. 나는 그때 어떤 답을 주려고 했던 걸까. 어쩌면 이제껏 그것을 답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모르겠다고 말하기는 쉽다. 어떤 상황에선 모르겠다는 발화가 명쾌하고 산뜻해 보이기까지 한다. 끝끝내 어려운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다. 그것은 무지의 영역보다는 앎의 영역에 가깝다. 자기 의심과 자기 확신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가는 그 걸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2023-03-21

‘정책시뮬레이션’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어린이집, 노인복지관, 응급의료병원, 보건소, 도서관, 체육시설, 공원, 박물관, 주민센터, 공공주차장 등을 일컬어 우리는 생활SOC(Social Overhead Capital·사회간접자본)라 한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먹고, 자고, 자녀를 키우고, 노인을 부양하고, 일하고 쉬는 등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인프라와 삶의 기본 전제가 되는 시설들이다. 이 시설들은 국민 누구나 어디에서나 품격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 최소수준 이상 공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관할 부서간의 칸막이식 공급체계의 단점을 해소하고 공급된 시설의 질적 제고와 국민의 체감성과를 향상시켜야 한다.지난 2018년 국토연구원에서 인구와 생활SOC 접근성 데이터를 이용하여 거주지로부터 10가지 기초생활SOC까지 10분 이내에 이용할 수 있는지를 접근성 지표를 분석해보았다. 시급 도시는 3㎞, 군지역 5㎞ 거리 기준을 차량 이동 10분 거리로 설정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전국 거주지의 20.9% 지역은 10분 내에 접근 가능한 기초생활SOC가 하나도 없는 취약지역으로 나타났으며, 도시 근교와 농어촌지역으로 갈수록 생활SOC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소득, 고용, 교육, 주거, 건강, 생활환경, 안전 등 필수 7대 영역에 대한 결핍 정도를 종합적으로 진단하여 지역 여건의 차이를 상대적으로 측정한 지수를 ‘복합결핍지수’라 한다. 이 ‘복합결핍지수’를 10등급으로 구분하여 도시와 농촌지역에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도시는 1, 2, 3 등급의 비율이 높고, 농촌은 8. 9, 10 등급의 비율이 높았다. 상위 10%의 가장 양호한 지역은 서초, 의왕, 세종 등 도시지역이었고, 하위 10%의 가장 결핍된 지역은 강원, 경북, 충남 등 농촌지역과 일부 광역시 원도심 지역이었다.이렇게 생활SOC 접근성이나, 국민생활 7대 영역 결핍도는 급속하게 발달한 빅데이터와 정보기술 등 을 활용하여 지리정보시스템의 전국 지도에 읍면동 단위로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접근성이나 결핍도 등을 산정하는 수식에 임의로 생활SOC의 신규 설치나 폐지, 7대 영역 세부지표값을 가정하여 높이거나 낮추어 보는 행위 즉, ‘시뮬레이션’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국가나 지방정부는 한정된 재원과 복잡한 규제, 이해관계, 시급성 등을 고려하여 주요 정책의 추진에 앞서 ‘정책시뮬레이션’을 통해 효과성 검토를 해야 한다.지난 2월 1일 개원한 대구정책연구원은 신산업육성전략, 신공항경제권 클러스터화, 군위군 편입 및 후적지 개발을 위한 메가대구 공간디자인, 청년정착형 職·住·文 기반구축, 스마트동네생활권, 기후환경선도도시 등 시민 삶의 질 혁신을 위한 주요 정책연구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 크로스코칭, 전문가 라운드 테이블, 시민소통(리빙랩)에 이어 ‘정책시뮬레이션’을 반드시 수행하여 핵심정책을 제안하는 단계적 연구관리 프로세스를 생활화 하고자 한다.

2023-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