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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도 항공사를 보유한 도시가 됐다

심충택 논설위원 저비용항공사(LCC)인 티웨이항공이 지난 주말(3월 31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본사 소재지를 서울 강서구에서 대구로 이전하는 정관변경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대구도 이제 하늘길을 여는 개척자 역할을 할 항공사를 식구로 맞이하게 됐다. 지난해 7월 대구시와 업무협약을 통해 본사 이전을 약속한 지 8개월여 만의 성과다.지방공항은 본래 국제선보다는 국내선 위주로 노선이 편성됐는데다, 수익성이 낮아 항공사들이 모기지(母基址)로 삼는 것을 꺼려 왔다.지난 2010년 출발한 티웨이항공은 2014년부터 ‘대구공항 허브화’ 전략을 펴면서 급격히 성장했다. 앞으로 대구경북(TK)신공항을 허브공항으로 해서 운항하며, 이 지역 여객·물류이동의 핵심역할을 수행하게 됐다.티웨이항공은 2030년 TK신공항 개항 일정에 맞춰 MRO(유지보수·수리·정밀검사), 운송, 화물, 물류 등의 본사 기능을 단계적으로 이전하며, 중·장거리 노선(미주와 유럽) 개설과 사업확대를 추진해 나간다.티웨이항공은 현재 국내선은 대구, 국제선은 대구와 인천을 중심으로 운항하고 있다. 매일 대구발 국내선은 제주 12회, 대구발 국제선은 나리타와 간사이, 후쿠오카는 각 주 7회, 신치토세는 주 14회, 타이베이는 주 7회 운항하고 있다. 원래 보잉 737-800 NG 기종이 단일 기단이었지만, 지금은 중대형기인 A330-300기종 3대를 운용하고 있다. 향후 추가로 17대를 도입할 계획이다.정홍근 티웨이항공 대표는 주주총회에서 “중대형기 도입을 통해 LCC의 중장거리 노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고 했다.티웨이 항공은 현재도 인천~시드니를 시작으로 경쟁사들이 가지 못하는 장거리 노선을 취항하고 있으며, A330기를 통해 부가적인 화물 수입 창출도 노리고 있다. 티웨이항공의 대형기 도입은 시점 자체가 항공업계에서는 화제였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전 세계 항공업계가 생존을 걱정하던 위기의 순간에 오히려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A330은 항속거리가 약 1만㎞로 호주와 동유럽까지 갈 수 있다.올 들어 LCC 항공업계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항공권 가격이 치솟으면서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LCC 4총사’의 올해 탑승률을 보면, 제주항공 95.8%, 티웨이항공 95.1%, 진에어 91.1%, 에어부산 90.2% 순으로 모두 90%를 넘어섰다.티웨이항공은 지난해 대구시와 업무협약을 하면서, TK신공항을 중남부권 관문공항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려면 적극적인 국내외 노선개설을 통해 여객과 물류 수요를 창출하고, 항공기정비 사업 등을 확대해야 한다. 완전한 본사 기능 이전을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부터 노선 확충과 항공 수요 창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정부도 티웨이항공이 ‘24시간 잠들지 않는’ TK신공항을 만드는데 주요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티웨이항공의 대구 본사이전은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지방시대를 여는데도 주요한 몫을 하기 때문이다.

2023-04-04

식목일 다시보기

우정구 논설위원 청명(淸明)은 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다.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무렵부터 날씨가 풀리고 완연한 봄이 시작된다. 농민들의 손길이 바빠질 시기다.청명은 음력으로 3월이며, 양력으로는 4월 5일이나 6일 무렵에 든다. 한식(寒食)과는 같은 날이 되거나 아니면 청명 다음이 한식날이 된다. 한식날에 약밥이나 쑥떡, 찬밥을 먹으면 일년내내 병이 없다는 속설이 있다.올해 청명은 식목일과 겹쳤다. 한식은 다음날인 6일이다. 식목일은 본래 조선 성종 때 음력 3월 10일(양력 4월 5일)에 맞춰 임금이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친경(親耕) 행사를 벌인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농사의 중요성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농업을 장려하는 행사였으나 나무심기도 했다고 한다.이날을 기념해 1946년 4월 5일 처음으로 식목일이 지정되었고 올해가 78번째 되는 해다. 1949년 공휴일로 지정됐으나 2006년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식목일은 1962년부터 50년간 국토에 110억 그루 나무를 심는데 원동력이 됐다는 중요한 평가가 항상 뒤따른다.기후이상 변화로 4월 5일이 식목일로 적합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꽤 됐다. 전국 묘목시장은 기온상승으로 2∼3월이면 이미 대목장이 서기에 4월 식목일을 3월로 당겨야 한다는 여론이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56%가 식목일을 3월로 당기자고 응답했다.그러나 일각에서는 국토 녹화사업이 성공한 지금 4월 5일을 나무 심는 날로 국한하지 말고 탄소중립의 시대정신을 살리는 날로 삼는 것도 의미 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지구온난화를 생각하면 나무 심는 일,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4-04

여전히 우리는 삶이 서툴러서

삶에 익숙해지는 나이가 있을까? /Pixabay 한 대학에서 수업을 하는 친구가 전화로 하소연을 해왔다. 아이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수업이야 당연히 지루한 거고,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이번엔 유독 아이들이 무시하는 것 같다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아이들은 쳐다보질 않는 것 같다고. 분명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화면보호기가 켜진 모니터처럼, 그런 눈빛으로 자기를 보는 것 같다고. 속상할 일도 아니고 직업이니 익숙해져야 하는 일인데도, 아이들이 자꾸만 자기를 헛것처럼 바라보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하다고.친구의 목소리는 조금 격앙되긴 했지만 딱히 떨리지도 않았고, 울먹거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마치 오래전 안 좋았던 일을 말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속상하다’는 말을 반복했을 따름이었다. 미안했다. 해줄 얘기가 딱히 없어서, 그런데도 그게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알아서. 이야기를 오래도록 들어주다가, ‘최소한 너라도 편했으면 좋겠어. 수업을 좀 대충하더라도 말야’라는, 말 같지도 않은 대답을 위로인 척 건네주었다.나를 아는 사람들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수업을 한 날 밤이면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수업은 이미 끝이 났는데도, 내 머릿속은 계속 수업을 하던 상태 그대로다. 개념을 설명하고, 개념에 맞는 예시를 들고, 예시에 맞는 농담을 던지고, 아이들이 웃던 안 웃던 혼자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고, PPT를 어떻게 고치고, 어떻게 손동작을 하고, 그런 생각들이 끊이지 않고 흘러넘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새벽 2시고, 내일은 9시에 수업인데 하는 부담감까지 더해져 부정적인 생각들이 샘솟기 시작한다.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나는 이름과 얼굴을 외운 학생이 참 드물었다. 간간이 떠오르는 학생들 이름이야 있지만, 얼굴과 함께 외운 학생은 거의 없었다. 수업 시간이면 늘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과장된 목소리와 억양으로 크게 떠들며 학생들을 일일이 바라보는 척 했지만, 사실 내가 바라보는 건 늘 아이들 사이의 빈 공간이나 시계, 벽, 창문, 교실 바닥, 그런 것들이었다. 아이들 눈을 제대로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이 졸고 있을 때면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나를 평가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내가 누구를 가르쳐도 되는 걸까, 난 선생으로서 아이들에게 애정을 못 느끼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떠오르곤 한다.친구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사실 학생들이 그 친구를 바라보듯 학생들을 바라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생들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는 날들도 있곤 하니까. 마치, 내 과장되고 거짓되고 부풀려진 자아를 아이들이 늘 꿰뚫어 볼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으니까. 늘 수업을 할 때면 학생들에게 미안해진다. 나는 너희에게 좋은 선생님은 아닐 것 같구나.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조차 너무 부담스럽구나. 그냥, 가까스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버티는 아저씨 한 명에 불과한 것만 같다. 임지훈 2020년 문화일보,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된 문학평론가. 한양대 국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얼마 전 10년째 회사 생활을 하는 친구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물론 술김에.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이야기들 배부른 소리인 것만 같고 못할 소리인 것만 같으니까. 헌데 친구는 진지하게 들어주곤 이런 말을 했다. 너 그거 딱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라고. 원래 회사 다니는 애들도 2년차에 딱 너 같은 소리 한다고. 처음 1년은 멋모르고 지나가고, 2년차 돼서 일이 좀 익숙해지니 내가 잘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라고. 익숙해지는 과정이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답해줬다.우리는 종종 익숙해지는 과정이 선형적이고 안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하지만 어쩌면 익숙해지는 과정이라는 건 그렇게 선형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을 지 모르겠다. 익숙함의 과정에는 종종 이런 시기가 있을 지도 모르는 셈이다. ‘잘 해나가다가도 한 번씩 꼬꾸라지기’, ‘어처구니없는 실수 한 번씩 저지르기’, ‘자신감을 모두 잃어버리기’ 등등. 어쩌면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의 일을 지속하는 것, 그것 자체가 익숙함이라는 걸 지도 모르겠고. 나도, 친구들도, 모두 그 과정 속에 놓여있다 보니, 아직은 삶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니까. 그러니 마음이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속상해지더라도, 늘 속상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2023-04-04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

시인이 보내는 밤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언스플래쉬 시는 언어로 이루어진 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어로 설명될 수 없다. 박연준 시인은 자신의 시 ‘밤의 식물원’에서 말한다. ‘시 쓸 때 내 얼굴엔/밤/비/뱀이 내리고/층층나무 열한 그루 사이를/옮겨 다니며 숨는 사람’이라고.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시는 ‘밤의 머리카락’처럼 ‘묶을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시는 ‘작고 굵은 것을 잉태’하며 ‘비탈길을 타고 도망가’기 쉽고 ‘모든 것에 스민 후 재빨리 사라지’는 모양일지도 모른다.나는 시인들이 좋다. 시보다 시인이 좋을 때도 있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시인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고뇌하는 밤. 빈종이 위로 채워지는 낯선 언어. 그것을 쓰는 손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부지불식간 사랑에 빠지고 만다.시인에 관한 일방적인 짝사랑은 꽤 오래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나의 아버지로부터 기인하였을 테다. 아버지는 시를 썼다. 썼다는 말은 이미 종결된 사건으로 느껴지지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물론 그는 지금도 시를 쓴다. 이따금 그것을 내게 보여주기도 하는데 세상 밖으로 내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사그라지지 않는 예술적 불씨를 감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겐 그런 내색을 드러내지 않는다.나의 아버지는 멋을 아는 사람이다. 외적으로 자신을 꾸미는 일에도 능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생의 가치를 안다. 삶의 유한함을 이해하고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고 놓쳐서는 안 될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예리함이 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까지도 부단히 노력한다.돌이켜보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그런 모습이었다. 어딜 가도 멋지게 차려입는 것은 물론이었고 유려한 말솜씨로 사람들 사이에서 늘 중심을 차지했다. 언젠가는 뒷머리를 말꼬리처럼 길러서 보라색으로 염색하기도 했었다. 보라색 머리카락과 백석의 시집이 잘 어울린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의 손을 잡고 동네를 걸어 다니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봐, 우리 아빠는 이렇게 멋진 사람이야.’ 그런 생각은 지금까지도 유효해서 여전히 나는 나의 아버지를 여기저기에 자랑하고 싶다.아버지는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색소폰을 연주했으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교사를 꿈꾼 것은 아니지만 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가난하고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으므로 그런 불행이 지속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그로 인해 꿈이 좌절되는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나는 나와 닮은 어느 청년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제대로 된 삶을 손에 쥐기 위해서 부단히 발을 구르던 한 남자를. 어느덧 나는 그의 나이와 비슷해지고 그의 몸짓을 어렴풋이 이해할 것도 같다. 낭만에 매몰되는 순간 무너지는 현실적 삶이 있다. 이상만큼 중요한 건 먹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나는 알고 있다. 책상 앞에 앉은 시인의 밤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자기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한 시간을 견디면 모든 걸 마주했다는 생각과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자각이 동시에 떠오를 것이다. 낯선 언어를 쓰는 손은 현실과 뒤엉켜 생채기로 가득할 것이다. 그러니 그 밤을, 그 손을, 어떤 본질을 끝끝내 움켜쥐려는 애달픈 마음을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어떤 고민이 찾아오면 나는 주저 없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그가 내어주는 답은 늘 명쾌하고 선명하다. 그는 현실을 살면서 낭만을 꿈꿨던 어른이다. 내가 글 쓰는 삶을 택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신춘문예 당선 전화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올렸던 사람도 아버지였다. 내가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위경련이 일어났다던 아버지. 나의 예민함과 날카로운 기질까지 작가적 영역으로 치환시켜준 아버지. 그는 내 인생을 긍정할 수 있게 만들어준 가장 고마운 조력자다.감히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버지의 언어로 만들어진 인간이다. 그가 내뱉었던 문장으로 구성된 딸이다. 세상의 유려한 문장에 마음이 요동쳐도 중요한 순간엔 내 안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보일 리 없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마음. 그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건네준 것이다.

2023-04-04

다시, 나무심기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대지의 기운이 왕성해지는 4월이다. 이상고온현상으로 개화시기가 빨라져서 일찍 꽃이 진 자리마다 잎새들이 일제히 돋아나며 생명의 등불을 켜고 있다. 나무에 물이 오르면서 꽃이 피거나 잎사귀가 앞다투어 드리워지니, 산과 들은 나날이 연둣빛과 초록빛의 융단을 펼쳐 가는 듯하다. 낭창한 나뭇가지마다 앙증스럽게 움이 트고 잎차례가 연이어 벌어져서 그야말로 4월은 연초록의 잔치가 열리는 잎새달이기도 하다.바람이 불 때마다 여린 잎새들은 저마다 손을 흔들어 살랑거리면서 많은 얘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햇살이 스며들고 바람이 스쳐가며 별빛이 내려앉는 잎새들은 저마다 나무의 일원으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차분하면서도 잔잔하게 나부끼거나 보채기도 할 것이다. 새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가는 구름도 쉬어 가게 하는가 하면, 빗물을 받아들이고 신선한 공기를 머금으면서 점차 하늘빛을 닮아 가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무의 둥치가 커지고 가지를 튼실하게 하는데 한 잎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무는 온갖 사연을 품고 다독이며 거목으로 우뚝할 수 있는 것이리라.잎새의 온갖 사연이 켜켜이 나이테마다 스며든, 나무로 만든 책이기에 책장마다 나무의 결이 느껴지고 나무냄새가 나는 걸까? 그래서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일까? 사계절의 변화무쌍함과 누세월의 응축된 풍진이 쟁여져 나무의 무게감과 책의 웅숭깊음이 배어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무와 책은 예나 지금이나 경외스럽고 위중(威重)한지도 모를 일이다.“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 박고 서 있는/그 나무 때문이다” -맹문재 시 ‘책이 무거운 이유’ 중아련한 초·중등시절, 식목일에 등교하거나 또는 마을단위의 부락에서 나무심기를 의무적으로 실시했는가 하면, 봄에 심은 나무에 비료를 주거나 가지치기, 잡목솎아내기 등으로 나무가꾸기 분위기를 조성한 ‘육림(育林)의 날’도 있었다. 국민 식수와 산림녹화를 위한 인식을 높이고 산림사업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국민운동처럼 일어나 나무를 가까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예전에 딸이 태어나면 시집보낼 밑천으로 장롱을 만들기 위해 집 주위에 오동나무를 심었을 정도로 나무는 유익함이 많았다. 필자는 꼭히 그런 심산은 아니었지만, 30여년 전 딸 아이 태어난 기념으로 고향집 언덕에 ‘동갑내기 자두나무’를 심어 자식을 나무처럼 키운다며 한동안 주위에 회자되기도 했었다.그러나 식목일인 오늘, 격세지감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소회일까? 나무심기는 고사하고 식목일 무렵에 전국적으로 발생되는 크고 작은 산불로 인해 애써 심고 가꿔놓은 산림이 훼손되고 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으랴. 나무가 사라짐은 책장이 찢기는 것과 진배없다. 숲과 나무에서 들리고 보이는 이야기와 평온함이 책으로 고스란히 담겨서 모두에게 울림과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2023-04-04

자율주행의 출현: 기회와 위기

김정현 한동대 교수·AI융합교육원 2022년 12월 15일 필자는 경기시청자미디어센터의 초대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공지능 관련 기조 강연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당시 인공지능의 역사, 인공지능의 최신기술, 인공지능의 응용사례, 인공지능의 교육 방법 등 다양한 주제들을 가지고 청중들과 함께 많은 토론을 진행하였는데 그 중의 가장 기억에 남는 토론은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에 의해 운영되는 비행기가 만약 사고를 일으키게 된다면 해당 사고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라는 주제였다.사실 위에서 언급한 질문은 비행기 이전에 자율자동차의 출현과 함께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가령, 인공지능 기술에 의해 작동되는 자율주행차가 도로에서 스스로 주행하다가 사고를 유발하게 되었을 경우 운전자, 자동차 제조사, 아니면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사 중 어디에 책임소재를 해야 할지에 관한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이러한 자율주행 차 사고의 법적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미국 자동차공학회(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 SAE) 에서는 통용되는 자율주행 기능의 단계를 레벨0에서 레벨5까지 총 6단계로 구분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운전자의 주행을 지원하는 수준인 레벨2 까지는 운전자가 책임을 지는 것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반면 운전자의 개입 없이 주행이 가능한 레벨4부터는 제조사가 책임을 지는 것으로 원칙을 세우려는 움직임들이 보이고 있다.그렇다면 과연 자율주행과 관련한 기술, 법, 제도 등의 준비가 완벽해진다면, 비행기 혹은 자동차에 적용되는 인공지능 기반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된 문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해당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자는 2014년 인공지능의 윤리적 딜레마(Dilemma) 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엠아이티미디어랩(MIT Media Lab) 의 연구원들이 설계한 광차 문제(Trolley problem) 를 예로 들고 싶다.해당 문제는 인간의 도덕적 윤리관을 묻는 문제로 설정된 조건은 다음과 같다. 빠른 속도로 선로를 달리는 광차가 있고 해당 광차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통제 불능에 빠져 있는 상태이다. 불행하게도 광차의 현재 선로에 저 멀리 5명의 사람이 서 있는 상황이며, 만약 5명의 사람을 살리고자 한다면 기관사는 기존 선로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그러나 변경된 선로에 저 멀리에도 1명의 사람이 서 있는 상황이다. 5명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기존 선로를 변경하여 무고한 한 명을 희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기존 선로로 그대로 운행할 것인가?광차 문제는 어떤 이들에게는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분명 자율주행 기술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다양하고 유익한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자율주행으로 인한 위기 또한 존재한다. 변화는 기회를 가져온다. 그 변화가 기술 혁명일 때는 그 효과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그 기회가 때로는 위기를 동반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23-04-04

‘복수’ 우리를 위로하는 서사의 상쾌함

바야흐로, 복수의 시대다.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자기가 겪었던 부당한 상처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결국 복수하고야 마는 이야기가 넘쳐 나고 있다.어느새 드라마 ‘더글로리’가 다루는 복수는 우리 모두의 욕망이 되었다. 일찍이 이청준은 소설 ‘벌레이야기’에서 복수와 용서의 역설을 다뤘고, 이창동 감독은 ‘밀양’에서 이를 곱씹었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에 대한 영화 3부작을 통해 복수라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행위에 대해 이성적이고 지적인 성찰을 행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복수의 서사는 좀 더 직접적으로 욕망을 자극한다. 나도 모르게 손을 꾹 쥐고 몰입하게 된다.모든 사람이 복수를 꿈꾸어야 만큼 실제적으로 비인간적인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당했던 것은 아닐 테니까, 그 복수에 대한 감정은 우리가 이야기를 볼 때 늘 그러하듯 상상적인 감정이입에 해당한다. 철학자 니체가 말했던 르상티망(ressentiment), 즉 약자가 강자에게 갖기 마련인 정의롭지 못한 세계에 대한 시기심이나 질투 같은 원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니체는 이러한 원한의 감정은 노예의 것이고, 이를 통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우리는 인간이라면 사회 속에서 누구나 겪기 마련인 질투나 원한, 열등감 등을 통해 나도 모르게 복수의 서사에 빠져들고 만다.사실, 원한과 복수에 얽혀 있는 이야기는 인류가 생겨나면서 동시에 나타났다고 해도 좋을, 어쩌면 인류의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과 인간이 얽혀 살아가는 과정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과정이고, 그 속에서 저질러지는 폭력과 증오는 누군가의 기억에 씻을 수 없는 공포를 만들어낸다. 실제로는 전혀 불가능하지만 이야기로나마 시원하게 복수하는 상상을 해보는 것, 그것이 인류가 만들어낸 복수 이야기의 요체이다.16세기 말에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에서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클라우디스에게 복수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살아갈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지만, 알렉상드르 뒤마가 1844년에 쓴 작품 ‘몽테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에서 에드몽 당테스는 자신을 배신하고 모함해서 감옥에 가둔 자신의 친구들에게 불같은 복수를 행한다. 프랑스 작가로 가장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어 가장 많이 읽힌 신문 연재 소설을 썼던 알렉상드르 뒤마는 언론 미디어가 발달해 점차 고양되기 시작했던 당대 독자들의 욕망을 예민하게 파악하여 머뭇거림이나 망설임을 남기지 않는 훌륭한 복수극의 고전을 남겼던 것이다.이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보여준 복수의 플롯은 그것이 지금 쏟아져 나오는 이른바 복수의 전형이 되었다. 14년 간 감옥에 갇혀 복수심을 키워왔던 당테스는 감옥 안에서 ‘미친 신부’인 파리아를 만나 원수에 대한 진상과 복수를 위한 지식을 배우고, 그의 시체 가방에 숨어 탈출한다. 그리고 복수에 필요한 재산을 형성하고 백작의 지위를 산다. 그리고 프랑스에 돌아와 이제는 적이 된 옛 친구들에 대한 복수를 시작하는 것이다.당테스가 행했던 복수는 배신자들이 갖고 있는 탐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돈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는 이들에게는 경제적 파탄의 복수를, 명예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부정의 폭로를 통해 명예를 타락시키고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도록 하는 복수를, 그리고 법을 왜곡한 이에게는 재판정에서 그 죄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복수를 행한다. 세상에 대해 그릇된 마음과 폭력으로 대하는 이들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복수란 얼마나 상쾌한가. 복수의 실현가능성이나 효용이나 부작용 같은 걱정은 접어두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에만 마음을 써볼까 한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상상은 그렇듯 자유로이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가. /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3-04-03

조선 시대 선비가 봄꽃을 즐기는 법

전국이 봄꽃 축제로 들썩이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4년 만이다.3월 초순 매화 축제로 시작하더니 진달래 축제, 벚꽃 축제로 이어지면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까지 오픈했다.지난 주말에는 활짝 핀 꽃에 날씨까지 가세해 상춘객의 마음을 자극했다. 전국 각지 이곳저곳에서 열린 봄꽃 축제에는 꽃 구경하겠다고 몰려든 사람으로 가득했다.4월 한 달은 산에 들에 핀 꽃들이 일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것이다.김광계(金光繼·1580~1646)는 경상도 예안현(현재 안동)의 외내(烏川) 마을에서 태어났다.오랜 기간 과거 시험을 준비했지만, 인조반정 이후 과거를 통한 입신출세의 꿈을 버리고 오직 성리학 공부에 골몰했던 인물이다.뒷날 경상감사로 부임했던 인물들이 그의 학덕을 높이 평가해 관직에 천거했지만 모두 응하지 않고 끝까지 처사형 선비로 살았다.김광계는 23세인 1603년(선조36) 1월 1일부터 65세인 1645년(인조23) 9월 30일까지 약 43년 동안 일기를 기록했는데, 현재 전해지는 것은 대략 28년의 기록이다.20대의 일기에는 과거시험에 대한 관심과 준비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김광계는 과거를 단념하고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일상을 영위했다.일기에는 지속적인 독서 기록과 꾸준한 학문 활동이 잘 나타나 있으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전쟁 체험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김광계는 꽃을 좋아했다. 해마다 음력 3월만 되면 산에 들에 핀 꽃들에 눈길을 주었다.그의 일기에서 봄꽃에 대한 첫 기록은 24세이던 1605년(선조38) 3월 4일의 일기에 나타난다.“할머니가 제천 할머니 등 여러 명의 부녀자들과 함께 근시재(近始齋)에서 꽃구경을 했다. 제천 할아버지도 우리와 함께 봄 산에 놀러 가고 싶어했으나 찾아온 손님 때문에 놀러 갈 수 없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일휴당(日休堂)에서 술을 마셨다.”봄이 오고 꽃이 피니 남녀노소 막론하고 꽃구경에 마음이 들떴나보다. 할머니를 비롯한 부녀자들은 집 주위에 핀 꽃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김광계를 비롯한 남성들은 봄꽃을 보기 위해 산으로 나가려했으나 손님 때문에 마음을 접었다. 이루지 못한 봄꽃 구경 때문에 아쉬웠던 그는 친구와 술을 마시며 마음을 달랬다.이후에도 김광계는 음력 3월 꽃이 만발할 때면 어김없이 그 광경을 기록했다.어느 해는 이른 봄에 매화 꽃술을 발견하고 은근한 설렘을 담아내기도 했고, 어느 해는 비를 맞아 떨어지는 산꽃을 보며 애석해하기도 했다. 또 아온 날도 있었다. 이 계절에 김광계의 시선은 온갖 꽃에 머물렀다. 매화, 진달래, 살구꽃, 모란꽃, 장미꽃 등 피었다 지는 꽃에 기뻐하고 또 애석해하며 봄꽃들과 어울렸다.꽃에 대한 김광계의 마음은 보통 사람보다 유난했다. 65세이던 1645년 음력 3월 6일의 일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또 몸을 조리하였다. 젊은 종에게 산에 올라가서 산꽃이 피었는지 보고 오라고 시켰더니, 한참이 지난 뒤에 무수히 많은 꽃떨기를 꺾어 가지고 왔기에 산꽃이 크게 피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꽃을 병에 꽂아두고 감상하였다. 밤사이에 몸을 뒤척이며 잠을 자지 못했다.”아픈 와중에도 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종을 시켜 산꽃이 피었는지 보고 오라 시켰을까.마침 그 종은 산에 핀 꽃을 한가득 따서 가져왔고 김광계는 그 꽃들을 병에 꽂아두고 감상했다. 최은주 한국국학진흥원책임연구위원 밤에 잠도 쉽게 이루지 못할 만큼 아팠던 것 같은데, 그는 꽃을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일기의 마지막이었던 이 해의 봄꽃은 김광계에게 즐거움보다 슬픔을 배가시켰다. 보름이 지난 음력 3월 20일에는 며느리도 전염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기에 근심이 더욱 깊어진 즈음이었다.“들으니 며느리가 땀을 흘리고 나서 열이 내렸다고 한다. 필시 전염병일 것이다. 지팡이를 짚고 반석(盤石) 위로 나아가니 호숫가 산에는 온갖 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이때가 바로 일 년 중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근심과 걱정이 겹친 상황인 데다 전혀 함께 할 형편이 안되니 더욱 한탄스럽다.”며느리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김광계는 호숫가로 나갔다. 지팡이에 아픈 몸을 의지한 채 둘러본 풍경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계절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사방팔방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의 경치 속에서 김광계는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근심거리가 덮치고 걱정이 겹쳐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봄꽃들을 느긋하게 감상할 형편이 아니었던 것이다.김광계는 생애 끝자락 시간 속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을 마주하고 있었다.

2023-04-03

논·밭두렁 태우기

홍석봉 대구지사장 농촌에서 봄철 영농채비에 들어가기 전에 논·밭두렁 태우기가 성행했다. 농촌 곳곳에 연기가 자욱했다. 이맘때쯤이면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일이다. 병해충 방제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농민들이 논·밭두렁에 일삼아 불을 질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논·밭두렁 태우기가 봄철 산불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범죄 행위의 하나로 치부되고 있다. 자칫 논·밭두렁을 태우다가 불씨가 바람에 날려 인근 산으로 옮겨붙으면 산불로 번져 전과자가 될 수 있다.산림청은 최근 산불 발생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산림 인접지에서의 영농폐기물 및 부산물 불법소각 행위에 대한 집중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올해 3월말 현재 발생한 산불은 365건으로 예년(240건)에 비해 125건 이상 늘었다. 이중 상당수가 논·밭두렁을 태우다가 발생했다.영농부산물은 생활폐기물에 해당한다. 영농부산물·폐비닐·생활 쓰레기 등을 노천에서 소각하는 것은 불법행위다. 적발 때는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는다.지자체도 농촌지역 불법소각 합동점검단을 구성해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불법소각에 대한 단속·계도 및 홍보 활동도 한다. 불법소각하다가 적발돼 과태료를 무는 사례도 빈발한다. 전문가들은 논·밭두렁 태우기가 병해충 방제에 별로 효과가 없으며 되레 이로운 벌레를 많이 죽여 농사에 불리할 수도 있다며 자제를 당부한다. 불법 소각은 미세먼지의 원인도 된다.고온 건조한 날씨 속에 청명·한식을 앞두고 산불 위험이 커졌다. 산림 부근에서의 소각, 흡연, 취사 등 불씨는 절대 삼가야 한다.한때 정겨운 풍경으로 여겨지던 논·밭두렁 태우기가 어느덧 천덕꾸러기가 됐다. 4일 비 예보가 희소식이 되길 기다린다./홍석봉(대구지사장)

2023-04-03

축제장 바가지요금, 경북관광 이미지 망칠라

국내 대표 벚꽃 축제인 진해군항제 축제장의 바가지요금이 전국적 논란이 된 가운데 경북도내 각종 축제장에서도 바가지요금이 등장,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본사 취재팀 보도에 따르면 지난주 주말 동안 안동, 경주 등 도내 벚꽃 축제장을 찾은 많은 관광객이 축제장 주변 음식점의 바가지요금에 불만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안동을 찾은 한 관광객은 “축제장 부스 음식점의 형편없는 음식 질과 가격에 모처럼의 상춘 분위기를 망쳤다”고 했다. 또 경주 벚꽃축제장을 찾은 한 관광객은 “벚꽃의 화려한 풍경에 놀랐고, 질 떨어진 음식과 가격에 세 번 놀랐다”고 말했다고 한다.손바닥만한 파전 1개에 1만5천원, 오징어 무침이 2만원, 통돼지 바비큐 한접시가 4만원 수준으로 일반식당보다는 모든 음식이 20∼30%정도 비쌌고, 그나마 내용이 빈약해 “누가 보더라도 바가지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한다. 행사장를 찾은 관광객은 행사철을 맞아 임시로 마련된 장소인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속보이는 얄팍한 상술에 실망했다”고 말할 정도이니 지역마다 대표 축제 이미지에 나쁜 인상을 안겨 준 셈이다. 특히 관광객이 바가지요금에 실망을 느껴 다시 찾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은 비슷한 축제가 전국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열리고 있어 축제장 이미지가 곧 관광으로 이어진다. 축제 내용뿐 아니라 음식 물 관리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진해군항제 바가지 물가를 경험한 사연이 온라인 상으로 퍼지면서 군항제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행사 주관기관인 군항제위원회가 곧바로 사과문을 내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추락한 축제 이미지 개선에 나섰지만 한번 훼손된 이미지가 고쳐지기는 쉽지 않다.코로나 사태로 축소되거나 취소됐던 각지역의 축제가 4년만에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에 맞춰 많은 사람들도 코로나로부터 해방된 기분으로 바깥나들이에 나서고 있다. 축제장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축제공간을 잘 만드는 것은 행사기관의 역할이다.전국 최고 수준의 경북관광을 위해서는 축제 내용뿐 아니라 바가지요금 시비도 잘 챙기는 것이 행정의 기능이다.

2023-04-03

‘신산업혁신’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연구본부장 1인당 GRDP는 Gross Regional Domestic Product의 약자로, 지역 내 총생산에서 인구수를 나눈 값이다. 이는 해당 지역의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이다.그런데 대구의 1인당 GRDP는 1993년 이후 약 30년간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특광역시 중에서는 1987년까지는 부산과 광주의 1인당 GRDP가 대구보다 낮았지만, 1988년 광주에, 그리고 1991년에 부산에 역전되었다. 민선 8기 들어 과거 3대 도시의 번영을 되찾고자 하는 대구는 1인당 GRDP를 상위권으로 끌어 올려야 하며, 이를 위해 고부가가치 신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여야 한다.신산업은 기존 산업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혁신적인 산업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대구가 ‘신산업혁신’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생산성 향상과 함께 기존 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성장 동력의 다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이다.또한, 기존 산업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창의력이 필요한 신산업은 대구의 기술 역량과 경제 인프라 강화를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대구는 1999년부터 중앙 주도의 지역산업육성정책을 추진하여, 신산업(의료, 에너지, ICT 등) 육성의 마중물로 활용하였다. 2017년부터는 물, 미래형자동차, 의료, 로봇, 에너지, ICT융합 등의 5+1 미래 신산업으로 산업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하였다.2022년 민선8기부터는 5대 신산업 전국 최고 도약을 위해 ①UAM(도시항공교통), ②반도체, ③로봇, ④디지털헬스케어, ⑤ABB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5대 신산업의 핵심 키워드로 UAM은 기반구축, 로봇은 서비스로봇, 디지털헬스케어는 선도기업 육성, 반도체는 센서, ABB는 산업생태계 조성 등이다.2021년 기준 대구지역내 신산업 관련 기업수를 파악해본 결과 UAM 1천827개, 반도체 5천636개, 로봇 4천132개, 헬스케어 9천201개, ABB 1만1천591개 로 파악되었다. 기업당 종사자수는 UAM분야가 13명으로 가장 많으며, ABB분야는 2.1명으로 가장 적고 대부분 중소기업이다.따라서 대구 ‘신산업혁신’의 성공은 해당분야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달려있다.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 개발, 비용 절감 및 효율성 향상, 고객 중심의 마케팅 전략,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 인적 자원의 개발과 활용, 그리고 글로벌 시장 진출 등 다양한 경쟁력 강화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세계적인 산업 클러스터 우수사례 지역으로는 스위스 제네바 금융클러스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 밸리, 덴마크 오덴세 로봇 클러스터 등이 있다.대구정책연구원은 이 지역들처럼 대구 중심의 5대 신산업 대표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글로벌혁신특구 등 국가적 지원체계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또한 연구개발, 창업 및 기술이전, 맞춤형 인재양성 등 지역 대학의 역할을 강화하고, 5대 신산업을 주도할 앵커기업과 기관을 유치하는 방안을 연구하여 ‘대구 신산업혁신 전략’을 제안할 예정이다.

2023-04-03

학폭 당하고도 달라질게 없어 신고 안한다?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중 지난해 통계를 보면, 학폭 피해를 당하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답한 초·중·고생 8천370명에게 그 이유를 묻자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라는 응답이 각각 30%, 32.9%, 29%로 높게 나타났다.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학교폭력 피해를 알려도 해결이 안 되거나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신고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이 초·중학생에 비해 높았다. 학폭 신고에 대한 학생들의 기대가 고학년으로 갈수록 낮은 이유는 신고 이후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고 소송전이 벌어지는 등 부작용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게 원인이라고 한다.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포항시내 한 학부모의 글을 본지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보면, 학교폭력을 당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여실히 알 수 있다. 그 학부모는 아이가 매일 학교에서 폭력을 당한다는 소리를 듣고 담임교사에게 두 차례에 걸쳐 전화 통화로 설명했지만, 교사는 ‘증거를 직접 수집하라’, ‘기다려 달라’는 등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속이 상한다는 글을 올렸다. 학폭사태 처분을 놓고 학교 당국이 피해자나 학부모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우리사회가 아직도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학교폭력은 피해 학생과 가족은 물론이고 공동체에 두고두고 상처를 안기는 사회병리현상이다. 교육부는 당초 지난달 내놓기로 했던 학교폭력근절대책 발표를 이달 중순으로 미뤘다.국가수사본부장에서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폭 문제를 둘러싼 청문회(3월 31일)가 정 변호사의 불출석으로 연기된 게 원인인 모양이다. 교육부는 과거에도 학폭사건이 사회이슈가 될 때마다 수습책을 내놓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대책의 핵심은 피해 학생들이 고통을 당하면서도 신고를 꺼리는 현상을 막을 방안을 찾는 것이다. 그러려면 가해자 관리를 더 엄격하게 하고 피해자 보호를 확대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학폭대책의 근본적 방향은 가해자는 엄벌을 받고 피해자는 보호돼야 한다는 것이다.

2023-04-03

‘펀 마케팅’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편의점에 자주 들르는 사람이라면 음료 진열대에서 밀가루 포대나 구두약 디자인의 캔맥주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협업하는 것을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라고 한다. 유명 연예인이 직접 디자인한 의류, ‘포켓몬 빵’처럼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식품과 조합한 상품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구두약과 맥주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조합하는 것이 유행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상품에 의외성을 부여함으로써 기업은 시장의 관심을 끌고, 소비자는 이를 소비하며 즐거움을 얻는다.이처럼 대중의 재미와 관심을 공략하는 마케팅 기법을 ‘펀 마케팅(Fun Marketing)’이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재미를 구매의 기준으로 삼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펀슈머(fun+consumer)’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어떤 상품이 일단 펀슈머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 성공하면 SNS를 통해 그 상품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확산된다. 펀슈머는 단지 재미를 위해 상품의 이미지를 공유할 뿐이지만, 그 과정에서 해당 상품에 대한 호감도 함께 공유되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마케팅 효과를 거두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때 콜라보레이션의 대상이 되는 브랜드 간의 거리가 멀수록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유리할 수 있다. 구두약 디자인의 흑맥주라니, 어떤 맛일지 궁금하지 않은가.그러나 이질적인 브랜드를 조합하는 과정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한 유명 빵집에서 인기 메뉴인 ‘튀김 소보로’ 모양 비누를 출시했다가 아이들이나 노인들이 음식으로 착각하고 먹을 위험이 있다는 항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기획할 때 문화적 리터러시(literacy·이해력) 격차에 대한 배려가 필요함을 잘 보여준다.몇 년 전 시멘트 제조업체가 출시한 ‘○○표 시멘트 백팩’은 시멘트 포대의 디자인과 질감을 실감나게 구현하여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고, 금세 품절되어 온라인에서 정가의 두 배가 넘는 금액으로 거래되기도 하였다. 업체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건설현장 작업자 차림으로 ‘시멘트 백팩’을 매고 있는 이미지를 광고로 내보내고, 이 상품에 ‘내 삶의 무게’라는 이름을 붙였다.이 상품은 ‘펀 마케팅’을 통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받아들여졌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시멘트 백팩’은 동료 시민과 노동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지금도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는 개당 40kg에 달하는 시멘트 포대를 작업자들이 몇 개씩 등에 지고 나르는 일이 드물지 않으며, 이는 대단히 고된 노동이다. 우리가 이용하는 건물들, 시설들 모두 이러한 노동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노동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을 잃어간다는 데에 있다. ‘시멘트 백팩’이라는 상품과 시멘트를 ‘곰방치는(건축자재 등을 나르는)’ 건설노동자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 것인가. 관심경제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상품화해도 괜찮은가?

2023-04-03

베이비부머 은퇴, 보고 있어야만 하나

김규인 수필가 베이비부머가 은퇴한다. 한국의 산업사회를 이끌고, 소비를 주도하던 700만 명이 빠르게 산업 일선에서 물러난다. 경제 호황기를 누린 축복받은 세대이지만 그들의 노년은 밝지만은 않다. 자꾸만 미루어지는 자녀의 결혼을 안타까이 바라보며 늦게까지 뒷바라지해야 하고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 그러기에 자신들을 위한 노후 준비는 뒷전으로 밀린다.총인구의 15%를 차지하는 베이비부머의 산업사회 진입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살아남아야 했기에 다른 나라보다 압축적인 고동 성장을 이루었다. 늘어난 인구로 국력은 커졌고 집을 짓는 건설과 아이를 가르치는 교육도 소비도 늘었다. 그들이 사회에서 차지했던 자리가 컸기에 은퇴로 야기되는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가뜩이나 부족한 산업인력의 공백은 더욱 커지고 사회적인 각종 부담도 늘어난다. 대중교통의 무임승차는 부족한 지방정부의 재정을 압박하고 눈에 띄는 속도로 늘어나는 국민연금의 지급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늘어난다. 돈이 필요한 그들이 가진 부동산이 매물로 나올 것이고 부동산시장의 하락은 우리 경제를 힘들게 할 것이다.저출산과 고령화는 대한민국의 성장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낮은 성장률이 문제인데 이제까지의 어려움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대량은퇴에 따른 대량 실업은 베이비부머의 지갑을 얇게 하고, 소비의 진작을 통해 그나마 이어지던 낮은 성장마저도 어렵게 한다.이런 가운데에도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린다. 젊은 청년들은 보수는 낮고 작업 환경도 좋지 않은 중소기업의 취업을 기피하고 코로나로 인하여 해외에서 근로자들의 유입도 여의찮다. 설사 해외에서 근로자들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베이비부머의 은퇴에 따른 사회 비용의 증가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사회문제 해결을 계속 미룰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여야 한다. 다행히도 의학의 발달로 베이비부머들의 건강 상태는 아직도 산업체에서 일을 할 만하다. 그러하기에 정년을 늘리고 임금은 피크제를 도입하며 각종 연금의 지급 시기는 낮추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더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들을 두고 해외 인력으로 부족한 일자리를 메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다윈의 진화론인 용불용설은 나이 든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쓰지 않는 몸은 퇴화하고 마침내는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병원에 드러누워 치료받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시간을 기다리고 의료비는 온전히 사회의 부담으로 남는다. 이는 그 누구도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우리보다 먼저 사회문제를 겪은 선진 여러 나라의 사례를 참고하여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이 순간에도 은퇴의 시간은 흐르고 산업사회의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가진 고급 인력들이 사회의 뒷전으로 밀려 우리 사회의 부담을 늘리고 있다.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세워둔 기계도 사람도 고장이 나기 쉽고 우리 사회도 그러하다. 시간이 지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

2023-04-03

외교는 완승 아닌 상생이다

김진국 고문 의원 외교를 흔히 ‘외유(外遊)’라고 한다. ‘하는 일 없이 놀러 다닌다’라는 비난이다. 그만큼 부정적이다. 말로는 ‘초당(超黨) 외교’를 외치지만, 외교마저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고 의심한다.사실 의원 외교는 중요하다. 상대국 정권은 수시로 바뀌는데, 집권당만 상대할 수 없다. 정부가 야당을 상대해도 문제가 된다. 야당의 반대를 상대국의 양보를 받아내는 지렛대로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 국회의원들의 ‘외유’는 사진 찍기와 관광지 밖에서는 별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김대중 전 대통령(DJ)은 국제 관계에 특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유신 때 일본과 미국에서 망명 생활했다. 일본 도쿄에서 중앙정보부에 납치됐으나 미국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5·18 이후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미국이 도와 살아났다. 그는 즉자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신군부 시절 그의 비서 한화갑 전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 박종웅 전 의원은 미국 문화원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검열이 심하던 시절 정확한 해외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DJ는 수시로 외국 언론인·정치인을 만나 의견을 나눴다. 취임 이후에도 협상에 앞서 해외 언론·전문가집단을 먼저 설득했다. 그는 자서전에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윤보선 총재의 ‘한일회담 무조건 반대’에 동의하지 않았다. … 국제 사회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미루면 자칫 세계의 흐름을 놓치고, 결국 우리만 고립될 것을 우려했다.”강경파가 한일 협정에 반대해 야당 의원이 모두 사퇴하자고 주장했을 때도 그는 반대했다. 강경파로부터 ‘여당 첩자’, ‘왕사쿠라’라는 비난을 들었다는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미국은 동아시아 안정을 위해 한국·미국·일본의 3국 안전 보장 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북한·중국·소련에 둘러싸인 우리 나라가 일본까지 잠재적 적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야당 강경파는 국제적 고립을 스스로 불러왔다. 세계 여론이나 국가 장래의 이익에 눈을 돌렸어야 했다. …무엇보다 안보와 경제를 생각해서라도 일본을 우방으로 끌어들여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북한은 어제도 ‘핵 공격력’을 위협했다.1998년 DJ는 대통령이 된 뒤 일본으로 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했다. “두나라의 20세기 역사에 박혀 있는 원한과 상처를 21세기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김영삼 정부 때 악화된 대일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야 했다. …강경 대응은 또 다른 강경책을 불러왔다. 그러다 보니 한일 양국의 외교 채널은 끊겨 버렸고, 정부 간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이는 두 나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었다.” 그가 자서전 회고는 최근 상황과 닮았다. 그때 그는 일본 대중문화에 문을 열었다. 문화계가 거세게 반대했지만, 그는 문화 쇄국주의를 거부했다. 그것이 한류와 K컬처의 토양이 됐다. 한일어업협정도 체결했다. 독도를 중간수역에 두어 영토권을 포기했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결단했다.최근 일본에 많이 양보했다고 논란이다. 너무 서두르긴 했다. 국민과 당사자를 설득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렇더라도 야당 선동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국제 관계는 상생이 최선이다. 완승은 언젠가 돌려받는다. 미국처럼 제재 수단이 많은 나라가 아니면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사과는 마음에서 우러나야 진짜다. 강요된 사과를 받은들 후련해지겠나. 그렇다고 오부치 총리를 비롯해 50번이 넘게 한 사과를, 우리는 안 받았다고 기록할 이유가 없다. 돈 몇 푼에 자존심 팔 필요는 더더구나 없다. 우리도 그 정도는 감당할 힘이 있다.갈 길이 멀다. 나라를 빼앗긴 치욕을 바로잡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베트남이 원한이 없어 과거를 묻고 가자고 한 게 아니다.중국이 힘이 없어 일본의 배상을 포기한 것도 아니다. 중국이 6·25 침략, 북한이 남침,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사과할 때까지 외면할 수도 없다. 국제 사회는 냉혹하다. 힘이 말한다. 차가운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게 망국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김진국△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3-04-02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김규종 경북대 교수 책이란 읽을 때마다 달리 다가온다. 스무 살 무렵 읽은 소설이 나이 들어 다시 읽을라치면 전혀 새롭게 읽힌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예외가 아니다. 학부 시절 나는 ‘어린 왕자’와 ‘윤동주 평전’, 시인들의 시집을 끼고 살았다. 그야말로 ‘문청(文靑)’ 흉내를 내고 살았던 게다. 문학적 재능도 강고한 끈기도 없던 나는 시인의 길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러시아 문학 공부 대열에 들어서고 말았다.프랑스어를 공부하지 않았기로 영어판 ‘어린 왕자’를 밑줄 그어가며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전 책방에 ‘어린 왕자’를 주문해 단숨에 읽었다. 모자와 어린 왕자 그림이 웃으며 다가왔다. 아무리 보아도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보아뱀을 연상할 수 없는 나는 천상 상상력을 잃어버린 천덕꾸러기 어른인가 보다. 하기야 숫자를 사랑하고, 숫자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 같은 인간이 순수 동심의 세계를 꿈꾸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리라.‘어린 왕자’를 읽다가 작년 8월에 유명(幽明)을 달리한 이상엽 울산대 철학과 교수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 교수의 맑고 투명한 웃음소리가 필시 어린 왕자의 그것과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후를 생각하지 않는 웃음, 앞과 뒤를 재지 않는 흔쾌하고 여유로우며 당당한 웃음. 약간 높은 어조의 전염성 강한 웃음소리를 가졌던 이 교수가 생각난다. 삶에 허여된 시간의 순차성이 무의미해질 때면 잠시 막막해지곤 한다.많은 이가 ‘어린 왕자’의 기막힌 구절에서 삶의 위로나 작은 등불을 찾았을 것이다. B612 소행성에서 날아온 어린 왕자는 지구별에 오기 전에 여섯 개의 별에 들른다. 거기서 그는 왕과 사업가, 술주정뱅이와 가로등 켜는 사람, 허영심이 강한 남자와 지리학자를 만난다. 권력과 돈, 알코올과 무의미한 노동, 자만과 학식으로 무장한 어른을 만난 왕자는 상심한다. 지리학자가 추천한 지구별에 1년 동안 머물던 왕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비행사다.왜 그들은 여섯 개의 별에서 하나같이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돈과 권력과 노동과 학문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작가는 묻는다. 지금 지구에는 80억 인간이 각자의 소행성에 유폐된 채 홀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막에서는 조금 외롭지만,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야 하는 구절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왕자가 여우와 뱀을 만나서 지혜와 신생(新生)을 얻고 자신이 떠나온 별로 돌아갔음은 다행한 일이다.‘어린 왕자’에 나오는 아름다운 몇 구절을 소개한다. “어른도 처음엔 어린이였어.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단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건 기적이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지.”우리는 자연과 담을 쌓고 21세기 20년대를 살아간다. 오늘날 자연은 어린이들이 ‘체험’하는 대상으로 전락했고, 밤하늘의 별과 달은 망각(忘却)된 지 오래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만연한 사회지만 별을 헤아리고 별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2023-04-02

1천원의 가치

우정구 논설위원 포항 한동대가 운영하는 ‘한동 만나’는 3천원짜리 식사를 100원으로 먹을 수 있게 고안한 학식 프로그램이다. 한동대 학생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거르는 학생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한 학부모가 기부금을 내놓으면서 시작한 사업이다. 지금은 학생, 교수, 동창회 등 한동대 공동체가 십시일반 동참하면서 어려운 이들의 식사를 후원한다.이 식사 프로그램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아무나 이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꼭 필요한 학생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서로가 배려하고 있다. 가계 곤란을 겪는 이도 다른 이를 위해 매번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는 ‘천원의 행복’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총 객석 중 30%를 문화예술 향유가 어려운 이에게 나눠주고 있다. 17년째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누적 공연관람객이 36만여명이다. 영천시와 경주시가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사는 주민을 위해 읍면동 소재지까지 1천원이면 이동할 수 있도록 한 행복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영천시는 임산부가 병원에 갈 때도 택시비 1천원만 내고 다녀오도록 정책 배려를 한다.농림식품부 등이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천원짜리 아침식사 사업을 시작하자 학생들 반응이 짱이다. 학생의 건강한 식습관을 기르고 쌀소비를 증대하는 한편 고물가시대 학생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정책인데, 인기가 폭발적이다.1천원짜리 하나로 뭐하나 할 게 없는 요즘이다. 분식점 가도 김밥 한줄에 1천500원은 주어야 하고, 편의점서도 1천원으로 끼니를 떼울만 한 게 없다. 1천원의 가치가 초라하기 그지없으나 우리사회가 힘을 모으면 1천원도 큰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우정구(논설위원)

2023-04-02

하빈면이 새로운 유통 중심도시로 탄생하길

대구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이전 예정지가 달성군 하빈면 대평리 일원으로 결정됐다. 대구시는 2031년까지 이곳 27만8천㎡ 부지에 4천억원을 투자해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21세기형 첨단도매시장으로 건립할 계획이다.대구농수산물 도매시장은 1988년 개장해 거래 규모가 연간 1조1천억원에 이르는 한강 이남 최대 도매시장이다. 오랜 전통과 함께 지역 농수산물 유통의 중추적 역할을 한 곳이다. 그러나 시설 노후화에 따른 화재와 물류 및 주차공간 부족, 교통 불편 등으로 여러 차례 이전이 거론됐지만 현 자리에서 확장 내지 재건축 의견이 맞서 이전 문제가 매듭을 짓지 못하고 머물러왔다. 지역의 오랜 숙원이 늦었지만 해결 길을 찾았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는 반대쪽 의견을 이해시키고 새로 건립할 도매시장이 전국 최고 도매시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대구시 발표에 따르면 시는 첨단 기능의 도매시장 건립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온라인거래소 개설, 전자송품장, 빅데이터 유통정보시스템 등 스마트 물류시설을 구축하고, 집배송장 및 전처리시설의 고도화 등을 이룬다는 것이다.4차산업 혁명시대에 걸맞는 최첨단 도매시장으로의 건립은 바람직하다. 국제공항 등 대구의 글로벌화 추세와 도매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기능의 첨단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 젊은이가 쉽게 찾고 이용할 수 있도록 젊은 이미지의 도매시장으로 변신하는 노력도 병행했으면 한다. 신공항이 개설되면 관광객 등이 찾아와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접근성 확보도 서둘러야 한다. 대구시와 달성군은 인근 군도의 확장과 대구외곽순환도로와의 연결성 등 교통계획도 검토하고 있다하나 좀더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겠다. 또 재정적 문제 해결을 위해 국비 지원에도 적극 노력해야 한다. 이전 예정지의 투기 차단과 매천동 도매시장 이전 후적지 개발사업도 대구시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오랜 숙원인 농수산물 도매시장 이전이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하빈면이 농수축산물 유통산업의 중심도시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

2023-04-02

‘서문시장은 문화유산’… 대통령 말에 공감

윤석열 대통령이 그저께(1일) 김건희 여사와 함께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장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윤 대통령 부부는 서문시장 방문 전에는 대구 삼성라이온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을 찾아 시구했다. 대통령실은 “민생 행보로 영·호남을 연달아 방문하는 일정이 잡혀 대구에서 시구하게 됐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경남 통영과 전남 순천을 잇달아 찾았다.대표적인 민생현장인 서문시장은 윤 대통령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때인 2021년 7월과 10월, 대선 하루 전날인 지난해 3월,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4월, 취임 후인 지난해 8월에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지난 1월 12일에는 김 여사만 홀로 서문시장을 찾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장에서도 “선거일 바로 전날 마지막 유세에서 서문시장이 보내준 뜨거운 지지와 함성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머물러 있지만, 대구시민들은 대통령 부부를 열렬히 환영했다. 서문시장 입구에서부터 몰린 인파로 인해 윤 대통령이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윤 대통령은 기념식 축사에서 서문시장이 100년 전인 1923년 대구 물산장려운동으로 시작된 후 6·25 전쟁과 2·28 민주운동, 섬유산업의 성장 등 대구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서문시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하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이 최근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전통시장을 문화상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밝힌 것처럼, 서문시장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지역 경제를 지탱해온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서문시장이 앞으로 전통시장 기능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발전해 전 세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 서문시장 최대 현안인 4지구 재건축과 주차장 확장 사업이 빠르게 추진돼야 한다. 서문시장 4지구 상인들은 지난 2016년 대화재 이후 대체상가인 ‘베네시움’에서 8년째 피난민처럼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2023-04-02

지속가능한 미래 신산업 도시 포항의 미래를 위해

이강덕 포항시장. 혁신적인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산업의 육성이 지속 가능한 미래 먹거리 창출과 국가 경쟁력 향상, 경제 발전의 핵심 열쇠로 자리 잡고 있다.나아가 혁신 기술은 글로벌 기술패권 전쟁에서 ‘기술 주권(主權)’은 물론 ‘국가 안보’의 원천으로, 국가 전략 기술 개발과 확보에 주요국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우리 정부도 국가 차원의 전략산업 육성에 총력을 다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을 발표하며 반도체, 이차전지, 첨단 바이오, 수소, 첨단로봇·제조 등 ‘12대 전략기술’ 분야에 향후 5년간 25조 원을 투자키로 하는 등 초격차·초일류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포항시는 이러한 정부의 신산업·혁신 기술 육성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선제적으로 깊이 인식했다. 정부 정책 방향성에 부합하며 미래 먹거리로 이차전지·바이오헬스·수소 등 혁신 신산업 육성과 연구 개발 인프라 구축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먼저, ‘미래 산업의 쌀’로 불리며 글로벌 기술 패권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이차전지 분야에서 포항은 최적의 산업 생태계와 인프라로 ‘K-배터리 일등도시’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이차전지종합관리센터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인프라와 함께 에코프로, 포스코퓨처엠 등 글로벌 이차전지 선도기업 집적화로 소재 양산 밸류체인을 완성해가며 대한민국 이차전지 산업의 글로벌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특히, ‘배터리의 심장’으로 불리며 가장 중요한 핵심소재로 꼽히는 양극재의 생산을 2030년까지 100만t까지 늘려 글로벌 생산기지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차원의 지원을 통한 초격차 경쟁력 확보와 혁신기업 유치의 기폭제가 될 ‘이차전지 특화단지’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포항시는 또 다른 국가 핵심 전략산업인 바이오헬스의 혁신적인 육성과 발전의 최적지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적 연구시설인 3·4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세포막단백질연구소(세계 3번째 설립), 국내 최초 식물백신 상용화 시설인 ‘그린백신실증지원센터’ 등 우수한 R&D인프라를 폭넓게 구축했다.축적된 토대 위에 ‘그린바이오 벤처캠퍼스’, ‘해양바이오메디컬 실증연구센터’ 등 포항의 특성과 장점을 살린 바이오 관련 정부사업에 연이어 선정되고 기업 유치가 이어지면서 ‘포항형 바이오헬스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여기에 ‘마지막 퍼즐’로 의료를 전공한 기반으로 신약 개발 등 연구를 수행할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설립에 지역의 역량을 함께 모으고 있다. 지방도시가 주도하는 바이오헬스 강국 도약의 초석이 될 연구중심 의대를 반드시 설립해 ‘제철보국’에 이어 ‘바이오보국’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여기에 친환경 미래 에너지원인 ‘수소 산업’의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경북 지자체 중 최초로 선정된 국토교통부의 ‘수소도시 조성 사업’과 함께 산업부의 ‘수소연료전지 발전 클러스터’를 사업 선정 추진을 양대 축으로 삼아 도시 전반에 수소에너지 도입과 수소연료전지 산업 육성 기반 조성에 나서는 등 수소경제를 선도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포항은 국내 유일 로봇분야 전문생산기술연구소인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을 비롯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수중로봇복합실증센터 등 로봇산업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를 갖추고 강소 로봇기업 ‘뉴로메카’가 수도권에서 포항으로 이전한 데 이어 로봇관련 국가 공모사업에 선정되는 등 차세대 K-로봇산업을 선도할 발판을 마련해가고 있다.이와 함께 포항 과학관 건립과 경북 디지털 혁신거점 조성, 이차전지 인력양성 플랫폼 등 다양한 R&D 인프라 구축과 함께 이를 이끌 인재 양성 등 신산업의 선순환 성장 체계를 만들어 갈 방침이다.기술 패권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대전환 시기에 추격을 넘어 초격차를 만드는 과학·신산업 혁신 기술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포항시가 이러한 트렌드를 선도하는 ‘K-신산업 심장 도시’이자 ‘혁신적인 첨단과학 도시’로서 ‘제2의 영일만의 기적’을 실현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수 있도록 시민, 구성원들과 함께 힘을 모으겠다.

2023-04-02

소멸하지 않는 봄, BTS 정류장

이희정 시인 바다로 가는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모래가 둔덕 만들고 파도가 길을 부른주문진 향호해변에 BTS정류장* 푸르다도착시간, 출발시간은 애초부터 없었다발길 닿는 대로, 성근 마음 이르는 대로젊음의 스펙트럼이 물때처럼 촘촘한 곳수수께끼 풀어놓듯 노래하며 신화 쓰듯당당히 자신을 향해 쉼표 찍는 봄날 오후후렴구 밀물에 닿자 바다정류장 만원이다―박희정, ‘BTS 정류장’ 전문*강릉시 주문진읍 향호해변에 있는 방탄소년단 ‘봄날’ 앨범 촬영지.우리나라에서 집단이 세계적인 ‘고유명사’가 된 예로 BTS(방탄소년단·防彈少年團·Bulletproof Boy Scouts)만큼 엄청난 족적을 남긴 이들이 또 있을까. 몇 해 전 ‘타임지’에선 그들이 세운 “최초, 최고, 최단기간의 기록들은 세상에 대한 위로이자 희망”이라고 올해의 연예인으로 선정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여태껏 세계의 미의 기준은 서양의 기준이었고 팝 시장의 중심이 미국이었다면 이것은 방탄소년단 이전의 이야기일 것이다.박희정 시인이 그리는 대상은 자신이 다녀온 BTS의 2017년 발표 앨범, ‘봄날’ 뮤직비디오 촬영지인 주문진 향호해변이다. 시적 화자는 첫 행에서 “바다로 가는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며 단정적인 프레임을 내건다.뮤직 앨범 ‘봄날’은 편지 형식의 노랫말로 복수(複數)의 메타포를 거느리고 있다. 상징의 귀재들이라고 알려진 이들의 노래에는 몇 가지 은유적 코드가 숨어 있다. 화자는 “모래가 둔덕 만들고, 파도가 길을 부른” 그곳을 발길 따라 성근 마음에 기대어 왔다고 고백한다. “푸르다”, “젊음의 스펙트럼이 물때처럼 촘촘한 곳”이 상징하는 것은 청춘이고 희망이고 잊어서는 안 되는 특정한 시공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어 동일한 대상에 대한 묘사지만 “수수께끼 풀어 놓듯 노래하며 신화 쓰듯”으로 이 시의 중심에 핫플(명소) BTS의 상징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이 땅의 모든 청춘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바다가 보여 주는 것은 시간에 따라 이루어지는 무엇이 아니라 흐르는 움직임 자체다. “도착시간, 출발시간은 애초부터 없었”으므로 ‘공간의 이동은 시간의 이동’이라는 명제, 이는 예술사적으로 ‘동시대적인 명제’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당당히 자신을 향해 쉼표 찍는 봄날 오후”의 시간은 노매드(nomad)로서의 화자 자신을 위무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BTS의 ‘봄날’ 앨범은 특별한 사건(세월호 침몰)에 대한 기억을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메타포를 환기하고 있어 청춘, 그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그리움의 연서로 품어도 무방하다. 뮤직비디오에선 그날의 상징을 9시 35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통해 암시했다. 이 순간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는 시원(始原)처럼 화자는 봄날의 “후렴구 밀물에 닿자 바다 정류장은 만원이다”라며 그리움의 현상학을 보여 주며 맺는다.언제나 시계의 방향은 후진이란 없다. 마치 자신의 뒷모습을 스스로 볼 수 없어 반사경으로 보는 것처럼 우리에겐 지난 시간을 비춰줄 지난 시간의 기억이 필요한지 모른다. 비록 그들의 봄은 중단되었지만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지상에 생명으로 온 모든 것, 하물며 바다를 다녀간 새들조차 소멸에 저항하듯 자신의 생을 기록하곤 한다. 모래사장에 흐릿하게 찍힌 새 발자국이 쉬이 잊히지 않는 까닭이다.후렴구 “보고싶다, 보고싶다,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 그들은 고통과 냉소가 지나온 시기를 잊지 않겠다며 자신에게 주문 걸듯 노래한다.시인의 “주문진 향호해변에 BTS 정류장 푸르다”에 방점을 찍으며 그들을 불러 본다.

2023-04-02

조직의 행동변화와 균형있는 혁신

정상철포스코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우리 마음 속에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있다.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 나쁜 늑대가 착한 늑대보다 힘도 세고 뚝심도 있는 것 같아 이길 것으로 보는 경향이 크다. 먹이 주는 쪽이 이긴다가 우솝이야기에 나오는 답이다. Top(톱)이 어느 쪽에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힘의 균형이 흐르고 조직 운영에 영향을 준다. 조직 내에서 사람의 행동은 어떻게 결정될까? 일반적으로 사람의 행동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나 미국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은 조직 내에서 ‘개인과 환경의 상호 작용’이라 정의 한다. 조직의 변화는 ‘해동-혼란-재동결’단계로 변화해가는 것이다.제1단계 ‘해동’은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바꿔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변화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원래 자신의 내면에 확립된 관점이나 사고를 바꾸는 데 저항감을 느낀다. ‘왜 지금까지 하던 방식으로는 안 되는 걸까?’‘새로운 방식으로 바꾸면 무엇이 달라질까?’라는 두 가지 물음에 대해 설득이나 공감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제2단계 ‘혼란’에서는 예전에 갖고 있던 견해와 사고, 또는 제도와 프로세스의 새로운 변화되는 현실에 혼란과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역시 예전 방식이 좋았어”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 단계를 잘 극복하려면 변화를 주도하는 측에서 구성원들을 실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분히 지원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제3단계 ‘재동결’은 새로운 관점과 사고가 결실을 이뤄 새로운 시스템에 적용하는 단계로,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느끼게 되어 변화를 받아들이고 유지하려는 항상성 감각이 되살아난다. 이 단계에서는 자리를 잡기 시작한 새로운 관점과 사고가 실제로 성과를 일궈 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어떤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이 정착되어 있는 조직은 ‘해동-혼란-재동결’의 과정을 거쳐 변화한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먼저 해야 할 일은 지금까지의 일하는 방식과 이별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수많은 조직의 혁신이 어중간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좌절되고 마는 것은 계층별 생각하는 차이에 있다. 경영자, 간부, 실무자를 보면 환경변화를 바라보는 안목이 경영자는 10년 앞을 내다보지만 간부는 5년, 실무자는 1년 후의 일만 내다볼 뿐이다. 경영자는 변혁의 필요성을 늘 의식하겠지만 눈앞의 일에 매진하는 간부나 현장 실무자는 방향과 방식을 바꾸라는 것에 충분한 해동시간을 갖지 못한 채 혼란기로 돌입하게 되어 혁신의 큰 빙점이 생기는 것이다.최근 기업은 중대재해 3법이 발효되면서 안전에 집중하다 보니 제조업의 특성상 설비관리와 균형을이루지 못해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경영여건과 대내외 변화에 맞춰 혁신 중장기 플랜을 수립하는 것에는 조직내 사람의 행동3단계의 변화를 이해하고 한쪽에 먹이 주는 편향적 조직 운영이 아니라 혁신의 진화 원리에 맞게 누구나 공감하는 방향과 구조, 균형 있는 혁신 운영체계를 정립하여 사랑받는 혁신활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04-02

쓸수록 또렷해진다

유영희 작가 그동안 주먹구구로 살아온 것을 반성하며 몇 달 전부터 가계부를 착실히 쓰고 있다. 그런데 앱에 기록해서 그런지 갑자기 유튜브에서 소비 생활 관련 영상이 뜨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기 계발을 위한 투자는 아끼지 말고 해야 한다는 영상이 뜨더니, 요즘에는 무조건 아끼기부터 해야 한다는 영상이 뜬다.그러나 어디까지가 자기 계발인지 경계를 정하기가 어려워 투자인지 과소비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고, 무조건 아끼다 보면 궁상맞거나 인색하다는 소리 듣기 십상인 데다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소비 잘하기가 쉽지 않다. 얼핏 보면 두 가지 주장이 달라 보이지만, 자기 계발을 위한 투자든 알뜰 소비든 모두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래서 조회수가 엄청난가 보다.그렇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까?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는 농부 빠홈이 땅 욕심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가 나온다. 빠홈은 바쉬끼르라는 곳에 아주 싸고 좋은 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간다. 바쉬끼르의 이장이 하루치 걸은 땅값이 1천 루블뿐이라고 하자, 빠홈은 무리하게 걸어 돌아오자마자 쓰러져 죽는다.그러나 욕망 자체를 부정적으로 그린 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빠홈은 가난하기는 해도 일확천금에는 관심 없는 소박한 사람이었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지주에게 수확을 다 빼앗기는 러시아 농노가 땅 욕심 좀 냈기로서니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니 오히려 빠홈에게 동정이 갈 지경인데다, 설사 빠홈이 많은 땅을 탐냈다고 해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어떤 이는 적은 땅으로 만족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많은 땅을 원할 수도, 필요할 수도 있다.빠홈의 문제는 오직 하나, 자기가 하루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것뿐이다. 다만, 그 땅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로 걸어야 하는지, 중간에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데 가계부를 쓰다 보니, 내게 필요한 땅은 얼마만큼인지, 어떤 속도로 걸어야 하는지,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보인다.어디 가계부뿐이야? 사실은 모든 쓰기가 다 그렇다. 가계부 쓰듯이 그저 있는 그대로 쓰면 보이는 것이 많다. 기록학 전문가 김익한 교수가 알려주는 글쓰기 방법 하나는, 들은 것, 본 것, 맛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을 있는 그대로 쓰라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좋은 방법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반성하는 글쓰기는 죄책감만 늘고 자기 비하에 빠지니, 그것만 경계하면 된다.삶이 팍팍할수록 욕심만 크면 불행해진다. 나에게 맞게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내 삶의 지향과 규모를 잘 알기 위해서는 가계부든 일기든 10분 쓰기든 무엇이든 쓰는 것이 좋다.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로 10분만 글을 써도 문제가 보이고 답이 보인다. 쓸수록 삶이 또렷해진다.

2023-04-02

ADHD, 일부 반사회성 문제로 이어질 수도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요즈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오는 초등학생들이 늘고 있다.이들 중 상당수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이하 ADHD)를 가진 경우다.ADHD는 말 그대로 주의력이 떨어져 산만하고 행동이 부산하며 충동적인 것이 특징이다.아동이 뭘 하는지 늘 바쁘게 보이고 수업시간 등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할 상황에도 유난히 혼자서 딴 짓을 하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잠깐에도 손발이나 몸을 꼼짝거린다.식사도 한자리에서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치 모터를 달아놓은 아이처럼 늘 부산하다.준비물을 잊어버리고 소지품을 잃어버린다. 아무 생각 없이 무슨 일이든 하는 충동성을 가져, 자기 차례나 규칙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대답은 질문이 끝나기 전에 불쑥 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괴롭히기도 한다.증상은 어릴 때부터 나타나지만, 집안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낼 때면 무심코 지나치다가, 단체 생활과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문제는 뚜렷해진다.아마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어수선해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도 있을 것이다.ADHD를 가진 아동은 지능이 나쁘지 않더라도 주의집중이 안돼 공부를 못하며, 과잉행동으로 사고(事故)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충동적 행동으로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을 귀찮게 해 소위 ‘왕따’를 당하기 쉽다.또 부모님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기 쉽다. 따라서 적절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이로 인해 학습장애, 사고(事故)의 증가, 대인관계 악화, 우울증, 비행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우리나라의 경우 학령기 아동의 6.5% 정도가 ADHD로 추정되며,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3∼4배 많다.이 장애는 아동의 학습능력과 인격발달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에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그러나 부모님의 ADHD에 대한 잘못된 개념으로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흔히 병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애들이 다 그렇다’, ‘정신만 차리면 집중할 수 있다’ 등으로 생각한다.부모님이 알아야 할 것은 ADHD를 가진 아이들의 증상은 심리적이라기보다는 뇌의 주의·집중력을 담당하는 전두엽 부위의 기능 이상에 기인하는 의학적 병이라는 사실이다.ADHD를 가진 아이를 단지 ‘말 안 듣는 아이’, ‘딴청피는 아이’, ‘종잡을 수 없는 아이’, ‘게으른 아이’, ‘사고뭉치’라고 생각하고 “정신만 차리면 집중할 수 있다”고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이는 다리에 골절을 입은 사람이 있을 때 “정신을 차려서 걸으면 돼”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리에 골절을 입었는데 제대로 걸을 수 있나? 제대로 치료해서 골절이 치료돼야만 걸을 수 있다.ADHD로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오는 아동들이 과거에 비해 늘고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의 ADHD 치료율은 여전히 낮은 10%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적절히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 학습능력만 저해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ADHD 아동의 약 50%에서 감정조절실패·충동성 문제가 동반되며, 청소년기에 이르러서는 25~33%에서 적대적반항장애·품행장애(비행행동)로 발전하며, 성인이 돼 약 18%가 반사회성 문제(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반사회적성격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ADHD 증상이 있는 아동의 경우 도파민계·노르에피네프린계 약물치료를 하면 전두엽의 뇌기능을 개선해 주의·집중력과 과잉행동은 약 80% 정도에서 호전이 되지만, 감정조절실패·충동성 문제는 50%에서만 호전된다.아동기의 감정조절실패·충동성 문제가 청소년의 적대적반항장애·품행장애(비행행동)로 나타나 탈선이나 범죄로, 성인의 반사회성 문제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ADHD의 빠른 진단과 전문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이는 아동의 의학적 문제를 넘어 인생문제이기도 하고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ADHD를 치료함에 있어 보호자에게 희망을 전달해야 하나, 반사회성 발전 가능성의 문제만큼은 민감하지만, 지나친 낙관론을 배제하고 효율적인 치료전략을 제시해주어야 한다.전형적인 약물치료로 호전되지 않는 감정조절·충동성 문제는 필요한 경우 그에 적절한 추가의 약물처방과 함께 어떻게 훈육의 틀을 잡으면 좋을지 문제행동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일관된 훈육 태도를 제공하는 방법 등 교육적 행동치료에 대해 반드시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함께 고민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자녀가 ADHD를 피해갈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당신의 소중한 자녀에게 ADHD가 왔다면 당당히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으라. 자녀의 소중한 건강과 미래가 걸린 일이다.

2023-04-02

춘맹(春盲)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봄바람은 한 점도 낭비하지 마라. 어느 저녁자리에서 들은 말이다. 죽은 것 같은 가지에 새싹이 피어나 파릇파릇 다시 시작하는 걸 보면 바람이 날라 오는 봄기운은 낭비하고 싶지 않다.그래서 고영민시인은 ‘봄이 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고 안도현 시인은 봄날 나무에 귀 기울이면 ‘그렁그렁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고 했는지도 모른다.지금도 휴대폰에는 많은 등록된 친구들이 봄 사진을 올리고 있다. 피는 꽃 옆에서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다들 ‘좋아요’를 누르고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투의 댓글을 단다.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 하는가”라는 책을 보고 난 뒤로는 ‘좋아요’를 누를 수가 없다.우리가 봄을 퍼 나르는 디지털세계는 우리가 물건을 사고팔고, 게임도 즐기고, 은근히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곳이다.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우리는 물질을 소모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방에 불을 켜둘 때 전력이 소모되는 것을 알면서도 디지털 세계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이를테면 종이책을 사면은 나무가 베어져야 하지만 e-북을 이용하면 가격도 싸고 물질낭비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정보통신망 전체가 소비하는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 어느 만큼의 물이 소비되는지 해저케이블은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지금 휴대폰을 충전하는 이 전기는 화력인가, 원자력인가, 재생에너지인가와 같은 질문을 하며 충전을 하지 않는다.휴대폰을 만드는 금속 때문에 서식처를 잃어가는 고릴라는 더욱 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 휴대폰 때문에 고릴라의 서식처가 사라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의 나도 마찬가지다.“‘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 하는가”를 쓰기 위해 기자이자 피디인 저자 기욤 피트롱은 스마트폰을 작동시키는 금속, 지구상 가장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들, 해저테이블 가설현장 등을 누볐다고 한다.그는 단순히 ‘좋아요’를 한 번 보내기 위해서 지금까지 인간이 세운 것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거대한 규모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엄청난 하부구조를 설치하고 가동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디지털로 인한 오염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기욤 피트롱이 빠르게 확산하는 디지털 오염 속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먹어대는 거대한 설비들 속에서 이리저리 이송되고 저장되며 처리되는 그 데이터들은 새로운 디지털 컨텐츠로 만들어지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터페이스가 필요하게 된다….세계 디지털산업은 너무도 많은 물과 자재,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이것이 남기는 생태발자국은 프랑스나 영국 같은 나라가 남긴 생태발자국의 세배에 이른다.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전 세계 전기생산량의 10%를 끌어다 쓰며,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의 총 4%를 차지하는데 이는 세계 민간항공업 분야의 배출량의 두 배라고 기술했다. 기욤 피트롱의 이 말도 불편한데 해마다 그 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석탄, 석유, 희귀금속. 인류는 이런 에너지의 전환을 통해 가공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지금 디지털시대의 최고 이용자는 그레타 툰베리로 대표되는 ‘기후세대’ 들이다.세계의 기후혼란에 맞선 운동은 SNS상에서 대부분 이뤄진다. 대기업들은 녹색디지털을 홍보하며 자신들이 사용하는 건물의 에너지는 모두 재생에너지, 탄소제로의 에너지임을 강조한다.하지만 디지털세계는 대부분 지구를 구하거나 기후혼란을 타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소식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도록 퍼 날라야 많은 사람들이 알 텐데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우리 나라의 샹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디지털 세계의 대표적인 수단인 스마트폰 보급률, 속도 등에서 세계 최강국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퓨 리서치(Pew Research)가 세계 27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 2019년을 기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으로 조사됐다.생생한 생명의 기운을 만끽하는 봄날. 그 환한 기운을 나누기 위해서 내가 올린 글과 사진에 옆자리의 동료가 ‘좋아요’를 누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동원되고 소모되고 있는가.지구의 봄을 위해서 ‘좋아요’가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모른 채로 우리는 이 봄을 퍼 나르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비극이요, 얻어도 비극인 세상이 되었다. 컴맹, 생태맹을 너머 우리 모두는 지구의 봄을 보지 못하는 춘맹(春盲)이 되었다.

2023-04-02

검찰공화국, 의사 나라

홍석봉 대구지사장 #1. “클린스만? 의외네 어디 지검장 출신이 올 줄 알았더니.” 축구협회가 클린스만 감독을 국가대표팀 새 사령탑에 앉히자 SNS에서 뜬 비아냥 댓글이다.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시중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윤석열 정부를 두고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민주당은 “만사검통, 검찰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검찰 공화국으로 만들 생각인가”라고 비난한다. 검찰 출신 인사 편중을 비판한 것이다. 정부는 ‘능력과 전문성’을 내세워 인사를 정당화했지만 자격과 자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참여연대는 윤석열 정부에 장관급 4명을 포함, 전·현직 검찰공무원 136명이 근무한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실 핵심 요직은 물론 금융감독원장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도 검사 출신이다.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역대 정부에서 특정 집단이나 인맥 등이 주목받지 않은 경우는 없다. 문재인 정부 때도 다수의 시민단체 출신 인사로 입방아에 올랐다.대통령과 뜻이 같은 이들이 주변에 있으면 조직은 잘 돌아갈런지 모른다. 하지만 경직화 되기 십상이다. 정책의 다양성도 결여될 수 있다. 검사들은 사법 정의를 구현하는 기술과 역량은 탁월하다. 업무 역량이 뛰어난 이들도 많다. 검찰 조직문화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다. 대화, 타협 등 민주주의적 가치와는 거리가 있다. 인재풀이 좁은 대통령이 주변 사람을 쓰다 보니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2. 대치동에서 수능은 ‘메디컬(medical) 고시’로 불린다.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들에게 대학은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와 서울대 나머지 학과로 나뉜다. 의치한약수는 전문직으로 고소득이 보장된다. 고용안정성과 일자리 측면에서 이런 순서로 꼽는다.의대가 성공 보증수표로 인식되면서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몰린다. 이미 대학에 합격하거나 졸업한 인재들까지 앞다퉈 달려간다. 재수는 필수고, 삼·사수를 해서라도 의대에 가려고 한다.최상위권 수험생의 80%가 의약학 계열 진학을 꿈꾼다. 서울 학원가는 초등생부터 의대 진학반이 개설돼 있다. 서울대 자연계는 ‘의대생 양성소’라는 푸념이 나온다.과학 인재 양성을 위해 국가가 학비를 지원하는 과학기술원과 영재·과학고의 이공계 인재들까지 의대행에 줄섰다. 의대 진학을 위해서라면 합격한 대학도 쉽게 포기한다.불경기에 믿을 것은 의사 자격증 뿐이고, 의약학 계열 졸업만이 ‘성공 보증수표’라고 믿는다. 고소득과 정년이 없는 의약학 계열 전문직 선호현상은 신드롬 수준이다. 자연계 우수생이 의대로 쏠리면서 과학인재 양성은 물건너가는 형국이다. 국가 경제를 떠받드는 반도체 산업은 인재난이 심화되고 있다. 계약학과까지 만들었지만 등록 포기가 쏟아진다. ‘의대 블랙홀’이 대입 제도 마저 왜곡시키고 있다.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검사가 나라를 다스리고 교육은 의사가 지상목표인 나라가 됐다. 최종 종착지가 검사와 의사다. 편식은 위험한데도 말이다.

2023-03-30

기로에 선 저출산정책

우정구 논설위원 지난 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대책회의가 7년만에 대통령 주재로 열리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특별히 주목을 끈 이유는 두가지다. 먼저 윤석열 정부가 내놓을 저출산 대책에 새로운 묘안이 나올지에 대한 관심이 하나요. 또 다른 하나는 과거 15년동안 정부가 280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예산을 붇고도 합계출산율은 거꾸로 떨어졌다는 사실이다.작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 꼴찌다. 2005년 1.08명이래 줄곧 내리막길이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로 손꼽힌다.저출산 대책회의를 주재한 윤 대통령은 “육아 문제는 국가의 기본책무”라며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알다시피 저출산의 문제는 육아, 주택, 취업, 교육, 집값, 균형발전 등 매우 복잡한 문제와 얽혀있다. 어느 하나 해결된다고 풀릴 문제도 아니다.전문가들은 천문학적 예산을 쓰고도 실패한 것은 단편적이고 단기적 정책을 내놓았던 탓으로 지적한다. 새 대통령마다 임기에 집착한 땜질식 처방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15년 동안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무려 200개가 넘으니 정부 정책의 방향이 없다해도 과언은 아니다.얼마 전 여당이 30살 이전에 자녀 3명 이상을 둔 남성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안을 꺼내다가 호된 질책을 받았다. 아무리 아이디어 차원이라 하지만 이런 내용이 정책으로 거론되면 정부 신뢰는 제로가 된다.학자들은 앞으로 10년을 초저출산으로 나라가 인구소멸로 가느냐 아니면 이를 극복해 강국으로 가느냐하는 갈림길에 있다고 말한다. 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국가의 흥망을 가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혜를 짜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3-03-30

장사상륙작전 떠올리는 ‘포항 한미연합훈련’

한미 해군·해병대가 지난 29일 포항시 송라면 화진리 일대 해상과 공중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 상륙훈련을 했다. 이날 훈련은 지난 20일 시작된 쌍룡훈련의 핵심과정인 ‘결정적 행동’ 단계였다. 결정적 행동 단계란 대규모 상륙군이 일제히 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이며, 쌍룡훈련의 하이라이트다. 훈련이 실시된 화진리는 6·25 전쟁 당시 학도병이 주축이 된 한국군이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으며 상륙작전을 감행했던 장사해수욕장(영덕군 남정면) 바로 아래에 있다. 한미연합군이 이번에 포항에서 대대적인 상륙작전 훈련을 한 것은 포항·영덕 일대가 유사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요충지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이날 훈련에는 미 본토에 주둔하는 해병 제1원정군이 7년만에 참가해 한국 해병대와 손발을 맞췄다. 그동안 미국 측은 한미 해병대훈련에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제3원정군을 파견했다. 한미 해병대 상륙작전이 사단급으로 펼쳐진 것은 5년 만이다. 훈련은 김승겸 합참의장이 주관했고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안병석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등 군주요 지휘관이 참관했다. 훈련에는 사단급 규모 상륙군과 대형수송·상륙함, 항공기 70여 대, 상륙돌격장갑차 50여 대도 동원됐다. 실전(實戰)처럼 훈련한 것이다.잘 알다시피, 장사상륙작전은 6·25 전쟁 때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9월 15일) 하루 전에 북한군의 전력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감행한 전투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토대를 마련해 한국 전쟁사에 영원히 남을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참전병 772명 중 600여 명이 어린 학도병들로 구성됐으며, 139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비극적 전투였다. 한미 연합군이 이번에 포항에서 결정적 행동 단계 훈련을 대규모로 한 것은 경북 동해안 일대를 주요 작전지역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미 연합군은 앞으로 이번과 같은 핵심훈련을 통해 유사시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즉각 응징할 수 있는 방위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2023-03-30

공공분야 디지털 대전환, 경북이 앞장서길

경북도가 지난 29일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디지털 경북 구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디지털 전문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공공부문 디지털 전환의 속도와 영역을 넓히고 4차 산업시대에 걸맞은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의도다.지금 우리의 생활은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어디서든 실시간 얻고, 필요한 상품은 클릭 한번으로 집앞 현관까지 배달시킨다. 반품은 물론 결제까지도 간단하다. 디지털 문화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우리 생활을 바꿀지 알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디지털 문화에 맞는 행정서비스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시대 흐름이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가 ‘디지털플랫폼 정부구현’이다. 작년 디지털플랫폼 정부위원회도 출범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디지털 전환에 나서면 국민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특히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공공서비스 분야의 디지털 전환은 국민편익 차원에서도 반드시 실현돼야 할 과제다.경북도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협약을 통해 공동 노력하기로 한 내용을 보면 공공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왜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공공메신저의 표준화 모델 개발 △AI, 클라우드 기반의 지역발전 사업 발굴과 교육 △스마트시티 기술공유를 통한 지역문제 해결 솔루션 개발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지적 자산을 연계한 문화관광 분야 홍보콘텐츠 개발 등 하나같이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경북도는 ‘메타버스 수도 경북’을 선포하고 메타버스과학국을 신설하는 등 그동안 행정에 디지털을 접목하려는 노력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 농촌지역이 많아 디지털 문화에 취약할 수 있는 경북으로선 경북도의 이런 투자가 큰 힘이 된다.민간기업과의 협약이 경북도 공공분야 디지털 대전환의 획기적 계기가 되길 바라며 경북도도 이에 맞는 투자와 관심을 놓지말아야 한다. 학계는 대구와 경북이 사이버 세상에서 약자라는 평가를 자주 한다. 지역의 보수성과 무관치 않은 분석이다. 경북도의 디지털 대전환 노력이 이런 편견을 깨는 시작이길 바란다.

2023-03-30

만우절(萬愚節) 거짓말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4월 1일은 만우절이다. 공식적인 기념일도 휴일도 아닌데 ‘절(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날이라 가벼운 장난으로 서로 속이고 즐거워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하지만 남에게 해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그 유래를 찾아보면 부활절 얘기,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 날린 얘기, 춘분 설법 등이 있지만 그래도 가장 일반적인 것이 새해 첫날을 바꾼 역법 얘기이다. 16세기 유럽에서 사용되던 율리우스력(曆)에서 그레고리력으로 바꾸면서 그것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4월 1일 선물을 보내거나 축하하는 등의 거짓 행위를 했고 그 언행에 속은 사람들을 ‘4월 바보(April fool)’라고 했다는 설이다. 우리나라도 조선 시대에는 첫눈 오는 날이면 궁인들이 임금을 속여도 되는 낭만적인 설화도 전해진다. 어쨌든 동서양 모두 거짓말을 하면서 하루를 즐겨온 것이다.요즈음의 우리 사회는 거짓이 난무하는 듯한 판국이어서 여유롭게 농담하고 장난칠 마음들이 아닐 것이다. 절박해지는 일상과 치열한 사회의 경쟁을 겪으면서 삶이 팍팍해진 탓인지 모르겠다. 사실 90년대 까지만 해도 119 장난 전화 때문에 소방서가 골머리를 앓았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거짓말 장난으로 선생님들이 난감했던 일들이 이제 먼 추억이 된 듯하다. 20여 년 전 ‘흔들바위 추락설’로 설악산 사무소가 확인 전화로 곤욕을 치렀었고 한때는 빌 게이츠가 피살됐다는 오보를 보고 놀랐던 일들이 웃음으로 삶의 긴장을 풀곤 했던 만우절의 기억도 있다. 90년대부터 가벼운 장난이나 그럴듯한 거짓말로 남을 속이기도 하고 헛걸음을 시키기도 했다. 이제는 장난 전화로 피해가 클 경우, 공무집행방해죄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기도 하고, 경범죄 처벌법의 ‘거짓신고’로 60만 원의 벌금을 낸다. 이러한 강력한 조치로 장난과 허위 신고 등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만우절 거짓말에 후회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34.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는데, 그 이유로는 상대방이 진실로 받아들여 심한 상처를 받기도 했고, 본인도 거짓말쟁이라고 낙인이 찍혀버렸다고도 했다.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심한 거짓말을 하면 심각한 정신적 질환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만우절 거짓말은 오전까지이고 오후에는 장난임을 밝혀야 한다.‘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는다’는 말처럼 ‘리플리 증후군’이 요즘 우리의 정치계를 만연시키고 있는 느낌이다. 학위 경력 위조, 기억 등을 서로 거짓말이라고 싸워대고 있으니 국민으로서 마음이 쓰리다. 거짓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는 진실이 어색해질 때가 있다.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는 모양이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 있고, 남을 배려하면서 위로하는 듯한 착한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이고 어쭙잖게 허세를 부리는 말을 ‘파란 거짓말’이라고 한다. 이제 코로나도 해제 분위기에 들어온 듯하니 우리의 일상에도 유쾌한 장난으로 삶의 피로를 풀어보는 하루가 되어도 괜찮겠다. 하얀 벚꽃이 절정을 이룬 보경사에 나들이를 가서 거짓말 한번 해볼까. “조용한 만우절에 왔더니 뜨락에 하얀 눈이 쌓였네”

2023-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