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순흥의 땅속에서 깨어난 숙수사의 역사 서원·불교 유적과 땅속에서 깨어난 유물들 대유학자 회헌 안향 선생, 숙수사에 머물며 학문 기초 닦아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경북 영주의 소수서원.
선비 정신의 요람이자 유교의 성지로 추앙받는 이 고풍스러운 공간의 기저에는, 경북 북부 지역의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천년 고찰 숙수사(宿水寺)의 도도한 역사가 흐르고 있다.
오늘날 서원 경내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불교 유적과 땅속에서 깨어난 유물들은 이곳이 과거 거대한 대사찰이었음을 증명한다.
이는 유교와 불교라는 두 시대적 정신이 한 공간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중첩되고 전환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역사적 현장이다.
숙수사의 드라마틱한 역사는 창건과 번성,폐사와 유교 공간으로의 전환, 그리고 현대의 극적인 유물 발견이라는 세 가지 장으로 나누어 펼쳐진다.
숙수사의 정확한 창건과 폐사 시기를 기록한 명확한 단일 문헌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의 파편을 맞춰보면 고려 10세기에 조성된 지곡사 진관선사비에 의하면 진관선사가 고려 정종의 명에 따라 순흥 숙수선원의 주지로 임명되어 약 4년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또, 임경식묘지명에는 고려의 문신 임경식의 둘째 아들 유승이 이곳의 주지였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에 이미 상당한 위상을 지닌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문집과 지리지에서도 그 명칭은 끊임없이 확인된다.
무릉잡고와 동문선 등에는 숙수사의 누각과 시가 기록되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이후의 문헌부터는 숙수사가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의 옛터로 언급되기 시작한다.
학계는 평지 가람 형식을 띤 독특한 사찰 배치와 현존하는 당간지주의 조각 양식, 출토 유물들을 바탕으로 숙수사가 통일신라 시기인 7~8세기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 후기,우리나라에 최초로 성리학을 도입한 대유학자 회헌 안향(1243~1306) 선생이 어린 시절 숙수사에 머물며 글을 읽고 학문의 기초를 닦은 곳으로 전해진다.
불교의 도량에서 유학의 거목이 자라났다는 이 역설적인 사실은 훗날 이 공간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인 복선이 됐다.
조선 왕조의 개창과 함께 단행된 강력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은 숙수사의 운명을 뒤흔들었다.
국가적 지원이 끊기고 재정적 기반을 잃은 숙수사는 조선 초기 세력이 급격히 위축되고 몽고침입이나 단종복위운동 당시 순흥도호부 일대가 참화를 당하던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폐사되어 빈터만 남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숙수사의 터전은 사라지지 않고 유교의 성지로 재탄생하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한다.
1541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은 안향 선생을 기릴 서원 자리를 물색하던 중,선생이 어릴 적 학문을 닦았던 숙수사 옛터야말로 가장 상징적인 장소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542년 숙수사 터 위에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이 건립됐다.배산임수의 뛰어난 입지뿐만 아니라, 기존 사찰의 주춧돌과 석재를 서원 건축 자재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경제적 이점도 작용했다.
이는 불교의 물리적·정신적 토대 위에 유교의 이념을 덧입힌, 한국 정신문화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조화로운 공간 재창조였다.
소수서원 아래 묻혀 있던 숙수사의 옛 영광은 현대에 이르러 극적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1953년, 소수중학교 운동장을 조성하기 위해 땅을 고르던 중 지하 1m 지점에서 항아리가 발견됐다.
항아리 속에는 삼국시대 후기부터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는 금동불상 25구가 쏟아져 나왔다.부처상, 보살상, 반가사유상, 탄생불 등 다양한 형태의 불상이 한꺼번에 출토된 이 사건은 역사학계를 뒤흔들었고 당시 숙수사의 예술적 수준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입증했다.
현재 이 고귀한 보물들은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중이며 현재 10점이 중세전시실에 전시 중이다.
현재도 소수서원 입구에 당당히 서 있는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는 이곳이 과거 천년의 세월 동안 깃발을 높이 걸어두었던 대사찰이었음을 묵묵히 증언한다.
영주 순흥의 땅속에서 깨어난 숙수사의 역사는 한 사찰의 흥망성쇠를 넘어, 한국 정신문화의 두 축인 유교와 불교가 갈등 대신 상생과 중첩을 통해 어떻게 영주의 깊은 문화적 토양을 형성했는지 보여주는 위대한 유산이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