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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은 우주의 역사책이다

등록일 2026-05-20 18:43 게재일 2026-05-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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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본사 고문

늦은 밤, 하늘을 올려다본다. 도시의 불빛이 조금만 덜한 곳으로 가면, 밤하늘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별빛은 고요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시간의 흔적이다. 천문학자 친구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 ‘밤하늘은 사실 우주의 역사책이야.’ 얼른 와닿지 않았다. 설명을 듣고는 한동안 멍해졌다. 별빛은 ‘지금’ 모습이 아니라는 것. 빛이 엄청 빠르다지만, 우주 앞에서는 그조차 한없이 느리다. 태양 빛도 지구까지 오는 데에는 8분이 걸린다. 밤하늘의 별들 가운데 어떤 것은 수백 년, 수천 년, 수만 년 전에 출발한 빛이다. 더 먼 은하의 빛은 수백만 년, 수억 년을 날아와 우리 눈에 닿는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를 보고 있는 셈이다.

저 별들은 이미 그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 오래전에 폭발했거나 사라졌는데, 마지막 빛이 아직 우주를 건너오는 중인 게다. 이제는 없는 별을 올려다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기묘하다. 인간은 늘 현재 속에 산다고 믿지만, 결국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 위에 서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젊은 날의 상처, 누군가의 친절, 오래전 들었던 말 한 마디가 우리 안에서 아직도 빛처럼 살아 도착하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을 떠났는데도, 남긴 말과 온기가 한참 뒤까지 누군가의 삶 속에 살아남지 않는가. 별빛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남기고 사는가’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돈이나 명함이나 지위는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그러나 한 인간이 남긴 마음의 흔적은 의외로 오래 간다. 누군가를 위로했던 말, 손을 잡아 주었던 순간, 정직하게 살아내려 했던 태도는 먼 우주의 별빛처럼 오래 남아 다른 사람의 가슴에 오래오래 도착한다.

우주를 생각할수록 인간 세상이 조금 우습다. 끝도 없이 넓은 우주 속에서, 지구는 먼지보다 작은 존재다. 작은 지구 위에서 인간들은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속이고 전쟁까지 벌인다. 권력을 두고 다투고, 자기 욕심 때문에 남을 짓밟는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우리네 한평생은 잠깐 번쩍였다 사라지는 찰나가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낸다.

우리는 ‘지방선거’를 건너고 있다. 곧 거리마다 현수막이 걸리고, 후보들은 자신을 외치며, 유권자들은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과정 가운데 너무 쉽게 흥분하고 너무 쉽게 미워한다. 상대를 향한 조롱과 비난이 넘치고, 눈앞의 유불리만 계산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밤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면 어떨까. 수억 년 시간을 품은 ‘우주의 역사책’ 앞에서, 인간의 권력과 욕망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자리와 이름이 영원할 것처럼 다투지만, 모두 한순간을 스쳐가는 존재들일 뿐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곁에서 돕는 이들도, 이제 곧 한 표를 행사할 유권자들도 조금 더 넓게 또 길게 보고 깊이 생각했으면 한다. 진지한 선거가 되었으면 한다.

우주의 역사책 앞에 겸허해야 한다. 밤하늘은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그리 거대한 존재가 아니야.’ 오늘 밤도 별들은 소리 없이 빛난다.

/장규열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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