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학교 연구진이 고대 무덤에서 출토된 인골 DNA를 분석해 삼국시대 한국인의 친족관계 네트워크를 최초로 규명했다. 그동안 문헌에만 의존해온 고대 사회의 혼인·가족 구조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남대는 9일 경북 경산시 임당동·조영동 고총군에서 출토된 인골의 고유전체(Ancient genome)를 분석한 결과, 당시 지역 사회에서 근친혼과 족내혼이 이뤄졌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영남대 박물관 김대욱 학예연구원, 세종대 우은진 교수, 서울대 정충원 교수 연구팀을 비롯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가 참여해 국제공동연구로 진행됐으며,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44기 무덤에서 나온 78명의 유골을 대상으로 DNA를 추출해 생물학적 친족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동일 무덤 내 개체들 사이에서 부모-자식, 형제 관계가 확인되는 등 복잡한 혈연 네트워크가 드러났다. 특히 일부 순장묘에서는 가족 단위로 함께 묻힌 유전적 증거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또 무덤 주인과 순장자 사이에는 뚜렷한 친족 관계가 나타나지 않아, 신분에 따른 사회적 분절 구조도 존재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특정 지배층을 위해 가족이 함께 순장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기존 역사 기록과도 맞닿아 있다. 「삼국사기」 등에 나타난 왕실 내 근친혼 사례는 알려져 있었지만, 지방 사회에서 이를 유전학적으로 입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유럽 고대 사회에서 일반적이었던 여성 중심 족외혼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족내혼이 나타난 점도 중요한 특징으로 꼽았다.
아울러 인접한 무덤 주인들 간의 부부 관계도 확인되면서, 고총군 내 무덤 배치가 가족 단위로 구성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기존 고고학적 가설이 DNA 분석을 통해 뒷받침된 셈이다.
연구를 주도한 김대욱 영남대 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인골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고대인의 친족관계뿐 아니라 식생활, 질병, 생활상까지 복원할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고대 한국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향후 추가 고유전체 분석을 통해 삼국시대 지역 사회의 이동성과 규모를 밝히고, 질병과 유전적 특성까지 연구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성과는 그동안 부족했던 한반도 고유전체 데이터 축적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며,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