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풍기서 결성된 국내 최초 무장독립운동 단체 ‘대한광복단’ 지방 자치와 민간 헌신이 일궈낸 역사 교육장 대한광복단기념공원 송지향·권기호·김진영·전동호·반원호‧최훈 등 지역 선배들의 ‘무명의 헌신’ 재조명
24일 대한광복공원 조성 사업과 관련해 당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지역 인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주시 풍기읍, 소백산 자락의 정기를 품은 이곳에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거대한 정신의 뿌리가 깊게 박혀 있다.
1913년, 경술국치라는 민족적 치욕 속에서 조국 광복을 향한 실질적인 행동 강령을 마련한 대한광복단이 풍기에서 결성됐다.
최근 대한광복단의 역사적 의미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가운데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의 건립 뒷이야기가 지역사회의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공원 조성 과정에 참여했던 지역 선배들은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선조들의 정신을 후대에 온전히 전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광복단의 역사는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채기중 선생을 중심으로 전국의 지사들이 영주 풍기에 모여 결성한 대한광복단은 1910년 국권 침탈 이후 국내에서 최초로 광복 전쟁을 목표로 구성된 독립운동 단체다.
이들은 단순히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군자금 모금, 친일파 처단, 무기 구입 등 실질적인 무장 투쟁의 기틀을 닦았다.
영주 풍기가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무장 투쟁의 발원지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숭고한 업적을 기리고자 1995년 11월 17일, 영주시 풍기읍에서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이 문을 열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을 추모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주기 위한 산 교육장이 마련된 것이다.
공원 조성 과정을 보면 지역 학자였던 고(故) 송지향 선생과 그의 제자 권기호 전 한신장학재단 이사장의 아름다운 동행이 자리하고 있다.
송지향 선생이 남긴 유계일기(幽溪日記) 1995년 5월 15일자 기록에는 대한광복공원 건립을 위한 선생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제자인 권기호 한신장학재단 이사장의 초대로 만난 송 선생은 공원 조성을 위한 광복기념탑 건립 기금 희사를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함께 상징탑을 세워보자“는 스승의 말에 권 이사장은 “장학재단 이사들과 협의 검토 해보겠다“는 신중한 답변을 남겼고 송 선생은 설레는 마음으로 귀가했다.
다음 날인 16일자 일기에는 “답변이 어떻게 올지 밤잠을 설쳤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스승의 간절함에 제자는 화답했다. 권 이사장은 기념탑 건립을 위해 당시로서는 거액인 1억원을 흔쾌히 희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권기호 이사장은 1995년, 당시 최훈 풍기공고 교감과 함께 풍기우체국 2층에 있던 한여울회관에 들렀다가 벽에 걸린 채기중 선생의 무장독립군 결성 기록물을 보고 감명을 받아 평소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던 차였다.
그 결실로 1995년 8.15 광복절 기념식날, 강경식(전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탑 제막식이 거행됐다.
제자의 헌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송 선생은 다시 정지옥 전 영주문화원장과 함께 권 이사장을 찾아 기념비 제작을 위한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 권 이사장은 다시 한번 6500만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그해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 행사에서 이의근 경북도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다.
송지향 선생은 백자로 만든 감사패를 제자에게 직접 전달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공원용지 확보를 위한 과정 역시 한 편의 드라마였다. 당시 김진영 영주시장은 송지향 선생을 만나 지역 역사의 현장을 건립하기 위해 의논하고 공유지였던 현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결단을 내렸다.
김 시장은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공원 부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정진탁 씨의 과수원을 매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13대 국회의원 동기였던 오경의 당시 마사회장으로부터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김진영 전 시장은“역사를 바로 세우고 후세에 전달하는 것은 정직하고 바르게 이어져야 한다”며“역사는 사실대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전동호 전 경상북도의회 의장의 조력도 결정적이었다. 전 의장은 당시 공원 조성을 위해 도비 5000만원을 확보하는 데 힘을 보탰다.
전동호 의장은 “대한광복단 조성의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며“대한광복공원은 영주시의 지원과 권기호 이사장의 후원, 경북도의 지원에서 이루어진 결과였다”고 말했다.
전 의장은 1994년 경북도와 협의 당시 대한광복단 기념 동산 기본설계 보고서를 인터뷰 과정에서 공개하며 사업 추진 과정을 설명했다.
전 의장은 1995년 3월 3일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추진위원장 송지향 선생으로부터 고문직에 임하는 위임장을 받았다.
대한광복단의 역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숨은 주역도 있다. 반원호 씨는 조선총독부라는 서적을 읽던 중 채기중 선생의 활동상을 발견하고 초기 무장독립운동의 중심지가 자신의 고장인 풍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
반씨는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당시 김계하 풍기인삼조합장에게 알렸고 김 조합장은 자신도 몰랐던 일이라며 관심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최훈 씨는 “과거는 현재이자 미래다, 올바른 역사관은 지켜지고 이어져야 하는 소중함이 깃든 우리의 자산이다”며 “역사는 지역 갈등, 인적 갈등 등 다양한 주변 환경에 의해 바뀌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달 24일 한자리에 모인 권기호(86·전 한신장학재단 이사장), 김진영(86·1, 2대 영주시장), 전동호(85·전 경북도의회 의장), 반원호(84·자영업). 최훈(68·한신장학재단 감사)씨 등은 공원 조성 과정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경계했다.
이 자리에는 황완섭(평해 황씨 검교공파 금계종회 회장)씨와 권용철(현 한신장학재단 이사장)씨가 동석했다.
이들은 “우리가 무엇을 했다는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현대 사회에서 점차 잊혀가는 역사관과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독립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대한광복공원은 선열의 넋과 지역 선배들의 진정성이 맞닿아 조성된 고귀한 유산이다.
영주 풍기의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어떤 역사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라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이제 이 공원을 아끼고 가꿔나갈 우리 모두의 몫이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