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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곁에 머문, 60년 사제의 길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6-02-22 16:58 게재일 2026-02-2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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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주교 대구대교구 원로 사목자 조정헌 신부
유학·군종·복지시설 등 다양한 사목현장 경험···"종교 간 화합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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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사제 수품 60주년을 맞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원로 시목자 조정헌(88) 신부는 좌우명으로 로마서 8: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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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대구대교구 원로 사목자 조정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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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대구대교구 원로사목자 조정헌 신부가 지난 21일 포항시 북구 청하면에 위치한 최해두 회심경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1939년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의 상처를 겪으며 성장한 천주교 대구대교구 원로 사목자 조정헌(88·파트리치오) 신부가 올해 사제 수품 6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그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님따라 한평생’이 오는 26일부터 3월 8일까지 가톨릭평화방송 TV에서 총 2부에 걸쳐 방영되며, 방송 이후 한 달여 간 유튜브 채널에서도 시청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 졸업 후 1966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로마 유학, 군종 사목, 대학교수, 병원장, 복지시설 운영 등 다채로운 사목 현장에서 신자들과 함께해왔다. 지난 21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전쟁의 기억부터 검도 7단 도전까지, 여전히 청년 같은 열정으로 채워가는 삶의 이야기를 전했다.

△젊은 에너지의 비결: 일상 속 꾸준함

기자가 신부님의 젊은 모습에 놀라움을 표하자, 그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과 함께 답했다.
“여름에는 매일 2시간씩 나무와 정원을 가꾸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며 몸을 단련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도장에서 검도 수련도 하죠. 오는 6월 6일에는 7단 대회에도 출전할 예정입니다.”
실제로 그는 10년 넘게 이 대회 최고령 참가자로 활약하며, 지난해 시니어 검도 대회에서 은메달, 나이제한없는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4년 전에는 자전거로 국토 종주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위한 노력이 일상에 녹아있다.

△전쟁의 상처에서 찾은 소명: 사제의 길

어린 시절 평양에서 배를 타고 월남한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겪었다.
“인민군의 총격, 중공군 피난길···. 어린 눈에 비친 세상은 생존이 걸린 곳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제 성격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쳤죠.”
의대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와의 자취 생활 중 문득 사제의 길을 떠올렸다.
“소속감 없는 피난민 생활 속에서, 구원받을 가장 확실한 길이 사제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파티마의 성모 발현 기록과 십자가의 요한 성인 전기가 큰 영향을 주었죠.”

△유럽에서의 유학과 도전: 산과 신학의 조화

오스트리아 유학 시절, 그는 학업과 함께 산악 활동에 매료됐다.
“인스부르크의 2000m 고봉들을 오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어요. 스위스 마터호른, 프랑스 몽블랑, 멕시코 포포카테페틀까지···. 한국인으로선 최초로 오른 산들이죠.”
하지만 학업도 소홀히 하지 않아 인스부르크대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로마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신학교에서 문학 전집을 독파하며 쌓은 교양이 평생 큰 자산이 됐다”고 덧붙였다.

△사회 시설에서 꽃피운 사목: 희망원과 교회의 역할

1960~70년대 군종 사목을 거쳐, 그는 대구정신병원장과 시립희망원장으로 10년간 헌신했다.
“희망원에 처음 갔을 때 700명이 넘는 이들이 열악한 환경에 방치된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들었습니다.”
직접 대형면허를 취득해 앰뷸런스를 운전하고, 교구 차원의 지원을 이끌어내며 시설을 개선한 그는 “당시 복지는 전문성보다 희생정신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고 평가했다.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종교 간 화합을 이루며 사회적 약자의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로사목자의 소명: 청하공소와 회심의 공간

2009년 원로사목자로 은퇴한 그는 현재 포항시 북구 청하면에 위치한 청하공소 최해두 회심경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은퇴했지만 매일 요양병원 봉성체를 다니며 작은 공동체와 어울리다 보니 현역과 다를 바 없어요. 오히려 신자들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어 행복합니다.”
특히 그가 거주하는 최해두 회심경당은 배교자의 회개를 기리는 특별한 공간이다.
“초기 교회 신자 최해두의 참회 기록을 보면, 신앙의 유혹을 이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합니다. 이 공간이 냉담자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죠.”

△검도와 기도: 몸과 영혼의 균형

공인 7단의 검도 실력자인 그는 “운동이 몸과 마음을 단련해주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된다”고 말한다.
“후배 사제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단, 꾸준함이 중요하죠. 저는 검도가 좋았지만 각자 맞는 운동을 찾아보세요.”
마지막으로 사제의 삶을 지탱해온 좌우명을 묻자, 그는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을 떠올렸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구절이요. 전쟁도 가난도 결국은 은총의 일부였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mei Deus)’라는 기도로 하루를 마칩니다.”

조정헌 신부의 삶은 ‘사람들 곁에 머무는 사제’의 모범을 보여준다. 전쟁의 상처, 유학의 도전, 사회 시설의 헌신, 원로사목자의 여유까지. 그의 다음 여정은 청하공소에서 신자들과 함께 냉담자 회심을 위한 기도와 실천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다만 문을 두드리는 것은 인간의 몫이죠.” 그의 말처럼, 회심은 끝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과제다.

글·사진/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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