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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사망 100년,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문경 출신 독립운동가 박열과 사상의 동행

고성환 기자
등록일 2026-02-01 16:41 게재일 2026-02-02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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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말 개봉 예정인 영화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의 포스터. /eiga.com 제공 

일제강점기 조선 출신 독립운동가 박열의 동지이자 동반자였던 일본인 사상가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가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지 100년을 맞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문화시평을 통해 금자문자의 사상과 궤적을 조명하며, 그가 남긴 ‘공존과 공영’의 메시지를 오늘의 의미로 되짚었다.

박열 의사는 문경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무정부주의 계열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그는 일본 도쿄에서 활동하며 제국주의와 천황제에 맞섰고,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 책임을 은폐하려던 일본 당국에 의해 금자문자와 함께 대역죄로 기소됐다. 두 사람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니혼게이자이는 가네코 후미코가 법정을 ‘사상 표현의 공간’으로 삼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천황을 정점으로 한 국가 권력이 개인을 억압하는 구조를 정면으로 부정했으며, 황족조차 “감옥 같은 삶을 사는 희생자”라고 바라봤다. 이는 단순한 반체제 구호가 아니라, 권력 구조 전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었다는 평가다.

가네코 후미코의 사상 형성에는 식민지 조선 체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무적(無籍) 상태로 교육에서 배제되고, 조선에서 학대를 겪던 그를 돌본 이들이 가난한 조선인 여성들이었다는 대목은, 제국 질서가 낳은 폭력의 실상을 보여준다. 그는 사회주의·허무주의를 거쳐, 생의 말미에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자’로 규정했다.

기사에서는 이 같은 사상이 박열과의 관계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고 해석한다. 가네코 후미코는 재판 기록에서 “만물의 멸절을 지향하는 허무주의는 잘못이었다”며, 타인과의 ‘공존공영’을 향한 사유로 나아갔다. 이는 투쟁의 방식과 목표를 둘러싼 두 사람의 사상적 긴장과 분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오는 2월 말 개봉하는 영화 ‘가네코 후미코,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에서도 재조명된다. 영화는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사유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연대, 젠더 불평등과 권력 구조라는 현대적 질문을 던진다.

니혼게이자이는 가네코 후미코의 시와 산문, 옥중 수기를 “미래의 독자를 신뢰하며 남긴 언어”라고 평가했다. 이는 제국과 식민, 남성과 여성, 지배와 피지배를 넘어선 연대의 가능성을 오늘에 묻는 메시지로 읽힌다.

문경 출신 독립운동가 박열과 일본인 사상가 가네코 후미코의 만남은, 항일 독립운동이 민족 대립을 넘어 보편적 자유와 인간 해방을 지향한 사상 운동이었음을 보여준다. 옥중에서 끝난 한 사상가의 생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한·일 근현대사와 민주주의의 근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편, 박열의사기념관은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와 그의 부인이자 사상적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2년 10월 개관했다. 박열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서원)는 매년 7월 23일 가네코 후미코 여사 추모식을 개최하는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가네코 후미코 여사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했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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