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중소 하도급업체가 ‘제때, 제값’을 받는 환경을 마련하겠다며 지급보증, 발주자 직접지급,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묶은 종합 대책을 내놓았다.
발주자에서 원사업자를 거쳐 수급사업자에게 이르는 자금 흐름이 어느 단계에서도 끊기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확대·보완하는 것이 핵심이다.
23일 공정위에 따르면 이번 대책은 학계·법조계 전문가와 경제단체가 참여한 TF 논의와 업계 현장 의견을 토대로 정리된 것으로, 지난 21일 ‘하도급대금 지급안정성 강화 종합 대책’으로 공식 발표했다.
공정위는 먼저 지급보증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했다. 그동안 넓게 인정되던 보증 면제사유를 사실상 대부분 삭제해, 1000만 원 이하 소액공사만 예외로 남기고 거의 모든 건설 하도급거래에서 지급보증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현행법은 발주자와 원사업자 간 직접지급 합의나 전자대금지급시스템 사용 등 여러 사유를 면제로 인정해 왔지만, 최근 발주자까지 지급불능에 빠져 보증 없이 대금이 끊기는 사례가 적지 않아 이러한 구조적 허점을 해소한다는 목적이다.
지급보증 의무화에 더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지급보증서를 반드시 교부토록 법에 명시하는 변화도 추진된다. 지금까지는 원사업자가 보증에 가입했어도 실제 보증서가 수급업체에게 전달되지 않아, 수급업체가 보증 사실조차 몰라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공정위는 이 같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매년 시행하는 5000개 건설업체 대상 서면실태조사에서 지급보증 의무 이행 여부를 상시 점검하고, 위반 시 직권조사와 제재를 강화할 방침이다.
또한 발주자 직접지급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수급사업자가 원도급대금과 관련한 핵심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신설한다. 원사업자가 발주자로부터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하도급대금이 연쇄 미지급될 가능성이 큰데도, 수급업체는 원도급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 관련 정보를 알 수 없었다. 앞으로는 지급 시기, 금액, 자금집행 상황 등 직접지급 청구에 필요한 범위의 정보를 원사업자 또는 발주자에 서면 요청이 가능해진다. 다만 기업의 영업비밀이 불필요하게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공받은 정보의 목적 외 사용은 금지된다.
공정위는 자금 유용의 원천 차단을 위해 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공공·민간 건설 하도급 전반으로 단계적 의무화한다. 이 시스템은 발주자가 원·수급사업자 몫을 구분해 대금을 집행함으로써 중간단계 사업자가 다른 업체 몫을 인출하거나 유용하지 못하도록 설계돼 있다. 정부는 국토부 등 기존 시스템 운영기관과 협의해 기능을 보완한 뒤, 공공 하도급은 물론 민간 건설공사까지 의무화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편 원사업자의 부담을 축소를 위한 제도 조정도 병행된다. 현행 규정상 지급보증금액이 최대 하도급대금의 2배까지 산정 가능하던 점을 감안해, 보증금액 상한을 하도급대금 수준으로 제한한다. 또 소액공사에서 공사기간 연장이나 대금 증액으로 뒤늦게 보증 의무가 발생해도, 잔여 대금이 1000만 원 이하이거나 잔여 기간이 30일 이하면 가입 의무를 면제한다. 이는 보증 가입의 실익이 거의 없는 경우 과도한 부담을 낮추기 위한 조치다.
공정위는 지급보증기관·발주자·전자대금지급시스템을 결합한 ‘3중 보호장치’가 작동하면 연간 약 120만 중소기업이 거래하는 454조 원 규모의 하도급대금이 안정적으로 지급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