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日·新흥국 간 외교 역학 재편 확인···알젠티나 “합의 무시” 반발
20개국(G20) 정상회의가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개막한 가운데, 미국 없이 정상선언이 채택되면서 국제경제·안보 질서의 균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남아공 백인 차별’ 주장으로 불참했고, 친(親)트럼프 성향인 아르헨티나마저 선언을 공식 불승인하며 G20 내부 구도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중국은 존재감을 키웠고, 일본은 ‘법의 지배’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국제 여론전 강화에 나섰다.
이번 정상선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보호무역 조치를 겨냥해 “세계경제의 불확실성과 분단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언에는 △WTO 규범 준수 △보호주의 경계 △저소득국 부채지속 가능성 제고 △기후변화 대응 강화 등 신흥·개도국 의제가 대거 반영됐다.
특히 아프리카·글로벌사우스의 ‘불평등’ 해소를 핵심 기조로 삼은 남아공이 의장국 권한을 강하게 행사하면서, 미국의 불참·반대에도 문안을 통과시킨 것이 이번 회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2008년 G20 출범 이후 ‘정상선언 무산’ 사태를 피했다는 점에서 남아공은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선언 직후 아르헨티나가 이를 공식 불승인하며 회의장은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레이라(米雷伊)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대표적 ‘친이스라엘’ 지도자로, 정상선언 문안 중 가자·이스라엘 관련 ‘공정하고 포괄적이며 지속 가능한 평화’ 표현을 문제 삼았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합의 형성 절차가 무시됐다”며 남아공을 사실상 비판했다.
정상 자리를 대신한 키르노 외무장관은 “G20 기본 룰이 깨졌다”고도 지적해, G20 내부의 공조 균열이 외교 현안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참과 푸틴 대통령의 미참석으로 회의장은 중국의 리창 총리에게 상대적 무게가 실리는 구도가 형성됐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반영한 공급망·개발·남남협력 의제를 적극 투입하며 영향력 확대에 나선 모습이다.
반면 일본의 고이치(高市) 총리는 첫날 토론에서 “법의 지배에 기반한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의 유지·강화”를 강조하며 국제 여론전에 나섰다.
일본은 최근 고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 이후 중국과 관계가 급랭한 상황으로, 이번 G20에서도 중국과의 정식 양자회담은 성사되지 못했다.
고이치 총리는 △인도와 반도체·AI 협력 △영국과 경제안보·에너지 공조 등을 연쇄 추진하며 중국 견제와 공급망 강화에 집중했다.
일본 외무당국은 “자유무역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는 만큼, 미국의 고관세뿐 아니라 중국의 경제적 보복도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며 국제공조 확대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G20은 △미국의 고립적 노선 △중국의 전략적 외교 확대 △일본의 규범 기반 외교 강화 △신흥국의 주도권 요구가 동시에 부딪히며 다극화된 글로벌 거버넌스의 단면을 보여줬다.
선언 채택 자체는 이뤄졌으나, 미국의 불참 → 남아공의 강행 → 아르헨티나의 불승인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G20 합의 프로세스의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상징한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G20이 얼마나 일관된 국제규범과 경제 협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