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여덟 노모가 상자에서 낡은 종이뭉치를 주섬주섬 꺼낸다. 빛이 바래고 향이 묵은 수십 통의 편지들이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시집가던 날, 친지와 친구들이 써 준 축사, 시집간 딸이 그리워 보내 온 친정어머니 서신, 시집살이 힘들어도 덕으로 감내하라 일러주던 친정오빠의 단정한 필체, 그리고 신행을 앞둔 신부에게 보낸 새신랑의 애정 담긴 편지까지, 모두가 한 시대를 통째로 품은 시간의 기록이다. 축사와 편지를 쓴 이들은 어느새 고인이 되었지만 그들의 글은 여전히 남아 65년 세월을 친구 모친과 함께하며 그 곁을 지킨다.
살다보면 ‘살아낸다’는 노랫말이 와 닿을 때가 있다. 누구라도 여든여덟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한 편의 소설이 된다. 어른들이 놋그릇을 애지중지 감추는 것을 보며 자랐고 어딘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이른 나이에 시집을 가던 동네 언니들, 보따리를 이고 진 피난민들이 마을과 집 마당으로 들이닥치던 것을 기억하는 어르신은 멀어진 세월을 회상하느라 이야기가 끝이 없다. 혼란과 공포 속에서도 다시 봄은 오고 삶은 이어진다.
결혼은 어려운 시절에도 여전히 축복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도 며느리의 시집살이는 숙명처럼 여겨졌고, 지켜야 할 예법과 해야 할 집안일은 끝이 없었다. 사랑방 손님이 끊이지 않던 시절, 그래도 푸념 없이 성실히 살았다. 온화한 성품으로 음식과 수(刺繡) 놓기를 좋아하는 모친의 지난한 시절 속,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바로 이 묵은 서신들이다. 친정엄마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오라비의 글을 되새기며 시집살이 고됨을 감내한다.
가장 아끼는 것은 두루마리에 쓴 형부의 긴 축사다. ‘논 서마지기를 줘도 처제와 바꾸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던 시절, 시집가는 처제에게 쓴 애정이 절절한 축사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줄줄이 외우신다. 종종 꺼내보는 원본이 훼손될까 염려되어 그 긴 축사를 복사해 거실 벽에 기다랗게 붙여 드렸더니 “왜 여태 이 생각을 못했을까”시며 뒷짐을 지고 천천히 읽으시는 어르신 눈에는 젊은 날의 추억이 고요히 되살아난다.
서신들은 한자가 간간이 섞인 한글로 쓰였다. 일본어를 강요받던 시대를 벗어나 비로소 우리말과 글로 편지를 쓰는 흔흔함이 편지 곳곳에 묻어난다. 친정어머니 편지는 흘림이 심해 읽기가 다소 힘들고, 아직은 태양력보다 월력(음력)에 더 익숙했던지 서신에 기록된 날짜가 ‘단기’로 표기되어 있다. 한 장 한 장이 개인의 삶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소중한 사료(史料)처럼 느껴진다.
긴 두루마리 축사들은 그 자체로 가사(歌辭)를 닮았다. ‘글’이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는 양반의 전유물이었지만 언문(한글)의 탄생으로 평민과 부녀자도 작가를 꿈꾸게 되고, 자연을 읊고 임금을 기리던 가사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일상의 애환을 담은 산문시로 발전한다. 모친의 편지는 그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힘들었던 세월에도 순간순간 행복했던 기억들이 그리움으로 남는다. 모진 세월 견디신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며 그들의 삶은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오래된 서신 속에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한 세대가 품었던 사랑과 인내 그리고 인간의 품격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무엇이 한사람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가?’ 묵은 향 뿜어내는 어르신의 서신이 그 답을 조용히 일러준다. 사랑, 그리고 기억이다. 살아 온 날들은 흘러가도 편지는 남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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