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이다. 고색창연한 운문사 풍광이 좋고, 끈적끈적 달콤한 반시가 혀를 녹이는 경북 청도에 갔다. 군청 직원을 만나 물어볼 게 있었다. 일 때문에 갔고, 급히 돌아와야 했으나 점심을 굶을 수는 없는 노릇.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행위가 다 먹고살자고 버둥대는 짓인데.
옹그리고 있는 닭에서 비롯된 ‘옹치기’
맹물에 삶은 닭을 간장 양념으로 조려
찜닭과 비슷하지만 당면은 넣지 않아
청도 방문땐 ‘옹치기 조림닭’ 맛보길
청도군청 직원에게 물었다.
“점심때가 좀 지나긴 했는데, 어디 괜찮은 식당 없나요?”
질문을 받은 사람이 옆 자리 동료를 힐끗 보며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옹치기가 좋겠지?”
처음에는 옥호(屋號)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란다. 음식 이름이라고 했다. 50년 넘게 살아오며 먹어보거나 들어보지 못한 음식이다. 궁금증이 일었으니 당연지사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옹치기? 그게 뭔데요?”
흔한 재료로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상어의 지느러미나 거위의 간, 이탈리아 특정 지역에서 채취한 송로버섯 등은 이미 재료의 희귀성과 이름값만으로도 만들어질 요리에 관한 기대치를 높인다.
그리고, 솔직히 고가의 재료를 사용하면 비단 일류 셰프가 아닌 누구라도 그럴듯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정성 들여 잘 기른 한우나 일본 와규가 숯불에 구워도 맛있고, 가스불에 구워도 근사한 맛을 내는 것처럼.
이야기가 멀리 갔다. 다시 청도군청으로 돌아가자.
옹치기가 뭔지 묻는 우리 일행에게 돌아온 대답은 “안동찜닭하고 비슷한데,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다”였다.
주인장에게 요리 이름을 그렇게 붙인 이유가 뭔지 물어보려면 가볼 수밖에 없었다. 군청 공무원과 인사하고 차에 올랐다. 다행히 ‘옹치기’를 파는 식당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닭은 지구 위에서 가장 흔해빠진 식재료 중 하나다. 어느 정도냐? 최근 조사에 의하면 1년 동안 도축돼 사람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닭은 약 600억 마리. 한국에서만 1억2천만 마리가 넘는다. 길러서 잡아먹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짧아서 1~2개월이면 충분하다.
종교적 금기 탓에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힌두교도는 소고기를 안 먹는다. 그러나, 그들 모두 닭고기는 사양하지 않는다. 육식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본능 가운데 하나 아닌가.
2005년 초여름엔 인도를 한 달쯤 돌아다녔고, 2011년 5월엔 이란을 17일간 여행했다. 알다시피 인도는 힌두교도가, 이란은 시아파 무슬림이 국민의 절대다수다. 그랬기에 인도에선 소고기구이 식당을 보지 못했고, 이란 사람들은 “한국인은 돼지고기를 즐긴다”는 기자의 말에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지사 이란엔 삼겹살집이 없다.
그래서였다. 누구보다 육식을 좋아하는 기자는 ‘꿩 대신 닭’ 아니, ‘소·돼지 대신 닭’이란 심정으로 인도에서도 이란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닭고기를 먹었다.
한국과 비슷하게 두 나라 모두 닭 요리법이 다양했다. 기름에 튀기고, 큰 솥에 삶고, 탄두르(tandoor)라는 화덕에 굽고, 걸쭉한 양념을 더해 졸이고…. 맛은 어땠냐고? 예상대로 한국 닭 요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옹치기’라는 이름이 왜 생겼는지 말해줄 때가 됐다.
예상과는 달리 특별하고 유별난 사연을 가진 호칭은 아니었다. 식당 주인이 어느 날 털이 벗겨진 채 ‘옹그리고 있는’ 닭을 봤고, 그게 식당 메인 메뉴의 이름인 ‘옹치기’로 바뀌었다고 했다.
맹물에 한 번 삶아낸 닭고기에 간장을 베이스로 만든 양념과 육수를 넣고 바특하게 조려낸 옹치기. 기억에 남을 대단한 맛은 아니었으나, 다시 청도에 가게 된다면 한 번쯤은 더 들르고 싶을 정도의 맛이라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란의 수도 테헤란과 중세 사파비 왕조의 고도(古都) 이스파한을 잇는 고속도로엔 몇 개의 휴게소가 있다. 그 휴게소 가운데 한 곳에서 페르시아 스타일로 요리한 ‘닭다리 조림’을 먹은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청도의 별미 ‘옹치기’와 너무나 비슷한 맛이었다.
맞다. 닭고기라는 같은 재료로 ‘사람이 만들어 사람이 먹는 음식’이 달라봐야 뭐가 얼마나 다르겠는가. 아주 먼 옛날에도 신라 사람들은 페르시아까지 걸어서 가곤 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