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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파도소리와 가장 가까운 양조장

등록일 2025-09-28 19:14 게재일 2025-09-2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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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老鋪 기행-동해명주 세계인의 술잔을 채울 막걸리 ①
고두밥에 배양한 누룩 곰팡이를 뿌려 입국(粒麴. 특정 누룩균을 배양한 발효제)을 만드는 과정.

포항 도심에서 동해안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탁 트인 바다 마을이 나타난다. 영일만의 넓은 품에 안긴 포항시 동해면 도구리. 이곳에 70년을 이어온 양조장이 자리한다. 연오랑세오녀의 설화가 깃든 땅, 근대 한의학의 한 축을 이룬 석곡 이규준(1855∼1923)의 정신이 깃든 곳에 터를 다진 동해명주다.

손님을 맞으러 나온 양민호 대표는 유서 깊은 노포의 이미지와 다르게 40대의 젊은이다. 전국 수백 개의 양조장을 이끄는 이들 중에서 젊은 축에 속한다. 나이는 젊지만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돕기 시작해 일반사원에서 공장장을 거쳐 대표 자리에 올랐으니 보통 내공은 아닐 터이다.

동해명주의 도로명인 일월로 51-1번지에는 건물 두 동이 있다. 70년 된 전통 양조장에 증류실을 마련해 증류주 연구를 본격화하면서 막걸리 생산은 2011년에 신축된 양조장에서 전담하고 있다. 막걸리 양조장 외벽에 설치된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술 항아리에서 잔으로 한 줄기 술이 떨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양 대표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미관상 고민거리이던 도시가스 배관이 취기에 올라서 보니 술 줄기로 변해있더란다. 그야말로 ‘술기운이 만든 작품’인 셈이다.

양 대표는 양조장의 핵심 시설인 발효실부터 안내했다. ‘양조장의 주방’이라 불리는 발효실은 양조장의 중심축으로 술의 성패를 좌우하기에 신성시되는 공간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여름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인데도 발효실 안은 서늘함이 감돌았다. 내부에는 1톤 용량의 스테인리스 탱크 35기가 자리했는데, 각각 냉각관을 통한 온도 조절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1t 탱크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는 무려 2000여 병이다. 전통을 잇되 자동화 설비를 꾸준히 도입한 결과다.

“지금이야 세월이 좋아졌지만, 옛날에는 장독대에 선풍기를 틀어 온도를 내렸습니다. 지금처럼 무덥지 않아서 장독대 하나에 선풍기를 집중적으로 틀어주면 20도까지 떨어졌지요.”

선풍기도 없던 시절에는 지하수를 흘려 온도를 낮추고, 겨울에는 연탄불을 피워 발효 조건을 맞추었다. 양 대표는 장독이라 온도 관리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장독이 숨을 쉬면서 스스로 온도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장독에서 술을 익히는 게 낫지 않냐고 묻자 양 대표가 손사래를 쳤다. 대형 장독대 세척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란다. 가슴 높이의 항아리를 기울여 세제 없이 오직 손힘으로만 닦아야 하는 것이다. 또 항아리를 운반하려면 핸들을 돌리듯 굴려서 움직여야 했기에 파손될 위험도 컸다.

 

포항 도구에 70년 이어온 ‘양조장’ 자리해
 1955년 서영수 대표의 ‘도구양조장’ 시작
 2대 양수길 대표 인수 ‘동해양조장’ 명명
 3대 양민호 대표 다섯 살부터 아버지 도와
 일반사원서 공장장 거쳐 대표 자리 올라
 전국 확장 의지 담아 사명을 ‘동해명주’로


 매일 새벽 마당에 술을 뿌리며 기도 올려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
 막걸리 한 잔의 여운, 정성과 철학의 결실

포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양민호 대표가 망사로 된 뚜껑을 열어서 탱크 안을 보여주었다. 발효된 쌀알이 표면에 떠 있고, 알코올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냄새는 시큼하기보다 구수한 쪽에 가까웠다. 보글거리며 올라오는 기포는 생명력을 알리는 듯했다. 포항에서 가장 오래된 이 양조장을 찾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독립영화가 있었다. 감독이 직접 막걸리 제조법을 배우다 아이디어를 얻은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2024)인데, 발효 과정에서 생긴 기포를 일종의 ‘신호’로 해석한 설정이 독특했다. 영화처럼 신비한 기운을 가진 막걸리가 “톡톡……, 톡톡톡……” 로또 번호까지는 아니더라도 특별한 메시지를 전할지 모르니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반면, 양 대표는 슬쩍 보더니 냄새로 술의 상태를 판단했다. 발효실에서 40년 가까이 있다 보니 후각으로 도수와 산미 정도를 감지할 수 있단다. 도수를 0.5도 단위까지 알아낼 수 있다니 실로 대단한 능력이다. 양 대표는 마치 알코올 도수 측정기가 눈앞에 있는 듯 현재 도수는 약 14.5도이고, 하루만 더 발효시키면 출고할 수 있다고 했다.

1톤 탱크의 3분의 1은 쌀이 차지한다. 뜨거운 증기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밥을 섞어주고 뒤집어준 고두밥이다. 쌀을 찌고 나면 균사를 고두밥에 뿌려 손으로 비벼주는 작업이 이어진다. 발효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양 대표의 표현대로 “쌀에서 꽃이 핀다.”

막걸리의 모든 공정에 정성이 들어가지만, 특히나 발효만큼은 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기술만으로 맛을 낸다면 대기업 제품이 가장 맛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다.

동해명주의 뿌리는 도구양조장

효모가 제대로 활성화되어 고두밥 분해가 충분히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발효 지점은 알코올도수 15도다. 반면에 발효가 덜 된 상태, 즉 ‘미주(未酒)’ 단계에서는 구수한 맛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무에서 충분히 숙성된 과일이 풍부한 맛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막걸리도 탱크 안에서 충분히 발효될 때 가장 좋은 맛을 낸다. 맛의 품질과 생산 수율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한 수많은 시도 끝에 도출한 최적의 조건이다.

목표치에 도달하면 물을 섞어 도수를 약 6도 수준으로 조정한다. 물을 더해 원하는 도수를 맞추는 방식은 위스키나 맥주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막걸리는 청주를 걸러내고 남은 침전물이었지만, 지금은 원주(原酒) 그대로 사용한다. ‘대충 막 걸러낸 술’이라는 막걸리의 어원은 오늘날에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 막 갓 빚어낸 술’이라는 해석이 현대의 막걸리를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

동해명주의 역사는 1955년 ‘도구양조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대 서영수 대표가 운영하던 양조장을 1985년에 2대 양수길 대표가 인수해 ‘동해양조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도구리를 넘어 동해면 전역을 대표하는 양조장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였다. 2016년, 양민호 대표가 대를 이어 취임하면서 브랜드 이름은 ‘동해명주’가 되었다. 전국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양 대표의 부친인 고(故) 양수길 대표는 포항시 연일읍 태생이다. 그는 떡방앗간을 처분하고 도구양조장을 인수하면서 포항시 도구리로 터전을 옮겼다. 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양조장을 인수했지만, 재정적 기반이 부족한 터라 가내수공업 형태로 가족 모두가 힘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

양민호 대표는 한옥 2층 살림집 아래 1층 양조장에서 성장했다. 아침에 문을 열면 곧장 양조장이었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막걸리 상자 앞에 앉아 고사리손으로 비닐 마개를 씌우며 일을 도왔다. 당시 막걸리 병마개는 밀봉을 위해 비닐을 사용했다. 비닐 100개가 한 세트였는데 하나씩 벗겨내 병에 꽂고 열로 지져 수축시키는 방식이었다. 양 대표는 스스로의 성장을 ‘병뚜껑을 닫을 수 있는 높이’로 체감했다. 처음엔 2단만 겨우 가능했지만, 어느새 3단, 4단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키가 크는 걸 알았다.

12살 때 도구막걸리를 들고 있는 양민호 대표(1991년).

매일 새벽 마당에 술 뿌리고 기도 올려

막걸리 냄새에 취해 살았다고 회고하는 양 대표. 어린 시절에는 ‘술도가’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맥주와 소주에 비해 막걸리가 상대적으로 덜 대우받던 때였다. 고등학생이 되니 그제야 친구들도 하나둘씩 양조장이 마을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에 누룩 냄새가 배어 빠지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놀려도 막걸리집 아들로서 자부심이 있었죠. 한 톨의 쌀이 밥이 되고 막걸리가 되는 과정이 어린 제게는 신비로웠습니다.”

고(故) 양수길 대표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평소 “남은 1등, 나는 2등”이라는 말을 자주 했으며, 이는 배려와 책임의 철학을 보여준다. 겨울이면 쪽잠으로 버티며 서너 시간마다 밤새도록 연탄불을 확인했다. 세심하게 술을 지켰던 집념은 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보이셨죠. 너부터 챙기지 말고 장독을 더 들여다보고 수억의 생명체를 먼저 챙기라는 말씀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1941년생 아버지가 45세에 인수한 양조장에서 같은 나이가 된 1981년생 아들이 전통의 맛을 지키고 있다. 양민호 대표는 매일 새벽 발효실에 들어가기 전 마당에 술을 뿌리며 기도를 올린다.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술에도 정성이 깃든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양조장은 전통과 경험, 기술과 철학이 맞닿는 지점이라는 그의 말은, 양조장이 술을 빚는 공간을 넘어선다는 의미다. 한 잔의 막걸리에 담긴 오랜 여운은 이 같은 정성과 철학의 결실이다.   

글 = 배은정 소설가·사진 = 김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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