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우연이었다. 습관적으로 훝어보던 SNS에 타음조사 공개회 신청 접수폼이 보였다. 막연히 좋을 것 같아서 아이의 이름과 함께 적어냈다. 얼마 뒤 문자가 도착했다. 당첨 문자다. 771명이란 숫자가 많게 느껴지기도 했던 터라 경쟁률이 치열하지 않았나 했다. 현장에 가서야 5:1이란 경쟁률을 뚫고 얻은 행운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공개회는 신종의 안전한 타음조사와 적절한 청음환경 조성을 위해 참석인원을 제한하여 운영했다. 내빈과 특별 초대 대상자를 제외한 총 771명을 신청을 통한 추첨으로 뽑았는데 이는 성덕대왕신종이 조성된 연도다.
타음조사는 1996년 이후 4번째며 올해부터는 5년마다 타음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종을 쳐서 음향과 진동을 측정한다. 그 중 맥놀이와 고유 주파수라는 두 가지 항목을 중점적으로 보게 된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건강검진이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종소리가 주변 100리까지 퍼졌다고 기록되어있다. 타종은 모두 12회로 국가무형유산 주철장 이수자 원천수씨와 서울 보신각 5대 종지기 신철민씨가 맡았다. 1~4회는 1분 30초 간격, 5~12회는 1분 간격으로 진행되었다.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공간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커졌다 줄었다 다시 커지면서 스르르 공기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서양의 종과는 다른 묵직한 깊이감이 느껴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건용 작곡자는 마음이 실리는 기분이라 소회했다.
타종 이전과 이후에는 이애주 한국전통춤회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새하얀 천자락이 까만 밤하늘 사이로 일렁이자 마치 비천상이 살아 움직이는 기분마저 들었다.
행사는 24일 오후 7시에서 7시 45분까지 예정되어 있었으나 실제 종료된 시간은 8시 10여 분이 지나서였다.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22년 만이다. 1993년 이전만 해도 경주시민들은 박물관에 모여 매년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교통편이 불편했던 시민기자는 안타깝게도 제야의 종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 행사가 더 뜻깊다.
게다가 성덕대왕신종은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기도 하다. 해마다 박물관에서는 각 학교에서 뽑혀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술대회를 치렀다. 2시간에 한 대인 마을 버스를 타고 경주역 부근에 내리면 작은 걸음으로 다시 한참을 걸어 박물관에 도착했다.
크기도 크거니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성덕대왕신종은 2년 동안 목표물이 되었다. 비천상이 어린눈에도 예뻐 보여 열심히도 그렸었다. 그러다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물감이 그림을 뒤덮는 순간 사실주의 그림은 순식간에 추상화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덕에 9살 봄까지 2년간 무관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 경주역 앞에서 먹은 자장면은 언제나 맛있었다. 종 앞에 서면 세월이 한참 지나 아이가 그 당시 내 나이가 되어도 그날의 기억들이 생생하다.
행사가 끝나고 종 앞에서 기념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으나 많은 인파로 다음을 기약했다. 엄마와 아이 모두 첫 종소리다. 훗날 아이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오늘의 설레임과 근사했던 종소리를 기억해줬으면 한다.
/박선유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