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신라금관 특별전’···고대 황금문화 각국 정상에 선봬 이후 국립경주박물관은 별도 공간 마련, 일반에 12월 14일까지 전시
찬란한 황금문화가 한 자리에 모이는 특별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고대 고분에서 발굴된 금관은 총 7점. 이 가운데 6점은 신라, 1점은 대가야 금관이다. 금관(金冠)이란 말 그대로 황금으로 만든 관모를 의미한다. 전 세계 현전하는 금관의 절반 이상이 신라와 가야 등 한반도 고대 문화권에서 나왔다. 이는 한반도의 찬란했던 당시 금속공예와 장례문화를 대변한다.
신라 금관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1년 경주의 ‘금관총’이다. 이후 금령총(1924년), 서봉총(1926년), 천마총(1973), 황남대총북분(1973)에서 잇달아 발굴된다. 교동 금관은(1972년) 도굴로 출토되었다.
현재 황남대총북분, 금령총 금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서봉총 금관은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순회 전시 중이다. 천마총, 금관총, 교동 금관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되고 있으며, 대가야 금관은 서울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신라금관 특별전’이 함께 준비 중이다. 신라 금관 6점을 한자리에 모아 찬란했던 한민족의 고대 황금문화를 각국 정상들에게 선보인 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2층 상설전시장 내 별도 공간을 마련하여 일반인에게도 12월 14일까지 전시한다. 이 역사적 기회가 무려 무료관람이다.
1921년 금관총 발굴은 우연이었다. 일제강점기, 한 주막의 증축공사 도중 발견된 유물이 무려 4만여 점. 당시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본인에 의해 불과 나흘 만에 수습되었지만, 이 사건은 경주 일대 고분군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이후 일제는 조선총독부 고적조사과를 설치해 금령총과 서봉총을 잇달아 발굴한다.
해방이후인 1973년에 대규모 발굴조사가 이어졌다. ‘경주155호분’이라고 불리던 고분은, 금관과 함께 ‘천마도(天馬圖)’가 출토되면서 천마총(天馬塚)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같은 해 황남대총의 북분에서는 부인대(婦人帶)라는 명문이 새겨진 금제 허리띠가 금관과 함께 발견되면서 무덤의 주인공이 여성임을 알려준다. 흥미롭게도 남분, 즉 왕의 무덤에서는 금관대신 금동관이 나왔다. 이는 금관이 왕뿐 아니라 왕비와 왕실 일원에게도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교동 금관은 도굴꾼에 의해 경주시 교동 폐고분에서 도굴되었다가 국가에서 압수한 사례다. 6점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은 금관이지만 제작시기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금관들은 발굴 당시 피장자의 머리 위가 아니라 얼굴 전체를 덮는 형태로 발견된 점에 주목한 학자들도 있다. 2000년에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에서는 이를 근거로 ’금관은 실제 착용 용도가 아니라 장례의례에 사용된 ‘데스마스크(Death Mask)’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는 금관을 단순히 권력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 고대 신라인들의 사후 세계관과 장례문화를 탐구할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한다.
백제도 금관을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아직 실물이 발견된 적은 없다.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과 정신세계가 깃든 신라 금관은 그래서 더 귀중하다. 11월에 시작될 특별전시는 경주, 서울, 청주를 번거롭게 오가지 않고도 찬란한 신라금관 6점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다. 한민족(韓民族)의 자긍심이 한층 더 높아질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말자.
/박귀상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