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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열쇠공, 열쇠점의 대를 잇다

등록일 2025-09-21 18:39 게재일 2025-09-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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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老鋪 기행 - 죽도열쇠  분단의 상흔, 열쇠 장인 가문을 이루다 ②
김건식 대표. 1990년대 초 포항  자명리 출장가는 길.

포항시 북구 죽도동 칠성천길 64번지에는 76년 된 죽도열쇠 2호점이 있다. 김건식(61) 대표는 2008년 어머니와 함께 꾸리던 사업장에서 독립해 지금의 점포를 열었다. 3층 건물 규모에 각종 열쇠와 자물쇠 보유량, 처리하는 업무량을 감안하면 사실상 본점이나 다름없다. 점포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메운 수천 개의 열쇠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출장 중인 김건식 대표 대신 손님을 맞은 이는 그와 사제 관계로 인연을 맺은 직원이었다. 벽을 빼곡히 채운 열쇠 위치를 다 기억하느냐고 묻자 “신기하게도 사장님은 다 기억하세요”라고 대답했다. 대충 세어도 2000개가 넘는 열쇠였다.

폐에 총알 박힌 채 평생 전쟁 후유증 겪던 
부친 김흥준 대표는 소문난 열쇠 장인
직접 연장 만들어 쓸 만큼 손재주 좋고
지역 은행의 금고 작업 대부분을 도맡아
 

기계없던 시절 줄질로 하나하나 복사해
손으로 만들던 열쇠는 장난감이자 일상
리어카 타고 아버지 따라다니던 소년의
76년 역사 2호점 벽면엔 수천 개의 열쇠


1990년~ 2000년대 초반 열쇠업 전성기
동료들과 한국열쇠협회 창립에 참여
지난해 ‘국민 재산 보호’ 전국지부 결성
1997년 포항 열쇠인들 ‘긴급 봉사대’ 발족

김건식 대표를 다시 만난 건 7년 만이었다. 2018년, 경상북도 노포기업으로 선정되었을 때, 방송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여전히 자신감의 열쇠라도 쥔 듯 당당하고 거침없었다. 변함없는 또 하나는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이었다. 당시에도 녹화 도중 손님 전화를 받아 제작진을 당황하게 했는데, 이번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루 평균 50∼60통의 전화가 걸려오고, 그 절반은 출장으로 이어진다. 김 대표는 “가끔 전화기를 던져버리고 싶지만 고객의 문의는 성심껏 답해야죠”라고 말했다.

포항 문덕동에 사는 한 고객의 전화였는데,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요청이었다. 김 대표는 현관문의 사용 연한과 잠금장치 종류를 꼼꼼히 확인한 뒤 방문 일정을 잡았다. 걸려오는 전화 내용은 다양하다. 자동차 키가 말썽을 부린다거나 비디오폰, 도어록 고장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잠긴 문을 열어달라거나 열쇠 복사 문의도 꾸준하다.

왼 쪽에서 두번째가 김건식 대표(1997).

“포항 열쇠는 아버지가 키워”

고객의 의뢰 내용은 계절에 따라 다르다. 여름과 겨울에는 자동문 고장이 잦고, 이사철에는 도어록 교체나 열쇠 복사, 스마트키 설치 문의가 늘어난다. 자동차 키 문제만큼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접수된다.

김 대표는 아버지를 도우며 자연스럽게 열쇠 일을 배웠다. 꼬마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출근했던 그는, 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하교 후에 곧장 난전으로 향해 하루를 보냈다. 아버지는 좌판에 열쇠를 늘어놓고 수리도 겸했다.

“아버지가 리어카를 끌면 제가 뒤에서 밀었어요. 대부분은 리어카에 타고 왔지만.”

김 대표는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웃으며 회상했다. 기계가 없던 시절이라 모든 작업은 수작업이었다. 줄과 줄톱으로 하나하나 열쇠를 다듬어 복사했다. 본격적으로 복사 기계가 들어오기 시작한 건 1980년대 후반으로 기억했다. 줄질로 열쇠를 만들던 시절부터, 열쇠는 그의 장난감이자 일상이었다.

고인이 된 부친 김흥준 대표는 소문난 열쇠 장인이었다. 직접 연장을 만들어 쓸 만큼 손재주가 뛰어났고, 지역 은행의 금고 작업은 대부분 도맡았다.

“포항 열쇠는 우리 아버지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 대표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어릴 적부터 이웃들은 그에게 “네 아버지처럼 살아라”고 말했다.

부친의 솜씨는 경북 동해안 전역에 알려져 울진까지 출장 요청이 이어졌다. 김 대표도 아버지를 따라다니곤 했다. 한 번은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구룡포를 향했는데, 막 지은 여관에 도착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버스와 땀 흘리며 일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교통 여건이 열악했던 당시에는 출장을 다녀오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리기도 했다. 김 대표는 1985년에 첫 자동차를 마련해 기동력을 높였다. 거금 500만 원을 들인 프라이드였다.

죽도열쇠에서 열쇠를 만들고 있는 김건식 대표.

1990년대 초반부터 10년간 열쇠업의 전성기

부친은 전쟁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을 겪었다. 총알이 폐에 박힌 채 살아야 했고, 요양을 위해 제주도로 옮겨갔다. 제주에서도 열쇠공 제자를 둘 만큼 열쇠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부친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가업은 김건식 대표가 이어받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열쇠업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 김 대표는 동료들과 한국열쇠협회 창립에 참여했다. 1990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창립총회는 언론에 ‘이색 모임’으로 보도되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회관 2층에서 ‘열쇠인’들의 이색적인 모임이 열렸다. 열쇠 수리 판매 제작 등의 종사자 500여 명은 이날 한자리에 모여 ‘한국열쇠협회’의 실질적인 창립총회인 서울지부 결성식을 가졌다.

“지난해 잇따라 은행 금고가 털리고 거액의 현금을 실은 수송차량이 습격당하는 것을 보면서 열쇠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지난해 7월 동료 열쇠인 10여 명은 함께 모여 협회 설립의 뜻을 모으고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전국지부 조직 결성에 착수했다. 협회 측은 전국에 단독 점포를 개설한 열쇠업자는 1만여 명이며 노점-행상과 철물점 구두수선 등의 겸업을 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4만∼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 「국민 재산-생명보호 거창한 주장 이색 ‘한국열쇠협’ 창립」, 『조선일보』 1990년 4월 27일자.

김 대표는 “80년대 후반부터 동료 열쇠인들이 모여 협회 창립을 의논했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열쇠협회 경북도지부 이사직을 역임하며 지역 열쇠업 발전과 전문열쇠기술인 양성을 위한 교육과 정보 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때는 국산 자물쇠 열 개가 미제 하나를 못 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내 기술이 형편없었어요. 지금은 많이 발전했지만요.”

김 대표는 국내 기술 발전 과정을 몸소 체험한 세대다.

포항 지역 열쇠인들은 1997년 ‘긴급 출동 봉사대’를 발족하기도 했다. 당시 열쇠를 이용한 범죄와 화재를 비롯한 각종 재난과 응급 상황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사고 예방과 대처에 앞장서기 위한 취지였다. 양로원이나 보호시설을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 119와 협력한 긴급 출동이 대표적이었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위해 회원사에서 각종 문고리와 열쇠, 자물쇠를 기부받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본격적인 활동으로 이어가진 못했다.

세대를 이어온 성실함과 책임감

2000년대 들어 열쇠업은 또 다른 변화를 맞았다. 튼튼한 수동열쇠는 여전히 인기지만 새롭게 전자열쇠가 등장하면서 다양해졌다. 특히 자동차 열쇠가 판도를 변화시켰다. 2004년 이후 자동차에 도입된 ‘이모빌라이저(immobilizer․ 열쇠마다 고유 암호를 부여하고 자동차에서 나오는 신호와 일치해야 시동이 걸리는 방식)’가 한 예다. 도난 방지에는 효과를 발휘했지만, 간혹 차가 잠겨버려 차 주인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외부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고액의 비용을 치르고 견인 차량을 불러야 했다.

혼쭐이 난 차 주인들이 열쇠 복사를 부탁했지만, 예전과 같은 방식은 통하지 않았다. 그전에는 눈대중해서 감각에 의존해 수가공으로 열쇠를 복사했다면, 이제는 고도로 복잡한 셈법이 필요했다. 전자칩이 내장된 자동차 키는 고도의 장비와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실력자라도 새로운 게 계속 나오니까 늘 긴장하고 연구해야 해요.”

김 대표는 틈만 나면 자물쇠를 들여다보고 연구에 몰두한다. 김 대표의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죽도열쇠에 전화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문을 열어주는 기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열리지 않는 자물쇠도 풀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쌓인 결과다. 세대를 이어온 장인의 성실함과 책임감이 ‘열쇠’를 넘어 ‘신뢰’를 열어낸 것이다.  

글 : 배은정 소설가 사 진 : 김 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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