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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회고전 ‘곡수지유(曲水之遊)’···50년 예술 여정 한눈에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5-09-16 15:52 게재일 2025-09-1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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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내년 2월 22일까지

이강소 작가 ‘예술 실험정신’ 조명
회화·조각·설치·판화·드로잉 등
130여 작품, 고향 대구에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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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作 ‘청명(淸明)’(2016년)

이강소 작가(82)는 대구 출신으로, 실험적 기법으로 유명한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그림, 판화,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사진, 도예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장르나 재료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표현 방식을 탐구해왔다. 직감과 유희적 접근으로 완성된 그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고정된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의 개방성을 통해 주체적인 상상과 의미 재구성을 유도하며, 이는 예술과 수용자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그의 창작 철학을 반영한다. 
  
대구미술관에서 지난 9일 개막한 이강소 회고전 ‘곡수지유(曲水之遊): 실험은 계속된다’는 내년 2월 22일까지 대구미술관 1전시실과 어미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조각, 설치, 판화, 드로잉 등 1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1970년대 실험미술의 선구자로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온 그의 예술적 탐구의 궤적을 한자리에서 조망한다. 특히 초기 작품부터 최신작까지 아우르며 유연한 사고와 창작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 제목 ‘곡수지유(曲水之遊)’는 고대 중국에서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보내며 시를 짓던 풍류에서 비롯됐다. 이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자유롭게 사유하며 예술적 실험을 이어온 이강소의 작업 방식과 맥을 같이한다. 전시는 ‘곡수지유’의 정신과  ‘실험정신’을  중심으로 그의 반세기 예술 여정을 종합적으로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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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作 ‘낙동강 이벤트’(1977년, 2025년 인화)

곡수지유의 개념은 흐르는 물과 순간적 영감이 교차하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다. 이강소의 작업 현장인 낙동강변은 강물과 모래사장, 갈대밭이 어우러진 자연 환경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됐으며, 동료 예술가들과의 협업은 새로운 미술을 향한 열정의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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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소作 ‘허 虛-14013’(2014년)

‘실험정신’은 그의 작업을 이끈 또 하나의 원동력이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1969년 신체제를 결성하고, 1970년대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에꼴드서울 등에서 현대미술운동을 주도했다. 특히 1974년 창설한 대구현대미술제는 한국 최초의 전국적·국제적 현대미술제로, 이후 전국 각지로 현대미술제가 확산되는 출발점이 됐다. 이 시기의 실험정신은 회화·조각·판화 등 전통적인 매체로 이어지며 한층 심화됐다. 

전시는 최근작에서 출발해 1970년대 실험미술과 이후의 확장을 따라간다. ‘청명(淸明)’ (2016~) 연작은 맑은 정신세계를, ‘바람이 분다’(2022~) 연작은 청명의 기운에 화려한 색채를 더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무채색을 고수해 온 그는 “색이 나를 유혹했다”라는 고백처럼 자연스럽게 색을 받아들이며, 또 다른 국면을 열었다.

1970년대 대표작들은 한국 실험미술의 역사를 증언한다. 제9회 파리비엔날레에 출품된 ‘무제 1975-31’, 이른바 ‘닭 퍼포먼스’는 전시장 한가운데 살아 있는 닭을 매어두고, 그 흔적을 작품으로 선언한 파격적 작업이다.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순간을 예술로 바꾼 이 작품은 한국 실험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자, 이강소를 국제무대에 알린 계기가 됐다. 

비디오 작업 ‘Painting 78-1’은 투명한 유리 위에 붓질로 화면을 채우는 과정을 담은 영상으로, 회화를 ‘완성된 결과’가 아닌 ‘그려지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한다. 인터넷은 물론 컬러 텔레비전조차 보급되기 전이었던 1977년에 시도된 이 작업은 회화와 비디오를 결합해 매체 확장의 전환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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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作 ‘바람이 분다-250109’(2025년)

중앙 섹션에서는 198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강소 회화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직접적 서사를 배제하고 자연의 형세나 물의 흐름 같은 잔상으로 채워진 화면은 관람자의 시선과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멀리서는 고요한 산세를 닮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능선이나 빗물을 머금은 하늘로 변모한다. 이처럼 무한히 생동하는 화면은  ‘살아 있다’는 표현을 떠올리게 하며, 이것이 이강소 회화가 지닌 독특한 매력이다.  

조각  또한 198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졌다. 그는 서구식 덩어리 조작 대신 흙, 불, 바람, 빛 같은 자연 요소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Becoming(되어감)’이라 명명한 이 작업은 자연의 질료와 작가의 신체가 어우러지며, 우연의 개입 속에서 작품이 완성된다. 이강소는 이를 “의식과 무의식의 합작”이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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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곡수지유(曲水之遊): 실험은 계속된다’ 전시장 전경. /대구미술관 제공

1전시장의 마지막에는 판화 작품과 함께 1970년대 이강소가 주도한 실험미술 운동과 대구현대미술제를 중심으로 다룬 아카이브 공간이 선보인다. 신체제,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에꼴드서울 등의 활동과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대구현대미술제의 기록이 귀중한 자료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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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어미홀에 전시된 이강소 작가의 갈대를 이용한 설치작품 ‘여백’(1971년, 2001년 재제작). /대구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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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작가 약력

또한 어미홀에서는 이강소의 1973년 첫 개인전 출품작 ‘소멸’을 중심으로 갈대와 브론즈 조각이 어우러진 공간이 마련된다. 자연광이 스며드는 창과 설치가 조화를 이루며, 관객은 낙동강변의 정취와 현재의 공간을 동시에 체험하고, 곡수의 흐름이 담긴 작가의 예술을 체감할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이정민 학예연구사는 “이강소의 예술은 반세기 동안 이어진 실험과 확장의 여정”이라며  “고향 대구에서 열리는 14년 만의 대규모 회고전인 만큼, 그의 작품 세계의 깊이와 감동을 직접 느끼실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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