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우리는 기후변화의 위력을 피부로 느꼈다. 기록적인 폭우로 대구 도심의 도로가 순식간에 흙탕물에 잠기고, 연이은 가뭄에 청도 운문댐이 바닥을 드러내는 모습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도시를 뒤덮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 길을 막아버렸고, 왜곡된 물의 흐름은 기후변화라는 ‘위협 증폭기’를 만나 홍수와 가뭄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물관리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이다. 지난해 10월 시행된 ‘물순환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물순환촉진법)이 바로 그 전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물순환촉진법’은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 핵심은 ‘통합’과 ‘회복’이다. 이 법은 빗물을 더 이상 빨리 내다 버려야 할 골칫거리가 아닌, 땅에 스며들게 하고(침투), 잠시 머물게 하여(저류), 다시 사용하는(재이용) 소중한 자원으로 바라본다. 이를 위해 ‘물순환 촉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단순히 재해 예방을 넘어 깨끗한 물 공급, 수생태계 보전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활동이다. 법은 투수성 포장, 빗물정원, 인공습지 같은 ‘물순환 시설’을 체계적으로 설치하도록 장려한다. 특히 물순환 왜곡이 심각한 지역을 ‘물순환 촉진구역’으로 지정해 국가가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관리하게 된다. 환경부가 국가 전체의 청사진(국가물순환촉진기본방침)을 그리면,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국고 보조를 통해 사업 비용을 지원하고, 관련 제품의 품질을 인증해 주는 제도로 산업 발전도 꾀하게 된다.
세계의 선진 도시들은 이미 도시가 거대한 스펀지처럼 기능하는 ‘스펀지 시티’로 변모하고 있다. 독일은 건물의 지붕이나 주차장처럼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불투수면적’이 넓을수록 하수도 요금을 더 내게 하는 ‘빗물세’를 도입했다. 이는 시민들이 스스로 옥상에 정원을 가꾸고, 마당에 투수 블록을 깔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미국 포틀랜드시는 ‘깨끗한 강 보상(Clean River Rewards)’ 프로그램을 통해 빗물정원 등을 설치한 시민에게 수도요금을 직접 깎아준다.
‘물순환촉진법’ 시행을 계기로 대구·경북은 기후 위기 시대에 지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발판으로 삼는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안정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고 지원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독일의 빗물세처럼 지역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재원 조달 체계를 조례로 제도화하는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 둘째, ‘제도개선’과 실행 조직 구축이 시급하다. 물순환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를 세워 부서 간 칸막이를 허물고,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활성화해야 한다. 셋째, ‘물순환촉진법’에 명시된 ‘지원센터’나 ‘전문인력 양성기관’과 같은 핵심 기관을 우리 지역으로 유치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대구·경북이 물산업 선도도시로 도약하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물순환촉진법’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손에 쥔 지금이야말로 대구·경북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물 안심 도시’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