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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자연 속 고요함… 숲에서 쉼을 찾다

최병일 기자
등록일 2025-07-14 19:02 게재일 2025-07-1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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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함께 하는 비밀의 숲

한여름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바람한 점 없는데 칠월 하순의 햇살 그 품안으로 지상의 푸르름을 모두 데려가고 있다. 여름 여행을 꿈꾼다면 숲에 머물면 어떨까? 아홉산 숲과 서후리 숲, 구례 섬진강 댚숲길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가족여행지로도 일품이다. 

부산 기장군 9개 골짜기 품은 ‘아홉산숲’ 
하늘로 뻗은 금강소나무·보호수 116그루
영화 촬영지·슬로우 트레킹 코스로 주목
경기도 양평 깊은 산속 조용한 ‘서후리숲’
잣나무∼단풍나무까지… 테마별 산책로
자연이 숨쉬는, BTS 다녀간 숲으로 유명
전남 구례 지리산 품은 ‘섬진강 대숲길’
곧고 빼곡한 대나무 줄기 사이 그늘길
바람에 춤추는 대숲… 사진 명소로 ‘딱’

△영화·드라마의 촬영지, 평형세계의 문을 여는 아홉산 숲

현실감이 없는 매력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아홉산 숲 /한국관광공사 제공 

부산 기장군 철마면, 도심에서 자동차로 30분 남짓. 이 거리 안에 이토록 깊은 숲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9개의 골짜기를 품은 아홉산 자락에 기대어 300년 넘게 자라온 숲, ‘아홉산숲’이다.
이름도, 내력도 남다르다. 임진왜란 이후 미동마을에 정착한 남평 문씨 일가가 9대에 걸쳐 가꿔온 사적인 숲. 단 한 평의 땅도 내어 팔지 않았고, 자연의 순리를 따라 숲의 형체를 지켜왔다.

한때는 ‘들어갈 수 없는 숲’이었다. 그렇게 닫힌 시간은 2015년, 대중에게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2022년부터는 일일 입장객을 제한하고, 유료 입장제를 운영하며 숲의 밀도를 지키는 방식으로 공존을 꾀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의 아홉산숲은 ‘치유형 숲여행’의 대표지로 떠올랐다.

매표소를 지나 첫발을 디디면 수령 400년이 넘는 금강소나무들이 마중 나온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자태. 두 팔 벌려도 안기지 않는 굵기. 일제강점기 내내 송진 채취 없이 지켜졌다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현재 이 숲에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무려 116그루에 이른다.

그 곁, 한옥 ‘관미헌(觀薇軒)’은 이 숲의 상징 같은 곳이다. ‘고사리조차 귀히 본다’는 뜻을 품은 이름처럼, 작은 풀 하나까지 귀하게 여겨온 이 집안의 철학이 고스란히 숲에 녹아 있다. 관미헌을 지나면 이내 맹종죽 대숲이 펼쳐진다. 초록이 쏟아지는 터널, 공기의 감촉마저 달라지는 공간이다.

아홉산숲은 여름에도 시원해서 가족여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아홉산숲을 단박에 유명하게 만든 건 드라마와 영화 속 장면들이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대호>, <협녀: 칼의 기억>에서 숲은 시대극의 시간 배경이었고, 드라마 <보보경심 려>, <더 킹: 영원의 군주>에서는 평행 세계의 문이 열리는 공간이 됐다.
특히 드라마 <더 킹>에서 이민호가 말을 타고 질주하던 숲이 바로 이곳, ‘평지대밭’이다. 국내 최대 규모(3만3000㎡)의 맹종죽 단일 숲으로, 평지에 대나무가 자라는 특이한 지형이 주는 묘한 비현실감이 압권이다.

햇살이 댓잎 사이로 스며들고, 바람이 지나가며 바스락거리는 소리. 걷는 이의 발소리마저 조심스러워진다. 많은 방문객이 이곳에서 ‘숲 속의 다른 차원’을 체험한다고 말한다. 인공의 구성이 단 하나도 없는 숲이 줄 수 있는 정서적 충만함이다.

아홉산숲은 맹종죽등 다양한 대나무가 흔들리는 풍경이 일품이다. 

아홉산숲은 순환형 산책로로, 대숲과 참나무 숲, 편백나무 군락 등을 지나 약 40분~1시간 소요된다. 숲속 굿터를 지나면 개잎갈나무와 맹종죽이 마주 보는 ‘바람의 길’, 편백과 삼나무가 이어진 ‘서낭당길’, 그리고 여름이면 분홍꽃이 흐드러지는 100년 된 배롱나무길까지, 숲의 결은 일정한 듯하지만 계절과 햇빛에 따라 변주된다.

편의시설은 거의 없다. 벤치 몇 개, 음수대 하나 없다. 심지어 화장실도 입구 쪽 한 곳뿐이다. 하지만 불편함보다 오히려 이 숲이 지켜온 절제와 고요에 대한 존중이 먼저 든다.

최근 아홉산숲은 ‘슬로우 포레스트 트레킹’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관광공사는 이 숲과 인근 ‘부산치유의숲’까지 연계한 치유형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또한 사전 예약제(단체)로 운영되는 숲 해설 프로그램은 남평 문씨의 가문사, 숲의 생태적 구조, 촬영지 설명까지 곁들여져 콘텐츠가 깊다.

수십 번 사진으로 보아도, 직접 걸어본 숲길은 전혀 다르다. 나무 사이로 흘러드는 바람, 대숲 사이로 깃든 시간, 땅에 닿은 햇살의 기울기. 그 모든 것이 내 몸에, 감정에, 기억에 기록된다.
숲은 걷는 장소가 아니다. 오늘을 내려놓고 내일을 채우는 속도의 기술이다.

아홉산숲은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입장료는 5000원이다. 반려동물은 동반할 수 없다. 

△ BTS가 머물렀던 사유와 치유의 숲 ‘서후리숲’

자작나무가 반짝이는 독특한 풍광의 서후리 숲 

경기도 양평 서종면 깊은 산자락, 그곳에 ‘서후리숲’이 있다. 33만㎡ 이르는 조용한 사유림. BTS가 머물며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됐지만, 여전히 숲은 조용히 자신의 호흡을 이어간다.

서후리숲은  1999년부터 조성에 들어가 2004년 본격 개발, 2014년 정식 개방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2010년 태풍 ‘곤파스’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으나 복구에만 3년을 들여 숲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전체 면적은 99만1735㎡. 이 중 33만㎡ 가 일반에 개방되어 있다. 그만큼 숲은 계획적이되 절제돼 있고, 손길은 닿았으되 거슬리지 않는다. 산책로는 잣나무, 자작나무, 메타세쿼이아,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 수종별로 테마가 분리돼 있다. 곳곳에는 벤치와 포토존, 전망대가 설치돼 사계절 풍경을 천천히 누릴 수 있게 했다.

북유럽의 숲을 닮은 서후리숲의 풍경. 

A코스는 왕복 1시간, B코스는 왕복 30분이 걸린다. A코스를 따라가면 서후리숲의 백미인 자작나무숲에 닿는다. 높은 해발에 자리한 이 자작나무들은 1980년대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하얗고 곧은 줄기가 빽빽이 서 있는 풍경은 북유럽의 숲을 닮았다.

이 숲이 더욱 주목받게 된 계기는 BTS의 방문이었다. 그들은 2019 시즌 그리팅(인사) 영상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넓은 잔디정원과 흰 벤치, 자작나무숲과 작은 연못이 어우러진 장면은 지금도 팬들의 발길을 끈다. 연못 옆 둥근 테이블, 벤치에 놓인 사진 속 두 멤버의 모습은 팬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작은 연못과 폭포까지 독특한 풍광을 품은 서후리숲. 

숲은 촬영지 이상의 가치가 있다. 계곡 옆 양귀비와 샤스타데이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1급수에만 사는 버들치가 노니는 물가에는 아이들이 발을 담그고 앉아 있다. 연못과 작은 폭포, 귀룽나무와 고광나무, 황금실측백나무와 구상나무숲은 각각 독특한 풍경을 품고 있다.

서후리숲의 운영 원칙은 분명하다. 음식물 반입, 반려동물 동반, 식물 채취는 금지다. 정해진 산책로 외 출입 역시 제한된다. 자연을 해치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숲 안팎에 음식점도 없다. 가장 가까운 식당이 차로 15분 거리다. 숲의 고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한 배려다.

서후리숲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사람의 손길이 머문 숲이지만, 오히려 자연이 더 살아 숨 쉰다. BTS가 다녀가며 유명해졌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숲’이다. 걸을수록 말이 줄고, 마음이 편해지는 곳. 서울에서 멀지 않지만, 삶의 소음으로부터는 멀어진 장소. 숲이 주는 본연의 위로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이곳이 그 해답일 수 있다

입장료는 일반 8,000원, 경로·장애인·학생·단체는 7,000원, 초등학생 미만과 서종면 주민은 5,000원이다. 매주 수요일은 휴무다. 단, 공휴일은 예외다. 대중교통 접근은 쉽지 않지만, 그것이 서후리숲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가장 가까운 역은 양수역이며, 이후 택시나 자가용으로 이동해야 한다.

△ 별세계로 가는 비밀의 정원, 구례 섬진강대숲길 

대숲길에 있는 그네가 있는 포토존

전남 구례에 섬진강 대숲길은 대중교통으로 닿기에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대숲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굴다리를 지나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굴다리 오른쪽으로는 정자 쉼터와 섬진강이 있고 왼쪽으로 대숲이 펼쳐진다. 

섬진강 물길따라 대숲 뒤 먼발치로 지리산이 물결친다. 구례가 자랑하는 풍경이 한데 모인 셈이다. 섬진강대숲길에 첫발을 디딜때 그 숲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은 구례가 아껴둔 비밀의 정원이다. 

대숲으로 가면 빼곡한 숲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대숲길로 들어서면 어느새 땡볕이 사라지고 마디마디 곧은 대나무 줄기가 무리지어 그늘을 드리운다. 대숲의 음명은 활엽수 그늘과 달라 수평으로 넓기보다 수직으로 깊다. 벤치에 앉아 대나무를 보면 빼곡한 숲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강바람이 ‘솨~’하고 불면 숲이 조금씩 일렁거린다. 

포토존도 여럿 곳에 있다. 중간 지점에 섬진강 쪽으로 뻗은 샛길이 있고, 섬진강대숲길 경계에 그네가 놓였다. 섬진강 풍경이 마치 한곳에 모인 듯한 느낌이다. 

야간이면 어둠이 내린 숲이 무지갯빛으로 변신하고 사방서 반짝이는 반딧불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최병일 기자 skycb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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