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경북 경주 안강 옥산리 옥산서원 숲
태초의 지구는 끊임없이 융합되고 분리되며 단단해져 왔다. 지각 변동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산과 평야, 계곡과 강을 형성하였다. 빗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흙을 깎고 돌을 다듬어 아름다운 계곡을 만들었다. 이러한 자연의 손길은 인류의 터전이 되었고, 쉼과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조상들은 계곡 주변에 다양한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정자를 세우며 서원과 별서를 지어 문화생활을 즐겼다. 그 대표적인 곳이 경북 경주 옥산서원 숲이다.
신록의 계절 오월, 영덕 영해의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돋이의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수평선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햇무리와 함께 태양은 파란 하늘에 펼쳐진 흰 구름바다에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붉은 용 같았다. 그 풍광의 황홀함을 가슴에 담고, 경주 안강읍 옥산리에 위치한 옥산서원 숲을 찿았다. 이른 아침이라 초록의 숲에는 자연의 소리와 진한 녹색 향기가 몸을 감싸며 나를 반겨 주었다.
계곡을 따라 난 호젓한 서원 숲길에서는 가슴속 감정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는 바람에 실려 나뭇잎을 흔들고, 은은한 흙냄새는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수백 년을 살아온 소나무, 회화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말채나무, 향나무, 은행나무 등 다양한 노거수들로 구성된 혼효림의 숲은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유독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땅 위로 드러난 계곡의 느티나무와 숲길 옆에 살아가는 회화나무의 뿌리들이었다. 계곡에서 살아가고 있는 느티나무의 뿌리는 이웃한 나무와 생명을 나누고 있었다. 주름지고 비틀어진 채 돌 틈을 비집고 나온 뿌리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때로는 두 나무의 뿌리가 서로를 감싸며 하나가 되어 자라는 ‘연리근’도 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 같고, 고단한 삶을 함께 이겨낸 가족 같았다.
회화나무의 뿌리는 마치 굼틀거리는 뱀 같기도 하고, 용틀임하는 것처럼 보였다. 절대 꺾이지 않겠다는 인간의 의지를 떠올리게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버티며 지탱하는 뿌리처럼, 인간도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뿌리를 품고 살아간다. 뿌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한다.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고,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며, 묵묵히 존재의 본질을 지탱한다. 하지만 간혹 땅 위로 솟아오른 뿌리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본디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난 뿌리는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칼도 마찬가지다. 칼집에 있을 때 날카롭고 위엄이 있지만, 무방비로 드러나면 오히려 무용해진다. 뿌리는 흙 속에 있어야 한다. 그 자리가 뿌리가 뿌리답게 숨 쉴 수 있는 자리다.
사람도 그러하지 않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보다는 마음속 깊이 품은 책임과 사랑, 침묵의 결심이야말로 진정한 뿌리일 것이다. 아버지의 굳은 등, 어머니의 굳센 두 손처럼 말없이 삶을 지탱해 주는 존재들이야말로 우리 삶의 진짜 뿌리다. 연리근을 바라보며 떠오른 가정의 모습, 함께 버티고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그랬다. 혼자 설 수 없을 때 곁을 지켜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숲은 단지 풍경이 아니다. 숲은 또한 기억의 저장고이기도 하다. 수백 년 전 이언적 선생이 옥산서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음성과 책장 넘기는 소리가 숲의 결 사이에 스며들어 지금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잎새의 속삭임은 그때 그 시절의 숨결을 불러내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잊고 있던 삶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나무마다 품고 있는 세월의 결은 한 사람의 인생처럼 굴곡져 있고, 가지마다 고인 햇살은 따뜻한 위로가 된다. 숲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잇는 조용한 시간의 통로다.
그 안에는 조용한 가르침이 있다.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린 느티나무처럼, 꿈틀거리며 힘차게 뻗어나가는 회화나무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림 없는 강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드러나지 않아도 삶을 지탱하도록 그러한 튼실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 또한 숲은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모든 자연물상에는 고유의 파동이 있고, 나무에서 나는 파동은 사람의 자기 치유력을 높인다. 어머니가 아이의 아픈 부위를 쓰다듬거나, 두 손을 비빈 후 통증 부위에 얹을 때 통증이 완화되는 것도 파동의 교감 때문이다. 예수가 손으로 병을 고쳤다는 것도 이러한 원리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정서적 불안으로 생긴 질병은 숲에서 치유할 수 있다. 특히 여름 숲은 매미 소리와 녹음으로 가득 차 힐링의 공간이 된다. 자연의 음악, 청정한 향기, 넘치는 기운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충전시켜 준다. 사계 중 봄과 여름 숲은 활발한 증산과 광합성 작용으로 에너지를 풍성하게 하여 우리의 마음도 넉넉해진다. 가을과 겨울 숲은 그 풍성함을 비우는 비움의 지혜를 가르친다. 미국 식물육종학자 댄 칼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음악을 들은 식물은 병충해에 강하고 잘 자라며, 엽록소와 ATP 생산이 증가한다고 한다. 이는 숲이 단순한 나무의 집합이 아니라 건강의 보고임을 보여주는 예다.
계곡에 흐르는 물처럼 나도 그 숲에 흐르다 머물며 내 삶의 뿌리를 되새긴다.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나를 붙잡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뿌리가 될 수 있을까. 나무는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을 이어 간다. 나 또한 내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며, 언젠가 내 뿌리에서 또 다른 가지가 뻗어나가길 바란다. 옥산서원 숲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은 내게 말해 준다.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용히, 깊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라고.
옥산서원(玉山書院)은…
사적 제154호,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7에 위치했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491~155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언적의 학설이 이황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학설이 되었으며 조선 성리학의 한 특징을 이루었다.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이 서원을 처음 세웠고, 이듬해에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서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유지되었던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이 서원은 초기 건물이면서도 질서정연한 형식을 갖추었다. 정문인 역락문을 들어서면 강학 공간으로 무변루와 구인당, 동·서재가 있고, 구인당 뒤편에 제향 공간으로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체인묘가 있다. 동재 오른쪽의 여러 건물은 서원의 살림을 맡아보던 곳이고 그 뒤편 건물은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현판의 글씨는 아계 이산해와 추사 김정희가 썼다.
2010년 7월에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19년 7월에는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다시 등재되었다. 옥산서원에서 북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회재의 별장이자 서재(書齋)였던 독락당(獨樂堂)이 있다.
조선시대 대표 서원 9곳은 안동 도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장성 필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함양 남계서원, 논산 돈암서원, 영주 소수서원이다. 이 서원들은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글·사진=장은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