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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삶

등록일 2025-05-12 18:19 게재일 2025-05-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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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봉학 변호사

소유하지 않음이 포기가 아니라 나를 더 잘살게 하는 선택이라면, 당신은 어느 쪽 길을 가겠는가. 소유함으로써 오히려 결핍되고,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충만해지는 길이 있다. 비움으로 채워지는 길. 무소유의 길이다. 무소유! 도대체 무엇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나의 답은 이렇다.

“무소유란, 자신의 관념을 소유하지 않는 것”

우리는 무소유를 떠올리면 필연적으로 돈을 떠 올린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돈이 무슨 죄가 있으랴. 돈에 대한 직접적인 무소유는 무소유가 지향하는 넓은 의미 중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무소유는 돈 자체의 소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돈은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돈을 소유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만, 돈을 버릴 이유도 없다. 돈에 관하여 우리가 소유하지 않아야 할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다. ‘돈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내려 놓는다’는 의미에서의 무소유, 이것이 돈에 관한 참된 의미의 무소유다. 삶은 돈 이외에 수많은 요소들로 짜여져 있다. 건강, 권력, 명예, 사랑, 우정, 자유, 그리고 행복 등등. 이런 소중한 것들 위에 켜켜이 쌓인 관념들을 이제는 내려놓기로 하자. 내려놓고 다시 채우고. 또 내려 놓고 다시 채우고…. 이것이 무소유의 삶이다.

무소유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의 기술’이다. 무소유라는 ‘테크닉’을 잘 활용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무소유의 삶은 자유롭다. 관념에 집착함이 없기 때문이다. 재물을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재물에 집착하면 창고지기에 불과하다. 지식을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지식에 집착하면 꼰대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사랑에 집착하면 불행하게 된다.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에 집착하고 있는 나의 마음 상태이다. 내가 가진 멋진 차에 집착하여 안절부절하고 있다면 그 차는 애물단지가 되지 않겠는가. 물건조차 이럴진대 하물며 사랑이랴.

무소유는 단순한 금욕이 아니다. 나라는 생각조차 버릴 수 있는 해방의 길이요, 더 잘살 수 있는 실천철학이다. 때로는, 가지는 것보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 1976)에서 인간의 삶에는 ‘소유의 방식’과 ‘존재의 방식’ 두 가지 근본적 태도가 있다고 했다. 소유하려는 자는, 자기 중심적, 불안, 소외를, 존재하려는 자는, 기쁨, 자유, 타자와의 연대를 지향한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행위이다. ‘나는 너를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할 때 사랑은 죽고,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라고 말할 때 사랑은 산다. 무소유는 존재론적 삶의 방식이다.

여기 아름다운 말들이 있다.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사유하는 자는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 속에서 산다(수타니파타 5.13)’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마태복음 5.3)’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 속에는 어떤 꿈들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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