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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기념물 경주개 동경이를 아시나요?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5-04-22 14:32 게재일 2025-04-2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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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행에세이작가 박시윤의 ‘경주는 흐른다’ <5_1> 경주개동경이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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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이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짧은 꼬리다. 보통 개의 꼬리뼈는 여러 마디로 이루어져 있지만, 동경이는 아예 꼬리뼈가 없거나, 많아야 두어 마디 남짓이다. 한때는 짧은 꼬리 때문에 ‘병신 개’ ‘재수 없는 개’로 천대받았다. /동경이보존협회 제공

요란한 짖음이 일제히 터져 나온다. 차에서 내리기도 전인데, 수백 마리 개들이 낯선 방문을 먼저 감지했다. 성난 파도처럼 일대가 술렁인다. 벨을 누르자 약속된 방문을 기다린 듯,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린다. ‘천연기념물 보존’이라는 말에 걸맞게 경비가 철저하다.

하지만 문이 열렸다고 해서 함부로 걸어갈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경계가 사방에 깔려 있다. 간담이 서늘해지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제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현실이다. 수백 개의 눈, 그리고 날 선 경계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갇혀 있다고는 하나 이 날뛰는 짖음 앞에 감히 어떤 용기가 작동할까.

조선후기 문헌에 ‘장자구’ ‘녹미구’ 언급
현종  ‘동경잡기’에 ‘東京狗’ 명칭 첫 등장
단순한 애완견 넘어 문화적 아이콘으로
신라 토우에도 동물 중 가장 많이 등장

 

이름 ‘동경이’엔 경주의 역사 흔적 뚜렷
“일본 신사 수호신 고마이누와 닮았다”
일제 강점기 도살로 개체수 급격히 감소
온갖 고난 딛고 신라 1000년 전통 계승

여간한 담력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앞발을 일으켜 세워 두 발로 서서 철망을 박차듯 밀어대는 녀석, 목줄이 팽팽해질 만큼 허공을 향해 몸을 튕기는 녀석,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송곳니까지 내보이는 녀석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짖음, 극대화된 공포는 결국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한다.

그러다 한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살아 있는 눈빛이 반들거린다. 녀석의 검은 눈동자 속에 잔뜩 겁에 질린 내가 서 있다. 이 모진 위협 속에서도 나는 진심을 전하느라 최선을 다한다. 녀석이 먼저 내 눈빛을 읽은 걸까. 으르렁대면서도 짜리몽땅한 꼬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짖음은 경계가 아니라, 요란한 반김으로 읽힌다. 마음을 읽는 데 내가 녀석보다 한발 늦은 걸까. 드디어 녀석의 선한 기운이 읽힌다. 경계하고 짖고, 낯선 이를 의심하는 성질은 녀석들의 본능이다. 마치 “누구십니까?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묻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보존회 전체가 개들의 마을 같다. 보존회 건물 안은 녀석들만의 치열한 공동체로 느껴진다. 낯선 인기척과 얼굴, 냄새와 음성, 신고식도 없이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나를 경계하는 건 당연하다. 짖고, 두드리고, 날뛰며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내게 확실히 각인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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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생후 60일이 지나면 절차에 따라 일반인에게도 분양이 가능하다. /동경이보존협회 제공

■역사에 기록된 토종개

‘동경이(東京狗)’의 존재는 고문헌 곳곳에 드러난다.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660년(의자왕 20년)이다. “사비성 서쪽에서 들사슴처럼 생긴 개가 사비강 둑 위에서 궁궐을 향해 짖자, 궁 안의 개들도 따라 짖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백제가 멸망했다.” 여기서 ‘들사슴 모양의 개’는 짧은 꼬리와 민첩한 체형을 가진 신라의 토종개를 지칭한 것이다.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동경이에 관한 묘사가 있다. 그는 “경주의 개는 꼬리가 없으며, 노루 새끼를 닮아 장자구(獐子狗)라 하고, 사슴 꼬리를 닮아 녹미구(鹿尾狗)라고 한다” 고 기록했다. 동경이의 생김새를 언급한 것이다.

‘동경구(東京狗)’, 즉 ‘경주의 개’라는 명칭이 명확히 등장하는 기록은 1669년, 조선 현종 10년에 경주 부윤 민주면이 편찬한 『동경잡기(東京雜記)』다. 그는 경주 여인들이 북쪽 기운이 허한 것을 보완하고자 머리를 뒤로 틀어 올렸다는 ‘북계(北髻)’ 풍습을 기록하며, 짧은 꼬리를 가진 개 역시 “북방의 기운이 허한 탓에 생긴 것이라 하여 동경구(東京狗)라 불렸다”고 전한다. 개의 특징을 단순히 외양으로 설명하지 않고, 지역의 자연환경과 풍속, 음양오행 사상까지 연관 지어 놓았다.

실학자 이익 또한 1760년 무렵에 쓴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짧은 꼬리를 가진 개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며, 1778년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이학규의 『물명유해(物名類解)』, 그리고 근대기 백과사전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도 ‘노루꼬리 개’, ‘무미견(無尾犬)’, ‘동경 개’ 등의 기록을 남겼다.

짧은 꼬리를 지닌 동경이는, 단순한 지역의 애완견을 넘어 신라와 조선의 사상과 환경, 인간의 감성에까지 기록되어 살아남은 문화적 존재였음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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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무늬를 가진 호구다. 털의 무늬 때문인지 매서운 인상을 준다.

■신라 무덤 속 꼬리 짧은 토우

5~6세기 사이,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토우(陶偶)들 중 꼬리 짧은 개가 있다. 흙으로 빚은 개는 생생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짧은 꼬리를 치켜들고, 귀를 쫑긋 세운 채 누군가를 향해 달려가려는 찰나의 몸짓이다. 얼굴의 선과 눈매, 귀의 방향과 자세까지도 놀랍도록 사실적이다.

토우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개다. 그중 꼬리가 없거나 몹시 짧은 개는 멧돼지와 맞서 싸우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동경이가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닌, 맹수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짐승을 대적해 사람을 지키는 용맹스런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동경이는 신라인의 삶 깊숙이 존재하던 ‘생활견’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개는 종종 무덤에 함께 묻히거나, 토우로 만들어져 묻혔다. 죽음의 문턱 너머까지 사람과 함께하던 삶의 동반자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려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개는 이미 사람과 한집에서 숨을 쉬고, 고단한 노동과 험한 길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무덤 속에서조차 그들과 헤어지지 않았다.
 

한국경주개 동경이 혈통서. 천연기념물 제540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경주시 전역에서 약 530마리 정도가 혈통을 유지하며 관리되고 있다.

■이름에 깃든 역사, 댕견

한국에는 여섯 종류의 토종개가 있다. 삽살개, 진돗개, 풍산개, 불개, 제주개, 그리고 댕견이다. 댕견은 꼬리가 짧은 경주 토종개 ‘동경이(東京狗)’다. 동경이는 ‘경주에서 왔다’는 단순한 지리적 표기가 아니다. 그 안에는 고려 이후의 역사와, 경주의 자취, 그리고 사람들의 정서가 함께 담겨 있다.

‘동경(東京)’이란 명칭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새 수도 개경의 동쪽에 자리한 경주를 행정적으로 부르던 표현이다. ‘동쪽의 도읍’. 그래서 경주에서 태어난 이 짧은 꼬리의 개는 ‘동경의 개’, 곧 ‘동경이’, 또는 ‘동경견’이라 불렸다.

그러나 문헌보다 더 오래된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남아 있다. 지역 어르신들은 이 개를 ‘동경이’보다는 ‘댕견’, ‘댕갱이’, 혹은 ‘땡갱이’라고 부른다. 툭툭 뱉어지는 이 구수한 방언은 경주의 골목과 마을에서 오랫동안 불린 소리다. 지금이야 ‘경주개’로 통칭되지만, 댕견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경주 어른들의 입에 붙어 있다.

댕견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짧은 꼬리다. 보통 개의 꼬리뼈는 여러 마디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개는 아예 꼬리뼈 자체가 없거나, 많아야 두어 마디 남짓이다. 그래서인지 꼬리 대신 다리와 목, 후각이 유난히 발달했다. 짧고 단단한 몸에 유연한 근육이 붙어 민첩하다. 특히 후각이 매우 예민해 멧돼지 같은 야생 짐승을 추격하거나 유인하는 사냥개로서 탁월했다.

흥미로운 건 성격이다. 다른 토종견들이 낯선 이를 경계하고 잘 짖는 데 비해, 댕견은 조용하고 살갑다. 경계보다 관찰이 먼저고, 공격보다 기다림이 먼저다. 주인을 향해서는 절대적인 복종심을 보이면서도, 타인에게는 똘망한 눈빛으로 먼저 마음을 건넨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짧은 꼬리를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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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이는 짧고 단단한 몸에 유연한 근육이 붙어 민첩하다. 특히 후각이 매우 예민해 멧돼지 같은 야생 짐승을 추격하거나 유인하는 사냥개로서 탁월했다.

■일제강점기, 씨가 마른 댕견

동경이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언제 봤다고 해맑게 달려든다. 낯선 이에게도 주저 없이 다가가 애정을 구하는 녀석과 마주하면, 누구라도 경계를 허물게 된다. 그렇게 한 생명을 향해 마음이 열리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랑스러운 개도 수난의 시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민중들이 뿌리째 흔들리던 그때, 사람의 언어와 문화, 심지어 마당을 지키던 개 한 마리조차 제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 동경이에게도 피로 쓰인 절멸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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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이는 사람을 잘 따른다. 행정팀 정승락 주임이 오자 동경이들이 얼른 달려가 친근감을 나타낸다.

일본은 전시 동원령 아래 사람을 마구잡이로 징집했으며, 가축뿐만 아니라 개도 도살의 대상으로 삼았다. 동경이 역시 급격히 사라졌다. 동경이가 일본 신사의 수호신인 ‘고마이누(高麗犬, こまいぬ)’와 닮았다는 이유로 도살되었다는 말이 떠돌았다.

고마이누는 일본 신사의 입구를 지키며 악귀를 막는 신수(神獸)다. 꼬리가 거의 없고, 눈빛이 단단하며, 용맹한 동경이의 모습이 고마이누와 흡사하다는 것이 일본인의 불쾌감을 샀고, 결국 동경이를 없애려는 시도로 이어졌다는 설이다. 역설적이게도 ‘신성함’이라는 이유가 학살의 명분이 되었다니 큰 모순이다. 자신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이 식민 지배하고 있는 하찮은 조선 땅을 돌아다니는 흔한 짐승이라는 것에 적잖이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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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관리팀 정하원 팀장이 오자 좋아서 못 사는 동경이들이다. 사양관리팀은 동경이들에게 단순한 관리사가 아닌 서로 교감하는 가족이자 울타리다.

이 설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일제강점기 동경이는 실제로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꼬리가 없다는 이유로 ‘병신개’, ‘재수 없는 개’라며 천대받았다. 어느 날부터 울타리 안에서 개가 사라졌고, 짖던 소리도 줄었다. ‘씨가 말랐다.’ 그건 단순한 생명의 소멸이 아니었다. 경주의 역사와 신라의 감성, 사람의 삶을 묵묵히 지켜온 동반자가 사라진 것이었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동경이의 절멸은 단순한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경주와 신라의 감성, 그 땅의 문화까지 지우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 종(種)을 지우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동경이는 일부 민가의 마당에서, 산기슭의 움막에서 조용히 새끼를 낳고 생명을 이어갔다. 주인의 손에서 숨어 지내고, 아이들과 뒹굴며 그 억센 세월을 버텨냈다. 그렇게 기적처럼 이어진 생명은 지금도 경주의 마을 어귀를 거닐고, 신라의 시간을 품은 채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다.

<下> 편에는 주인을 따라 죽은 경주개 동경이 전설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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