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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바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등록일 2025-04-20 18:38 게재일 2025-04-2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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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어떤 글은 사람의 마음을 푹 찌르고, 어떤 글은 따사로운 웃음이 나게 하며, 또 어떤 글은 침묵을 몰고 오기도 한다. 고3 국어책에서 읽은 나도향의 ‘그믐달’은 처연하되 기억에 오래 남는 산뜻함을 지녔다. 학부 1학년 <교양 국어>에 실린 심훈의 ‘5월의 바다’는 식민지 조선을 살아갔던 젊은 엄마의 처절한 가난과 출구 없는 삶을 그려낸 명문(名文)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독자의 영혼과 심장에 비수를 내리꽂는 글을 쓰고 싶을 터.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험은 쉽지 않다. 2015년 4월 이맘때 나는 먼 길을 향해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대지엔 연초록 물결이 넘쳤으며, 거리거리엔 생기가 넘실거리던 시절. 하지만 장정(長程)에 오르는 내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대략 300km에 이르는 멀지 않은 길이지만, 쉬지 않고 달려도 5시간이 소요되는 고된 여정이었다. 초행(初行)이었기로 전남 광양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인근에 자리한 식당에서 대충 점심을 마치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다. 출발 여섯 시간 만에 도착한 그곳은 시퍼런 바닷물이 넘실대는, 거친 파도가 일렁이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몰아닥치는 진도 팽목항이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노란 리본이 죽은 원혼들처럼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애처롭게 호곡(號哭)하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 속을 걸어 분향소로 걸음을 옮긴다. 별로 크지 않은 곳이었지만, 300여 영정 사진이 빼곡하게 걸린 공간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영정 사진을 본 적이 없었기로 속은 막막하고 콧날은 시큰해지고, 눈물이 핑돈다.

분향소 안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밖으로 나와 높은 파도 일렁이는 먼바다 응시한다. 그래, 작년 이맘때 여기서 너희들이 죽었구나, 혼자 속삭인다. 17살 고교 2년생 어린 철부지들이 영문도 모른 채 불귀의 객이 되어야 했던, 벌건 대낮의 날벼락 같은 죽음들! 차마 발길이 쉽게 돌려지지 않는다.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하릴없이 승용차로 다가간다.

2014년 4월 말 나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과했다. 나이만 먹은 놈이 세상을 잘못 만들어 어린 넋들을 스러지게 했다고 눈물로 사과했다. 차마 학생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끝내 돌아서서 벽을 바라보며 숨죽인 채 눈물을 닦아야 했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죄스러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리고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2019년 4월 광주는 추모 물결로 넘쳐났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하는 현수막이 초중고교는 물론, 서구청사까지 내걸렸다. 아, 여기는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같은 시각 대구 어디에도 광주에서 본 현수막은 눈에 띄지 않았다. 대구 8개 구청과 군청 어디에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현수막은 걸리지 않았다.

세월호 대참사 11주년을 맞이한 지난 16일 조기(弔旗)를 걸다가 10년 전 진도 팽목항을 다녀온 기억이 떠올랐다. 살았다면 28살 청춘들일 텐데, 하는 헛헛한 생각만 떠돌 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시정과 국정 책임자를 한시바삐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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