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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민들레로 노랗게 핀다

엄다경 시민기자
등록일 2025-04-10 18:29 게재일 2025-04-1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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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언덕에 민들레와 제비꽃이 피고 풀이 자랐다. 모두 제 이름대로 꽃 피고 잎을 피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외출을 했다. 한동안 따뜻하다가 추워지니 더 추운 느낌이었다. 뽀얀 꽃잎을 피웠던 매화는 매운바람에 그새 잎을 떨구었다.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생처럼 떨어진 꽃잎이 말라 가고 있었다. 골목을 걸어가는데 꼭 누가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샛노란 민들레였다. 노랑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노랑으로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보도블록과 담장 사이의 좁은 틈에서 핀 민들레. 세상에서 가장 밝은 노랑이 거기 있었다.

봄이 온 줄 알고 꽃을 피워내는 민들레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졌다. 문득 한 포기의 꽃이 피어나는 데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꽃이 피는데 무슨 사명감이 있어서 필 것인가. 민들레는 누군가에게 보아달라고 피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원에 병문안을 다녀오고 난 뒤 한동안 인간의 존재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빠져 있었다. 온전치 못한 몸과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만 계신 어르신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어르신들이 안쓰럽지만 어쩌면 그게 우리 모두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이 꼭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가치 있는 삶인 걸까? 존재는 그저 존재만으로도 그 의미를 다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새순이 돋는 봄이 오면 항상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누군가가 있어 이 지구를 데워주고 있으니 이런 눈부신 봄이 오는 것 아닐까 하고. 그런 마음으로 쓴 시를 읽어본다.

“저승의 어머니 이승의 아궁이에 불 지피시네 / 긴 치맛자락 펼치고 앉아 / 찬 잿더미 위에 낙엽을 모아 불 붙이시네 / 이승의 아궁이가 환해지네 / 나무들 몸 비틀어 타오르고 / 가물가물 더운 김 오르네 // 허공의 가마솥에 시간이 익었네 / 수만의 잎들이 돋아나네 / 후둑후둑 꽃들이 피어나네 / 꼬물거리는 벌레들 / 노래를 흩뿌리는 새들 / 주는 대로 받아먹고 주린 배를 채우네 / 긴 햇빛 부지깽이 종일 아궁이를 들쑤시네” - 엄다경 시 ‘봄’

보이는 않는 어떤 큰 손이 있어 따뜻이 불을 지펴주기에 우리에게 봄이 오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비과학적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봄이 되면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세상에 꽃이 피고 잎이 돋고 생명들이 태어나는 것은 다 보이지 않는 힘이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쓸모없어 보이는 존재들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 거라고 굳게 믿는다.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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